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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47화 (546/774)

547화. 염라마신(閻羅魔神) (3)

무당산의 산세는 고즈넉한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

주봉(主峯) 정상에 올라 무당산을, 나아가 천하를 내려다보는 담사영의 얼굴은 무표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안개 같군.’

산운(山雲)인지 안개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오묘한 느낌을 주는 경치였다.

그래서 무당산의 경치를 두고 음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원체 산의 정기가 좋아서 진짜로 음침하게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담사영의 눈에는, 오늘따라 그 산운이 음침하고 음산하게 느껴졌다.

담사영이 피식 웃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는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담사영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게 아니지.”

담사영이 눈을 감았다.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던가?”

승리를 거머쥘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이겨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이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과정이 문제다.

서로 도발하고 병력을 모았으며, 귀계(鬼計)로 상대를 농락하는 술수가 난무했다.

그러한 과정 또한 전쟁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적어도 지금까지는 패배한 게 맞다. 그 과정에서 제 뜻대로 이뤄진 건 거의 없었으니까.

“상대에게 농락당한 것인가? 아니면 욕심이 과했던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천천히 뜨이는 눈 속에서, 사나운 광기가 소용돌이쳤다.

“운명이 나의 패배를 원하는 것인가.”

정말이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점복사들이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소리를 해 대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믿어 본 적도 없고 믿을 생각도 없었다. 진정 세상에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게 있다면, 이 세상에 날 때부터 정해진 법칙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뜻일 테니까.

심지어 자신은 평생 남을 부리면서 살아왔다. 지금의 위치로 올라오기 전에도 이간(離間)과 심리전에 능해 타인을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이 누군가의 손에 농락당하며 살았다는 건,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문득 담사영은 한 인물을 떠올렸다.

‘그’를 인물이라는 표현으로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이천상.’

구대천마, 절대마신, 고금제일마.

죽어 가는 몸뚱이로, 본래 능력의 십분지 일도 펼쳐 내기 힘든 몸으로 의천맹을 와해시켜 버린 절대적 무(武)의 화신(化神).

사람으로 태어나 신(神)의 반열에 오른 그의 눈에 이 세상은 어떻게 보였을까?

정말 운명이라는 것을 보고 있었을까? 숙명의 업(業)이라는 걸 직시할 수 있었던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담사영은 단번에 부정했다.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면 굳이 거기까지 와서 죽을 이유는 없었을 것…….’

부정과 동시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스스로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후계를 위한 디딤돌이 되어 주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든 신이든, 존재의 소멸이라는 원초적인 공포에서 벗어날 순 없다. 더욱이 이천상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결국 이천상도 부족했던 것이다. 천재지변마저 다룰 수 있는 신과 같은 경지에 올랐음에도 초라한 죽음을 맞이했어. 그게 그의 한계였을 따름이야.’

결과가 그렇다. 이천상은 홀로 의천맹을 박살 냈지만, 정작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아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 자신이었다면 일단 적의 수장 둘부터 죽인 후 여력을 쥐어짜 남은 병력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을 테니까.

그게 상식이었다. 그래야 뒤가 편해진다.

하지만 이천상의 선택은 달랐다.

‘뭐가 되었든, 내가 이해하기 힘든 자라는 건 분명하군.’

현재만 보는 사람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삼간(三間)을 모두 보는 사람의 차이였다.

담사영은 죽을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천상이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한 이유를, 나아가 자신이 이렇게까지 밀려 버린 이유를.

결국 세상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개인의 압도적인 무(武)보다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염원(念願)을 받아 휘두르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도라는 걸 그는 몰랐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만의 방식대로 살아와 나름의 성공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거기까지일 뿐이었다.

“게다가…….”

담사영이 씁쓸하게 읊조렸다.

“내실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의천맹주가 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실수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실수는 했을지언정 매번 그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을 기책으로 상황을 돌파했다. 실패를 맛보았을지언정 더 큰 성공으로 실패가 남긴 잔혹한 흔적을 지워 버렸다.

