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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71화 (570/774)

571화. 지키는 자, 죽이는 자 (5)

“허억! 허억!”

항경사태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천룡의 술법도, 아미의 무공도 통하지 않았다. 언극의 파멸적인 무공을 모조리 막아 낸 그녀였지만, 또 하나의 십대고수급 강자가 참전하니 그조차도 무의미했다.

언극의 볼이 씰룩거렸다.

“버릇없는 놈! 누가 감히 타인의 승부에 끼어들라 했더냐!”

마동필은 한마디로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승부가 고프거든 철혈성이 무너진 뒤에나 하시오.”

전쟁에 자존심 세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언극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력자가 마동필이라서 화가 난다.

그는 아직 동해에서의 치욕을 잊지 않았다. 분명 자신보다 약한 놈인데, 기습에 가까운 타격을 받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마동필은 끝까지 전선에 남아 이쪽의 공격을 차단했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이 강하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력과 뛰어난 감각이 필요한 일이었다.

무공에서 뒤지는 건 참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뒤지는 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른 걸 떠나서, 마동필의 저 단단한 기도와 무표정한 얼굴이 묘하게 언극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이것들이!”

항경사태의 두 눈에 끔찍한 살기가 일었다.

놀랍게도 그 살기는 언극과 마동필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지독했다.

“감히 목력(木力)의 주인인 날 앞에 두고 시시덕거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혼신의 힘을 쏟아 내는 모양이었다. 사방 이십여 장 범위의 땅에서 무수히 많은 덩굴이 치솟았다.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피하시오.”

“뭐?”

화르르르륵!

흑혈마검에서 핏빛 화염이 타올랐다.

언극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기만 해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흑색 장검에서 피어오르는 열기가 실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놈, 확실하군.’

피어오르는 열기가 마동필의 전신으로 번져 마치 화염에 휩싸인 인간을 보는 듯했다.

‘그때보다 더 강해졌어.’

마동필이 입을 열었다.

“지종열화벽.”

퍼어엉! 퍼퍼퍼퍼펑!

항경사태의 입이 충격으로 떡 벌어졌다.

혈목신기를 한계까지 끌어올려 가장 질기고 튼튼한 덩굴을 뽑아냈거늘, 느닷없이 참전한 괴상한 마인 놈이 뿜어내는 불길이 모든 덩굴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 이!”

목생화(木生火).

나무는 불에 취약하다. 실제로 그 상극의 이치를 이용해 철혈성을 묻어 버리기 위해 온 길이거늘,

설마하니 극양(極陽)의 마공을 이 정도 경지까지 익힌 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안 돼.’

파멸적이 살기를 발하면서도, 항경사태는 생각했다.

‘이놈은 극마의 고수다.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몰라. 만일 이놈이 목극대진 곳곳을 휘젓고 다니면 일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항경사태는 오로지 사파 척결이라는 대의를 위해 천룡술법을 누구보다도 깊게 익힌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 꿈을 이루기 직전에 이르렀거늘, 저따위 변수 하나로 작전 자체를 망칠 순 없었다.

“괴이하지.”

항경사태가 퍼뜩 놀라 마동필을 보았다.

마동필의 입이 열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을 열 때마다 시퍼런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화력이 한층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너희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너희에겐 우리를 감당할 만한 실질적인 전력이 부족해.

그러니 힘의 총력을 높이기보다는 상극의 힘으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슨 개소리를!”

“하지만 그 행위가, 방법이 너희의 발목을 붙들 것이다.”

콰르르릉!

강력한 화기가 마동필의 머리 위에 한 마리의 화룡을 만들어 냈다.

구유마공의 염혈화룡이었다.

“너희는 이 싸움과 상관없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어.”

콰아아앙!

화룡이 울부짖으며 항경사태를 향해 쏘아졌다.

항경사태가 외쳤다.

“진을 발동해라!”

퍼어어엉! 콰앙!

무수히 많은 덩굴과 나무줄기가 솟아나며 화룡의 앞길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었다. 염혈화룡은 화기의 극치, 제아무리 농도 짙은 목기로 질겨진 덩굴이라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항경사태로선 그 찰나의 시간이면 족했다.

