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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38화 (537/774)

538화. 이빨 빠진 사자의 회한 (6)

송금백은 과거를 회상했다.

- 밑바닥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상상할 순 없지만 아마도 하루하루가 살벌한 전장의 연속이었겠지요.

- 속임수가 난무하는 사파라는 전장에서 끝끝내 승리를 쟁취한 사람을 믿으라는 것은, 며칠 굶은 대호(大虎)가 사는 굴에 맨몸으로 들어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얼굴로, 기세로 그리 말했던 이는 바로 서량이었다.

처음 서량을 보았을 때, 천마신교의 소교주였던 그는 자신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때는 뭐 이런 당돌한 놈이 다 있나 싶었지만, 그의 말은 모욕이 아닌 칭찬이었다. 사파 최강자를 향한 서량만의 찬사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식의 평가를 들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서량이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사파의 대종주로 ‘인식’하게 만들어 준 그 말이 좋았다.

- 새삼스럽지도 않군. 네놈은 그게 문제야. 쓸데없는 격식으로 스스로를 한계 짓지. 그래서 네놈이 천하제일이 못 되는 거다.

담사영의 뒤를 쫓다가 다시 한번 자신과 마주한, 과거의 거친 기세는 사라지고 어느새 군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게 된 새로운 천마(天魔)는 제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졌다.

십대천마가 된 서량과의 싸움에서, 송금백은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싸움의 과정, 무공의 수준을 논하자면 분명 자신이 반 수 앞서 있었다. 그 기세 그대로 이어 갔다면 패배자는 서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량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한 조직의 수장임에도,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것은 반칙이다. 무릇 수장이란 자신의 목숨을 누구보다도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

서량은 그러지 않았다.

목숨을 걸었고, 살기에 미쳐 날뛰었다. 진정한 악귀가 된 서량에게, 송금백은 성주의 위(位)에 오른 이후 최초로 패배했다.

하지만 패배보다 뼈아팠던 것은.

한참이나 어린 강호의 후배에게 공포를 느낀 것보다도 더 치욕적이었던 것은, 수라제라 불리면서도 스스로의 욕망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서량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 너의 열망은 어설프고 어중간해. 그러니 그 좋은 실력을 갖고도 제대로 펼쳐 보질 못하는 것이다.

- 너는 그런 놈이다. 욕심도 사라졌고, 이빨도 반쯤 빠져 버렸지만 아직 발톱은 그런대로 쓸 만한 놈이야.

- 너나 나나 딱 그 정도인 거야. 그래서 천하를 얻으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것이지.

송금백은 생각했다.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제아무리 가진 욕망이 어설펐다고 한들, 자신은 천하제일을 논하던 무신(武神)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고작 욕망이 어중간했다고,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리 망가지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너답지 않구나.”

서량의 손에 목이 잡힌 채 허공에 뜬 송금백이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

무섭다.

무저갱처럼 깊고도 깊은 저 청홍의 마안에 새삼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놈은 대체 얼마나 거대한 욕망을 품에 안고 살았기에 벌써 이런 괴물이 되었을까?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절대적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송금백은 궁금했다.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그런 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가? 네놈이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

송금백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혀 왔지만,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너의 욕망이 어중간했기에 지금 그 꼴이 되었다고 생각해?”

“…….”

“근본적으로는 네 욕망이 어설펐고, 그 어설픈 욕망으로 진흙탕에 발을 디뎌 스스로를 망쳤지만, 너 정도 되는 남자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리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

“…….”

“즉,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야. 다만, 네가 그 꼴이 된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해. 그 명확한 이유에서 지금껏 눈을 돌렸기에, 끝내 인정하지 않았기에 자꾸만 수렁에 빠졌던 것이다.”

송금백의 얼굴에 의아함이 일었다.

이유? 명백해? 대체 그게 뭔데?

서량이 차갑게 말했다.

“담사영 때문이지.”

“……!!”

“하필 어중간한 욕망으로, 하필 내가 아닌 담사영과 손을 잡았다. 하필 내 사부님께서 세상에 나섰고, 그 뒤로 너는 담사영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

서량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게 전부야. 욕망이니 뭐니, 그런 거야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지. 누구라도 담사영과 손을 잡았다간 너처럼 망가지게 될 거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서량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담사영 밑에서 암살자 노릇이나 하다가 자유를 찾아 떠나던 중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내가 담사영을 죽이려는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결국 놈이 위험해서 이러는 거다. 놈은 정사마(正邪魔)를 떠나 역병 같은 놈이야. 놈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뒤가 좋지 않거든.”

“…….”

“보아라.”

서량이 남은 손으로 송금백의 가슴을 툭툭 쳤다.

“널 그렇게 만든 천룡기가, 널 망쳐 버린 주범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어.”

순간 송금백의 눈이 번뜩였다.

서량이 손을 놓았다.

사박.

힘없이 떨어져 쓰러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사뿐하게 땅으로 내려서 자세를 잡은 송금백. 두 눈은 잔뜩 충혈되었고 온몸에선 불안정한 기운이 넘실대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상대를 농락하기 위한 미소가 아닌, 진정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가 고생한 보람이 있지.”

송금백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는 참으로 희한한 사람일세.”

“종종 듣는 말이지.”

“알고 있나? 나는 자네 때문에 심마에 빠졌어.”

“알아.”

“한데 호북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정작 심마에 빠트린 사람으로 인해 제정신을 차리게 되는군.”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할 수 있었어. 하지만 너는 외면해 버렸지. 자존심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의 본질에서 눈을 돌리는 순간 사람은 성장하지 못해.”

