533화. 이빨 빠진 사자의 회한 (1)
“길목으로 치고 올라온 쪽은 남았고, 빙궁과 마주한 병력은 싹 쓸어 버렸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음…….”
호요성의 눈이 번뜩였다.
‘전면에 나서지 말라고는 했다만.’
담사영이 빙궁을 치려 한다. 그리고 천마신교는 그쪽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다만 상황이 바뀌었으니, 혹여 전면전이 벌어진다 한들 이번만큼은 천마신교의 승률이 높다. 저쪽은 하북, 산서, 산동의 혈신기를 신경 써야 하니만큼 전력의 투입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지간해선 전면전은 피하는 게 좋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을 것이고, 불필요한 희생은 딱 질색이기에.
그래서 마왕령을 보내지 않으려 했지만…….
“상세 보고서를 주게.”
“여기 있습니다.”
보고서를 훑어본 호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잘 처리했군.’
그가 생각을 바꾼 이유. 즉, 전면전을 감수하고 마왕령을 보낸 이유는 마왕령이라는 부대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는 위홍련을 믿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감각을 믿었다.
위홍련은 머리가 똑똑하진 않아도 대국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읽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교주님께서 왜 그녀를 마왕령주로 임명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그녀의 능력은 특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철저하게 폭파전(爆破戰)으로 갔다. 아주 좋아.’
강호에서 화기(火器)를 쓰는 것은 정사마(正邪魔)를 불문하고 금지되어 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그러했다.
하지만 서량과 호요성은 마왕령에 화탄과 개량 화포까지 얹어 주었다.
그들은 침투, 공작, 암살 등등 온갖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조직이었다. 화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주어도 모자라다.
또한.
‘황제와 옥새가 우리에게 있다. 화약 사용을 두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면, 그때는 명분 싸움으로 물고 늘어지면 그뿐.’
신중함과 과격함을 넘나드는 지모(智謀)다. 이천상이, 서량이 호요성을 총애하는 이유였다.
‘한데 담사영은 마왕령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까?’
마왕령에 따라붙은 모종의 조직은 절벽 폭파로 발을 묶어 버렸으며, 빙궁의 뒤를 쫓았던 자들은 당가의 화약 암기를 개조한 극소포와 빙궁인(氷宮人)들의 공격으로 섬멸해 버렸다.
즉, 마공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마왕령이 익힌 은신술은 호천마황단의 그것이라 초절정고수도 알아채기 힘들다.
‘궁금하군.’
만일 마왕령이 천마신교 소속이라는 걸 모른다면, 그는 곧바로 사천을 주시할 것이다. 마왕령을 사천으로 보낸 까닭 자체가 사천당가(四川唐家)를 중심으로 칠파(七派)가 힘을 모으려는 걸 뒤집어 놓으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왕령이 다루는 화기는 모두 당가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했다. 담사영으로서는 이러나저러나 당가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반면 마왕령이 천마신교 소속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진짜로 싸워 볼 테냐?’
이게 바로 호요성의 대담한 수였다.
그는 오히려 담사영이 마왕령의 정체를 알아채기를 바랐다. 말하자면, 호요성은 담사영의 반응을 보고 싶은 것이다.
담사영은 과연 전면전을 일으키려 할까? 아니면 한 번 더 신중함을 보여 줄 것인가?
‘놈의 성격상, 어지간하면 전면전보다는 한 번 더 참아 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전면전을 벌인다면…….’
막말로 전면전이 벌어져도 승기는 이쪽에서 쥐고 있다.
호요성은 그 많은 목숨을 쥐고서 또다시 담사영을 떠본 것이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바로 그때 옥새를 꺼내 든다.’
지금까지 옥새를 꺼내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었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구석에 몰린 자의 발악만큼 무서운 것은 없는 법, 호요성은 최소의 피해로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싶었다.
그러나 그와 모순되게도, 무수히 많은 목숨이 걸려 있음을 알고서도 상대를 떠봤다.
호요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군.”
천하, 정확히는 담사영과의 싸움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천하의 호요성도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전면전은 싫다. 그러나 전면전이 벌어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죽는 게 싫다. 그러나 모두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상대의 의중을 한 번 더 떠보고 싶다.
‘결국,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거야.’
담사영과의 승부가, 이 건곤일척의 승부가 드디어 최종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만일 담사영이, 우리가 빙궁을 도왔음을 알고서도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호요성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상황에 따라 우리가 먼저 전면전을 가해도…….’
위험한 생각이다.
그리고 호요성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스스로를 경계했다. 어쩌면 이쪽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 담사영의 계략일는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급해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후우, 힘들군.”
초해가 물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아니오. 그냥 나도 사람인지라, 오랜 부딪침에 슬슬 넌더리가 나는 모양이외다.”
“담사영 말씀입니까?”
“그렇소.”
호요성은 문득 궁금해졌다.
“음상단주가 보기에는 어떻소?”
“무엇이 말씀입니까?”
“이번 싸움, 본교와 담사영 간의 싸움에서 누가 승리를 거머쥘 것 같소?”
말을 뱉어 놓고도 호요성은 이런 웃기지도 않는 질문을 한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런 걸 묻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닐 텐데.
“글쎄요. 워낙 변수가 많은 싸움이라 쉬이 판단이 서질 않는군요.”
“하하, 그렇겠지. 변수가 많은 싸움이라…… 맞는 말이오. 미안하오. 내가 쓸데없는 질문을 했소.”
“아닙니다.”
