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46화 (545/774)

546화. 염라마신(閻羅魔神) (2)

“허억!”

소연심은 경악했다.

“교, 교주님?!”

“어? 소 원주 왔나?”

“여기는 어떻게 오셨……?!”

순간 소연심은 아차 했다.

너무 놀라서 인사도 잊었다. 그녀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환희원주가 교주님을 알현하나이다.”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좀 거들지?”

“아, 예!”

소연심은 후다닥 서량 옆으로 다가갔다.

서량이 있는 곳은 놀랍게도 소연심의 거처 후원이었다. 그리고 서량은 후원 한구석, 소담스러운 화단에 자라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소연심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교주님. 이 일은 제가 할 테니 이만 올라가 쉬시지요.”

마인들의 신이라는 사람이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잡초를 뽑고 있는 광경은 천금을 주고도 보기 힘든 구경거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소연심에게 그것은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이 가꾸던 화단이 아닌가. 그야말로 기함할 일이었다.

서량이 여유로운 음색으로 말했다.

“교주는 뭐, 잡초 뽑으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나?”

“그, 그건 아닙니다만.”

“소일거리 삼아 해 보는 거야. 그나저나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관리 좀 하지.”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내 화단도 아닌데.”

소연심이 드물게 정색했다.

“본교에 있는 모든 땅과 사람은 교주님의 것입니다.”

“답지 않게 정색하지 않아도 되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 거기 그거. 그거 뽑아야 할 듯.”

“……네에.”

“염병할, 분명 잘 정리했을 텐데 이놈의 잡초들은 어디서 기어 올라오는 건지.”

마도 무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작자와 신교의 살림을 담당하는 최고위직 마인이 정답게 마주 앉아 잡초를 툭툭 뽑았다.

서량이 한가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되어 가고 있나?”

“네? 어떤?”

“후계자 수업 말이야. 주화에게 환희원을 넘길 거라며?”

소연심이 고개를 숙였다. 쪼그려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려니 등골이 말리는 느낌이었다.

“네. 다행히 잘 따라와 주고 있습니다.”

“그래? 거 다행이군. 안 본 지는 오래됐지만, 주화 그 녀석 보통 천재가 아니었어.”

“행정 능력은 이미 저보다도 낫습니다.”

“하하, 그래? 그거 아주 기대되는구만?”

서량이 흙 묻은 손을 툭툭 털었다.

“휴, 이 정도면 얼추 다 된 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이보게, 소 원주.”

“말씀하십시오, 교주님.”

“심심하진 않겠어?”

“네?”

서량이 빙긋 웃었다.

“주화에게 환희원주 자리 넘겨주고 나면 뭐 할 거야? 자네 성격상 호법원으로 들어갈 것 같지도 않고.”

“그건…….”

소연심이 입맛을 다셨다.

“아직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지천명(知天命)을 코앞에 두고 있다지만, 은퇴하기에는 너무 빠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긴 하지. 아직 창창한 나인데.”

이립도 되지 않은 청년이 할 말은 아니지만 소연심은 서량의 말에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신이다. 신은 어떤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 서량의 육신은 이립이 되지 않았지만, 전생에선 환갑에 가깝도록 현역으로 산 암살계의 제왕이었다. 서량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였다.

“하긴, 벌써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그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을 텐데, 몇 년 푹 쉬면서 생각해 보게나.”

소연심이 쓴웃음을 지었다.

“듣기만 해도 흥분됩니다만, 몇 년은커녕 몇 달이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왜?”

“평생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쉬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다고들 하잖아요.”

경건했던 그녀의 말투가 과거 삼공자 시절의 서량을 대하던 때의 말투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개인사에 관한 얘기를 꺼내니 특유의 성격이 새어 나오는 것이다.

서량이 낭랑한 웃음을 터트렸다.

“익숙함이라는 건 양날의 검이지. 사람이 쉴 때는 쉬어 줄 줄도 알아야 해. 휴식에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볼 때 그것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그도 그렇죠.”

“원주직을 물려주고 뭘 할 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턱을 쓰다듬던 서량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또 바빠질 것 같긴 하네만.”

소연심의 눈이 깊어졌다.

“전후(戰後)에 말씀이신지요?”

전쟁 후.

말하자면 이번 싸움에서 이기고 난 이후를 뜻하는 것이다. 소연심은 교주님께서 이번 전쟁에서 무조건 승리할 거라 믿고 계신다는 걸 깨달았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사람이 부족해. 막상 중원의 땅덩어리를 손에 쥐었는데 사업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인력난으로 골머리를 썩이면, 그건 그것대로 웃기는 일 아니겠나.”

“…….”

“전쟁 끝나면 쉴 만큼 쉬게. 다 쉬었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와서 소일거리나 얻어 가.”

소연심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소일거리 맞나요?”

“어허, 이 사람이 날 뭘로 보고.”

“교주님이요.”

“뭐, 세상은 원래 상대적인 거니까. 드넓은 천하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그게 자네에게는 감당키 힘든 일일 수도 있겠지.”

“……!”

“정리하려면 이쪽도 시간깨나 걸릴 거야. 쉴 만큼 쉴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미소 가득하던 소연심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하의 일부라 하심은……?”

“내가 신교 수뇌부 중에서 업무 능력으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나?”

“총군사요?”

“맞아. 가끔 한 대 때려 주고 싶긴 하지만, 총군사의 업무 능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지.”

서량이 턱으로 소연심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

“나는 본교의 마인들을 신뢰하네. 하지만 신뢰와 능력은 별개의 것이지. 자네라면, 한 지역 정도는 맡겨도 괜찮을 것 같네.”

