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45화 (544/774)

545화. 염라마신(閻羅魔神) (1)

“교주님?!”

호요성의 얼굴에 놀라움이 일었다.

“어, 언제 오셨습니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왜? 반갑지 않은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호요성이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철혈성주 송금백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았다. 넉넉잡아 실제 손을 잡은 것이 열흘이 조금 넘었다고 생각해도, 단 며칠 만에 두 개 성(省)을 지나쳐 왔다는 얘기가 된다.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예?”

“호천마황단과 동필이, 호왕은 사나흘 후에나 도착할 거야.”

호요성의 눈이 일렁였다.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서량의 모습에서 은은한 위엄이 흘러나왔다.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은 그대로이거늘, 출교 전보다 훨씬 더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심박수가 저절로 올라간다. 서량을 보면 볼수록 점점 눈이 부시는 듯했다.

‘……!’

순간 호요성은 환상을 보았다.

철탑처럼 단단한 체격, 이제는 굴강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마신의 육체 뒤로, 고금에 다시 없을 전설을 만들어 낸 절대무적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 절대마신(絶代魔神).

신교 역사상 최강의 천마이자 전무후무한 힘으로 만천하에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이천상의 그림자가.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대공(大功)을 축하드립니다.”

“음?”

“당대를 넘어, 고금을 다투는 경지에 오르신 것을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멀어도 한참 멀었지.”

무적자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인간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 모습을 보며, 호요성은 확신했다. 교주님께서 언젠가 전대 교주님에 비견할 만한 위대한 분이 되실 거라고.

그러면서도 전대 교주님과는 전혀 다른, 신(神)이자 인간의 삶을 살아가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빙궁의 전력과 마왕령은 어떻게……?”

“이쪽 할 일은 이제 다 끝났으니 하던 일 해야지. 마왕령은 사천으로 보냈다.”

“명민하신 판단입니다.”

현재 적측의 가장 강한 전력은 호북에 몰려 있다.

또한 적의 수장인 담사영도 그곳에 있으니, 아마 이쪽에서 파악하지 못한 은밀한 전력까지 몽땅 모아 두었을 것이다.

그 전력은, 말하자면 담사영의 수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세력을 확장하며 얻은 힘 중 가장 강한 힘의 총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적의 전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칠대문파.’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칠대문파의 전력은 아직도 건재했다.

지금껏 서량과 담사영이 맞붙은 몇 차례의 싸움에서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담사영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담사영은 칠대문파의 전력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즉, 현재 호북을 제외하고 가장 큰 힘이 집결된 곳은 사천(四川)이었다. 사천에는 청성파(靑城派)와 아미파(峨嵋派), 그리고 사천당가가 있다.

“마왕령이 사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당가타(唐家陀)부터 봉쇄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신교에서 운용하는 암기와 화기는 모두 사천당가의 것을 근본으로 했다. 나아가 신교의 엄청난 자본력으로 그것들을 개량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왕령은 독과 암기, 화기에 관한 공부를 철저히 했다. 당가의 독(毒)은 여전한 위험이지만, 화기와 암기에 관해서는 마왕령 역시 전문가라는 것이다. 그들이 당가타만 틀어막아도 당가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된다.

당가의 움직임이 제한되면 사천 전력에 확실한 공백이 생긴다. 그리되면 청성파와 아미파의 움직임에도 제한이 걸릴 것이며, 결국 이쪽의 전력 운용에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

“그리고 빙궁은…….”

“강소성 전선으로 보냈지.”

호요성의 눈이 반짝였다.

“본교의 병력과 함께 빙궁 측 병력의 인도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그게 낫지 않겠나?”

여극도와 빙궁의 병력 일부를 산동에 배치한 것은 적을 포위함과 동시에, 황군(皇軍)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빙궁의 총전력이 집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남하하려면 무조건 하북을 통과할 수밖에 없고, 그리되면 황궁에 거하고 있는 십대고수급 강자가 움직일 것이다.

그러니 여극도와 마존들, 그리고 천마군과 함께 차근차근 압박해야 한다. 이 부분만큼은 안정감 있게 움직이는 게 좋다.

호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까지 점령하면 완벽한 포위가 가능할 텐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어쩔 수 없지. 명장(名將)은 전쟁에 임할 시 우선 이겨 놓고 싸움을 벌인다고들 하지만, 이 전쟁은 성격이 달라. 부딪쳐야 할 땐 뒤가 없는 것처럼 부딪쳐야지.”

“교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서, 총군사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한 웃음 속, 서량처럼 또 한 차례 성장한 군략가의 통찰력이 엿보였다.

“수십 일 내로 도발해 올 것입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하네.”

철혈성까지 천마신교와 손을 잡았다. 전초전이 벌어지기도 전에 쓸 수 있는 가장 큰 패 중 하나를 잃은 셈이다.

그동안 셀 수 없는 암계로 전력을 불리려 했지만, 그 암계 대부분이 서량 때문에 박살이 나 버렸다.

이제 더 이상의 암수는 의미가 없다. 지금부터는 전력의 질과 양을 불리는 싸움이 아닌, 싸움을 통한 전력 운용전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리고 각 전선에 연락을 취해 놨습니다. 적이 공습해 오면 후방으로 빠지라고 말입니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예.”

호요성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기색이 떠올랐다.

“첫 칼질은 교주님께서 하셔야지요?”

“역시 내 마음을 잘 아는군.”

“하하.”

군신지간에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만큼이나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동필이와 마황단이 오면 다시 출교할 생각이네.”

