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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74화 (573/774)

574화. 지키는 자, 죽이는 자 (8)

“총군사님! 급보입니다!”

“들었다.”

호요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하오문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었다.”

“아……!”

“너희가 늦은 게 아니야. 그리 사색이 될 것 없다.”

“예, 예!”

“이만 나가 봐.”

비각 부각주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총군사님의 이런 딱딱한 말투는.

수하라도 언제나 배려해 주던 특유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에 들어온 정보는, 실로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호요성이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고루 어르신.’

고루마존.

구대마존의 수장은 원로원주 광마존이다.

구대마존에서 가장 젊은 자는 철검마존이고, 가장 폭급한 자는 열화마존이며, 가장 의문스러운 자는 벽력마존이다.

가장 욕심이 많은 자는 음야마존이고, 가장 중도(中道)를 지키는 자는 혈수마존이다.

그렇듯, 아홉 명의 마존들에게는 제각기 명확한 특성이 있었다. 그것이 무공이든, 연배든, 욕심이든, 성격이든.

그러나 고루마존은 그 무엇으로도 특정 지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장 젊지도, 폭급하지도 않다. 의문스럽지도 않으며, 욕심이 많지도 않았다.

고루마존은 그런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특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저 마존으로서 존재할 뿐인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호요성은 알고 있었다. 고루마존에겐 다른 마존들에 비해 유독 부각되는 특성 하나가 있다는 것을.

바로 신을 향한 신심(信心)과 충심(忠心)이다.

광마존도 고루마존 못지않다? 틀렸다.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광마존은 이천상의 사람이었지 교주의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마존 모두가 그러했다.

이천상이라는 역대 최고의 교주가 드리운 그림자가 너무나도 짙었기에, 마존 대다수는 이천상에게 충성한 것이지 교주에게 충성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고루마존은 달랐다.

그는 어떤 마존보다도 먼저 서량에게 다가갔다.

서량이 강해서? 혹은 능력이 뛰어나서?

아니다.

그저 그가 소교주였기 때문이다. 소교가 되기 전부터 눈여겨보고는 있었으나, 결국 고루마존의 충성심은 이천상과 서량을 가리지 않았다.

신교에서 가장 충성심 깊은 사람.

마존으로서의 영광도, 힘도, 위치도 신교를 위해서라면 그저 한 가닥 터럭처럼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자.

지금껏 쌓아 온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신교를 위해서라면 진심으로 아쉬워하지 않을 진정한 충신.

“죄송합니다.”

호요성은 눈을 감았다.

“어르신께서 마지막을 피할 수 없었다면, 그 마지막이나마 화려하게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저의 소임이거늘.”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고, 어떻게 죽느냐다.

고루마존은 적의 수장과 싸우다 죽었다.

영광스럽다면 영광스러운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요성은, 고루마존의 마지막이 그런 자리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더 화려하고, 더 축복이 넘치는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재앙에 한 많은 인생을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허망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호요성이 입을 열었다.

“밖에 있느냐.”

“예.”

문이 열리고, 부각주가 들어왔다. 혹시 몰라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천 병력의 움직임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곧 병력 운용이 시작될 겁니다.”

“대호법께 연락은 왔더냐.”

“그렇습니다. 마왕령은 물론, 대호법 휘하 부대와 수뇌부들까지 전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곧장 계획에 착수하라고 전하라.”

부각주의 눈이 흔들렸다.

“초, 총군사님.”

당초 계획했던 작전은 적의 움직임에 맞춰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적이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미리 선수를 치면, 기존에 짰던 작전의 효율이 반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혹여 고루마존의 죽음이 총군사님의 냉정함을 뒤흔들기라도 한 것일까?

“교주님께서 움직이실 것이다.”

“예?”

“교주님께서는 고루마존의 죽음을 즉시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교주님께서는, 충신의 죽음을 알고도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야.”

호요성의 눈이 빛났다.

슬픔과 좌절 속에서도 그의 눈은 언제나 대국의 흐름을 좇고 있었다.

“필시 담사영도 무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병력 운용을 기다리는 것보다 선수를 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

“본교 전역에 초비상을 걸어라. 머지않아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

“…….”

“……예.”

호요성이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빙궁주에게도 연락해라. 다소 이르지만, 이제부터 압박을 시작해도 될 것이라고. 하오문과 연계하여 담사영 측 전력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라 전해라.”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오문에 재차 전하도록 하라.”

호요성이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벌어질 줄은 몰랐다.

그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끝끝내 옥새의 유무를 밝히지 않았거늘,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옥새를 전쟁의 명분이 아닌, 건국의 명분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라.”

* * *

“피해라!”

심상치 않은 마력을 느낀 이가 얼마나 될까?

모두다. 이곳 철혈성 영역에 있는 모두가 그 거대한 기운을 느꼈다.

경지의 높낮이는 의미가 없었고, 심지어 양민들조차 재앙에 가까운 힘이 이곳 전체에 걸쳐 펼쳐질 것임을 짐작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렸다. 모두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마동필만큼은 서량의 마음과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시오!”

피 섞인 외침을 토해 내는 마동필의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철혈성 소속 무사들은 전부 그대로 있으시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시오!”

신뢰가 느껴지는 목소리다.

호위무사의 가장 큰 재능은 실력이 아니다. 호위 대상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마동필은 호위무사로서 최고의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모두가 주춤하며 발을 멈췄으니까.

마동필이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올려다보았다.

비유가 아니라 진정 기상마저 조종하는 죽음의 마신이 된 자신의 주군을.

‘교주님.’

