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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73화 (572/774)

573화. 지키는 자, 죽이는 자 (7)

언제이던가.

아마도 대공자 진관용을 박살 내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내성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여상린과 웃고 떠들던 그를 보았다.

서량이 최초로 만난 마존이었다. 무시무시한 별호와는 달리, 친근한 촌로처럼 너털웃음을 터트리던 노고수가 거기에 있었다.

달빛은 좋았고, 술은 맛났다.

그를 보기 전까지는 마존이라는 존재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하나같이 오만하고 강대한 힘을 흩뿌리며, 교주가 아닌 자는 철저하게 무시하는 늙은 마귀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상대를 진심으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아가 그 연배에도 청년 시절의 호승심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 호승심만큼이나 깊은 충성심과 지혜를 안고 사는 진정한 마인이었다.

‘고루.’

서량에게 있어서 후계 싸움은 기실, 그렇게까지 큰 위협이나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여유가 마존들의 호기심을 유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고루마존은 유독 자신에게 큰 호감을 품은 사람이었다.

소교주가 되어 세상에 나갔을 때도 자신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교주가 되어 세상에 나갔을 때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며 달려온 사람이다.

고루마존은 그런 이였다.

그런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서량은 자책했다.

‘내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 능력이 어설펐기 때문에.

담사영이 발하는 살의의 방향을 읽는다?

아니다. 정확히는, 자신을 향한 그의 살의를 읽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난 능력이, 자신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방심과 오만함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

서량은 이번 전쟁에 자신이 있었다. 쉽진 않겠지만, 필승(必勝)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전력의 우위, 명분의 우위. 나아가 중원에 사는 무수한 양민들의 마음 또한 점점 담사영보다 서량을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민중의 지지, 여론의 힘까지 얻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소모하며 남부의 복지를 극대화했으니까.

말하자면, 이제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서량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남은 것은 결착뿐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담사영, 그 저주와도 같은 숙명의 적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놈이라는 걸.

제 오랜 원수는 승리만큼이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놈이라는 걸.

놈은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놈은 애초에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걸.

놈은, 자신만큼이나 한계가 없는 놈이라는 걸.

콰르르릉!

먹구름이 일고 강풍이 휘몰아쳤다.

진천의 눈이 흔들렸다.

“호천마황단.”

스르륵.

이백의 마황단 전원이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대기하라.”

마황단의 마인들이 의아한 눈으로 진천을 보았다.

호천마황단은 오직 교주의 안위를 지키는 최강의 수호 부대였다. 교주님께서 가시는 길이라면, 분명한 사지(死地)일지라도 거리낌 없이 진입해야 마땅했다.

한데 대기하라니? 다른 누구도 아닌 단주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진천은 서량의 뒷모습을 보았다.

지옥 불과 뇌광을 드리우며 걸어가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가득한 마신(魔神)의 뒷모습을.

“지금 교주님께 가까이 가면 죽는다.”

“……!!”

“마기의 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절대 가까이 다가가선 안 돼.”

약도 과용하면 몸을 해치는 독이 된다.

지금 서량의 마기가 그러했다. 너무도 짙어서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저 순수한 뇌화만을 일으키는 절대의 마기가 사방 수백 장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든 목숨을 잃는다.

‘분노하셨다.’

평소 한없이 강대하고 화려한 마기를 드리우시던 교주님의 기파가 아니었다.

무겁고 탁하다. 고요하고 섬뜩했다.

평소의 마기가 생명력 넘치는 불꽃과도 같았다면, 지금의 마기는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늪이었다.

“우회해서 이동하라. 철혈성의 남쪽과 북쪽으로 들어가 적군을 섬멸하라.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 교주님의 반경 백 장 안으로의 진입을 불허한다.”

사라라락.

호천마황단이 순식간에 두 갈래로 찢어져 사라졌다.

동시에 진천이 서량의 뒤를 따랐다.

