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지키는 자, 죽이는 자 (1)
파아아앙!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신법이었다. 마동필은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확신했다.
찌이이익!
의복이 찢어졌다. 공기의 저항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극마에 오르지 않아도 내공 운용에 달통하면 전신의 내공을 의복까지 스며들게 할 수 있다. 절정고수 수준만 되어도 그건 가능하다.
그 말인즉, 현재 마동필은 의복으로 흐르는 소량의 내공까지도 모두 속도에 퍼붓고 있다는 뜻이었다.
퍼어어엉!
마동필이 지나간 자리의 수풀이 무차별로 찢기거나 터져 흩어졌다.
‘더 빨리.’
슬슬 호흡에 이상이 오고 있었다. 몸을 생각하지 않은 극한의 신법을 펼치니, 내공은 물론 신체의 지구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한다!’
마동필이 이렇게 무리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교주님!’
천마의 밀착 호위로 교주 최측근 인사가 되었지만, 기실 서량에게는 더 이상 호위가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호위무사인 마동필 본인조차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무림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항상 교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마땅하지만, 서량은 이미 그런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서량은 당하지 않는다. 절대로.
오만, 빈틈, 방심, 약점 따위의 단어는 서량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 무엇도 통하지 않는 절대무적자라고 할 순 없지만, 진정 위기가 다가온다 싶으면 자연스럽게 안전을 도모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
평화의 시대라면 철저하게 호위무사로서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전시에는 오히려 호위가 필요치 않은 사람이 서량이었다.
즉 마동필은 서량의 안전을 책임지는 무적의 방패에서, 왕이 휘두르는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 끝이 향하는 목표는 철혈성이었다.
‘교주님께서는 도착하셨을까?’
신교의 수뇌부들과 전투 부대 연합은 사천으로 향했다.
마동필은 달랐다. 그는 서량이 전선을 둘러볼 때, 곧장 철혈성으로 향했다.
그는 서량의 말을 떠올렸다.
- 담사영의 다음 수가 읽히지 않아. 하지만 이 기묘한 공백을 놓칠 놈이 아니지. 그렇다면 놈이 꺼낼 가장 날카롭고 파격적인 한 수는 아마도 철혈성일 거야.
놀랍게도 담사영을 향한 서량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설마 남궁이 당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담사영이 그 막강한 전력을 남궁세가 쪽에 퍼부어 버릴 줄은.
그때부터 마동필은 목숨을 걸고 달렸다. 나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남궁까지 당해 버린 이상 철혈성이라고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마동필의 예측은 정확했다.
하오문의 지부에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남궁을 무너트린 적의 전력이 그대로 철혈성으로 향한다고 하였다.
‘교주님께서는 분명히 오신다.’
아니, 이미 당도하셨을지도 모른다. 구유마공의 신마종도식을 개방한 교주님의 경지는 이미 십대고수와도 차원을 달리하니까.
교주님께서 철혈성으로 가신다면, 철혈성의 멸망도 막을 수 있다. 마동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담사영은 꾀가 많은 자다. 교주님께서 철혈성에 지원을 요청할 거라는 것까지는 그도 계산했을 것이다.’
중원 전체가 전란에 휩싸인 지금.
마동필의 육감도 첨예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육감은, 그간의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내놓음과 동시에 현 시국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을 틔웠다.
‘즉, 교주님을 막을 수는 없어도 시간을 끌 정도는 준비할 수 있다는 것.’
퍼어어어엉!
수면을 박차고 나아가자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았다.
물을 밟고 나아간다. 신법 최고의 경지, 수상비(水上飛)였다.
후우우우웅.
엄청난 내력을 소모하며 넓은 강을 단숨에 건넜지만, 덕분에 호흡이 한층 더 가빠지고 내공 운용이 굼떠졌다.
수백 리 길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주파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마동필은 속도를 줄이며 신교 특제 활력단을 씹었다.
우우우웅.
전신 모공이 열리며 자연기를 흡수, 먹물 같은 기운으로 오염시켜 구유마공의 힘을 불렸다.
반 시진이 넘도록 마공을 활성화하여 절반 이상의 내공을 모은 마동필은 또다시 속도를 냈다.
줄곧 그런 식이었다. 체력과 내공이 소모되면 활력단으로 마공을 활성화하고, 어느 정도 몸이 괜찮아졌다 싶으면 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산과 강을 주파했다.
배가 고프면 곧장 사냥해서 배를 채웠고, 수면은 최소 시간이나마 꼭 취했다. 바쁘게 움직여 빨리 도착한다 한들, 싸울 힘이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마침내 강소성 남부, 철혈성의 영역으로 진입했을 때.
‘……!!’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술력(術力)!’
꽤 먼 거리였다. 얼추 십 리는 넘을 듯했다.
그런데도 상상을 초월하는 술력이 느껴졌다. 소용돌이치는 힘과 땅이 울리는 굉음이 마동필의 신경을 마구 건드렸다.
마동필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우우우우웅.
구유마공이 재차 활성화되었다.
활력단으로 힘을 불린 게 아니었다. 지닌 힘으로 자연스럽게 마공을 최대치로 개방, 축기(畜氣)의 활용을 극대화한 것이다.
쿠구구구궁!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철혈성의 외성 성벽이 분명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급했지만, 마동필은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성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철혈성을 향한 적들의 공격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힘을 더 모은다. 만전의 태세를 갖춘다.
파지지지직!
하늘 높은 곳에서 시퍼런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교주님이 아니야.’
술력이 느껴지는 가공의 벼락.
저건 뇌전술(雷電術)이다. 무도(武道)로 접근하여 진정한 벼락을 끌어오는 군림마황기와는 전혀 달랐다.
