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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54화 (553/774)

554화. 마신출도(魔神出道) (4)

“허억!”

담사영이 가쁜 숨을 들이켰다.

“커헉! 헉헉!”

내가공부의 극치를 이룬 고수의 호흡은 육신이 망가지지 않는 한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런 담사영의 호흡이 갑작스레 흐트러졌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솟구치는 천룡의 술력이 그의 삼단전을 휘감았다.

담사영의 눈이 번쩍였다.

‘……후?’

천룡궁주 무명이 직접 하늘의 점지를 받고 데려온, 담사영 인생 최초의 제자.

무공은 물론 술법에 관한 재능에 있어서도 능히 백년지재(百年至材)라 할 만한 녀석이었다. 이후 몇 명의 제자를 더 받았지만, 단리후만큼 성취가 빠르고 똑 부러진 놈은 없었다.

‘너 설마?’

두근두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설마, 당한 게냐?!’

그럴 리가 없었다.

단리후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은 없지만, 담사영은 자신의 대제자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한데 이 불길함은 무엇인가?

칠요집전술에 가장 강하게 얽힌 대제자의 술력이 확 튀어 버린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어찌 그러시오?”

“……아닐세.”

“별일도 아닌데 그리 호흡이 가빠진단 말이오?”

“그런 일이 있네. 자네가 신경 쓸 건 아니야.”

“흐음.”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자 명왕(冥王)이라는 별호로 유명한 능적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해서,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이오?”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자네를 필요에 의해서만 부른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었소?”

“허허.”

능적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제 납치 건 이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더니, 무슨 일을 시키려고 부르신 게요?”

“일단 오해부터 풀었으면 좋겠군. 나는 자네가 놈들의 술수에 당했기 때문에 부르지 않은 게 아닐세.”

“그 거짓말, 사실이오?”

“자네처럼 자존심 세고 오만한 사람이 눈앞에서 황제를 놓쳤어. 그런 자네를 다시 써먹으려 들어 봤자 또 다른 실패를 맛볼 확률이 높지.”

“…….”

“실망했다면 미안하네만, 나는 자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릇이 작은 사람은 아닐세.”

능적반은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미안하구려. 내 그릇이 작아서.”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면 발전도 없는 법이지. 앞으로도 자신의 단점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열이 안 받을 수 없는 말이지만, 능적반은 치솟는 울화를 애써 다스렸다. 여기서 화를 내 봤자 애송이처럼 보일 뿐이고, 애초에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도 아니었으니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그러세나.”

딱!

담사영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금낭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능적반의 눈이 번뜩였다. 분노가 가득했던 그의 동공이 탐욕으로 얼룩졌다.

“다른 십대고수는 얌전히 대기하고 있나?”

“……그렇소.”

과거 십대고수 중 몇이 목숨을 잃었다.

누군가는 천라지망에, 누군가는 적의 칼에, 누군가는 살아 움직이는 재앙에게.

즉, 본래의 십대고수는 와해가 된 셈이지만, 천하는 넓고 고수는 많았다. 자연히 그전까지는 숨죽이고 있었던 초고수들끼리 경쟁하며 신(新) 십대고수를 형성했다.

담사영 본인을 시작으로 서량, 송금백, 남궁언, 언극.

그리고 기존의 고수들과 더불어 새로이 왕좌에 오른 고수들은, 개전의 순간에는 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 남은 고수들을 회유하기 위해, 담사영은 그중 한 명인 능적반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그들을 황궁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자네를 제외한 넷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쉬이 내보여선 안 될 패일세. 다만 저쪽 역시 자네들, 오왕(五王)의 존재를 모르진 않을 것이야.”

“그렇겠지.”

“이미 알고 있는데 꼭꼭 숨겨 두기만 하는 것도 아쉬운 일 아니겠나.”

“그래서 본론이 뭐냐고 묻지 않소.”

“남궁언.”

