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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35화 (534/774)

535화. 이빨 빠진 사자의 회한 (3)

“교주님.”

“응?”

“하나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새삼스럽게 뭘. 물어봐.”

마동필의 얼굴에 솔직한 의아함이 어렸다.

“언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총군사한테 연락이 오면.”

환야를 만난 지 무려 열흘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껏 서량과 마동필은 물론, 환야와 휘하 검수들 또한 주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서량 때문이었다. 그는 환야에게 기다리라 말했고, 그 참에 여유를 지니라고 조언했다.

물론 환야는 당장이라도 철혈성으로 향하길 원했다. 가서 천마의 힘으로 권력자들을 휩쓸어 버리고, 하루라도 빨리 권좌에 오르기를 원했다.

서량은 하루하루 환야를 달랬다.

다행히도 환야는 서량의 말이라면 끔뻑 죽었다. 이제 와 그는 서량을 마치 배다른 형제처럼 여겼다.

기실, 마동필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주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시니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환야 ‘따위’가 교주님께 친근하게 구는 것 자체가 심사 뒤틀리는 일이었다.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철혈성주라면 모를까, 상단전과 중단전이 망가져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는 반쪽짜리 무인이 한 번씩 교주님께 무례까지 저지르고 있었다.

교주님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놈의 목을 날려 버렸을 것이다.

서량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주루 후원 맨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환야가 히죽 웃으며 포양호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권좌에 앉아 천하를 호령하는 상상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래라면 총군사에게 닷새 전에 연락이 왔어야 해. 그런데도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지.”

“…….”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어?”

잠시 고민하던 마동필이 입을 열었다.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말해 봐.”

“조금 더 신중을 기하기 위함이거나…….”

“그리고?”

마동필의 눈이 반짝였다.

“교주님께서 가시는 길에 뭔가 더 준비를 해 드릴 생각이겠지요.”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의 지략을 생각하면 후자일 수밖에 없겠지?”

“그렇습니다.”

“총군사는 알고 있어. 내가 동필이 너 하나만 데리고 철혈성으로 향하는 게 아님을. 지금 이 주변에는 호천마황단이 날 호위하고 있지.”

호천마황단은 언제, 어느 때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교주를 따른다.

그들의 은신술은 가히 천하제일을 논해도 부족함이 없는지라, 마동필도 극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그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 말인즉, 극마의 고수조차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모른다면, 호천마황단의 존재를 알아챌 확률이 극히 낮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나의 안전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렇다면 총군사는 철혈성으로 치고 들어가는 나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줄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렇겠군요.”

“아마 그 준비는 끝났을 거야. 워낙에 똑똑하니까. 다만 그런데도 시간을 지체하고 있다는 건…….”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확신하고 움직여야 할 무언가를 조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확신이요?”

“생각해 봐. 내가 환야를 따라 철혈성으로 들어갔어. 외성까지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하지만 내성으로 들어섰을 때 송금백이나 그에 준할 만한 고수가 나타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

“총군사가 확인하고 싶은 건 바로 그것이겠지.”

“하오문……!”

서량이 큰 소리로 웃었다.

“슬슬 너도 미쳐 가는구나. 거기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동필이 너도 정쟁(政爭)을 장기판이나 바둑판처럼 보게 될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마동필이 작은 미소를 띠었다.

“미치지 않고선 거기까지 볼 수 없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창칼이 아닌, 사람의 욕망과 정보를 토대로 상대 조직을 망가트리려고 하는 전술이야. 보통 미치지 않고서야 그 한 수, 한 수를 내다볼 수가 없지.”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젠 나도 슬슬 그 광기로 가득 찬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구나.”

반 시진 뒤.

“교주님.”

“그래.”

파악!

주루 밖으로 날 듯이 달려 나간 마동필이 복면을 쓴 마인과 만났다.

“호위장을 뵙습니다.”

“서신을 가져왔는가?”

“그렇습니다.”

“고생했네.”

재차 주루로 돌아온 마동필은, 이미 호왕 위에 올라탄 서량과 도열한 철혈성의 무사들을 볼 수 있었다.

“교주님. 서신이 왔습니다.”

“보자.”

서신을 펼친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하오문.’

서신에는 철혈성 내, 성주의 부재와 상태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철혈성의 군사가 당했다고?’

서량이 환야를 보았다.

환야가 씨익 웃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소?”

광기 어린 욕망이 덕지덕지 묻어 있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느라 고생이 많았네. 이제 자네를 태사의에 앉히러 가 볼까?”

“하하하! 좋소!”

“가세나.”

그렇게 서량과 환야는 철혈성으로 향했다.

호왕을 타고 달려 나가며, 서량은 생각했다.

‘사천으로 향하던 마왕령과 빙궁주를 남하시키겠다?’

서신에는 철혈성의 현 상황은 물론, 서량의 뒤를 받쳐 줄 호요성의 전략 역시 적혀 있었다.

‘위아래로 씹어 으깬다? 아주 좋군.’

여극도와 마왕령으로 철혈성의 북문을 깨부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다만 워낙 병력이 많기에, 그 이상의 침투가 불가능할 뿐이다. 무력으로 철혈성에 침투하려면, 거기에 천마군 정도는 있어 줘야 한다.

즉, 여극도와 마왕령이 할 일은 철혈성을 공격하는 게 아니다.

‘뒤흔들어 버리는 거지. 꽉 묶여 있던 사파 잡졸들의 연결 부위를 헐겁게 만드는 거야.’

서량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부수기가 한층 수월해지겠지.’

일행의 북상 속도는 빨랐다.