“성장…… 성장이라.”

송금백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 나는 스스로의 어설픈 욕망과 담사영의 존재로 인해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자네의 한마디에 심마가 생겨난 것이지.”

“그리고 그 심마가 널 더더욱 진창으로 빠트려 버린 것이지.”

“결국, 최초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군.”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대가리가 좀 돌아가나?”

“품위 없는 건 여전하군.”

“품위 운운하니까 네가 이런 꼴이 된 거 아냐? 너처럼 되기 싫어서라도 난 막살란다.”

송금백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내가 많이 못난 놈이긴 하군. 적의 수장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 걸 보면.”

“여기서 화를 냈다면 진짜 실망했겠지.”

“그런가? 뭐, 그래도 상관없지.”

그제야 서량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폭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남이 실망하든 말든 내 갈 길을 간다. 그게 대종사(大宗師)라는 것이지.”

송금백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서량은 깨달았다. 이제야 송금백이 스스로를 괴롭히던 심마(心魔)에서 벗어났다는 걸.

츠츠츠츠.

송금백의 몸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언뜻 보면 안개 같기도 했고, 또 달리 보면 유령이나 귀신의 형체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탁기였다. 심상(心傷)으로 얻은 탁기가 송금백의 의지로 유형화되어 체외로 솟구친 것이다.

송금백의 눈이 깊어졌다.

“이게 나의 심마였군.”

심마를 이룬 탁기가 모두 저런 형상인 건 아니다. 다만, 송금백이 그리 생각했기에 저런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무섭게도 생겼군. 저런 걸 가슴에 품고 다닌다면 누구라도 제정신이 아니겠어.”

심마를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자아 성찰이다.

즉, 정신력으로 이겨 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저 심마의 탁기가 저토록 섬뜩하게 뵈는 것은, 그만큼 송금백이 생각하는 심마의 악랄함이 거셌다는 뜻이리라.

정신과 감정의 붕괴. 그래서 심마는 세상 어떤 독보다도 치명적이고, 어떤 미주가효보다도 감미로운 것이다.

서서히 스러지는 심마를 보며, 송금백이 물었다.

“예까지는 어떻게 왔나?”

서량은 그간의 사정을 허심탄회하게 설명했다.

송금백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 정도로 망가졌던가?”

“지극히 위태롭더군. 상단전과 중단전이 그리 피폐해지고도 멀쩡히 사고(思考)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신공(神功)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겠지.”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소성주가 그렇게 무너진 것 역시 당신 때문이다. 제자를 제대로 봐줘야 할 때, 당신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없었어.”

“그렇지. 하지만 녀석이 그렇게까지 망가질 줄은 몰랐군.”

“그 또한 심마였다.”

송금백이 고소를 지었다.

“누가 내 제자 아니랄까 봐, 사부처럼 그리 망가져 버렸구먼.”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천하를 얻기 이전에 철혈성을 돌봐야 했고, 철혈성을 돌보기 전에 스스로를 돌봐야 했다.

그것이 안 되었기에 자신도, 제자도, 나아가 철혈성도 망가져 버렸다.

송금백이 서량을 보았다.

“해서, 자네는 본성의 힘을 약화시켜 담사영이 써먹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고?”

“물론이지. 누가 뭐라 해도 담사영은 나를 숙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놈은 나를 죽이기 위해, 나아가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놈이야. 담사영은 당신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할 테니, 닳아 없어질 때까지 써먹어 줄 생각이겠지.”

송금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를 이용해 철혈성을 망가트리려고 했단다. 즉, 서량은 그에게 있어서 명백한 적이었다.

하지만 송금백은 그를 이해했다. 만약 반대 경우라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깨워 주었나?”

“글쎄다.”

서량이 입맛을 다셨다.

“나 역시 수장으로서 아직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기뻐 날뛰어야 마땅함에도, 당신이 그렇게까지 망가져 있는 꼴을 보니 도무지 끝장을 내고 싶진 않더군.”

송금백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아나?”

“병신미?”

“바로 격(格)이라고 하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난 그렇게 좋은 놈이 아냐.”

“격이 있다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

“뭐가 됐든, 당신은 내게 목숨의 빚을 졌어. 철혈성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채무를 미뤄 둘 리는 없겠지?”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

“당신이 좋아하는 격(格)을 따져 보자는 거지. 당신을, 나아가 철혈성을 박살 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이 정도 빚이라면 억만금을 줘도 부족해.”

송금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야.”

“그래서.”

서량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물었다.

“어쩔 거야? 내부 정리부터 한 연후에 이 판에서 빠질 생각인가?”

“전에 자네가 내게 이런 말을 했네. 무림이라는 세상에 발을 들인 순간, 누구도 그 진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벗어날 방법은 천상에 오르거나 죽는 것밖에 없다고 했지.”

“그랬지.”

송금백의 눈이 서늘해졌다.

“담사영이 역병 같은 놈이라고? 참으로 맞는 말일세. 자네는 명백한 적이지만, 역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법이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도와줄까? 철혈성 정리하는 거.”

“허튼소리 하지 말게. 이 내가 건재하거늘, 어찌 자네 손을 빌리겠나.”

송금백이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앙!

두꺼운 철제 대문이 단숨에 뜯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내 거처를 빌려주지. 사흘 동안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걸세.”

“사흘 안에 정리할 수 있겠나?”

송금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틀의 시간은 나의 몸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함일 뿐일세. 정리는 하루면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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