파아아악!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도 놀라운 신법을 펼친다. 혈목신기로 그간 입은 상처를 급속도로 치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날 따라와라.’

항경사태는 바라 마지않았다.

‘기꺼이 미끼가 되어 주지. 철혈성을 날려 버릴 수 있다면……!’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뭐야?’

염혈화룡에 집어삼켜져 재가 되어 버린 덩굴 뒤.

마동필의 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짓쳐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훅.

항경사태가 우측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언극이 그녀의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언극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다 박살 난 먹잇감이나 삼키게 생겼군.”

“이놈!!”

“시끄럽다!”

퍼어억!

언극의 창이 항경사태의 가슴을 꿰뚫었다.

터억!

항경사태가 언극의 창을 잡았다.

우우우우웅.

언극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뚫어 낸 항경사태의 가슴이 무서운 속도로 수복되는 광경을 본 것이다.

‘기괴한 것들.’

저따위 기괴한 공부를 익히고 있으니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다.

두려움을 모르니 판단이 여유롭고 늦다. 찰나지간 목숨이 날아가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를 잊었기에 이런 같잖은 술수를 쓰는 것이다.

항경사태가 외쳤다.

“날 죽여도 너흰 끝이야! 이미 진은 발동……!”

쾅!

언극의 폭발적인 발길질이 항경사태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이것도 회복해 봐라, 이 망할 년아.”

* * *

“끄응.”

능적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세 명의 고수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작 그게 전부더냐?”

우우우우우웅.

불꽃의 색과도 다른, 핏빛과도 다른.

기묘한 붉은색 기운을 안개처럼 퍼트리며 서 있는 송금백의 모습은 가히 무신(武神)의 그것과 같았다.

‘강하다.’

능적반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같은 십대고수인데도 격차가 이렇게나 크단 말인가?!’

수라제 송금백.

중원삼제(中原三帝)의 일인으로 꼽히는 절대강자이자 사파 무림의 총수가 바로 그였다.

능히 제왕의 칭호가 붙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위치나 그가 이룬 업적이 대단해서이지, 실질적인 무력에서 그리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능적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중원삼제가 아닌 십대고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틀렸다.

송금백의 무공은 십대고수 넷을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둘이었다면 필패요, 셋이었다 한들 승패를 가리기 힘들 정도의 경지였다.

그나마 넷이라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주르륵.

“흐음.”

송금백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냈다.

‘역시 좀 벅차군.’

그는 아직 서량만큼 깊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천룡기를 없애는 과정에서 공간을 장악하는 형(形)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걸 깨닫지 못했다면 진즉에 패배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여유를 가질 때는 아니었지만.

‘한데 난 왜 이리 여유로운가.’

성의 사람들, 그리고 무사들이 무수히 죽어 가고 있다.

철혈성의 수장으로서 극심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그리 분노하면서도, 나름의 여유가 있었다.

송금백은 자신이 왜 여유로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파아아앙!

권왕(拳王) 국광(菊狂)이 짓쳐 들었다.

부우우웅.

내치는 주먹에 만근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놀라운 힘이야.’

송금백은 국광의 권력(拳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공을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힘. 언뜻 정직한 일격 같지만, 상대가 회피하지 못하도록 내공 방벽으로 주변을 에워쌌다.

이런 식의 복잡한 내공 운용으로 상대를 옭아매는 것은 보통 머리로는 불가능하다. 곰의 힘과 여우의 머리를 지닌 자였다.

터어어엉!

국광의 주먹이 헛방을 쳤다. 송금백의 손이 그의 팔뚝을 밀어 낸 것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 수였다.

대단한 파괴력이나 신묘한 이치 따위가 깃든 것이 아닌, 그저 한없이 부드럽기만 한 일격에 태산도 부순다는 절정의 권격이 빗나간 것이다.

파파파팡!

국광이 밀려난 것을 기점으로, 나머지 세 고수의 합공이 시작되었다.

번쩍!

천도왕 마극의 칼이 그림자를 베었다.

콰릉!

