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57화 (556/774)

557화. 난전(亂戰) (2)

“죽여라!”

콰르르릉!

휘몰아치는 경풍(勁風)이 전각을 부수고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창천의 협객, 의기천추(義氣千秋)의 전설을 자랑하는 남궁가의 현판이 박살 나고, 수백 년 세월을 버텼던 돌담이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온 적들의 절대적인 무공 앞에서, 천하제일검가(天下第一劍家)라 불리는 남궁의 이름은 아무런 힘도 내지 못했다.

힘은 상대적이다.

남궁의 힘이 제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실질적인 힘 외에 남궁을 지탱해 준 것은 그들의 고결함과 역사였다.

고결함을 짓밟을 독심과 역사에서 나오는 위엄을 무시할 만큼의 강자들 앞에선, 제아무리 남궁가라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남궁을 공습한 이들은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수십 년을 강호 정점에서 노닌 절대고수들이었다.

일인 군단, 진정한 만인지적이라 불리는 개세의 고수 다섯의 습격에 남궁세가의 외단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었다.

“막아라!”

“검진(劍陣)! 검진을 펼쳐라!”

“뇌운검단 앞으로!”

“내단에 보고해! 어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고수가 여럿 모인다고 무조건 전력이 상승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무공 구현 반경을 침범하여 더 나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오왕은 달랐다.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 확실한 결과를 낸다.

게다가 공습 전, 남궁세가의 약점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검진의 약점과 지세, 검사들의 허점을 손쉽게 뚫고 들어가 와해해 버리는 능력이 믿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런!”

남궁정의 얼굴에 급박함이 떠올랐다.

남궁세가 외단의 단주로 십 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설마하니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십대고수?!”

그렇다.

명왕 능적반을 위시한 다섯 고수는 만천하가 인정한 진짜 괴물들이다. 게다가 그들 뒤, 시커먼 피풍의를 둘러쓴 괴인 집단이 피워 올리는 기세는 남궁의 외단 검사들로선 상대할 엄두조차 안 날 만큼 강하고 살벌했다.

남궁정이 외쳤다.

“가주님께 알려라! 태상가주님께도 따로 연락을 넣어! 십대고수 다섯이 공습을……!”

그때,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 장력이 남궁정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크윽!”

남궁정의 몸이 주르르 밀리더니, 이내 전각의 벽에 틀어박혔다. 남궁정이 박힌 전각의 벽이 움푹 들어갔다.

남궁정 역시 초절정고수였다. 그만한 고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았는데도 이렇게 밀려 버린 것이다.

“호오.”

쿠궁!

강한 진각과 함께 쌍장(雙掌)으로 검사 일곱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 거한이 흥미로운 눈으로 남궁정을 보았다.

“상당하구만. 괴암신장(怪巖神掌)을 막아 낸 후배는 오랜만이야.”

남궁정의 눈이 흔들렸다.

괴암신장.

무림에 잘 알려진 무공 명칭이었다. 천하십대고수 중 일인이자 장법의 조예로는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육장(肉掌)의 달인, 거룡왕(巨龍王) 무석(戊石)이었다.

“당신이 대체 왜!”

“당신?”

무석의 볼이 씰룩거렸다. 한참이나 어린 후배에게 당신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남궁씨의 건방이 하늘이 찌른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같잖은 무공 몇 수 익힌 주제에 무림의 선배에게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닥쳐라! 남궁은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거늘, 어찌 이리 무도한 짓을 벌이는가!”

무석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이유가 무슨 소용이냐? 너처럼 예의 없는 것들이 한가득하니,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충분해.”

후우우우웅!

남궁정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무석의 주변 공기가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내공을 끌어모으는 것만으로도 대기가 불타오르는 듯했다.

남궁정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경지였다. 십대고수를 왜 괴물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상대가 안 된다!’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다. 그는 자랑스러운 남궁의 검사이자 세가의 외단 총수였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면.

남은 것은 끝까지 버티다가 산화하는 길뿐이었다.

“죽어라.”

