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48화 (547/774)

548화. 염라마신(閻羅魔神) (4)

“……?!”

단리후는 저도 모르게 북쪽을 바라보았다.

‘뭐지?’

내가 잘못 느꼈나?

‘혈신기(血神氣)가 튀는 것 같았는데?’

이 근방에서 혈신기를 다루는 이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단리후가 볼 수 있는 영역에서, 혈신기를 본격적으로 운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사부님이?’

흔들리는 눈으로 북쪽을 보던 단리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착각이겠지.’

이곳에서 무당산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신법을 펼쳐도 족히 사나흘은 걸린다. 당연히 사부님의 기운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혈신기가 튄 것은, 남부에서부터 풍겨 오는 적의(敵意)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는군.”

벌써 피부가 따끔거리는 듯하다.

호북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호남이 나온다. 그리고 호남 최북단에는 신교의 최정예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호남만이 아니었다. 호남과 인접한 다른 성(省)에도 천마신교 최강의 병력이 분포해 있었다.

아마도 전쟁이 시작되면, 저들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올 것이다.

‘아쉽지만 병력의 질에서는 저쪽이 위야.’

천마신교가 천 년 동안 중원 무림을 상대로 일장 난투를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조직도 넘보기 힘든 병력의 질적 우위 덕분이다.

물론 양으로는 이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그러나 질에서는 천마신교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괜찮다.’

우우우웅.

손목을 휘감고 있는 일륜(日輪)에서 태양신기가 타올랐다.

‘양으로 질을 압도하는 방법을 보여 주지.’

천룡의 술법들은 그 자체로 천하 일절이라 할 만하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활용도 측면에서 능히 천하제일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극한의 고수들을 공략하긴 어려울지 몰라도, 대자연의 흐름을 뒤틀어 병력 싸움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이 천룡술법이 위험한 이유였다. 대규모 싸움에서 병력을 보조해 주는 수단으로는 천룡술법만 한 것이 없다.

세상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천룡술법이 얼마나 무서운 힘인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힘의 추구. 이제 세상은 무공보다 술법에 더 열광하게 될 것이라고 단리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군(全軍) 전진하라.”

쿠르릉.

교룡 오 조(蛟龍五組)를 선두로 황군 오천과 함께 진격하는 단리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공기에 깃든 긴장감이 진해진다.

천룡기를 가꾸며 사형제 중 가장 빠르고 완성도 있는 부동심을 얻게 된 그조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긴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주도권을 가져가는 싸움.

진짜 전면전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첫 싸움의 시작을 황군총수의 대제자인 자신이 한다.

긴장한 탓인지 부담감까지 찾아온다. 천룡술법을 익히기 전에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단리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완전한 부동심 따위는 없는 것인가.’

아주 오랜만에 크게 심호흡을 해 본다.

“제대로 묻어 주지.”

그때였다.

삐이이이익!

북쪽 하늘 저편에서 날카로운 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푸드드득!

들렸다 싶은 순간 어느새 코앞이다. 황군 측에서 키우고 있는 영물 중 하나였다.

단리후가 팔을 뻗자 새하얀 매가 그의 팔뚝에 앉았다.

‘사부님?’

그는 서둘러 매의 발목에 묶인 서신을 풀어 펼쳤다.

“……?!”

단리후의 눈이 깊어졌다.

‘호남 전선이 아니라?’

갑자기 왜 이런 명령을 내리셨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필체와 세인(細印)을 확인해 봤지만, 다시 봐도 사부님이 보내신 게 맞다. 애초에 이 전서응은 담사영이 아니면 다루지도 못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선제 타격은 무조건 중심부가 좋다. 그것은 상식이었다.

단리후는 난처함을 느꼈다.

‘직접 뵙고 얘기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

물론 천룡기를 통해 만리전음(萬里傳音)에 가까운 술수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내력을 소모하는 것은 물론, 회복하는 동안 술법에 제한이 온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화경에 이른 고수라도 마찬가지였다.

즉, 초전(初戰)을 치러야 할 그가 선택하기엔 힘든 수법이다. 심지어 답변을 하는 상대방 역시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만 한다.

‘경험 부족인가.’

분명 사부님의 심중에 변화가 왔다.

하지만 예전처럼 쉽게 확신할 수가 없다. 이전과는 달리 바로 옆에서 그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병력을 운용하는 대장의 어려운 점이다. 혼자라면 모를까, 오천이 넘는 병력을 이끄는 자의 오판은 전황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머리가 아닌 손발의 위치에 있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전군 정지.”

착!

교룡조가 전진을 멈추자 오천 황군도 보행을 멈추었다.

놀랍도록 잘 훈련된 정예병들이었다.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데에선 황군이 교룡조를 압도하고 있었다.

“현 시간부로 타격 지점을 바꾼다.”

단리후가 우측을 바라보았다.

서쪽이었다.

“우리는 귀주성으로 빠진다.”

* * *

마동필이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

“왔냐.”

고개 숙여 예를 표한 그가 다시 서량을 보았다.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역시 달라지셨다.’

철혈성 내성에서 크나큰 깨달음을 얻으신 후, 교주님께서는 또 한 번 달라지셨다.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금호와 놀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인다. 그 여유가 주는 잔잔한 공기가 그의 분위기를 한층 신비롭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은은한 반딧불 몇 개가 그의 주변을 도는 듯했다.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이었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쿵. 쿵.