어마어마한 제안이다.

천하를 손에 넣으면 하나의 지역을 통째로 맡기겠단다. 천하 어떤 사람이라도 감격에 겨워 마땅할 일이었다.

하지만 소연심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이 엄청나게 많겠군요.”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스려야 할 테니까.”

“저는…… 교주님을 모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들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나를 모시는 일이야. 자네가 지금껏 환희원을 다스렸던 것처럼.”

“……!”

“황제가 구시렁거리겠지만, 그쪽이야 황궁 개편만으로도 남은 수명을 다 써야 할 판국이니까. 뭐가 됐든, 일단 우리가 다 먹어야지. 그 정도는 해야 마도천하(魔道天下)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나?”

익숙하지 않은 대화다.

신교나 마도 무림이 아닌 천하를 다스리는 얘기를 하고 있다. 소연심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부담감을 느꼈다.

“일단은…… 이번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겠지요.”

조심스럽게 뱉은 말이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이길 거다, 걱정하지 마라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대답이 소연심을 안심케 했다. 천하 그 누가 교주님을 막을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신중해서 나쁠 것은 없잖은가.

“그래서 말이야.”

“네?”

“자네도 같이 가지?”

“어, 어디를요?”

“사흘 뒤에 출교할 생각이네. 전선도 둘러볼 겸.”

“……!”

“그리고 십중팔구 싸움이 벌어질 걸세.”

소연심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은 웃으며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전에 내 눈탱이 시퍼렇게 만든 그 주먹, 여전히 옹골찬가?”

“저, 저는…….”

“지금까지 신교를 위해 머리 터지게 일하느라 쌓인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 화끈하게 풀어 줘야지?”

서량이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함께 가세.”

* * *

“후욱.”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철무정의 몸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수련으로 얻을 수 있는 육체의 종착지다. 천하 어떤 무인이라도 손에 넣고 싶어 할 극도로 실전적인 무인의 몸이었다.

“……아직 안 되는군.”

뻗은 손을 회수한 철무정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사아아악.

한순간 방출해 낸 마기로 전신의 땀이 모조리 증발했다.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은데.’

벽이 코앞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단숨에 벽을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확신을 갖고 수련해도 거리만 좁혀질 뿐 좀처럼 부서지질 않았다.

한 끗 차이다. 그 한 끗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보이지나 않으면 미련이라도 접을 텐데, 당장에라도 뚫을 수 있을 것처럼, 당장 뚫어 보라는 것처럼 대놓고 보인다.

극마에 오르기 전에도 이 정도로 무력감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극마에 오르고 나서 이런 고난을 겪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이 무위라면 중원의 십대고수급 강자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분통이 터졌다.

“후우우우.”

철무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또한 나의 부족함인 것을.”

누굴 탓하겠는가.

높은 경지에 오를수록 한 걸음 전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다른 고수들 대부분이 이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빠르든 늦든 결국 그 벽을 부수고 올라갔고, 자신은 아직 정체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마음 급하게 먹지 말자.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차근차근 나아가다 보면, 분명 빛은 보일 것이다.”

그때,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옳은 마음가짐일세.”

“헉!”

깜짝 놀란 철무정이 곧바로 몸을 돌려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철무정의 눈이 커졌다.

“교주님?!”

“그동안 잘 있었나?”

철무정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

“군림……!”

“하자.”

“……?”

“아냐, 오늘만 해도 수십 번을 들은 것 같아서. 이만 일어나게.”

“아, 예.”

철무정이 각 잡힌 동작으로 일어났다.

서량이 웃으며 물었다.

“잘 안 되나?”

단숨에 철무정의 상태를 꿰뚫어 본 그였다.

철무정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신의 재능이 모자라고 노력이 부족하여 그런 모양입니다. 송구하옵니다.”

“극마의 고수가 재능이 모자라니, 노력이 부족하니,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닐세.”

“…….”

“자네가 말했듯, 조급해하지 말고 하던 대로 나아가게. 분명 자네가 원하는 길이 열릴 거야.”

빈말이라도 교주님께서 해 주시는 격려에 힘이 났다.

“영광이옵니다.”

“이런 걸로 영광은 무슨.”

서량은 턱을 쓰다듬으며 철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몸은 충분히 준비가 됐구만?”

“예?”

“몸도 준비가 됐고 노력도 충분한 데다가 깨달음의 벽도 코앞에 와 있다……. 결국 부족한 하나만 채우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인데.”

철무정의 눈이 흔들렸다.

“부족한 하나라는 말씀은?”

서량이 빙긋 웃었다.

“궁금한가?”

“……예.”

“하하하!”

군인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는 철무정도 무인은 무인인 모양이었다.

“부족한 게 있기는 한데, 그걸 필설로 형용하기는 어렵군. 결국 자네 스스로 알아내야만 하네.”

“아, 예.”

“다만 환경을 좀 바꿔 보는 건 어떨까 싶은데.”

“환경이라 하심은?”

스르륵.

순간 철무정의 눈이 빛났다.

저 멀리 수풀 뒤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의 나이지만 아직도 청초한 미모를 자랑하는 초절정고수였다.

“소 원주?”

“어제 내가 꼬셨지.”

“예에?!”

“이틀 뒤, 세상에 나갈 것이네. 그리고 전면전의 첫 칼질은 내가 휘둘러 볼 생각이네.”

서량이 손을 내밀었다.

“마도천하를 향한 역사적인 일 보(一步)를 내딛는 순간을, 자네도 함께 보지 않겠나?”

철무정은 그 손을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신교의 현역 수뇌부들이 하나둘 서량의 거처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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