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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66화 (565/774)

566화. 전선을 가르고 (6)

“이상하지?”

“……?”

“나는 분명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왜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왔고, 남들은 몇 번의 생을 반복해도 얻기 힘든 자리에 앉아 천하를 굽어다 보았거늘, 그 영광에 취한 시간은 지나치게 짧구나.”

“…….”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 천하라는 게 그래. 독존을 용납지 않는 조화의 상징.

그 말인즉, 당신 스스로가 기를 쓰고 얻어 낸 성취, 그 권좌를 하늘이 독존이라 인정했다는 뜻이야. 정말 대단한 거지.”

“다르다.”

“뭐가?”

“달라. 얼핏 봐선 그리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진짜 독존했던 사람은 따로 있어.”

“나는 지금 자연의 섭리, 세상의 이치와 천도(天道)를 역행하지 않은 자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

‘그’는 달라. 진즉에 신이 되어 버린 그는 이미 섭리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섭리를 휘두르는 신(神)이 되었으니까.”

“…….”

“하긴, 그조차도 오래 가지는 못했어. 세상이, 하늘이 그래. 조금이라도 튀는 존재는 용납하지 않아.”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좋은 질문이야. 혹시 억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억울하다……?”

“그래, 억울함. 당신은 정말 지독하게 노력했어. 권좌에 오르기 전까지는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었지.

그때 당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면 당연히 권좌에 오를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돼.”

“노력이야 정말 열심히 했지.”

“당신이 속한 환경, 당신의 오성, 당신의 욕망이 제아무리 출중했다 한들, 그 자리에 누굴 앉히더라도 당신만큼 뛰어난 자가 되진 못했을 거야.

당신의 노력은 그렇게나 대단했어.”

“안다.”

“한데 세상이란 게 참 기묘하지. 당신만큼 노력하지도 않은 주제에 순전히 운만으로 또 다른 권좌를 차지한 마귀가 있어.”

“……?!”

“정말이지 대단한 운이야.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더 젊은 놈의 몸뚱이로 전생을 했다고? 심지어 본인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

“놀랍게도 그 짐승 놈은 당신 인생의 유일한 오점과도 같아.

어쩌면 그 짐승은 진정한 하늘의 대리자일는지도 모르지. 천하 정점에 올라 독존의 열망으로 천하일통을 하려는 당신을 막기 위해 보내진 신(神)의 사자.”

“헛소리. 하늘이니 신이니, 그따위 것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는 거야 당신 마음이지. 중요한 것은 당신을 막을 자가 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이야.”

“내가 이긴다.”

“혹시 이거 알아?”

“더 이상의 요언은 듣지 않겠다.”

“당신, 그 짐승한테 무조건 져.”

“……?!”

“지금 그 상태로? 그렇게 어중간한 강함으로? 당신은 절대 이길 수 없어. 내기를 한다면, 난 거기에 내 영혼조차도 걸 수 있어.”

“어지간히 날 모욕하고 싶었던 모양이군.”

“당신은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자존심에 관련된 문제면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

“지금 그 짐승은 신화의 문을 눈앞에 두고 있어.”

“……!!”

“물론 언제 오를지는 모르지. 막상 그 앞에 다다랐다 한들 평생 그 자리에 머물거나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지.

중요한 건, 당신이 들여다보지도, 발을 담그지도 못한 곳에 이미 그 짐승은 도달해 있다는 거야.”

“…….”

“당신이 셋이 있어도 힘들어. 그 짐승은 그렇게나 강해졌어.”

“그따위 소리를 내게 굳이 들려주는 이유가 뭐냐?”

“이유? 글쎄, 별다른 이유는 없어. 전에 말했잖아. 나는 당신을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세상을 안겨 줄 수도 있어.”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왜지?”

“난 너와 계약을 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까마득한 과거에.”

“기억나. 당신은 그때 이렇게 얘기했지. 자신을 믿기 힘들다면, 자신의 능력을 믿으라고.

