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화. 지키는 자, 죽이는 자 (2)
‘뭐지?!’
충격적인 무공이었다.
‘대체 언제!’
담사영의 움직임은 상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일순간 육안에서 놓쳐 버렸을 만큼 엄청난 속도. 게다가 그만한 속도로 움직였음에도 공기의 저항은 물론 진기의 흐름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극마에 오른 고수나 초절정고수나, 경신술의 속도는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말인즉, 무극(武極)의 경지에 도달한다 한들 인간의 신체로 낼 수 있는 속도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물론 교주님은 다르다. 한계를 몇 번이나 뛰어넘은 그분의 무공은 거의 술법의 이능(異能)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담사영은, 당연히 교주님이 거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술법인가.’
퍼어어어엉!
천마군의 마인들이 담사영에게 병장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허공을 가르고 땅거죽만 뒤집었을 뿐, 담사영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담사영은 어느새 처음에 서 있던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고루마존의 얼굴에 긴장이 떠올랐다.
‘술법이든 뭐든, 저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잡지 못하면 싸움이 힘들어진다.’
그때, 담사영의 입이 열렸다.
“술법이 아니라네.”
“……?”
“물론 술력(術力)을 중심으로 한 경신술은 맞네만, 술법은 아니지. 이것은 허극신(虛極身)이라는 내 고유 무공일세.”
우우우우웅.
고루마존의 몸에서 흑갈색 진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 막강한 마기에, 흔들렸던 천마군의 전의(戰意)가 다시 견고히 다져졌다.
담사영이 나직이 감탄했다.
“굉장해. 그때는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지만, 정말 대단한 마기야. 검왕 정도면 자네와 좋은 승부를 낼 수 있겠어.”
“닥쳐라!”
쩌어어엉!
고루마존의 양손에서 결목신수의 경력이 휘몰아쳤다.
“산개(散開)!”
파라라라락!
진형을 형성했던 천마군이 순식간에 넓게 흩어졌다.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판단이 빠르군.’
단 한 수를 보여 준 것뿐인데, 고루마존은 즉각 천마군의 진형을 바꾸었다. 상대의 힘을 이해하지 못해도 어떻게든 대응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고루마존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껏 신교를 지탱해 온 최강의 고수진, 구대마존이라는 족속들 모두가 고루마존과 비슷한 역량을 낼 거라 봐야 한다.
‘역시, 그냥 둬선 안 되겠어.’
담사영의 몸이 흔들렸다.
훅!
고루마존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뜨였다.
공기가 확 조여드는 순간, 어느새 담사영이 자신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촤아아아악!
고루마존의 가슴에 길쭉한 검상이 생겨났다.
사선으로 쪼갠 수검(手劍)이다. 담사영의 절기 청천허상검(晴天虛像劍)이었다.
“피해? 보고 피한 건 아니고 본능이었군. 반응이 좋아.”
“이놈!”
콰아앙!
망치처럼 후려친 결목신수에 담사영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제대로 일격이 들어갔는가? 그렇지 않았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깜짝 놀란 고루마존이 후방을 돌아보았다.
퍼억! 파아앙! 서거걱!
어느새 수십 장 밖에서 나타난 담사영이 무지막지한 쾌공(快功)으로 천마군을 공략했다.
실로 무서운 무공이었다.
가볍게 휘두른 손짓 한 번에 마인들의 병장기와 몸통이 쪼개졌고, 툭 하고 밀어 낸 장력에 서너 명의 몸뚱이가 바위에 깔린 듯 짓눌려 터져 버렸다.
‘이!’
파앙!
혼신의 힘을 다한 속도로 담사영에게 접근한 고루마존.
팍!
담사영의 몸이 또다시 사라졌다.
사라졌던 그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산개한 천마군의 전방 우측이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신들린 듯 두 개의 수검을 휘두르는 담사영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퍼어어어억!
끔찍한 파육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천마군의 마인들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전쟁에 임하는 순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법,
교주를 향한 신심(信心)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 앞에서도 적을 향해 병장기를 휘두르기 바빴다.
카가가가강!