물론 군림마황기만 못하다고 하여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뇌기(雷氣)란 자연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이다. 직격당하면 극마의 고수조차도 치명적인 피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듣기로 뇌전술은 최상위 술법 중 하나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마동필의 두 눈에 마기가 치솟았다. 힘이 거의 다 차오른 것이다.
‘진짜로 철혈성을 무너뜨릴 작정으로 병력을 파견했다는 뜻!’
그때였다.
콰르르르릉!
기상이 변했다.
느낌이 아니다. 진짜로 기상이 변하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커먼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습기를 끌어 올렸다.
마동필의 마안이 커졌다.
‘저 힘은?!’
번쩍!
철혈성에서 수십 리 떨어진 곳.
기운의 편린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화기(火氣)의 폭풍과, 그 폭풍을 잠재우는 제석의 벼락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교주님!”
콰아앙!
마동필의 몸이 또 다른 벼락이 되어 쏘아졌다.
* * *
‘달라졌다.’
고루마존의 눈이 흔들렸다.
‘뭔가가 달라졌어.’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다가오는 담사영은 과거 무당산에서 만났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실제로 발산하는 기질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맑고 투명한 기운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떠올리게 했지만,
너무나도 맑아서 오히려 어두운 공포를 자아내는 기묘함이 느껴졌다.
‘기운이 작아졌다?’
그렇다.
기질은 그대로지만, 뿜어내는 외기(外氣)의 양이 엄청나게 줄었다. 잘 쳐줘도 절정고수의 기량 정도일까.
교주님을 제외, 천하제일을 다투는 화경의 고수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고루마존은 긴장했다.
‘위험해.’
기의 양은 줄었고, 산책이라도 나온 듯 여유로운 보행에서는 무수히 많은 빈틈이 보였다.
그러나 고루마존은, 어딘지 모르게 약해 보이는 상대에게서 태산처럼 거대한 괴물의 환상을 보았다.
물끄러미 담사영을 노려보던 고루마존이 입을 열었다.
“알고 있었던가?”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흐릿한 그 미소는 청천의 기파와 어울리지 않게 시커먼 먹구름을 닮았다.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잖은가. 중요한 것은 자네들 앞을 내가 막고 있다는 사실뿐이지.”
굉장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일천의 병력을 홀로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 일천은 신교 최강의 부대라는 천마군이었다.
고루마존의 얼굴 위로 싸늘한 살기가 일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홀로 나타난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음을 깨닫게 해 주마.”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비록 적이지만 자네들의 힘은 실로 대단하지. 게다가 병력의 수를 보게.
수작을 부리고 싶어도 부릴 만한 전력이 아니야.
나아가 자네나 천마군이나, 모두가 인정한 백전노장들 아닌가. 함정이랍시고 파 봤자 후퇴를 했으면 했지, 미련하게 돌격하진 않겠지.”
“하면 정녕 자신이 있다는 뜻이렷다.”
“나는 인재 등용에 욕심을 냈네. 모두를 내 휘하로 들이면, 언젠가 그 힘으로 천하제일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러나…….”
사아아악.
담사영의 기질이 서서히 바뀌었다.
“최후의 순간에 믿을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의 힘이지.”
고루마존이 조소를 지었다.
“그래서, 최후의 순간이라 예까지 온 겐가?”
“그럴 리가.”
후우우우웅.
담사영의 몸에서 푸른 진기가 솟구쳤다.
고루마존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푸른 기파 속에서 피어나는 기묘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힘은?’
지왕, 그리고 화왕.
그 둘과 붙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힘의 색깔은 달랐지만, 그 근본이 같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저, 지금 나의 힘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가져도 되는지가 궁금해서 왔을 뿐일세.”
“그 호기심이 널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고루마존이 버럭 외쳤다.
“개진(開陣)!”
콰르르릉!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천마군 일천이 좌우로 넓게 퍼졌다.
우우웅! 우우우웅!
담사영의 기파가 강풍에 일렁이는 연기처럼 마구 흔들렸다.
그는 나직이 감탄했다.
“대단하군. 과연 천마군이야. 진형을 형성한 것만으로도 이 정도 압력을 전해 준단 말이지? 무림 역사상 최악의 군대라는 말이 납득이 가는군.”
나아가 고루마존의 대처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고루마존은 강하다. 그 정도 무공이라면, 설령 패한다고 한들 일대일 승부에 욕심을 낼 만하다. 마인의 호승심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런데도 그는 천마군과 함께 덤비려 하고 있었다. 무인의 호승심보다 완벽한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아쉬워.’
의천맹에는 저런 노련한 노장(老將)이 없다. 자신의 휘하에 저런 인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싸움이 훨씬 더 편해졌을 텐데.
“준비는 되었는가?”
“개소리.”
고루마존이 외쳤다.
“천마군 전원 적의 수괴를 죽……!”
그때였다.
‘……!!’
고루마존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한참 멀리 떨어져 있던 담사영이 일순간 사라져 버린 것이다.
퍼어어엉!
미처 그의 모습을 찾기도 전에 섬뜩한 폭음과 함께 자욱한 피 보라가 일었다.
“흐음, 휘몰아치는 기파는 강철처럼 단단하더니만 정작 몸뚱이는 흐물흐물하구먼.”
어느새 천마군의 진형 좌측에서 나타난 담사영.
그리고 그 앞에, 무려 스무 명가량 되는 천마군의 마인들이 육편이 되어 흩어졌다.
담사영의 얼굴에 흉악한 웃음이 떠올랐다.
“자, 시작해 볼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