‘……!’

서량의 삼십 장 안으로 접근하자 사지가 무거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파괴 의지로 가득 찬 군림마황기와, 짙은 분노로 거의 완전하게 백열(白熱)하는 구유마공이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짓누른다.

화르르르륵!

호왕 특유의 흑황의 털이 새하얗게 변모했다.

산중대왕의 패기 넘치는 기파는 어디로 갔는지, 무저갱처럼 섬뜩한 기파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심지어 저 금호조차도.

고죽림의 주인이자 천하 영수의 왕이라 불리는 금호조차도 분홍빛 신비로운 요기(妖氣)를 팔방으로 뿌려 대고 있었다.

천하에 단 하나뿐인 요선(妖仙)조차 힘을 발산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짐승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어 신선의 경지에 올랐다는 저 수신(獸神)이, 난생처음으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기운을 방출하고 있다.

진천은 꾹 참고 서량의 이십 장 안으로 접근했다.

‘……?!’

순간 진천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동했지?’

십 장 거리를 좁힌 그 잠깐 사이의 기억이 날아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이동하며 소모된 내공이 완전하게 복구됨은 물론, 넘쳐흐르는 기가 전신의 신경과 혈도까지 퍼져 나갔다.

그 거대한 기는 진천의 힘으로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차오르는 기를 버티지 못한 그의 무의식이 천하의 모든 기를 담아 낼 수 있는 그릇, 상단전으로 포화 상태의 기를 끌어 올렸다.

울컥! 울컥!

진천의 상단전이 서량의 마기를 거칠게 빨아들이며 일순 신세계를 개방했다.

‘헉!’

진천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간 수련하면서 맞닥뜨렸던 하나의 벽이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우우우우우웅!!

이해되지 못했던 마공 구결이 알아서 분해되며 전신 기운의 성질을 바꾸기 시작했다.

찌이익! 찌이이익!

일순 전신의 혈도가 파괴되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후우우웅.

혈도와 신경, 근육이 찢어지기가 무섭게 더 강하게 수복되었다.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마기인 서량의 기가 파괴된 육신을 회복시킨 것이다.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깨달음과 육체 회복을 강제적으로 이끌어 낸 절대마기가 또다시 진천의 몸에 과량의 마기를 퍼붓고 있었다.

“쿨럭!”

진천이 피를 토했다.

‘한계다.’

재차 상단전으로 기운을 빨아들이려 했지만, 이번에는 무리였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으나, 그 상태에서 충분히 연마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주님.’

진천이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어느새 서량은 오십 장 밖으로 멀어져 있었다. 딱히 신법을 펼치는 것도 아닌데 이동 속도가 엄청났다.

진천은 이를 악물고 그의 뒤를 따랐다. 수하들은 물렸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는 호천마황단주, 교주의 최측근 호위였다.

크허어어엉!

호왕이 포효하며 공포를 드리웠다.

캬아아아앗!

금호가 포효하며 환희를 드리웠다.

염라의 두 차사, 호선차사와 금요차사의 맹렬한 포효가 지옥신의 강림을 알렸다.

우우우웅.

서량의 손에 천마도가 들렸다.

화르르르륵!

군림마황기, 그리고 구유마공.

두 개의 절대마기가 합쳐져 뇌화마기(雷火魔氣)를 형성, 천마도 안에 봉인되어 있던 선천마기까지 파고들었다.

“끝내 주지.”

투명한 눈물은 어느새 증발해 버렸다.

이제 서량의 두 눈에 남은 것은,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는 파괴신의 정체성뿐이었다.

“다 끝내 주마.”

전대 교주, 구대천마, 고금제일인.

그의 뒤를 이은 당대 교주, 십대천마, 천하제일인의 진짜 선전 포고다.

후우우웅.

발끝으로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니, 어느새 그의 몸은 철혈성의 외성 서쪽 대문에 도달해 있었다. 능공만리행이었다.

