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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59화 (558/774)

559화. 난전(亂戰) (4)

“보고드립니다! 오왕을 위시한 천룡인(天龍人) 부대의 연합으로 남궁세가가 멸문했습니다!”

우우우우우웅!

담사영의 몸에서 푸른 진기가 치솟았다.

그야말로 바라마지 않던 소식이다. 어찌나 기뻤는지, 순간적으로 진기를 통제하지 못해 천라무허신공이 개방될 정도였다.

“아주 좋아.”

얼마 만인가. 의도한 한 수가 깨끗하게 먹혀들어 간 적이.

‘이제부터니라.’

담사영의 동공에 흉흉한 광채가 일었다.

‘이제부터 하나, 하나 지워 갈 것이다. 그 모든 걸 지운 후, 마지막으로 남은 네놈을 참혹하게 찢어 죽여 주마.’

참으로 질긴 인연이 아닌가.

그저 쓸 만하다고 생각되는 암살자 놈 하나를 눈여겨봤을 뿐이다. 이후 놈에게 암영기를 가르치고, 수십 년 동안 자신의 휘하에서 온갖 정적을 도려내는 최악의 암검으로 키워 냈다.

그런 놈이 제멋대로 도망친 것도 모자라 마교를 수중에 넣어 자신의 턱 밑에 칼날을 들이밀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운명이든 숙명이든, 네놈이 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단 하나의 적(敵)이었다는 것이 이리도 우스울 줄이야.’

참으로 골계(滑稽)적이다.

넘쳐흐르는 욕망으로 많은 것을 손에 쥐었다. 이 세상 모든 걸 손에 넣기 위해 살아온 인생인지라, 사소한 은원이나 자존심 따위에 감정이 흔들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마교주 서량, 살수지왕 천하진.

생각지도 못했던 단 하나의 존재로 인해 철탑처럼 쌓아 놓은 평정심이 이렇게나 흔들릴 줄이야.

‘이것이 천하의 주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이라면, 참으로 서글픈 시험이 아니더냐.’

담사영이 물었다.

“멸문의 정도는?”

한 문파가 궤멸을 당했다. 정도를 따질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담사영의 말을 알아들은 듯, 정보원이 냉큼 답했다.

“남궁세가의 전력 구 할이 증발했습니다. 검왕 남궁언을 위시한 전대 노고수들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담사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군.”

무림의 전쟁은 국가 간의 전쟁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무공의 연마 정도에 따라, 개인의 전력이 낼 수 있는 힘의 크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의 병력을 이끌고 기습하거나 화기와 암기를 무차별적으로 뿌려 대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백 명을 일시에 죽일 수 있는 화기조차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고수가 존재하는 만큼, 확신하고 전술을 취하기가 어려워진다.

즉, 무림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측의 최고수들을 하나씩 없애 버리는 것이다.

고수진을 한 명씩 날릴 때마다 적의 전력이 크게 떨어진다. 쓸 수 있는 전력이 일백(一百)이라면, 최고수 하나가 죽을 때마다 전력의 공백이 뭉텅이로 깎여 나간다. 한 명이 죽었다고 일(一)의 피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오(五), 십(十)의 전력이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나라 간의 전쟁이 바둑에 가깝다면, 무림의 전쟁은 장기에 가깝다.

상대의 강하고 효율적인 기물 하나를 따먹을 때마다 승패의 운이 크게 기운다.

“가주는?”

“그것이…….”

우물쭈물하는 정보원을 보며 담사영이 끄덕였다.

“하긴, 그 정도는 예상했다.”

남궁언과 전대 노고수들이 괜히 나섰겠는가.

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가주와 혈족들을 빼돌렸을 것이다.

“괜찮다. 그 정도면 충분해.”

언젠가 위협이 될 적이다?

그건 말 그대로 언젠가일 뿐이다. 담사영은 최단, 최속의 속도로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이 전쟁이 십 년 동안 지속된다 한들 살아남은 남궁의 몇몇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남아 있습니다.”

