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3화. 전선을 가르고 (3)
콰르르릉!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화극대진이 반으로 갈라지기도 전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놀랍게도, 그것은 군림마황기 때문이 아니었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도속(刀速)이 음속(音速)을 돌파하며 내는 충격파, 나아가 음속을 돌파한 천마도 주변에 끝까지 남아 있던 마기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화아아아악!
화극대진이 절반으로 쪼개지며 시커멓게 타 버린 대지를 드러냈다.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움직여?’
화르르르륵! 화르르륵!
백열하는 불꽃이 미친 듯이 얽히고설키며 더욱 강한 화력을 내뿜었다.
칼로 불을 가를 수는 없다. 그것은 물 역시 마찬가지로, 찰나를 벨 순 있어도 결국 다시 합쳐질 뿐이다.
서량은 화극대진을 무시했다.
‘지나치면 그만.’
지금은 이따위 술법진을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철혈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콰앙!
서량이 날아올랐다.
제자리를 박차고 뛰어오르니 무려 이십여 장을 솟구친다. 폭발적인 신법,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반선의 신법이었다.
그때였다.
‘……?!’
서량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따라와?’
솟구치는 백열이 어느새 그의 발밑까지 쫓아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상식 외의 고온으로 타오를지라도, 결국 불은 불이다. 불은 생명이 없고, 당연히 의지도 없다.
그런 불이 명백한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조종하는 자가 있다는 뜻이군.’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그가 힘차게 왼손을 뻗었다.
파아아아아악!
솟구치던 백염(白炎)이 무형의 막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매방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백극(白極)을 막다니?!’
어떻게 막았는지, 그 원리의 편린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손을 뻗은 걸 보면 장법(掌法)의 일종인 듯한데, 아무런 낌새도 없이 내친 장력의 막으로 바위도 끓게 하는 화염을 막는다고?
콰르르릉!
반경 수십 장으로 퍼져 나갔던 화극대진의 백극염화(白極炎火)가 다섯 개의 불기둥으로 나뉘어 서량을 향해 쏘아졌다.
빠르다. 불은 무게가 없다지만 그 불을 다루는 자는 명백한 사람일진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화력이 너무 강해.’
서량은 순간 감탄했다.
‘역시 세상은 넓다는 것인가.’
이 경지에 오르고 나서야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당대, 지금 이 세상에는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자가 없음을.
저 희대의 숙적인 담사영조차도, 무경(武境)에 있어서는 한참이나 아래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천하제일인. 유구한 무림사에서도 신화(神化)의 문을 열어젖힌 자를 제외하면, 자신과 견줄 자가 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역시나.’
그리고 지금, 서량은 당연하면서도 스스로의 경지에 도취되어 잊고 있던 또 하나의 진실을 마주했다.
‘하늘은 독존(獨存)을 용납하지 않아.’
제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다 한들, 천하 전부와는 싸울 수 없다. 그것은 당연하다. 산중대왕 호랑이도 수만 들개의 맹공 앞에선 버틸 수 없는 것이다.
그 호랑이가, 저 호왕만큼 거대해진다면.
지금의 호왕처럼 신마종도식을 개문(開門)한 구유마공의 힘을 받아 생물의 한계를 넘어 영물이자 마물로 변한다면, 능히 수만의 들개 떼도 휩쓸어 버릴 수 있을 텐데.
찰나의 찰나를 쪼갠 순간.
서량은 이천상을 떠올렸다.
‘사부님.’
이천상은 천하 전부와 한판 승부를 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의 서량조차도 어린애처럼 다룰 수 있었기에, 인간의 욕망으로 신(神)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사부님처럼 될 수 없다.’
재능이나 욕망의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이천상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신선이 되어 세상과 하나가 되는 길보다, 끝까지 인간으로 남아 제 사람들과 함께 늙어 죽고 싶었다.
번쩍!
일순 한 줄기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내가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천하 모두와 싸울 순 없다. 그런데도 난 나의 경지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홀로 움직였던가.’