죽어 가는 몸뚱이를 단숨에 이승으로 끌어 올린 신의 능력.

그 능력이, 힘이, 기가 마동필의 마음속에 신의 분노와 슬픔을 고스란히 그려 냈다.

‘고루마존?!’

마동필의 얼굴에 지극한 슬픔이 일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교주님께서……!’

이제야 이해가 갔다. 교주님께서 왜 저리 슬피 울부짖고 계시는 건지.

마동필이 눈을 감았다.

“뜻대로 하소서.”

쿠구구구궁!

대지가 요동쳤다.

철혈성 곳곳에서 솟구쳤던 수목들이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수목의 움직임이 어찌나 거센지, 일대의 지반이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목극대진이 완성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겁을 내고 있다.’

매방은 침을 삼켰다.

‘이럴 수가. 수목이 겁을 내고 있어!’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매방이 외쳤다.

“바로 화극대진을 펼쳐라! 당장!”

술사가 당황하여 말했다.

“아직 목극대진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 미친놈! 네 눈엔 저 괴물이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냐!”

매방이 허공에 뜬 서량을 보았다.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하나의 점처럼 보이는 마교주.

그 마교주의 몸 주위로 폭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들이닥치는 듯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가 죽을 판이다! 어서 발동시켜!”

“아, 알겠습니다.”

쿠구구궁! 쿠구구구궁!

더욱더 거세진 지진.

그리고 어느 순간, 철혈성 곳곳에서 시뻘건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 큰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화력은 끔찍할 정도라, 십 장 밖에 있는 고수들조차 피부가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에 놀라 도망치고야 말았다.

“이, 이런!”

언극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놈들이 드디어 철혈성을 무너트리려 작정했다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무인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만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항경사태의 말이 떠올랐다.

알아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한과 요기로 가득했던 그 망할 년의 목소리가.

그때, 마동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 낮추시오.”

언극이 마동필을 보았다.

마동필은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오. 걱정하지 말고 일단 자세를 낮추시오.”

“그 무슨 개소리인가!”

“교주님께서 저들 모두를 죽일 것이오.”

“뭐, 뭐라고?!”

언극이 허공에 뜬 서량을 바라보았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가 지진 소리보다도 더 크게 울렸다.

“시작됐소.”

마동필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서량을 향해 있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인세에 존재해서는 안 될 역천의 힘을,

그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힘으로 산산조각 내 버린 구대천마의 모습이었다.

‘걱정하지 말고 힘을 펼치십시오.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마동필은 알고 있었다. 서량이 원했다면, 진즉에 저 재앙 같은 힘을 뿌릴 수 있었다는 걸.

그런데도 이토록 길게 힘을 끌어모으고 있는 까닭은, 슬픔 속에서도 적과 아군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차가운 이성 덕분이라는 걸.

퍼어어어엉!

엄청난 화력을 내뿜던 불꽃들이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그때, 서량의 마안이 청홍의 색으로 빛났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천마도가 하늘을 가리켰다. 빈 좌수는 땅을 가리켰다.

파지지지지직!

먹구름 곳곳을 누비던 전광(電光)이 어느새 하얗게 물들었다.

쩌저저저적!

땅을 뚫고 올라오던 유황불이 청백색 안개로 뒤바뀌었다.

매방의 입이 떡 벌어졌다.

‘속성반전(屬性反轉)!!’

뇌기(雷氣)는 양강하며 파괴적이다. 화기(火氣) 역시 양강하며 파괴적이다.

그 두 가지 기운, 작열하는 뇌화의 기운에 뼛속까지 얼려 버릴 듯한 엄청난 한기를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멀쩡한 뇌전의 형상을, 불꽃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매방은 깨달았다.

마교주가 자신이 명을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화극대진을, 천룡궁에서 준비한 모든 것을 펼쳐 보이기를 끝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

이유인즉.

‘다 없애 버릴 수 있다고?’

그것이 심검(心劍)이다.

마음만으로 사람을 벨 수 있다면, 마음만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모순된 성질을 함께 묶을 수 있는 것.

나아가, 원하는 표적만을 골라서 박살 낼 수 있는 힘.

후우우웅.

어느새 혹한의 추위가 범람하는 세상 속, 빙뢰(氷雷)와 빙화(氷火)를 소환한 무적의 마신이 비로소 모든 목표물을 포착했다.

천마도와 왼손이 교차하며 땅과 하늘이 뒤바뀌었다.

서량의 입이 재차 열렸다.

“유아독존(唯我獨尊).”

군림마황기 최강, 최후의 비기.

천상천하멸가종무(天上天下滅迦終無)의 강림이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화극대진의 백열하는 불꽃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 거대한 얼음 기둥이 생성되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요란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섬뜩하게.

쪼개진 땅속에서 솟구친 청백의 안개가 철혈성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퍼퍼퍼퍼퍼펑! 콰드드득!

화극대진의 불꽃이 모조리 소멸하고, 미친 듯이 꿈틀거리던 수목들이 하얗게 얼어붙음과 동시에 깨져 버렸다.

“……!!”

매방의 몸이 덜덜 떨렸다.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철혈성을 멸망시키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수가 증발해 버렸다.

이토록 넓은 지역에 펼쳐진 진법의 힘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멸가종무의 힘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위험한 진법을 몽땅 없애 버렸으니, 이제는 그 진법을 펼친 사람의 차례였다.

서량의 얼굴이 광포한 악귀흉장의 그것으로 변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파지지지지직!

빙기를 띤 벼락 수백 줄기가 마침내 철혈성 곳곳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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