고개를 저은 초해가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한데 말입니다.”
“음?”
“이것은 그저 제 개인적인 궁금함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질문이기에 그리 뜸을 들이시오?”
“그…….”
내가 왜 지금 이 순간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초해 역시 의아했다.
다만, 이 말을 해야 할 때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위홍련의 감각처럼, 정보를 다루는 정보원이자 지모를 쫓는 초해만의 감각이었다.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그간 담사영과의 대립에서, 언제나 변수가 없는 상황으로 싸움을 끌고 가지 않으셨습니까?”
호요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변수가 없는 상황……?”
“그렇습니다.”
초해의 눈이 반짝였다.
“교주님께서는 담사영에 대해 놀랍도록 많은 걸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장점입니다. 적에 대해 잘 알수록,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오.”
“하지만 총군사님께서는, 교주님께서 홀로 움직이실 때도 언제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오. 총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소.”
“물론 그리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만…… 저와 소문주님은 총군사님의 기가 막힌 계책을 볼 때마다 항상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전략 전술의 유연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더군요.”
“하하.”
“더 놀라운 것은, 그 유연하기 짝이 없는 전략 전술이 적에게는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 놈들을 이쪽의 뜻대로 움직이게 했다는 것입니다.”
“……음?”
“이번 옥새 탈취 건에 대한 것만 봐도 총군사님의 계략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교주님이라는, 절대 내보이지 말아야 할 패를 던져 두어 적의 시선을 묶은 뒤, 빙궁까지 끌어와 이중 삼중의 덫을 두었지요?”
호요성의 눈이 번뜩였다.
“또한 그간의 전략을 통해 적에게 총군사님을 한없이 파격적인 존재라고 각인시켰습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함정이었습니다. 담사영 측은 옥새가 이쪽에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를 겁니다.”
“……!”
“총군사님의 전략은 그런 식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시작과 완결을 짓지 않지요. 지난 세월부터 만들어 왔던 거대한 계획의 일부로 활용하였을 뿐입니다.”
초해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총군사님의 전략이 유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다 상정 범위 안이니까. 여러 개의 전략이 아닌, 물처럼 흐르는 듯한 전략으로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으셨는지요?”
“…….”
“결국 총군사님께서 원하시는 게 적의 완전한 파멸이요, 마도천하를 향한 길이라면 이전과 같이 적의 변수를 완전히 봉쇄하는, 그러나 변수가 터져도 별문제가 안 되는 수를 쓰시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호요성은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간 구상하고 시행했던 전략들이 바둑판처럼 그려졌다.
“그래, 그랬지. 나는 그런 식으로 움직였었지.”
한참을 허공을 올려다보던 호요성이 초해의 양손을 붙잡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예에……?”
“잠시 나 자신을 잊고 있었소. 하나 음상단주 덕에 지난날의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깨달았소이다.”
초해는 얼떨떨했다.
“아…… 도, 도움이 되었다면 영광입니다만.”
“도움이 되었소. 크게 되었고말고.”
호요성은 크게 웃었다.
그간 그와 서량은 상대에 대해서만 알았지, 상대의 주변 상황에 대해서는 그 순간순간만을 조사하며 대국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것은 서량의 파격적이고도 승부사적인 면모에 적합한 전략이었다. 호요성은 철저하게 그의 뒤를 받쳤으며, 차포(車包)보다 자유롭고 위협적인 서량이라는 기물을 이용해 상대를 파멸시켰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서량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그가 교주이기 때문이다. 호요성 역시 교주가 위험해지는 건 바라지 않았기에, 더는 서량이라는 패를 손에 쥐지 않은 채 대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답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설령 교주라도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지금껏 승리를 거머쥐었던 것처럼.
“훗날 본교가 진정한 천하제일이 되면 그것은 하오문의 덕이요, 음상단주의 조언 덕분이외다. 내 이렇게 감사를 표하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초해가 기겁했음은 물론이었다. 천마신교의 총군사는 무림 최고 권력자 중 하나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으니, 초해로선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저 제가 보고 느낀 대로만 말했을 뿐입니다. 오히려 주제넘게 나선 것은 아닌지…….”
“주제넘다니? 결코 그리 생각하지 마시오.”
호요성이 싱긋 웃었다.
빛나는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해 보였다.
“며칠을 붙잡고 감사를 표하고 싶소만, 상황이 바쁘니 이해해 주시오. 훗날 술 한잔합시다.”
일각 후, 마침맞게 서량에게 연락이 왔다.
“철혈성으로 향하신다?”
호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초해의 말을 듣기 전이라면 절대 그곳으로 향하지 마시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도 서량이라는 최고 기물을 통해 맛난 승리를 거머쥘 생각이었다.
“병력을 파견하는 게 아니라, 철혈성 내부로 들어가 소성주의 반대파들 몇을 박살 내고 혼란을 유도하시겠다는 것이로군.”
그 부분에서 뭔가 고칠 게 있을까?
아니다. 전혀 없다. 호요성은 서량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 서량에게는 호천마황단까지 따라붙지 않았나. 교주님의 안전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직으로 내리찍는다.
“지금 당장 마왕령에게 연락을 취해라! 사천성이 아닌 강서성이다! 산동에 머무르고 있는 ‘그분’과 함께 철혈성의 머리를 찍으라고 전해! 최대한 빨리!”
아래에선 교주님이, 위에선 마왕령과 새외의 제왕이.
철혈성의 전력에 비할 수 없는 작은 힘의 조화가 천재지변을 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