한시라도 빨리 도달하고 싶은 듯, 환야의 신법은 거의 극마의 고수에 필적할 정도로 빨랐다. 휘하 검수들이 점차 뒤지고 있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서량과 호왕, 마동필뿐이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고작 닷새 만에 일행은 강서에 진입, 이후 철혈성 근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번개 같은 속도였다.

“후욱. 후욱.”

“많이 힘든가?”

“괘, 괜찮소.”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환야의 표정은 밝았다. 멀리 보이는 철혈성의 모습에 심장이 족히 두 배는 더 빨리 뛰고 있었다.

서량이 호왕에서 내려 그의 등을 두들겼다.

“고생했다.”

크르릉.

호왕 역시 구유마기의 주입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그리고 오랜 시간 달리지 못했을 것이다. 호왕은 곧바로 그 자리에서 엎드리며 혀를 빼물었다.

서량의 품속에 있던 금호가 슬쩍 고개를 빼 들고 호왕을 보았다.

우웅.

금호의 두 눈에 분홍빛 광채가 일자, 호왕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다.

금호의 턱을 긁어 준 서량이 말했다.

“대충 기파를 읽으면 알 수야 있겠다만, 이왕이면 꼭 없애야 할 자들의 명단 정도는 알려 주는 게 좋지 않겠나?”

“괜찮소. 당신은 내 거처에 함께 들어가면 되니까.”

“거처에?”

도리어 환야가 의아해진 얼굴로 말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소?”

서량은 내심 기가 막혔다.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이놈 개막장이 다 됐구먼.’

철혈성 안으로 마교주를 들인다는 생각부터 상식을 초월했지만, 심지어 자신의 거처에까지 함께 들어가잔다. 자신에 대한 조심성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뜻이었다.

‘송 성주. 제자 관리 좀 잘하지 그랬나.’

이건 환야의 잘못 이전에 송금백의 잘못이었다. 미쳐 가는 제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송금백의 무심함이 지금의 사태를 낳았다고 볼 수 있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서량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백의 검수 모두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나친 내공 소모로 내상을 입은 자들이 태반이었다.

“거기, 너.”

끄트머리에 선 검수의 눈에 의아함이 일었다.

“네 덩치가 나와 비슷하군. 입고 있는 옷을 벗어라.”

검수가 당황하여 환야를 보았다.

환야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뭐 하고 있는 것이냐? 당장 움직이지 못해?!”

“아, 예!”

검수가 허겁지겁 겉옷과 내의를 벗었다. 서량은 여유롭게 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환야가 물었다.

“복장도 바꾸었으니 기파를 죽인 채 한데 움직인다면야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소. 하나 얼굴은 가려야 하지 않겠소?”

서량이 서늘하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알아서 잘 처신할 테니.”

이곳으로 오기 전보다 조금은 더 거칠어진 말투였다. 철혈성을 보자 그의 심장 역시 달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환야는 서량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온 신경이 철혈성에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경탄이 절로 나오는 집중력이었다.

“동필이는 호왕과 함께 있어.”

“알겠습니다.”

적지에 교주님을 보내면서도 마동필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호천마황단이 호위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이런 일이 꽤 익숙했다.

“자, 그럼 가자.”

그렇게 환야와 야검수(夜劍手), 그리고 그 속에 함께하는 서량이 철혈성으로 향했다.

철혈성 외성에 당도한 환야가 말했다.

“소성주 환야다. 문을 열어라.”

“명을 받듭니다.”

별다른 통과 의례도 없다. 그만큼 소성주라는 직책에 권위가 있는 건지, 아니면 철혈성이라는 조직이 헐거운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쿠구구궁!

외성의 대문이 열리고, 그들 모두가 철혈성 안으로 진입했다.

서량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굉장하군.’

말도 안 되는 수법으로 철혈성 내에 들어온 서량은 외성의 분위기에 내심 놀랐다.

‘잘 정비되어 있어. 거의 마을이라고 봐도 될 정도.’

천마신교나 의천맹과는 달리, 철혈성의 외성 지역엔 실제로 수많은 양민이 살아가고 있었다.

철혈성의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무인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 주는 이들이었다. 실제 저잣거리를 걷는 듯, 무수히 많은 사람이 웃고 떠들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천마신교나 의천맹보다 크기는 작지만, 이미 이 자체가 하나의 소국(小國)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 모두가 철혈성주 송금백의 백성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어쩌면.’

송금백이 왜 자신이나 담사영처럼 천하일통에 소극적이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나라를 갖고 있다. 천하의 축소판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반면에.’

일행이 내성 입구로 향했다.

“소성주 환야다.”

“명패를 보여 주십시오.”

환야가 익숙한 듯 품에서 세 마리 붉은 용이 새겨진 황금빛 패를 꺼냈다.

“그곳에 내공을 집중해 주십시오.”

“흥!”

수문위사의 딱딱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환야는 한 차례 코웃음을 쳤다.

우우우우웅.

환야의 묵혈괴룡공이 일자 명패가 점차 하얗게 물들었다.

“이제 되었는가?”

“소성주님을 뵙습니다.”

쿠구구궁!

그렇게, 내성의 성문까지 열렸다.

야검수 중간에 선 서량의 눈이 번뜩였다.

후우웅.

군림마황기와 구유마공이 투명해진 것 같다.

전신의 마기를 한계까지 갈무리한 그였다. 덕분에 누구도 마인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기도가 되었다.

‘시작인가.’

환야와 야검수들이 내성으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소성주!!”

환야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예닐곱 명의 노고수가 무서운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환야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수석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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