“오왕 중 사망자가 있느냐?”

“그, 그렇습니다.”

“누구?”

“거룡왕 무석입니다.”

“그 하나뿐이냐?”

“그렇습니다.”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전력 하나가 사라졌단다. 참으로 아쉽지만 이미 지나 버린 일이다.

오히려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검왕 남궁언은 명실공히 천하제일검이다. 십대고수 중에서도 삼제(三帝)를 제외한 최강이라 할 수 있을 터, 그만한 고수와 전대의 노고수들을 몰살한 대가로 마(馬)가 아닌 상(象) 하나 잃은 거면 남는 장사다.

“다음으로 가지.”

담사영이 지도를 훑어보았다.

그의 눈에 살기가 치솟았다.

‘그 화려한 궁전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안전할 줄 알았더냐?’

지도를 보는 그의 눈이 남궁이 있는 안휘와 인접한 동쪽 지역을 향했다.

‘천한 놈과 손을 잡아 본좌를 치겠다?’

담사영이 조소를 머금었다.

‘세작을 침투할 필요도 없지. 네놈이 철혈성의 병력을 어찌 운용하는지만 보아도 너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이용만 하다가 버릴 생각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어떤 의미로는 천하진과 똑같은 놈이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더 못난 놈이라고 할까.

‘하긴, 그놈이 네 몸뚱이에 박힌 천룡기를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일이 훨씬 편해졌겠지.’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여러모로 골치 아프게 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천하진을 짓눌러 뭉개 버리고 싶다.

실제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닌 말로, 총전력을 은밀히 움직이면 능히 놈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길 각오를 한 참이다. 이전처럼 선을 지키는 싸움 따위는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안 되겠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추하고 천한 놈이지만, 그만큼 철두철미한 놈이었다.

아군의 총수를 보호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쏟아부어도 당장에 놈을 죽이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네놈이 내게 하는 것과 같이, 나 역시 네 본모습이 드러나도록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 줄 것이다.’

담사영이 말했다.

“능적반에게 전해라. 새로운 목정(木精)과 수정(水精)을 붙여 주겠노라고. 혈목신기와 혈수신기의 힘으로 철혈성을 완전히 고립시켜 둘 터이니, 송금백이 기어 나오는 즉시 놈을 찢어 죽이라 전하라.”

“존명!”

담사영이 의자에 등을 묻었다.

‘칠요집전술을 상생(相生)의 전략으로 쓰면 얼마나 무서운 힘이 되는지 톡톡히 보여 주마.’

천룡궁주의 말이 옳다. 지금껏 칠요집전술을 통해 혈신기의 주인이 되었던 자들은 하나같이 오만방자했다.

이제는 아니다. 새로이 혈신기를 손에 넣은 자들은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인즉, 그들 자신의 미래도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正)이라는 이름을 안고 사는, 새롭게 오행의 주인이 된 자들의 진격.

‘기세를 꺾어 주지.’

그렇게 눈을 감고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하길 한참.

훅.

담사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기운은?’

참으로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

그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실소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했다.

“……현천이 드리운 그림자를 벗겨 냈음에도 내 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다니, 과연 우리 인연도 보통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잠시 후.

“총수님! 제, 제이 신장이 왔습니다!”

담사영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적을 치라고 보내 놨더니만, 완전히 망가져서 돌아오다니.

‘천하진…… 선물이냐?’

그가 입을 열었다.

“들라 하여라.”

* * *

“군림성교, 천마불사! 원로원주가 교주님을 뵙습니다!”

광마존의 묵직한 인사에 천마군 일천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전선 일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함성과도 같은 인사에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간 고생들 많았어.”

모두의 얼굴에 격동이 어렸다.

다른 어떤 보상도 필요 없다. 이 모든 것이 신을 위한 길이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교주님께서 친히 고생했다고 말씀해 주시니 절로 힘이 났다.