명왕 능적반의 발길질이 폭풍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해룡왕(海龍王) 곽무태(郭武泰)의 언월도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고수들의 무시무시한 합공이었다.

단순히 개개인의 무공이 위력적인 것을 떠나, 빈틈 하나 찾아보기 힘든 진을 형성해서 송금백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파아앙!

송금백의 몸이 물살을 가르는 용처럼 움직였다.

핏! 찌이이이익!

곤룡포 여기저기가 찢어졌다. 침투한 경력이 피부를 가르고 골육을 뒤흔들었다.

‘낭패로군.’

과연 저 정도 고수가 되니 어지간한 수법은 금방 들통나 버린다.

공간을 장악하여 모든 공격을 무위로 돌려 버리는 송금백의 기가 막힌 신공(神功)에 대항하고자 사방에서 동시에 몰아친다.

전혀 다른 무공이, 파괴력의 범위와 속도가 다른 각자의 절기들이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그렇다면.’

송금백의 두 눈이 번뜩였다.

퍼버버버버벅!

“헉!”

“컥!”

사왕이 비틀거리며 일제히 물러났다.

능적반이 으르렁거렸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물러난 사왕의 몸 여기저기에 묵혈괴룡공의 진기가 잔뜩 박혀 있었다. 서둘러 내공을 운용하여 침투경을 막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내상을 입을 정도였다.

암장귀투(暗將鬼鬪)의 극상승 박투술이었다. 힘을 힘으로 상대하지 않고, 기술로 파고들어 내가중수법을 터트린다. 송금백의 실전 감각이 돋보이는 한 수였다.

주르르륵.

송금백의 입가에서 또다시 핏물이 흘렀다. 안색은 창백했고, 일렁이는 진기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탁월한 실전 감각으로 한 방씩 먹여 줬지만, 그 역시 상당한 내상을 감수해야 했다.

네 고수의 공격은 그 자체로 상상을 초월하는 압력을 자아내는지라,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내부가 진탕이 되었던 것이다.

‘역시 안 되는가.’

장기전이 될 것 같아서 최소의 내공으로 이들을 묶어 두려 했다.

하지만 지금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극심한 내공 소모를 감수하더라도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야 한다는 걸, 송금백은 그 순간 깨달았다.

차아아앙!

송금백의 손에 마침내 거검 태천이 들렸다.

훅.

그가 검을 뽑아 들자마자 유장하게 흐르던 진기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능적반이 외쳤다.

“조심들 하시오! 놈이 검을 뽑았소!”

송금백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걸 안다고 결과가 달라지기라도 한다더냐.”

“닥쳐라!”

“너희는 절대로 날 잡을 수 없다.”

콰르르릉!

태천검 위로 시커먼 용의 환상이 일었다.

암룡무상검이었다. 마침내 송금백이 최강의 절기를 꺼내 든 것이다.

쾅!

국광이 진각을 밟았다.

퍼어어엉!

혼신의 힘을 다한 진각으로 힘을 끌어 올려 폭발적인 권력을 발출한다. 국광 최강의 절기인 붕천광마권(崩天狂魔拳)이었다.

진짜 절기를 꺼내 들지 않은 것은 송금백만이 아니었다. 상대가 비로소 결심했다는 걸 알자, 사왕 역시 최강의 무공을 꺼내 든 것이다.

송금백의 두 눈에서 살기가 뿜어졌다.

콰앙!

암룡무상검 일격에 광마권의 권풍이 폭발했다.

번쩍!

국광의 눈이 커졌다.

일격을 내쳤으니, 당연히 자신부터 공략하리라 생각했다. 한데 송금백은 어느새 능적반의 후측방에 나타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피하시오!!”

그때였다.

쿠르르르릉!

일순 엄청난 지진이 일었다.

핏!

태천검이 능적반의 어깨를 긁고 지나갔다. 능적반의 발은 송금백의 장포를 스치고 지나갔다.

쿠구구구궁! 쿠구구궁!

아무런 징조도 없이 터진 지진이 천지를 떨어 울리고 있었다.

굉장한 강진(强震)이었다. 십대고수인 그들조차도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송금백이 놀란 눈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 마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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