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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43화 (542/774)

543화. 사마합일(邪魔合一) (5)

쿠구구궁!

“……?!”

여상린이 의아함이 담긴 눈으로 여극도를 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여극도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거대한 무언가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극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는 감히 느끼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용암이 강력한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오는 듯하다.

여극도는 그 거대한 기운의 정체를 읽어 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 교주?’

서량이다.

아니, 서량인 것 같기는 한데 확신할 수가 없었다. 솟구치는 기운의 바탕은 마기(魔氣)가 분명한데, 동시에 지나치게 맑고 깊은 신기(神氣) 역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었다.

‘고고하다.’

마기는 깊어졌고, 드러난 신기는 고결했다. 그 깊어진 마기가 이 변화의 시발점인 것 같았다.

‘마치…….’

여극도의 눈이 깊어졌다.

‘마(魔)와 신(神), 신과 마가 하나가 되는 듯하다.’

서로 반대되는 기운들끼리의 합일(合一)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량이 신공(神功)의 극치를 이룬 자를 잡아먹는 것도 아닐 것이요, 신공의 극치를 이룬 자가 서량의 마기를 빨아들이는 것도 아닐 텐데, 공존할 수 없는 두 기운이 합일을 이루고 있었다.

‘……아니, 그건 또 아니군.’

우우우우웅!

빙백무로 연련된 상단전이 여극도의 눈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쿠르르릉.

먹구름 가득한 하늘, 그 하늘의 중심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것 같다.

그리고 그 구멍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한 괴물이 있었다.

거인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체구에 도검과도 같은 이빨. 검붉은 몸체의 좌수에는 거대한 칼을 들었고, 내뻗은 오른손에는 강철처럼 단단한 손톱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악마다.

지저의 세계에서 기어 올라와 세상을 향해 포효하던 악귀흉장(惡鬼凶將)이 마침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포효가 하늘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서 천기(天氣)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여극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상단전으로 개화한 신안(神眼)이 보여 주는 광경은 곧 서량의 상태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올라가는 겐가? 벌써?!’

하늘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선 올라갈 수 없는 천공의 성좌(聖座)가 보인다. 그 성좌가 쏟아 내는 무시무시한 천기가, 인간으로 태어나 악마왕이 된 자를 천상으로 이끌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아!’

여극도는 속으로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아쉽구나! 참으로 아쉬워!’

번쩍!

쏟아지는 천기의 광채가 악귀흉장의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인간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의 이면을 보았다. 하지만 지금 자네의 상태는…….’

카아아아악!

악귀흉장이 비명을 질렀다.

쏟아지는 천기의 광채를 버티지 못한다. 편법인지 뭔지, 상식으로는 뚫을 수 없는 샛길을 개척해 하늘에 오르는 단초를 얻었지만, 정작 육신이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천기가 주는 황홀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자칫 영육(靈肉)이 스러지게 될 것이다.

‘안 돼! 지금의 자네로서는 그곳에 오를 수 없어! 자칫 잘못하다간 지금까지 쌓아 온 공든 탑이 모조리 무너질 거야!’

그때였다.

크르르릉.

몸의 반신이 녹아내린 악귀흉장이 뻗은 손을 내렸다.

하늘을 노려보며 광기 어린 눈을 빛내는 흉장의 분노. 오를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문을 열어 준 천문(天門)의 장난질에 화가 날 대로 난 모습이었다.

‘다행일세. 참으로 다행이야.’

여극도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신안으로 본 것만으로도 천기의 황홀함은 아찔할 정도였다. 실제 피부로 천기를 느낀 서량의 희열은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서량은 그 희열을 미끼 삼아 유혹하는 하늘의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대단한 정신력이었고,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아쉽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자네는 이미 천문을 보았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시 한번 그곳에 이를 수 있을 걸세.’

번쩍!

소용돌이치며 열렸던 구멍이 서서히 닫혔다.

그 순간.

쿠르르릉!

까맣게 타 버렸던 피부와 근육이 무서운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직! 콰지직!

십여 장은 됨 직한 악귀흉장의 신장이 서서히 커졌다.

신장만 커지는 게 아니었다. 덩치 역시 신장에 걸맞게 부풀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손에 쥔 태도(太刀)에서 선천(先天)의 불길이 타올랐다.

여극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성장하는가? 거기서 또?’

십여 장에 달했던 악귀흉장이 어느새 이십여 장에 가까운 크기로 커졌다.

산처럼 거대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야트막한 야산 정도의 크기는 되겠다. 극마의 경지에 오른 자가 얻을 수 있는 힘의 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천문개방. 언젠가 오르게 될 선천의 기(氣)를 버틸 수 있도록 또 한 차례 성장하는구나.’

번쩍!

흉장이 청홍의 안광을 뿜어내며 포효했다.

콰르르르릉!

“헉!”

여상린은 깜짝 놀라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뭐, 뭐죠?”

천장에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린다. 바닥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으며, 탁자 위에 놓인 도자기들이 굴러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지진인가?”

“지진이 아니다.”

“네?”

여극도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공포의 마제(魔帝)가 진정한 마신(魔神)으로 변모한 것이다.”

* * *

‘아쉽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서량의 눈은 몽롱했다.

‘아쉽지만, 지금의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길이야.’

균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던 절대의 마기가 아직도 눈에 선했다.

‘사부님은…….’

서량이 눈을 감았다.

‘사부님은 이보다도 더한 유혹을 무려 십 년이 넘도록 참아 내셨던가.’