능적반의 눈이 번쩍였다.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황제를 납치하는 과정에 검왕도 끼어 있지 않았던가. 비록 지금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지만, 때가 되면 그 늙은이 역시 전선에 뛰어들 걸세. 그 늙은이와 친분이 있는 늙은이도 함께할 확률이 높겠지.”

“……그렇겠지.”

“자네, 그 늙은이와 싸우면서 손해를 좀 봤다고?”

능적반의 볼이 씰룩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나 남궁언이나,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임이 분명하지만 실력 차 역시 분명히 있었다.

“복수의 기회를 주는 거요?”

“안타깝지만 이건 전쟁일세. 전쟁에서 사사로운 복수는 사치지.”

사아아악.

담사영의 두 눈이 강렬한 살기가 어렸다.

그 살기가 어찌나 거셌던지, 능적반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정정당당한 일대일 겨룸은 생각지도 말게.”

“……물론 그럴 거요.”

“자네를 위시한 다섯의 고수, 오왕(五王) 전부 안휘로 향하게. 자잘한 일을 처리해 줄 이들도 붙여 주지. 가서 검왕은 물론 남궁까지 불살라 버리시게.”

능적반의 눈이 커졌다.

“남궁세가까지 말이오?”

“태상가주가 죽으면, 그들이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물론 그렇진 않겠지만…….”

“어차피 눌러야 할 놈들일세. 검왕부터 치고, 남은 병력으로 남궁까지 쓸어 버리게.”

담사영이 웃으며 물었다.

“설마하니, 힘들다고 하진 않겠지?”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능적반이 마주 웃었다.

“십대고수 다섯이면 소림사도 상대할 수 있소. 남궁 정도야 별거 아니지.”

“허허, 그래야지.”

담사영이 슬그머니 금낭을 건넸다.

능적반의 두 눈이 격동으로 떨렸다.

“자네를 위해 황군의 신장(神將) 자리를 남겨 두었네. 이 시간 이후로, 자네는 대장군부(大將軍部)에서도 넷밖에 없는 사대신장(四大神將) 중 하나일세.”

“……!”

“그리고 사대신장은, 차후 황태자 전하께서 황위에 올랐을 때 새로이 개편될 관료 품계에서 종일품(從一品)에 해당하는 고위직일세.”

“종일품……!”

“무관으로 종일품에 오를 수 있는 관직은 사대신장뿐일세. 그 외에 관직은 만들지도 않을 것이며, 예외를 두지도 않을 것이야.”

담사영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강호의 낭인에서 시작해 천하십대고수의 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고수가, 이제는 천하에서도 넷밖에 없는 무관 최고위직이 되었으니 출세도 이런 출세가 없구먼.”

능적반은 절로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가능하다면 그 위도 노려 봐야지.”

“허허, 자네가 나라를 위해 한 몸 불사른다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걸세.”

번쩍!

상체를 앞으로 내민 담사영의 두 눈이 지독한 야망으로 이글거렸다.

“그러니 가게. 가서 공(功)을 세우게. 천하제일의 검가(劍家)라 칭송받는 남궁세가를 완전히 지워 버리게나.”

* * *

“군림성교! 천마불사! 교주님을 뵙습니다!”

무담의 선창에 다른 수뇌부들이 뒤이어 외쳤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들 나게.”

절도 있게 몸을 일으킨 그들을 보며, 서량은 짧게 웃었다.

“눈빛들이 살아 있군.”

무담, 소연심, 철무정과 그 외의 수뇌부는 물론 전투 부대의 마인들까지.

모두의 눈빛이 형형했다. 후계자에게 모든 것을 건네고 세상에 나와, 마인다운 전투를 치른 그들의 몸에서는 활화산 같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이게 마인이다. 평화의 시대, 신교를 위해 잠이 부족할 정도로 공무에 시달렸던 그들이지만, 그렇다고 마인 특유의 본성까지 죽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간 쌓아 둔 호승심과 불같은 살기가 일시에 터져 나오니 살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언뜻 후련함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야수궁은?”