콰릉!

한 줄기 광채가 번뜩이며 태산 같은 장력이 퍼부어졌다.

엄청난 범위를 아우르는 패력의 장법이었다. 마도 무림의 총본산, 천마신교의 마공 중에도 이처럼 강맹한 장법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강했다.

남궁정은 눈을 감았다.

수십 년간 검에 매진했음에도 도달하지 못한 극치의 길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무념(無念)!’

번쩍!

창천의 보검이 괴암신장의 장력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아앙!

목숨을 건 일검(一劍)을 내쳤지만, 안타깝게도 이변은 없었다.

산산이 조각난 보검 뒤, 상반신 전체가 으스러진 남궁정의 참혹한 시체가 땅을 굴렀다. 일가(一家)를 이룬 무공으로도 거룡왕의 일초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이것 봐라?”

무석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솥뚜껑처럼 두툼한 손에 잔떨림이 일다 사라졌다.

‘혼을 실은 검이라.’

남궁정의 검은 괴암신장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장력을 통해 치고 들어온 침투경이 손에 상당한 충격을 남겼다. 금세 진정이 될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자신보다 몇 수 아래인 고수에게 이 정도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꾸욱.

주먹을 쥔 무석의 두 눈에 흥미가 일었다.

“좋군. 그래, 이 정도 발악은 있어야지.”

콰아아앙!

묵직한 진각과 함께 혼신의 힘을 끌어 올린 무석이 다시 한번 쌍장을 내질렀다.

퍼어어어어엉!

귀청을 떨쳐 울리는 폭음과 함께 내단의 대문과 벽이 통째로 부서져 날아갔다.

입이 떡 벌어지는 파괴력이었다. 집채만 한 만근의 황소가 거대한 뿔로 벽을 들이받은 듯했다.

“호오.”

무석의 눈이 반짝였다.

박살 나서 흩어진 대문과 벽 너머에서부터 고요하고도 서늘한 검기(劍氣)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다, 이건가.”

한 걸음을 내디뎠던 무석이 일순 눈살을 찌푸렸다.

‘멀다?’

그렇다.

풍겨 나오는 검기는 피부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섬뜩했지만, 그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남궁세가의 대략적인 영역을 생각해 봤을 때, 한참이나 후방으로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그 검기에서 묻어나는 한스러운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묽어지고 있었다.

“설마하니…….”

무석의 두 눈에 흉광이 떠올랐다.

“도망이나 치고 있었던 것인가! 이름값이 아깝구나!”

무수히 많은 검사가 몸을 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놓치지 않겠다!”

그때였다.

“일단 나부터 넘어서 보게나.”

번쩍!

무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줄기 무형의 검기가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한데 빨랐다. 엄청나게 빨랐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예리했다.

그가 본능적으로 상반신을 뒤로 눕혔다. 철판교의 수법이었다.

서걱!

무지막지한 검기가 그의 뒤를 따랐던 무사 십여 명의 몸을 횡으로 쪼갰다.

무석의 눈이 흔들렸다.

‘엄청난 검기공!’

퍼석!

부서진 현판을 밟고 나타난 자.

바로 검왕 남궁언이었다. 당대 십대고수 중 일인이자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의 명예를 안은 무적의 검객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뒤.

남궁의 원로 이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언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이라 이건가.”

그는 분노를 드러내지 않았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의 역사가 짓밟히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가족 같은 검사들이 목숨을 잃었음에도 경동하지 않았다.

차분했다. 깊었다.

그의 마음과 눈빛은 그가 연마한 검을 닮아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남궁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침착해 보였다.

“제대로 방비를 해야 했거늘,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하겠지.”

남궁언이 무명검을 들어 무석을 겨누었다.

“그러니, 자네들 역시 목숨을 잃어도 그리 아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피눈물이 흐른다.

천수를 누린 목숨, 언제 스러져도 아쉬울 건 없다. 하지만 가문의 일원들이 적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그로 인한 분노와 격정에 일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가문을 공습한 적들을 상대할 수 없다.