“헉!”

송금백, 그리고 네 명의 절대고수는 경악한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스르륵.

서량이 해룡왕 곽무태를 보았다.

번쩍!

순간 곽무태는 저도 모르게 언월도를 휘둘렀다.

그것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평생을 적수가 없는 무적자로 살아온 곽무태에게 있어, 느닷없이 불어닥치는 재앙의 바람은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었던 까닭이다.

쐐애애애액!

언월도에 실린 폭발적인 도기가 단숨에 서량의 머리를 쪼갤 듯 날아갔다.

능적반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안 돼!”

후웅.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곽무태의 몸이 비틀거렸다.

‘어?’

곽무태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서량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손에 쥔 천마도는 여전히 기묘한 불꽃을 피워 냈고, 그의 주변에서 번쩍이는 뇌화는 하늘 위로 치솟고 있었다.

주르륵.

멍하니 서량을 보던 곽무태가 이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없다. 팔뚝부터 잘려 나간 양손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쿵.

무지막지한 화력에 녹아 버린 언월도가 그저 한 덩이의 강철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곽무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서량의 마안이 그의 안광을 뚫고 단숨에 뇌리를 뒤흔들었다.

“크아아아악!”

그것은 고통의 비명이 아니었다.

공포의 비명이었다. 양팔이 잘린 고통 따위는 느낄 새도 없었다. 그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마신이 주는 절대적 공포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색투명한 두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았다.

“벌레 같은 놈이.”

서량이 천마도를 휘둘렀다.

퍼어어어엉!

곽무태의 몸이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말 그대로 폭발이었다. 어떤 식의 진기 운용이 그런 결과를 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송금백,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공간 선점.’

무형의 마기가 순식간에 육체에 침투했다. 그 상태에서 칼을 휘둘러 침투한 마기에 힘을 실었다.

이건 도법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도법의 형(形)을 빌린 극치의 기공술이라 보는 게 옳았다.

지금의 송금백은 물론 능적반, 마극, 국광의 경지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실현할 수 없는 천하제일의 경지였다.

“피해!”

파아아악!

그 짧은 새에 삼왕(三王)이 되어 버린 세 사람이 전속력을 다해 후방으로 물러났다.

싸움?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천하 어떤 고수라도 해일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에게 서량이란 존재는 바로 그러했다.

서량이 송금백을 보았다.

송금백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서량이 재차 땅을 박찼다.

투우우우웅!

하늘을 난다.

앞이 아니라 위로 올라간다. 소림의 전설적인 신법,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를 연상케 하는 신법이었다.

“이, 이런!”

멀리서 화극대진을 일으키려던 매방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그때의 힘이 전부가 아니었단 말인가?!’

화극대진을 정면으로 깨부수던 마신의 진신진력.

그 당시에도 고금을 논할 만한 힘이라 생각했거늘, 심지어 그조차 전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콰드득! 쿠구구구궁!

철혈성 외성 곳곳이 무너지고 있었다.

하늘에 올라 사방을 굽어보니, 해일처럼 쏟아지는 무적의 마력이 땅을 뒤흔들고 전각과 성벽을 뒤흔들었다.

인간이 아니다. 신(神)이다.

염라마신(閻羅魔神)의 진정한 힘이었다.

“다 없애 주마.”

서량의 두 눈에 어린 슬픔 가득한 살의가 빛을 발했다.

콰르르르릉!

세상이 어두워졌다.

사바세계의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 마신의 입이 열렸다.

“멸법욕화(滅法欲火).”

쿠르릉!

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 올린 불꽃이 환상과 실체의 경계를 허무는 유황불이 되었다.

“기오참륜(棄悟斬輪).”

불법의 윤회마저 끊어 버리는 군림마황기의 최종 비기.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생명을 무(無)로 돌리는 무상(無上)의 힘이, 바로 여기 철혈성의 천공 위에서 재앙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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