마동필 뒤로 호왕이 걸어왔다.

천 근을 넘어가는 거체. 붉은색 선명한 동공이 서량을 향했다.

사박.

서량 옆으로 다가간 호왕이 그대로 엎드렸다. 엎드렸는데도 서량이 앉은 바위만큼이나 체고가 높았다.

서량이 호왕의 거대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몸은 어때?”

“예?”

“며칠 안 쉬어도 되겠냐는 뜻이야.”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물론입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 출교할 거다. 그전까지 마음의 준비 확실히 해 두도록.”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마동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밀착 호위이니 곧바로 서량에게 붙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마동필은 그것을 본능으로 알았다.

멀어져 가는 마동필의 등을 보며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동필이도 참 많이 컸어.”

처음 마동필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딱딱하기 짝이 없는 낯짝으로 형식과 법도를 입에 담는 마동필의 모습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그 답답함이 때로는 신뢰를 주었지만, 적어도 당시의 서량은 마동필을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깊은 호의를 느낄 만한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수하이자 전우(戰友)인 마동필은 이미 혈육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마동필과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줄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내가 다가간 게 아니라 저 녀석이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건지도 모르지.”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마동필은 언제나 서량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처럼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 했고, 그가 올랐던 경지에 오르려 했으며, 그가 보는 것처럼 세상을 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용케 여기까지 성장했어.’

무수히 많은 사선과 극한의 인내로 쌓아 올린 절대적인 무(武)는 능히 십대고수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크게 성장할 줄은 알았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다. 남들 앞에선 담담했지만, 처음 마동필이 극마에 올랐을 때 얼마나 기겁했는지 모른다.

“이 정도면 밀착 호위가 아니라 제자나 다를 바가 없군.”

그때,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자를 들이실 거면 꼭 저한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서량이 고개를 돌렸다.

호요성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날이 새도록 일하다가 온 것이다.

“왜?”

“왜긴요. 후계자 싸움이 어떤 식으로 벌어질지 미리 내다봐 둬야 마음이 편할 것 같으니까 그렇죠.”

서량이 피식 웃었다.

“아직은 생각 없어.”

“당연히 지금은 안 됩니다.”

“앞으로도 제자를 들일지 모르겠군.”

“그건 곤란한데요? 훗날 교주직 이양할 후계자는 무조건 정해 주셔야 합니다.”

“꼭 제자일 필요가 있나. 쓸 만한 인재가 나타나면 건네줘도 되잖아.”

“진심이십니까?”

“어.”

농담인 줄 알았던 호요성은 깜짝 놀랐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나는 누군가를 키워 내는 데에 별 재능이 없어. 중요한 순간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라면 몰라도 말이야.”

“그게 결국 잘 가르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물론입니다.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도, 그 순간에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스승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뜻 아닐까 싶습니다.”

“뭐, 능력이라면 그럴 수 있지.”

서량이 쓰게 웃었다.

“내가 생각보다 정(情)이 좀 많나 봐.”

이번에도 농담이 아니었다.

호요성이 진지하게 물었다.

“후계자 싸움이 벌어지는 게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사제지간이란 단순히 무공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야. 무공을 전수할 때는 스승의 깨달음과 사상은 물론, 마음까지도 따라가는 법이야.”

“…….”

“그렇다고 사부님처럼, 정을 주지 않고 무공만 던져 주는 스승이 되고 싶진 않거든.”

물론 그것은 이천상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 오른 이천상은, 서량과 만나기 전까지의 구대천마는 인간의 감정을 대부분 상실한 반선(半仙)이었다. 일부러 정을 주지 않은 게 아니라,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서량은 달랐다.

편법에 가까운 샛길을 통해 신화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었지만, 다시 그 경지를 엿보려면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즉, 그는 여전히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정을 주지 않을 자신도, 정을 준 제자들끼리 상쟁(相爭)을 벌이는 광경을 담담히 지켜볼 자신도 없었다.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답습니다.”

“신기한 반응이네?”

“신기하다니요?”

“신교의 교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게 할 말이냐, 더 단호해져야 한다 등등의 말이 나올 줄 알았거든.”

“제 주제에 어찌 그런 말을 올릴 수 있겠습니까.”

“허허.”

“다만, 상쟁을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성품 괜찮은 인재 하나만 골라서 잘 키워 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서량이 쓰게 웃었다.

“그건 어떤 의미로 더 어렵군. 오로지 한 명만 키우는 거.”

“마 호위는 잘 키우셨잖습니까?”

“하하!”

서량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뭐, 밥은 짓지도 않았는데 설거지 걱정부터 하는 격이구만.”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일은 다 처리했어?”

“예.”

자리에서 일어난 서량이 맑은 눈으로 호요성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 잘 부탁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싸움이 본격화되면, 자네도 전선으로 와야 할 때가 생길지 몰라.”

“각오하고 있습니다.”

호요성이 고개를 숙였다.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니,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자네도 조심하게.”

서량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호왕이 따랐다.

그때였다.

“…….”

서량이 걸음을 멈추었다.

호요성이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

“교주님?”

“바뀌었다.”

“예?”

서량의 눈이 서쪽으로 향했다.

신에 이른 안목이 광동성을 지나 호남에, 나아가 호북까지 도달했다.

“……이게 맞나? 적의(敵意)의 방향이 바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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