서량은 눈을 감았다.
하나의 깨달음은 이내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 그의 머리를 꽉 채웠다.
콰앙!
매방이 입을 쩍 벌렸다.
‘거기서 더?!’
백극화염의 불기둥이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재차 폭발을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다.
“이런 괴물이!”
사부님의 말씀을 이제야 알겠다.
사부님이나 마교주나, 더 이상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
술법의 극치라는 공중부양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니고서야 술력(術力)을 원동력으로 삼는 누구도 저자의 일 보(一步)조차 막지 못한다.
동시에, 사부님이 틀렸다는 것도 깨달았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매방의 두 눈이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저자를 이길 수 없어요!’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것은 사부나 마교주나 똑같다.
그러나 마교주는 사부님보다 강하다. 그것도 족히 몇 수는 앞서 있었다. 엇비슷한 경지에 들지 못한 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마교주의 무공은 충격적이었다.
‘안 돼. 이건 상대할 수 없다. 어느 정도만 막고 후방으로 빠지는 게 훨씬…….’
그때였다.
「커허어어어엉!!」
산천초목을 떨게 만드는 이 시대 진정한 산중대왕의 포효다.
퍼어어어엉!
솟구치는 불기둥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른 서량이, 그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불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쏘아졌다.
‘헉!’
매방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야?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마교주는 반선의 강자다. 하지만 백극의 화염은 신선마저도 불태울 수 있다.
피하거나 파괴할 수는 있어도 버틸 수는 없다. 매방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그러했다.
상대가 서량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제는 금호처럼 자신의 친구이자 주인과 하나가 되어 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괴수가 되어 버린 호왕이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포효와 함께 뛰쳐나온 호왕이 천지를 뒤흔들 기세로 돌진해 왔다.
빠르다. 초절정고수의 신법을 보는 듯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근육 위로 흑황의 화염이 넘실거렸다.
화극대진 중앙에 내려선 서량이 외쳤다.
“호왕!!”
「커헝!」
호왕이 그대로 서량이 선 자리로 뛰어들었다.
순간 매방은 볼 수 있었다.
땅조차 끓게 만드는 백극염화에 닿은 거대 괴수의 몸에서 적백의 마화(魔火)가 뿜어지는 것을.
콰아아앙! 콰앙!
동시에 화극대진이 크게 기울었다.
‘부서지고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매방은 진법을 수족처럼 다루는 자로서, 서량이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미친! 화극대진을 부순다고?!’
그때, 요란한 폭음을 뚫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이 망할 힘을 철혈성에 쏟아부을 것이렷다?”
오싹!
매방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 시간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하나 다 부수고 가 주마.”
콰르르르릉! 콰앙! 콰아앙!
진이 무너지고 있음은 알았지만, 무슨 수로 파괴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매방은 더 이상 저 지독한 마신과 드잡이질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이러다가 애써 만든 화극만 무너질 거야!’
지이이이이이잉!
매방이 양손으로 수인(手印)을 맺었다.
“흡혼(吸魂).”
화아아아악!
백극염화의 핵(核), 정풍진인의 영(靈)을 에워싼 화극의 힘이 매방의 양손에 담겼다.
‘됐어.’
다시 진을 발동하려면 엄청난 술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땐 거창한 준비 따위는 필요치 않다.
매방이 이를 갈았다.
‘마지막으로 한 방 먹여 주마.’
순간 백열하는 화염이 서서히 소용돌이쳤다.
지반이 무너지고, 불덩이는 사라져 간다. 그 남은 백염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힘의 밀도를 높였다.
주르륵.
매방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타고난 상단전의 신기와 술력을 한계까지 쏟아부은 것이다.
그녀가 외쳤다.
“회천(廻天)!!”
부아아아앙!
백극염화가 용권풍이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했다.
그 안에 있는 자, 누구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술수로 저 괴물이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을 것이다. 회천의 수법은 화극대진 최강, 최악의 수법이니까.