하지만 왜인가? 의천맹이 와해되고 새로이 세력을 형성한 뒤 천하를 판돈으로 건 일생일대의 승부에서는 이런저런 빈틈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빈틈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넓어져 기어이 신뢰라는 글자를 꺾어 버렸다.

“…….”

재미있군.

“큭큭.”

담사영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뢰? 이 담사영이?”

웃기는 소리.

신뢰란 듣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며, 애정이란 실체 없는 공허의 산물일 뿐이다.

누가 뭐라 해도 대자연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생존 원리로 돌아가는 판이다. 그런 곳에서 타 존재를 신뢰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다.

신뢰란 존재를 건너뛰고 존재의 행위를 향한다. 그 행위가 불러오는 결과를 확신할 수 있을 때만 신뢰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한데 자신은 왜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언제부터 타인을 신뢰했다고?

“재미있군. 그래, 내가 나답지 않았으니 지금껏 이리 당해 왔던 게지.”

우우우웅.

천라무허신공(天羅無虛神功)의 기운이 담사영의 전신을 감쌌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처럼 푸르른 진기였다. 어찌나 파란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늘 저편의 어둠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이 바로 담사영이었다.

신선과도 같은 풍모. 의천(義天)의 이름을 달고 살아왔지만, 결국 그의 본질은 홀로 존재하는 어둠에 닿아 있었다.

담사영은 천라기(天羅氣)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우우웅! 우우우웅!

푸른 진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어찌나 거세게 요동치는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일 정도였다.

번쩍! 번쩍!

담사영의 새파란 동공이 명멸을 반복했다.

‘그래.’

신공(神功) 그 자체에 열중하여 깊게 가라앉아 본 적이 대체 얼마 만인가.

천룡의 술법에 심취하여 한계를 뚫고 초월자의 경지로 진입했다. 그 이후 극한까지 개방된 천라무허신공에 빠져들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서량, 아니 천하진 그놈과 싸울 때조차도 이렇게까지 개방하진 않았다. 그럴 정신도 아니었지만.

‘그랬었군.’

치이이이익!

명멸을 반복하던 그의 안광이 이내 하나의 점(點)으로 변했다.

“당신이었나?”

사아아아악.

무당산의 산운이 서서히 꿈틀거렸다.

서량, 그리고 여극도가 극도로 연마된 상단전(上丹田)을 통해 의형(意形)을 환상으로 이끌어 냈던 것처럼.

담사영의 신안(神眼)에도, 존재의 본질을 구상화하는 그 빛나는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 우레와 같은 격정이 터져 나왔다.

“현천!!”

찌이이이잉!

담사영의 무시무시한 호통이 한 줄기 무형의 충격파가 되어 산운의 중심을 쫙 갈라 버렸다.

담사영의 푸른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이 죽지도 않은 늙은이가 감히 날 농락해?!”

그가 거세게 진각을 밟았다.

콰아앙!

무당산의 주봉에서 퍼져 나가는 충격파가 무당의 산맥(山脈)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온전한 신선(神仙)이 되지 못한, 그러나 원무신(元武神)의 숨결이 가득한 무당산과 하나가 된 현천진인이 신음했다.

치이이이이익!

무당산의 선기(仙氣)가 꿈틀거렸다.

무위자연, 순천(順天)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던 무당 선산의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담사영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것은 명백한 기(氣)였지만, 또한 통상적으로 부르는 기와는 전혀 달랐다.

산의 혼(魂)이라고 해야 할까. 명백한 의지를 지녔으되 동시에 사람의 인식을 초월한 무언가가 담겨 있는 기였다.

번쩍!

잡티 하나 없이 새파랗던 두 개의 청안(靑眼) 중 좌측 눈이 서서히 핏빛으로 변해 갔다.