담사영의 눈에 솔직한 감탄이 어렸다.
‘그야말로 귀신이로군.’
다섯 자루의 도검과 세 자루의 창을 일수의 참격(斬擊)으로 막았다.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만하다. 천마군 정도의 악명을 지닌 단체라면 더더욱.
한데도 그들의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지독한 살기를 불태우며 달려드는데, 누구 하나 죽음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사라라락!
담사영의 양손에서 청천의 검기가 사라졌다.
훅! 퍼어어엉!
단숨에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어 쌍장을 날리니, 강철처럼 묵직한 장력에 십여 명의 마인들이 찢겨 날아갔다.
파라라라락!
순간 담사영에게로 수십 자루의 단창이 날아왔다.
아군이 있는데도 단창을 날린다. 아군의 희생 없이는 적에게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다는 걸 깨달은 마인들의 이대도강식의 공격이었다.
담사영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파아아아앙!
이번만큼은 그 신묘한 신법을 펼치지 않는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담사영의 바짓단에 상처가 났다. 미처 피하지 못한 단창 하나가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노옴!”
퍼퍼퍼퍼펑!
한 줄기 장력이 쏘아졌을 뿐인데 공기가 다섯 번이나 터져 나갔다.
고루마존이 내친 연환오첩장(連環五疊掌)이었다. 파괴력 넘치는 장법은 아니지만, 속도가 빠르고 방어는 어려운 결목신수의 초식이었다.
‘역시나.’
다르긴 다르다.
마교는 하나로 똘똘 뭉쳐 있으며, 목표물을 죽이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집단 전체의 전투력이 급등한다. 천마군, 그리고 고루마존의 무공 변화는 적을 섬멸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알아차렸겠지.’
혈금신기(血金神氣)를 이용한 허극신의 비기 천영(天影)의 속도는 가히 벼락에 비견될 만했다.
하지만 천영은 무작위로 쓸 만한 무공이 아니었다. 내공 소모량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데다가, 사람의 육신으로는 쉬이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혈금신기로 육체의 강도를 뿌리부터 바꾸지 않았다면, 조금 전에 두 번 펼친 것만으로도 내공이 절반은 깎여 나갔을 터였다. 비기는 괜히 비기가 아닌 것이다.
‘때를 기다리고 있어.’
고루마존의 눈빛이 그렇다. 놈은 자신의 한계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사영이 눈을 감았다.
콰르르릉!
연환오첩장과 마인들의 공격이 지나가고 난 허공이 폭발을 일으켰다.
고루마존의 눈이 번뜩였다.
‘맞았다.’
느낌이 왔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 흔들리는 담사영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번만큼은 담사영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역시 그 말도 안 되는 신법도 한계가 있었던 거야.’
고루마존이 외쳤다.
“퍼부어라!”
퍼퍼퍼퍼펑! 콰아앙! 퍼억! 퍼억!
천마군의 마인들의 폭풍 같은 공격.
헤아릴 수 없는 격공장(隔空掌)과 화살, 단창이 한 곳으로 날아들며 엄청난 폭음을 일으켰다.
화경의 고수든 뭐든, 절대로 무사할 수 없다. 궁극의 방어초가 있다 한들 누적되는 충격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잡았나.’
허공을 노려보던 고루마존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퍼어어억!
“허어, 놀랍군.”
고루마존의 눈이 충혈되었다.
어느새 그의 옆구리에 한 자루 검이 박혀 들어 있었다.
바로 담사영이었다. 수검이 아니라 진짜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척추를 가르고 단전을 파괴할 생각으로 뻗은 검인데, 그걸 피했단 말인가?”
감탄으로 가득하던 담사영의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역시 자네들은 위험해.”
콰아앙!
담사영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고루마존의 장력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상태에서 이만한 무공까지.”
“쿨럭!”
고루마존이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이런.’
방심하지 않았는데도 당했다. 방심까지 했다면 이번 일격으로 목숨이 날아갔을 것이다.
고루마존이 담사영을 보았다.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담사영의 손에는 흐느적거리는 장검이 들려 있었다.
