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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50화 (549/774)

550화. 염라마신(閻羅魔神) (6)

“후우.”

호요성이 눈을 감았다.

“이제야 싸움다운 싸움이 시작되었거늘.”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간간이 무리를 했지만, 특히 근래가 좀 심했다.

교주님께서 출교하신 이후 쪽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했다. 제아무리 마공을 익혔다지만, 이제는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다.

‘괜찮아.’

몸은 한계가 찾아왔지만, 정신은 점점 날카롭게 벼려진다.

‘교주님께서는 지금쯤 도착하셨을까.’

아마 도착하셨을 것이다.

교주님께서는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이며, 고금의 무림사를 뒤져도 쉬이 찾기 힘든 절대고수가 아니신가. 만일 병력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엊그제 도착하셨을 것이다.

‘괜찮겠지.’

그렇다고 교주님께서 약한 전력을 대동하고 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교주님과 함께 출교한 이들은 당대 신교의 수뇌부들이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극마에 오른 고수가 둘이나 끼어 있었다.

그만한 병력이라면, 설령 교주님이 안 계신다 해도 어지간한 대문파를 상대할 만한 전력이었다. 그 문파에 극마에 오른 고수가 없다면 승률은 무조건 칠 할 이상이다.

‘아마 그들 역시 교주님의 극강한 무공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겠지.’

게다가 그들은 지금껏 이 정도 규모의 싸움에 참여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었다.

실력은 출중하지만, 평화의 세월이 지나치게 길었다. 전대 교주이자 고금제일마 이천상의 치세는 천마신교에 유례가 없는 평화와 힘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의 의지를 이어받은 십대천마가, 한껏 끌어모은 힘을 이용해 중원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시점이다.

아마 수뇌부들 역시 상당히 흥분했을 것이다.

‘사람이기에 여유를 즐겼지만, 마인이기에 억누르고 있던 호승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쌓여 있었을 것이다.’

호요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첫 싸움, 아마도 미쳐 날뛰게 될 테지.’

그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바쁘신가?”

깜짝 놀란 호요성이 고개를 돌렸다.

“어?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군사부에 찾아온 사람은 바로 주청이었다.

주청이 어깨를 으쓱였다.

“거처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

“그럴 만도 하시겠군요.”

“서 교주는? 출교했나?”

“그렇습니다.”

“그렇구먼.”

주청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가벼운 긴장이 감돌았다. 그 역시 이번 전쟁의 승패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호요성이 웃으며 말했다.

“날도 좋은데 차나 한잔하시겠습니까?”

“허허, 내가 괜히 바쁜 사람 붙잡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먼.”

“괜찮습니다. 요새 통 잠을 못 자서요. 이럴 때 쉬지 언제 쉬겠습니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잠시 실례할까?”

잠시 후, 두 사람이 조촐한 다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래도 교주님께서 귀빈(貴賓)께 말씀은 드리고 떠나신 모양입니다.”

주청이 피식 웃었다.

“은근히 잔정이 있는 사람 같더군. 처음 만났을 때는 당장이라도 날 잡아먹을 것처럼 굴었으면서 말일세.”

“하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호요성 역시 서량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서량이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이후 처음 만났을 때를.

그의 머릿속에, 서량의 싸늘한 얼굴이 그려졌다.

- 목 날아갈 준비는 됐어?

-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 어쨌든 제법 흥미진진한 만남이었소. 그럼 이만 갈 길 가십시다.

십대천마 서량이 아닌 삼공자 서량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접근했던 당시.

서량은 오직 감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심지어 총군사인 자신의 목에 대뜸 칼을 겨누었다.

그것도 모자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어지간해서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서슴없이 목을 날려 버리겠다는, 진심 가득한 말로 자신을 몰아붙였다.

‘생각해 보니 뒤통수까지 맞았지.’

천마병창에 들여보내 준다고는 했지만, 몇 자루를 챙겨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마신(魔神)다운 발상이다. 그때는 그런 서량의 모습이 흥미로우면서도 걱정스러웠는데, 지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인이 되어 따라가기도 벅찰 따름이었다.

극구광음(隙駒光陰)이라더니, 벌써 그게 몇 년 전인가?

“타인에게 기대를 품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괜히 기대해 봤자 나중에 실망만 하게 될 테니까.”

“허허. 애초에 기대가 없으니 상대의 성장에 순수하게 놀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적어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분은 아니지요.”

“동의하네.”

두 사람이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주청이 입을 열었다.

“총군사 생각은 어떤가?”

“예?”

“총군사가 보기에, 이 싸움의 끝이 언제일 것 같은가?”

호요성이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글쎄요? 사람들이 저더러 천재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그렇게까지 잘난 사람은 아니라서요.”

“음, 총군사의 눈에도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물며 수만의 목숨이 부딪치게 될 싸움입니다. 사소한 변수 하나로 전황이 시시각각 반전될 테지요.”

“하긴, 전쟁이란 그런 것이지.”

“다만 이것 하나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호요성의 눈이 깊어졌다.

“담사영이 죽으면, 그때 싸움은 끝납니다.”

“…….”

“설령 황군의 병력이 아무런 손실 없이 멀쩡하더라도, 담사영만 죽으면 전쟁은 종료됩니다.”

주청의 눈이 빛났다.

“예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네.”

“말씀하십시오.”

“담사영, 그 다시 나기 힘든 악랄한 역적 때문에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네.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겠지. 그의 마수에 휘말려 죽임을 당한 숱한 사람들에게, 담사영이란 존재는 막을 수 없는 재앙과도 같았을 걸세.”