결국 가주를 위시한 나이 어린 검사들, 그리고 하인들을 몽땅 대피시켰다.

가문을 지킬 사람, 남궁의 의지를 보여 줄 사람은 늙은이들로 족했다.

무석이 이를 갈았다.

“검왕.”

“오냐, 내가 검왕이다.”

“아들내미는 뒤로 빼 두고 늙은이들만 나섰군.”

“우리로 충분하다네.”

“충분하지 않지. 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이야. 너희 늙은이들을 다 죽이고, 뻔뻔하게 도망친 네 자식들도 잡아 죽일 것이다.”

남궁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다면 해 보시게.”

“검왕!”

퍼어어엉!

무석이 또 한 차례 장력을 퍼부었다.

깊게 가라앉은 남궁언의 두 눈에 일순 시퍼런 광채가 어렸다.

쾅!

“헉!”

무석의 거대한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제법 깊은 검상이 생겨났다. 남궁언의 검격이 장력을 분쇄한 것도 모자라, 그의 손바닥까지 베어 낸 것이다.

남궁언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가볍구나, 거룡.”

“이, 이……!”

“고작 그 정도 무공으로 본가를 넘보았느냐.”

미소 짓던 남궁언의 노안에 강렬한 살기가 어렸다.

“그런 같잖은 실력으로!”

파라라라락!

남궁언의 신형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무석의 눈이 흔들렸다.

‘뭐가 이렇게……?!’

결코 빠르지 않다.

오히려 느렸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의 몸놀림이 이렇게까지 느릿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한데 왜일까? 피할 수가 없었다.

물러설 수도, 몸을 옆으로 비틀 수도 없었다. 남궁언을 보는 순간 마치 거미줄에 묶인 것처럼 신체의 자유가 박탈된 것 같았다.

‘이 무슨 사술이냐!’

이제는 입도 열리지 않았다. 무석은 실로 오랜만에 당황했다.

그리고 위기감을 느꼈다. 느리다고 생각한 남궁언이 어느새 코앞까지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익!’

혼신의 힘을 다해 내공을 끌어 올리자, 어떻게든 양손은 움직일 수 있었다.

“이놈!”

콰아아앙!

괴암신장의 장력이 허공을 갈랐다.

마치 쌓았던 둑을 무너트린 것처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장력이 쏟아졌다. 괴암신장의 극의(極意)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위력이었다.

훅!

남궁언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석의 눈이 커졌다. 폭발적인 장력이 내단 안쪽에 작렬하며 전각 하나를 무너트렸다.

문제는, 정작 남궁언이 장력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 어디로?!’

그때, 머리 위에서 벼락같은 검기가 쏟아졌다.

콰아아앙!

“크윽!”

무석의 두 다리가 정강이까지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굉장하군.”

어느새 그의 옆에 한 자루 환도(還刀)를 든 노인이 서 있었다. 십대고수의 일인, 천도왕(闡刀王) 마극이었다.

마극의 칼이 남궁언의 검을 막지 않았다면, 적어도 무석의 팔 하나는 날아갔을 것이다.

“천하제일검이라더니 과연 다르긴 달라. 우리 중 누구도 일대일로는 버겁겠어.”

무석이 버럭 외쳤다.

“왜 끼어든 거요!”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자네는 지금처럼 내게 소리치지도 못했을 걸세.”

“이익!”

“그리고 명심하게. 이건 승부가 아니라 전쟁이야. 무인 간의 비무 놀음이나 할 거면 이만 빠지게.”

그때, 또 한 줄기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도왕의 말씀이 맞소이다.”

남궁언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능적반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뵙는군. 아니 그렇소?”

“명왕.”

“예전처럼 치사하게 도망치진 못하겠지?”

순간 남궁언의 몸 주변으로 돌풍이 일었다.

콰르르르릉!

외단 일대를 휩쓰는 검기의 폭풍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기파에 능적반을 위시한 모두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남궁언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너희 중 둘 이상은 끌고 갈 생각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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