‘연검(軟劍).’
허리띠 형태로 숨겨져 있던 연검이었다. 검도의 고수도 제대로 다루려면 수년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기병(奇兵)이었다.
‘이……!’
문제는 옆구리에 난 검상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힘이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며 체내로 무자비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침투경(浸透勁)의 일종인 것 같은데, 그와는 또 달랐다.
“그것이 혈금신기라네.”
“쿨록! 캬아악!”
“느껴지는가. 자네의 몸이 굳어 가는 것이.”
고루마존이 옆구리를 매만졌다.
조금씩, 서서히.
상처가 난 자리 주변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고루마존이 외쳤다.
“이놈!”
콰아아앙!
결목신수의 장력이 그대로 담사영의 몸을 후려쳤다.
고루마존의 눈이 흔들렸다.
“강하군. 과거에 이만한 일격을 허용했다면 흉골이 다 부러졌을 게야.”
담사영이 가슴팍을 툭툭 털어 냈다.
놀랍게도 고루마존의 일격을 허용했음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는 듯했다. 앞섶이 조금 상했지만 그뿐이었다. 뼈는 고사하고 근육도, 피부도 멀쩡했다.
“금강불괴?!”
“비슷하네만, 그와는 또 다르지.”
담사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우우우우웅!
하늘처럼 푸르른 기운이 사라지고, 어느새 그의 전신을 혈금신기가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붉고도 붉은 기운 속, 극단적으로 발달한 금기(金氣)가 솟구쳤다. 강철보다 단단한, 만년한철의 강도조차도 아득히 뛰어넘는 궁극의 힘이었다.
고루마존이 외쳤다.
“놈을 죽여라! 어서!”
쿠르르릉! 퍼엉! 콰아아앙!
쏟아지는 공격에 담사영의 몸이 연신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절벽을 깎아 내릴 만큼 파괴력 넘치는 공격에 적중당했음에도 담사영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고루마존의 얼굴에 허망함이 떠올랐다.
‘저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이 되는가!’
저것은 무공이 아니다. 술법의 힘을 이용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담사영의 술력은 지금껏 맞서 왔던 술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것이 바로 천룡술법의 총화를 손에 넣은 자, 혈원기(血原氣)를 지닌 용신(龍神)의 힘이니라.”
담사영이 씨익 웃었다.
공격이 끊이지 않는데도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게 천영을 구사했을 때 퇴각하지 그랬더냐. 그랬다면 너희 모두를 잡아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담사영이 원했던 것은 힘의 증명이었다. 고루마존과 천마군 일천 병력을 모조리 없애는 게 아닌, 자신의 힘을 오인하도록 만들어서 돌려보내겠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이놈들의 투지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맹목적인 광기가 자신에게 진짜 힘을 드러낼 것을 강요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 묻어 버릴 수밖에.
퍼퍼퍼펑! 콰르르릉!
일검(一劍) 일장(一掌)을 휘둘러 쏟아지는 공격을 모조리 파훼한 담사영이 고루마존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고루마존의 몸이 불가사의한 움직임을 보였다.
빠가각!
담사영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천영이 아니었다. 빠르게 휘어져 들어온 고루마존의 각법에 제대로 맞은 것이다.
담사영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각법을 막은 왼팔 전체에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혈금신기가 둘러쳐진 몸에 고통이 일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우웨에엑!”
한 사발의 피를 토한 고루마존의 얼굴은 창백했다.
내상 때문이 아니었다. 옆구리에서 퍼진 혈금신기가 그의 몸 곳곳을 단단하게 굳히고 있었던 것이다.
백지장처럼 희게 질린 얼굴은 보기만 해도 딱딱했다. 안면 근육이 굳어서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 두 눈만큼은 여전히 독한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어떤가? 아픈가?”
점점 굳어 가는 입술을 기어이 열어 말한다.
담사영의 눈이 깊어졌다.
“무슨 수를 쓴 거냐?”
“이게 무공이다.”
고루마존은 무표정한 얼굴로, 살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술법이라는 편법 따위로 넘볼 수 없는 진짜 힘을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