혈신기(血神氣)의 본체다.

천하 각지에 뿌려져 있는 오행의 혈신기가 종국에 진입해야 할 근원의 기운이었다. 천룡궁에서는 이 기운을 혈원신기(血原神氣)라 하였다.

그렇게 그의 두 눈은 청홍(靑紅)의 사안(邪眼)이 되었다.

마치 운명처럼.

천마신교의 십대천마 서량이 지닌 좌청우홍(左靑右紅)의 마안(魔眼)을 비웃기라도 하듯, 황군총수(皇軍總帥) 의천무제(義天武帝) 담사영이 좌홍우청(左紅右靑)의 사안을 만들어 냈다.

둘은 그렇게나 닮았고, 동시에 그렇게나 달랐다.

저 하늘이, 이 세상이 관여치 못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두 욕망의 천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광기 가득한 천적(天敵)의 관계를 형성한다.

쿠르르릉!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쏴아아아!

내려서는 안 될, 내릴 때가 되지 않은 소나기가 퍼부어졌다. 혈원신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용해 폭우를 부른 것이다.

천룡술법, 오행 중 혈수신기(血水神氣)를 이용한 환우비술(喚雨祕術)이다.

혈원신기를 지닌 자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천룡궁 역사상 최고를 논하는 천재의 힘을 고스란히 끌어온 담사영이 인위적인 힘으로 기상 이변을 일으키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시간이 지날수록 거세지는 폭우가 지반을 마구 뒤집어 놓았다.

“허억! 허억!”

담사영의 좌측 눈에 어렸던 붉은 광채가 점점 희미해졌다.

엄청난 범위를 아우르는 환우비술이었다. 천하의 담사영조차도 힘을 바닥까지 소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 결과는 실로 아찔했다.

콰르르릉! 콰앙!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빗물이 쏟아졌다. 그 빗물이 합쳐져, 바위를 뽑아내고 땅을 뒤집었다.

무당산 곳곳에서 소규모 산사태가 일어났다. 물리적인 힘이 아닌 대자연의 힘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산사태를 유도한 것이다.

쾅! 콰르릉! 콰아앙!

무당산에 재앙이 찾아들었다.

담사영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무리한 혈원신기의 운용으로 지독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더는 내게 관여할 수 없을 것이다!”

무당산과 하나가 된 현천진인의 의지를 천룡의 술법으로 잠재워 버렸다.

“다시는! 절대로 나에게 관여할 수 없다!”

의천맹이 멀쩡하던 시절, 맹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름 모를 야산에서 만났던 두 사람.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때부터 현천진인은 담사영의 심혼(心魂)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것을 심검(心劍)의 또 다른 형태라고 볼 수 있을까.

파괴의 화신 이천상이 심검을 이용해 천재지변을 일으켰다면, 정파 무공의 화신인 현천진인과 남궁언은 심검으로 상대의 마음을 올바르게(正) 이끌어 주었다.

그 올바름이 담사영에게는 지독한 독이 된 것이다. 철두철미한 성정과 중독된 고독함을 지워 내는 평화의 씨앗이 된 것이다.

치이이이익!

담사영의 몸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파바바바박! 스르륵.

쏟아지는 빗물을 튕겨 내던 그의 육신이 점차 수기(水氣)를 받아들였다. 약해졌던 혈원신기가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담사영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퍼어어엉!

질퍽해진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후.

“부르셨습니까.”

아홉 개의 교룡조를 총괄하는 자. 천마신교로 치자면 천마대군장 정도의 직위를 지닌 자가 담사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후는 어디에 있느냐?”

“현재 강을 건너 호북 최남단에 있습니다.”

“후에게 말해라. 방향을 틀라고.”

담사영이 귀기 어린 폭소를 터트렸다. 웃음소리에서 무시무시한 광기가 느껴졌다.

“이왕 시작된 전쟁이라면, 재미라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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