천문의 개방, 천기의 유혹.

무공의 형(形)으로 공간을 점하는 송금백을 보며, 과거 능천마라수의 기(氣)로 공간을 점해 일정한 영역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이천상을 떠올렸다.

‘난 이미 그것을 보았다.’

보았지만, 제대로 쓸 수는 없었다.

그 깨달음의 편린이나마 써먹어 본 적은 있었다. 바로 비요왕과의 생사전 때로, 서서히 밀리고 있던 승부의 추를 단숨에 역전시킬 정도로 고차원적인 무도(武道)를 구현해 냈었다.

하지만 생사전 이후 잊고 있었다. 그 깨달음의 길을.

아니, 잊어야만 했다. 그 길을 계속 탐구했다면, 무도(武道)와 마도(魔道)는 내팽개친 채 그저 하늘에 오르는 방법만을 좇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승려나 도사들의 수련으로 빠졌을 거란 얘기다. 당연히 천마신교의 주인인 서량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길이었다.

그 천도(天道)의 길이, 지금 서량의 수준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신화(神化)의 세계가 열렸다.

‘……안 돼.’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오를 수 있어도 올라선 안 돼.’

신화에 올라섰음에도 십 년이 넘도록 지상에 육신을 묶어 둔 자, 이천상.

신화의 앞에 이르러 세계와 하나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고 자란 무당산과 하나가 되어 버린 자, 현천진인.

신화경은 바로 그런 세계다. 무공이 더 강해지는 세계가 아니라 세상과 합일이 되는 영역인 것이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 천하를 손에 넣어야 해. 천문에 올라 세상과 하나가 되어 버려서는 안 돼.’

아직 풀지 못한 매듭이 많았다. 그 매듭을 다 풀기 전까지는 절대 신화에 올라선 안 된다.

그때였다.

번쩍!

“어?”

서량이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황량한 절벽 끝.

익숙한 곳이었다. 판마정에 들어서면 이곳에서 이천상과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꿈? 아니면……?’

문득 서량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화르르륵.

천마도(天魔刀)에서 선천마화(先天魔火)가 타오르고 있었다.

‘칼이, 천마도에 새겨진 선천마기가 날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사부님?”

“그래.”

순간 그는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몸을 돌리니 그곳에 이천상이 있었다. 뒷짐을 진 채 한 줄기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고금제일마가.

서량의 눈이 떨렸다.

과거, 판마정에서 대련했던 이천상과는 달랐다. 그때의 이천상은 천마도의 선천마기로 불러낸 존재라 온전한 사념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천상 본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지금은 달랐다.

진짜 이천상이었다. 사람으로 죽었다면 볼 수 없는, 금호의 요력으로 무언가와 하나가 된 이천상 본연의 진짜 혼(魂)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한눈에 깨닫게 된 스스로의 능력에, 서량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어디로 가면 당신을 볼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그간 내가 걸어왔던 길을 잘 보고 있었냐고, 그간 참으로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그 모든 말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량을 보던 이천상이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용케 여기까지 왔다.”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간의 고단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참아야 했고, 고민해야 했으며, 이 악물고 나아가야 했던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주책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찌 말이 없느냐?”

이천상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믿을 수 없게도.

“이 사부가 보고 싶진 않았느냐?”

너무나도 인간적인 표정이요, 말이었다. 이천상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데, 그리 말하는 이천상의 언행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늘의 틈새를 엿보기 전, 신화의 세계로 진입하기 전 명백한 사람이었던 시절의 이천상에게는 분명 저런 면이 있었을 것이다.

서량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워낙 바빠서 생각도 안 났더랬습니다.”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나 보군.”

“남색은 취향이 아닙니다만.”

“그 재미없는 농담을 아직도 지껄이는군.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구나.”

“사실 가끔 생각이 나긴 했습니다. 그래서 판마정에서 불렀잖아요.”

“반쪽짜리였을 때의 나로군.”

“반쪽짜리였지만, 명백히 사부님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랬지.”

잠시 심호흡을 한 서량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도 모른다.”

“사부님께서 모르는 것도 있습니까?”

“세상과 하나가 되지 못했으니까.”

“그렇군요.”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군림마황기를 꺼내지 않은 건 좋은 선택이었다.”

“…….”

“군림마황기라면 아직 영글지 못한 너를 단숨에 하늘로 올려 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너의 영육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을 터.”

“역시 그랬군요.”

“알고 있었느냐?”

“몰랐습니다. 머리로는.”

“그래, 그랬겠지.”

우우웅.

이천상의 발끝이 서서히 투명해졌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천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하늘이란 놈은 개자식이 분명합니다. 벌써 보낼 거면 뭣 하러 불렀답니까?”

“하늘을 탓할 것 없다. 잠시나마 마주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만남인 게지.”

“수행자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속 편하기 때문이다.”

이천상이 미소를 지었다.

“싸움의 종막(終幕)이 다가오는구나.”

“……그렇습니다.”

“천하를 거머쥐려는 싸움이 끝나면,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겠지요.”

웃으며 서량을 보던 이천상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네게 할 말이 있다.”

순간 서량은 깨달았다.

이천상이 원했는지 하늘이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지금 하려는 말 때문이었음을.

“합일(合一)을 이루기 전에 막아라.”

“예?”

츠츠츠.

이천상의 옆, 허공에 익숙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담사영이었다.

“담사영이 천하와 하나가 되기 전에 막으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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