“…….”

“대체 그놈의 정체가 무엇인가? 놈은 어떤 과거를 가진 게지?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는 것인가?”

망가졌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동시에 그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는 것을, 호요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요. 말씀드렸듯, 저는 천재도 아니고 신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그의 과거가 어떠한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으음.”

“심지어 저 역시 그자의 과거를 캐 보려고 정보원들을 파견했었지만,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했지요. 젊었을 때의 음험한 행보는 알아냈지만, 저도 그리고 귀빈께서도 그걸 알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맞는 말일세. 참,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군. 마치 지옥의 악마가 중원을 유린코자 던져 놓은 존재 같지 않은가.”

“악마라…… 맞는 말씀입니다.”

호요성이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악마가 황군을 홀리고 중원을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악마가 죽으면, 악마에게 홀렸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겠지요.”

“허허허.”

“교주님과 담사영의 차이를 아십니까?”

“음?”

주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차이라고 한다면 너무 많아서…….”

“교주님과 담사영의 결정적인 차이는, 수장의 사후(死後)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

“저는 담사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건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담사영이 죽으면, 그를 위해 슬피 울어 줄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그의 죽음을 기리며 결사 항전의 마음을 먹을 사람은 없을 것임을.”

“으음.”

“하지만 교주님은 다릅니다.”

주청의 눈이 빛났다.

호요성이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였다.

“신교의 신도인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교주님께서 적의 계략에 휘말려 돌아가신다면 신교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들고 일어나는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츠츠츠.

호요성의 두 눈에 끔찍한 살기가 어렸다.

“마(魔)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겁니다.”

“……!!”

“정사마(正邪魔)? 관부? 황궁?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본교는, 나아가 마도 무림의 모든 마인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박살 내 버릴 겁니다.”

호요성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주청은 문득, 총군사의 미소가 교주인 서량의 살기만큼이나 매섭다고 생각했다.

“생(生)이 허락하는 한, 교주님의 죽음에 아주 약간의 인과라도 얽힌 자나 집단은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릴 겁니다. 그 집단과 연이 있는 사람은 물론 키우던 개까지도 찢어 죽일 것이며, 죽은 개를 보고 우는 자가 있다면 그자도 죽일 겁니다.”

“……무섭군.”

“저희에게 교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마도 무림의 태양, 마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자들이 모셔야 하는 유일신.”

서늘한 미소에 도사리고 있던 살기가 한순간 씻은 듯 사라졌다.

호요성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과연 담사영이란 작자가, 휘하 무인들에게 그 정도의 충심과 애정을 받고 있을까요?”

담사영만이 아니라 천하 어떤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광기 어린 충성을 받긴 힘들 것이다.

“모두를 위해서도, 서 교주는 절대 죽어선 안 될 사람이구만.”

“절대로요.”

“허허, 그런 존재를 어찌하여 덜컥 세상에 내보냈는가? 제아무리 지켜 주는 사람이 많다 한들, 한 손으로 열을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게 또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음?”

호요성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흘러가는 조각구름이 제법 그럴듯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지금의 교주님께서는 한 손으로 열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이거든요.”

* * *

“그럼, 잘 부탁드리겠소.”

“나 역시.”

돌아서던 단리후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얼마든지.”

“귀궁을 모욕할 의도는 없소. 다만…… 야수궁은 마교를 두려워하지 않았소이까?”

극랑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랬지.”

“한데 어찌하여 먼저 연락을 취하신 것이오? 왜 마교와 손을 잡지 않고, 우리와 손을 잡은 것이오?”

“미래를 본 것뿐이다.”

“미래라…….”

“마교는 한번 부딪쳤던 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아. 잠시 내버려 둘 뿐, 언젠가는 반드시 없애 버리고야 마는 지독한 놈들이지.”

단리후가 미소를 지었다.

“토사구팽. 마교, 저 사악한 놈들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거요.”

“기실, 그건 너희라고 다를 바 없지 않나?”

“그럴 리가.”

“너희도 똑같아. 다만 우리가 마교가 아닌 너희와 손을 잡은 것은, 아직 너희와의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극랑이 몸을 돌렸다.

“뇌응의 지파에서 키우는 영물을 보내 주지. 타격 준비가 끝나면 연락해라.”

“살펴 가시구려.”

크르르릉.

극랑이 사라지자 숲속에 도사리고 있던 시뻘건 안광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그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단리후 역시 신법을 펼쳤다.

파악!

단숨에 밀림을 주파하는 단리후의 눈은 묘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야수궁 정도의 병력이라면, 분명 크게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첫 타격전의 목표는 적의 섬멸이 아닌 본진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그 한 번의 흔들림이 엄청난 빈틈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빈틈이 드러나는 즉시 황군의 병력 대부분이 남하를 시작할 것이다.

‘잘만 되면 싸움이 금방 끝날 수도 있을 텐데.’

어찌 되었든, 이런 중차대한 일을 자신이 맡게 되어 부담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기대해라, 마교.’

그때였다.

쿠우우웅!

단리후가 신법을 멈추었다.

“어?”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쿵! 쿠구구궁!

거의 백여 리를 넘게 달렸는데도, 멀리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굉음에 땅이 진동했다.

단리후의 눈이 흔들렸다.

“저곳은?”

순간, 지금까지는 듣지 못했던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콰아아아아앙!

단리후의 눈이 커졌다.

그의 눈에, 하늘 높이 치솟은 회흑색 뇌전과 적백의 화염이 보였다.

“……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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