호요성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둘러보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서량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몇 발자국 걷던 그가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총군사.”

“예, 교주님.”

“그간 고생 많았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허리를 편 호요성의 앞에 서량은 없었다.

* * *

몽롱하다.

선명함과 모호함이 반복되며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어지러움은 어째서인지 불쾌하지 않았다. 빙빙 도는 듯한 감각에 몸을 실으니 만사에 걱정이 사라지고, 몸에서도 긴장이 빠져 평온하기만 했다.

좋구나.

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는 이 공허한 여유가 좋았다.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수십 년 동안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기쁨의 술잔을 나눌 때도, 약간의 휴식을 취할 때도 머리는 언제나 ‘다음’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것도 천성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유 가득한 휴식 없이 극마의 경지에 이르진 못했을 테니까.

‘만일 죽음이 이와 같다면.’

사람들은 말한다. 죽음은 곧 안식과 같다고.

어쩐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부여해 준 생(生)을 조금의 낭비도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면, 죽음은 곧 끝이 없는 휴식이요, 짜릿한 안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안식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다.

‘참으로 길었지.’

이제는 쉬자. 할 만큼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지럼증이 더더욱 심해졌다. 반면 기분은 한층 좋아졌다.

‘이제 나도 파순의 곁으로…….’

그때였다.

“벌써 가게?”

응? 누구지?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반가움과 아련함이 물밀듯 밀려왔다.

‘아니야.’

듣기만 해도 힘이 나는 목소리다.

그래서 그는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원했다. 이제 자신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주는 파도와도 같은 삶을 더 이상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반갑지만, 그걸로 됐다. 안식의 세계로 가는 길을 막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자네는 아직 쉴 때가 아니야.”

쉴 때가 아니다…….

그렇다. 마음에 남은 이 묘한 찝찝함은 분명 자신이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자신 또한 그런 숱하게 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이란 것이다.

이제 나를 내버려 둬. 이만 쉬고 싶어.

“꽤 오랫동안 쉬었으니, 다시 날 위해 힘차게 주먹을 휘둘러 줘야지?”

당신은 누구지?

“약속했잖나. 죽을 때까지 날 모시겠다고. 나 역시 자네를 죽을 때까지 써먹어 주겠다고 했었네.”

당신이 뭔데 나의 충성을 받지? 당신이 뭐길래 나를 물건처럼 써먹겠다는 거지?

“일어나게. 일어나서, 아직 본교의 방패가 녹슬지 않았음을 만천하에 알려 주게.”

본교? 방패?

“나는 아직 자네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어.”

번쩍!

무담의 눈이 뜨였다.

“허억!”

청량한 공기가 폐부를 시원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부르르르.

축소되었던 전신 근육이 다시 무서운 속도로 부풀었다. 쓰러지기 전, 그때의 강력하고 탄력 넘치던 근육이 말라비틀어진 그의 육신에 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회복 속도.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회복이었다. 줄어들었던 근육이 찢어지고 비틀리기를 반복했고, 상처 난 그곳으로 무지막지한 마기가 몰려들며 더욱더 탄력 넘치는 근육을 생성해 냈다.

우우우우웅!!

근육만이 아니었다.

뼈, 관절, 피부 등등 신체 모든 부위에 막강한 마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뇌전처럼 빠르고 물처럼 부드러운 마기는 지독한 고통과 함께 극한의 환희를 안겨 주고 있었다.

무담이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탄탄한 체구의 미남자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자신의 맥문을 양손으로 잡은 채 무형의 마기를 쏟아붓고 있는 그 모습은 실로 경건해 보였다.

‘교주님!!’

스르르.

서량이 눈을 떴다.

흑백 또렷한 눈에 바다처럼 깊은 자애와 태산처럼 드높은 위엄이 어려 있었다.

“정신을 차렸는가?”

묵직한 목소리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서량이 웃으며 무담의 맥문에서 손을 떼었다.

“과연 자네답네. 안식의 유혹이 대단했을 텐데, 기어이 뿌리치고 다시 내게 와 주는군.”

무담이 서둘러 침상에서 내려왔다.

회복된 몸은 예전처럼 활기가 가득했다. 오랫동안 쓰러져 있던 몸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신교의 대호법이 성신을 알현하옵니다!”

“다시 보게 되어 반갑네.”

무담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그는 자신의 몸뚱이를 적에게 빼앗겼다는 것에, 오랜 시간 제 할 일을 못 했다는 것에 지독한 자괴감을 느꼈다.

“소신이 무능하여 교주님을 심란케 하였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으니…….”

무담이 고개를 들었다.

서량의 미소가 진해졌다. 자신을 보는 무담의 눈빛이 쓰러지기 전보다 훨씬 강렬해졌던 것이다.

“평생 교주님을 모시며 이 죄를 씻겠습니다.”

“그래야지.”

서량이 무담의 손을 잡고는 그를 일으켰다.

“잘 돌아왔네.”

“……교주님.”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준 서량이 말을 이었다.

“막 깨어난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자네가 해야 할 일이 있네.”

무담이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시옵소서.”

“사나흘 내로 다시 출교할 것이네. 그전까지 후계에게 모든 것을 전수하게.”

“……예?”

“다 넘겨주고, 나와 함께 또 한 번 중원 나들이나 가잔 말일세.”

“나들이라 하심은……?”

“치욕적인 한 방을 먹었으니, 자네도 놈들을 썩어지게 때려 줘야지. 아니 그런가?”

무담의 두 눈에 불같은 마기가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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