사라라라락.
회천백화(廻天白火)에서 수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던 나무들까지 순식간에 불타올라 재가 되어 스러졌다.
‘이 정도면…….’
그때였다.
“될 줄 알았나?”
파지지지지직!
비로소 발동이다.
호왕과 함께 뿜어낸 구유마화로 초고온의 백열을 버티던 서량이, 마침내 천마지학을 꺼내 든 것이다.
퍼퍼퍼퍼펑!
솟구쳐 오르는 용권풍 여기저기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차라리 수천의 고수와 도검을 부딪치며 생사결을 나눈다면 모를까, 기공(氣功)으로는 서량을 당할 수 없다.
극마에 이르기 전에도 마공과 신공을 합일하여 구유마공을 만들어 낸 그였다.
기공술(氣功術)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고금 최고를 논해도 부족함이 없는 자가 서량인 것이다.
서량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압금마장(卍壓禁魔掌).”
시전 영창처럼 뱉어 내는 천마의 무공.
파지지지지직!
하늘에서 떨어진 흑회색 벼락 수백 줄기가 용권풍을 타고 흘러와 서량의 양손으로 모여들었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무공명을 말하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무공 본연의 파괴력에 몰입한다. 천하 모든 무공에 각자의 명칭이 붙은 이유이기도 했다.
훅!
돌연 용권풍이 사라졌다.
그 용권풍을 만들어 낸 백극의 화염조차도.
파지지지직! 지이이잉! 지이잉!
매방의 두 눈에 공포가 어렸다.
후우우우웅.
화염을 뿜는 거대한 호랑이 등에 올라 앉은 천마의 위용.
그의 몸 주변을, 불길한 대도(大刀)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 천마의 양손에는 응축될 대로 응축된 벼락의 힘이 마구 방전하고 있었다.
서량이 고개를 들었다.
번쩍!
서량과 시선이 마주친 매방은 두 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위험!’
파아아앙!
매방은 곧바로 동쪽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서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감히.”
그가 양손에 모인 만압금마장의 힘을 하나로 합쳤다.
퍼어어어엉! 파지지지직!
무지막지한 벼락이 매방의 발밑을 무차별로 파괴했다.
대지가 한순간에 초토화되었다. 저 담사영이나 송금백조차 일격을 허용했다면 당장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을 만한 일격이었다.
‘빗나갔나?’
그러나 맞질 않았다.
서량답지 않은 실수였다.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 극한의 술법진에 내부가 진탕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손해야 호흡 몇 번만으로도 안정시킬 수 있다.
문제는 매방의 신법 속도였다. 도대체 술법을 익힌 놈들은 신법부터 배우는지, 하나같이 그 속도가 기가 막힐 정도로 빨랐다.
서량이 으르렁거렸다.
악귀흉장의 환상이 일며 매방의 등골을 서늘케 했다.
“네년의 손이라도 놓고 가거라.”
번쩍! 서걱!
“꺄아아악!”
매방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빛살처럼 날아온 천마도가 그녀의 좌측 어깨를 통째로 베어 냈다. 그녀의 사형, 단리후의 잘려 나간 팔과 같은 위치였다.
‘죽는다! 이러다 죽어!’
퍼어어엉!
맞설 생각은 진즉에 사라졌다. 매방은 지혈조차 포기한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끄으응.”
눈살을 찌푸리던 서량이,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잠깐 새에 진탕된 내장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놓쳤나.”
양손에 심상치 않은 화기를 담고 있었다.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다 가져가려 했거늘, 과연 담사영의 제자 노릇을 할 실력은 되는 모양이었다.
쿠우웅!
어느새 호왕 옆으로 금호가 도착했다.
서량의 몸에서 재차 군림자의 위엄이 흘러나왔다. 금호의 요기에 마음이 안정된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다짐까지 잊진 않았다.
“가자.”
오늘, 저 위험천만한 술법진을 모조리 날려 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