이십 년 내로 정파 무림을 석권하여 의천맹의 맹주가 되어 보겠노라고 포부를 밝혔어.”

“그리고 난 약속을 지켰다.”

“알고 있어.”

“하지만 넌 달라.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런 적 없어.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의 능력은 믿었지.

게다가 술사(術士)에게 있어 계약은 단순히 어겨도 되는 약속 같은 게 아니야. 상단전, 영혼에 박힌 계약은 지키지 않는 순간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해.”

“그렇다면 네가 약속을 지켰다는 뜻인가?”

“물론.”

“너는 내가 가장 총애하는 제자와도 계약을 맺었다.

나는 제자의 음흉함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처음 그것을 깨달은 순간엔 분명 불쾌했으나, 이내 녀석의 성장에 감탄했다. 녀석은 명백한 나의 제자였어.”

“과거형으로 말하는군. 당신의 제자는 버젓이 살아 있어. 일부지만 말이야.”

“그러나 너는 달라. 제자는 칭찬할 수 있어도, 나의 계약자인 너를 칭찬할 수는 없을 것 같군. 그건 다른 의미로 배신이었다. 그런 너를 내가 왜 믿어야 하나?”

“그걸 왜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신, 칠대문파 수장들을 하나하나 공략할 때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꼈어? 그걸 배신이라고 생각했냐고.”

“…….”

“배신이 아니야, 그건. 다만 내 경우는 당신과도 다르지.

나는 천하를 석권할 수 있는 자, 그 가능성이 큰 모든 자에게 손을 내밀었을 뿐이야. 그중 당신이 있었고, 당시의 제자도 있었지.”

“웃기는군. 그랬다면 천하진, 그 미친놈에게도 손을 내밀지 그랬더냐?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당대 천하제일인이다.

게다가 마교의 힘까지 쥐고 휘두르고 있으니, 오히려 나보다도 더 매혹적인 거래자가 아닌가?”

“그러려고 했어.”

“……뭐라?!”

“하지만 안 되겠더군.”

“왜? 너도 그 짐승의 천한 영혼을 매만지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지?”

“그는 나나 당신과는 달리, 누군가와 손을 잡지 않아도 본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준비가 된 자였기 때문이야.”

“……!!”

“또 자존심이 상하나? 하지만 사실이야.

천하진, 아니 천마신교의 십대천마 서량은 이미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것을 손에 넣었어.

그는 당신과는 달리, 힘을 얻기 위해 여기저기 부지런히 돌아다니지도 않았지. 그저 스스로의 내면에 한없이 깊게 침잠했을 뿐.”

“…….”

“그게 바로 서량과 당신의 차이야. 당신은 최고가 되기 위해 천하 각지에 손을 뻗었고, 그는 최강이 되기 위해 자신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어.”

“……그래서 내가 놈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지금은.”

“……!”

“혈신기(血神氣)를 각 지역에 배치해 놓은 까닭은 중원 북부 전체에 대술계진(大術界陣)을 펼칠 수 있음과 동시에 짧게는 수일,

길어도 사십구일 내로 쓸 만한 술사들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으며…….”

“……혹 일이 잘못되는 순간, 배치된 혈신기를 폭파시켜 지역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파천의 무기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새삼스레 그 얘기를 왜 하는 거지?”

“궁금하지? 이왕 궁금한 거 신기한 얘기도 하나 해 주지. 당신의 내공이 이유도 없이 증폭한 이유를 알고 있어?”

“……?!”

“왜? 지금도 당신 내공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잖아. 도무지 상식적인 일이 아닌데, 당장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야?”

“너 설마?!”

“그래. 당신의 끊임없는 내공 증폭, 그걸 유도한 사람은 나야.”

“왜지?”

“계약을 지키기 위해서지.”

“뭐?”

“이천상.”

“……!!”

“고금제일마 이천상이 의천맹을 망가트린 후, 당신은 절망에 빠졌어.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렸지.