“외벽을 무너트리자 수뇌부가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더는 싸움을 이어 갈 필요가 없을 거라 판단하여, 총군사에게 연락 후 곧장 교주님께서 계신 이곳으로 출발했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야수궁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놈들을 지상에서 소멸시키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예전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분명한 항복을 선언했으니, 적어도 수년 내로 도발을 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천하를 정리할 때가 올 걸세. 그때가 오면 자네들 몇이서 야수궁의 뿌리를 뽑아 버리게나.”

“존명!”

“그나저나.”

서량이 의아한 눈으로 철무정을 보았다.

“철 부주가 좀 다쳤구만?”

철무정이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습니다. 다 소신이 무능한 탓입니다.”

초입이라고는 하나, 극마의 고수가 무능하다면 다른 사람은 뭐가 되겠는가.

무담이 철무정을 두둔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노신이 판단하기에 야수궁은 무리하게 진격하여 아군의 피해를 늘릴 필요가 없는 족당이었습니다. 하여 철 부주를 선봉으로 삼아 길을 뚫었습니다.”

“그랬구만.”

“제아무리 전의를 잃었다 해도 야수궁 역시 새외에서 손에 꼽히는 전력입니다. 철 부주가 다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사료됩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 말하지 않아도 철 부주를 책잡을 생각은 없네. 하물며 또 한 번의 과도기를 겪고 있으니, 목숨을 잃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철무정은 감격하여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의 하해와 같은 아량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혼을 내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하늘 같은 교주님이 일개 부주에 불과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주신 것도 모자라 다독여 주신 것 자체가 삼생의 영광이었다.

“어찌 되었든, 자네의 마공이 제아무리 대단해도 하루빨리 내상을 바로잡지 않으면 훗날 큰 문제가 될 걸세. 자네들에게도 나름의 강행군이 될 것인바, 지금 이 자리에서 내상을 수습하는 것이 좋겠지.”

“송구하옵니다.”

“송구는 무슨.”

철무정이 재차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우우우우웅.

서량의 몸에서 푸른 마기가 일렁였다.

군림마황기였다. 회흑색 뇌전을 일으키는 특유의 공격적인 기운이 아닌, 순수한 내공만을 발산하는 그였다.

서량의 손이 철무정에게 향했다.

자연스럽게 뻗은 그의 손끝에서 군림마황기가 올올히 풀려 나왔다.

사아아아아.

꿈틀거리며 번져 나간 군림마황기가 단숨에 철무정의 체내로 침투했다.

‘……!!’

철무정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럴 수가!’

우우우웅! 우우우웅!

체내로 침투한 교주님의 마기가 단숨에 내상을 휘어잡았다.

그야말로 엄청난 회복력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내부를 정상으로 만들더니, 잔존하는 탁기를 마기와 함께 자연스레 배출해 냈다.

주르륵.

철무정의 입가에 검붉은 핏물이 흘렀다. 마기와 함께 배출된 탁기 외에, 내장 출혈로 인한 죽은 피를 위장으로 몰아 입 밖으로 뽑아낸 것이다.

“이 정도면 됐나?”

수뇌부들은 경이로운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철무정의 내상을 눈 깜짝할 새에 고쳐 버린 것은 물론, 체내에 남은 탁기까지 불살라 버렸다. 그들은 이전에도 이런 신기(神技)를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천상.

전대 교주이자 절대마신으로 추앙받는 이천상의 군림마황기가 이러했다. 범위는 비할 수가 없다지만, 찰나지간 내상을 치료해 내는 이 경악스러운 능력은 영락없는 마신의 그것이었다.

마신(魔神)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지 않으면 이 무시무시한 위업에 압도당할 것 같았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자네들, 참 단순하다는 거 알고 있나?”

농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충심을 그렇게나 굳건했다.

“자, 그럼.”

천마도를 어깨에 걸치고, 어느새 거대해진 금호의 등에 올라탄 서량이 북동쪽을 노려보았다.

“남은 잔당을 사냥하러 가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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