서량은 이천상과 달랐다.

너무나도 높은 경지에 올라 인성 대부분을 상실한 그와는 달리, 아랫사람을 치하하는 데에 아낌이 없었다. 물론 지적할 때도 거침이 없었다.

칭찬과 질책을 아끼지 않는 성격. 그 역시 서량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에 품을 수 있는 성격 중 하나이리라.

“천마군 일천 병력이 줄었군. 고루와 함께 보냈는가?”

“그렇습니다, 교주님.”

“하남?”

광마존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어떻게 아셨는지요?”

“마왕령이 사천으로 향했다는 보고는 들었을 걸세. 그렇다면 서쪽보다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텐데, 동쪽의 끝엔 철혈성이 버티고 있지. 하면 그 사이를 치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교주님.”

광마존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말하자면 교주님께선 자신의 능력을 전부 파악하고 있음은 물론, 자신의 눈으로 대국 전체를 바라보고 계셨다는 뜻이다.

이 정도 안목이면 가히 예지(豫知)의 영역이다. 완전하진 않지만,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마신의 능력이었다.

광마존은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철탑처럼 단단한 체격.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을 깊고 깊은 마안(魔眼)이 거기에 있었다.

‘이제는 진정…….’

깊다 못해 투명한 그 눈빛은 마치 산중도인들의 그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언가를 깨달은 자의 눈빛이었다. 마(魔)에 몸을 담은 자가 가지기 힘든 각성자의 지혜가 그 안에 있었다.

절대적 위엄과 파괴 욕구만이 가득했던 이전의 서량과 달리, 신교 최강자 중 하나인 자신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깨달음이 가득하다.

‘진정 드높은 곳으로 올라가셨구나.’

광마존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대공(大功)을 경하드리옵니다, 교주님.”

서량이 멋쩍은 듯 웃었다.

“대공이라 할 것 없네. 나의 욕망이 정해 준 끝을 보았을 뿐이니까.”

“예?”

“마(魔)에서 욕망은 곧 내가 깊어질 수 있는 한도를 뜻하네. 나는 나의 욕망이 허락한 힘을 다 담았을 뿐, 그 이상을 넘보진 못했어.”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의 하늘은 묘하게 어둡고 스산했다.

“‘내’ 극마의 끝을 보았다고 할 순 있겠으나, 나의 한계가 타인의 한계와 같을 순 없지.”

“그 말씀은, 거기서 끝이라는 말씀입니까?”

“보통은.”

서량이 피식 웃었다.

“나의 욕망이 이보다 더 깊어지면, 마(魔)를 담을 수 있는 그릇 역시 더욱 커지겠지. 물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광마존의 얼굴에 경이가 어렸다.

“교주님께서는 지닌 바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고, 천하인의 상식을 초월하여 최연소로 천마가 되신 분입니다. 욕망의 한계 또한 또다시 넘어설 수 있으실 테지요.”

“필요하다면.”

어조는 평온했지만, 그 내용은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그 말은,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으니까.

물론 광마존은 그 욕망의 한계를 깨고 무공이 더 깊어지려면,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고통이 수반되리란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자네들이 고생하는데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 줘야 할 것 같아서 왔네. 다른 마존들에게도 가 볼 생각이야.”

“영광이옵니다.”

“그래서, 하남으로 보낸 뒤에 조여 갈 생각인가?”

“준비가 충분히 되면 그럴 생각입니다.”

“좋군.”

서량의 눈에 은은한 마기가 일었다.

“그 포위망에 금만 가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

“예?”

그때였다.

파라라라라라락!

하늘 저 멀리서 몇 마리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순간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교주님. 비각의 전서구…….”

“당했군.”

“예?”

서량을 돌아본 광마존은 깜짝 놀랐다.

서량의 두 눈에 무시무시한 뇌화가 불타올랐다.

“남궁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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