천성적으로 강한 욕망을 타고났기에 재차 야심에 불타오를 수 있었지만, 지금도 당신의 마음속에는 이천상을 향한 지독한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어.”

“웃기는 소리.”

“그리고 그 공포는, 자연스럽게 이천상의 제자이자 한때나마 당신이 암검으로 키웠던 천하진, 십대천마 서량에게도 이어지고 있지.”

“닥쳐라! 어디서 감히……!”

“그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당신이 유독 발끈하는 사람.

어떤 일에도 과민 반응하지 않던 당신이 유독 추한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

그게 바로 서량이야. 이유? 그자가 당신을 배신해서? 아니지.”

“…….”

“당신은 서량을, 아니, 그 인간 같지 않은 사제(師弟)를 두려워하고 있어.”

“이놈……!”

“하지만 괜찮아. 이제 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

“사흘 후, 당신의 내공 증폭은 멈출 거야.”

“뭐?”

“고금제일마의 잔향을 끌어온 것에 혈목신기(血木神氣)의 폭발적인 성장력을 합쳐 당신의 내공을 끌어 올렸어.

이유인즉, 제아무리 혈원기를 품고 있다 한들 그릇이 연마되지 않으면 그 엄청난 기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야.”

“……!!”

“이제 당신의 삼단전은 오행의 혈신기는 물론 일월의 혈신기마저 모두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해졌어.

한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받고도 증폭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거지.”

“네놈……!”

“그것이야말로 내가 당신에게 남긴,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배한 최후의 한 수였어.”

“…….”

“어때? 내가 당신을 배신한 것 같아?”

“……시끄럽다.”

“이제야 좀 당신답네. 뭐, 대술계진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마교도들이 지금 엄청나게 날뛰고 있거든.

당신이 한번 나서서 지그시 눌러 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그건 동감한다.”

“그럼 일단 하나의 혈신기만 받아 볼까?”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수목화, 세 개의 혈신기는 안 돼. 철혈성을 망가트리기 위해서 그들을…….”

“하남성.”

“혈금신기?”

“그래. 옛날에 서량 그자가 금주와 금령귀들을 손쉽게 박살 내 버렸지, 아마? 하지만 완성된 혈금신기는, 어떤 의미로는 수목화 세 개의 기운보다도 살벌하지.”

“…….”

“준비됐어? 안 그래도 하남에 마교도들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하나만 말해 두지.”

“…….”

“한 번만 더 중간에서 장난질을 치면, 그때는 우리의 계약도 끝이다.”

“난 계약을 어긴 적이 없다니까?”

“…….”

“알겠어. 알겠다구. 깐깐하기는.”

“가자. 네 말마따나, 마존과 천마군 정도면 준비 운동으로 나쁘지 않겠지.”

“조심해야 할 거야. 당신이 다루게 될 힘은 서량과 다르니까.”

“흥.”

* * *

우우우웅!

“전투 준비!”

고루마존의 외침에 천마군 일천 병력이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군기다. 집단전 한정 최강에 가깝다는 황군의 군기와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 그들이 얼마나 잘 훈련된 부대인지를 알 수 있었다.

‘뭐지?’

고루마존의 얼굴에 심각한 빛이 드리워졌다.

‘이 기운, 언젠가 한 번 느껴 본 기운인데?’

낯익은 기운이다.

‘대체 이 폭발적인 기운은……?’

그때였다.

“헉!”

고루마존은 깜짝 놀라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 지평선 너머에서, 한 명의 신선과도 같은 외양의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기도를 머금은 채.

익숙하면서도,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도를 손에 넣은 채.

노인, 담사영의 두 눈에 은은한 금광이 일렁였다.

“고루마존이라…… 우린 구면이었지?”

고루마존이 본능적으로 외쳤다.

“진을 형성하라!”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오늘따라 유독 사이하게 보였다.

“자네도 그때 죽었어야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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