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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78화 (577/774)

578화. 서글픈 축배 (3)

“오랜만에 뵈어요.”

“아, 그러네요.”

반가운 얼굴로 손을 들던 위홍련은 순간 멈칫했다.

“그나저나…….”

“……?”

“엄청 달라지셨네요?”

“그런가요?”

주서윤의 목소리에선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묻어났다.

게다가 외양 역시 예전과는 달랐다.

워낙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탓에, 수련을 할 때도 때 하나 묻지 않은 백의 무복을 즐겨 입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입은 옷은 여기저기가 해지고 구멍이 난 상태였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거기서 때만 더 타면 거적때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머리카락이라도 잘 정돈되어 있어서 위화감이 덜했다.

“외양도 외양이지만.”

주서윤의 기도를 찬찬히 살펴보던 위홍련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헐?!”

“……?”

“뭐, 뭐야? 언제 벽을 뚫으셨대요?”

주서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이라니요?”

“저랑 별반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이제?”

그렇다.

주서윤이 갈무리한 기운은 실로 대단했다. 양도 양이지만, 그 질에 있어서 이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농밀했다.

그것은 참으로 오묘한 기운이었다. 분명 마기(魔氣)인데, 왠지 모르게 선기(仙氣)를 띠는 듯도 했다.

선(仙)과 마(魔)의 공존이다.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있었다.

‘내공도 그렇지만.’

그리고 검기(劍氣).

후웅.

갑자기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주서윤의 머리카락을 살랑였다.

머리카락 몇 올이 흔들리며 미세한 기운을 발했다. 전신의 기운이 터럭 한 올까지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운이 흩어지며, 위홍련 정도의 고수가 아니고선 느끼기 힘든 예기(銳氣)의 잔영을 남겼다.

‘한 자루 검이다.’

초절정고수.

그간 못 본 새에 어떤 수련을 한 것인지, 주서윤의 검학은 이미 일가를 넘어 종사(宗師)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굉장해. 이런 검기가 있다니.’

위홍련의 얼굴에 흥분의 기색이 차올랐다.

‘싸워 보고 싶다.’

전투광인 위홍련의 투쟁심을 자극할 만한 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느새 주서윤은 그렇게나 강해진 것이다. 천마신교 최고의 특작 부대라는 마왕령의 수장이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하지만.

“저는 위 령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엥?”

“분명 발전한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성장했는지는 모르겠거든요.”

위홍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농담하는 거죠?”

“정말이에요.”

담담하다.

특유의 무뚝뚝함과 차가운 기도는 어디로 갔는지, 참으로 부드럽고 여유가 있었다.

“다만, 제가 위 령주님께서 보시는 걸 못 보는 이유는 알고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랍니까?”

“극치에 이른 선도검학(仙道劍學)은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흘러갈 뿐, 마공처럼 벽을 넘나들지는 않거든요.”

알 것 같으면서도 도통 이해하기 힘든 얘기였다.

주서윤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자연스레 내뻗은 섬섬옥수. 손끝에서 부드러운 마기가 올올이 풀려 나왔다. 도무지 마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맑고 섬세한 마기가.

“벽도, 관문도 없어요. 그저 자연스럽게 올라갈 뿐이죠. 거기에는 나이도, 경험도, 벼락같은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아요.”

“……!”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요. 저의 노력과 검에 대한 애정은 바람에 실려 산을 타고 올라가요. 그저 그뿐이에요.”

주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다만, 올라가면 내려와야 하는 것도 하나의 이치겠지요.

제가 오르고 있는 산의 정상은 아직도 보이지 않지만, 그 정상에 머물던 바람은 언제고 세상으로 퍼져 무수히 많은 나를 만들 거라 생각해요.”

위홍련이 탄성을 질렀다.

‘신화(神化)!’

들은 적이 있었다.

고금을 통틀어, 신화경에 오른 자는 손에 꼽는다. 그리고 신화경에 오른다는 것은 곧 세상과 하나가 될 자격을 얻는 것이라 하였다.

주서윤이 익히고 있는 검학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었다.

검법 자체가 선도(仙道)의 비학이요, 깨달음의 총화이며, 세상과 하나가 되어 진정한 도(道)에 이르는 공부인 것이다.

천하 만검(萬劍)의 이치가 담겨 있으니 검법이지만, 그 검 안에 인간의 도리와 자연과의 융합을 향한 길이 존재한다.

그래서 주서윤에게는 깨달음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경지의 구분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저 한없이 깊어지고 몰입할 뿐이다.

물론, 그곳에도 벽은 있을 것이다. 천하제일의 무공을 얻었다고 하여 모두가 최고가 되는 건 아니니까.

다만 주서윤의 재능이, 현천진인과 적송대사의 가르침이, 무당파 최고의 도사라는 현천진인의 깨달음이 집대성된 검학(劍學)이

그녀를 끊임없이 자연으로 인도할 것이다.

“대단하네요.”

위홍련의 얼굴에 떠올랐던 호승심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감탄과 진심 어린 축하가 대신했다.

“원무검신 현천노사의 깨달음이 담긴 공부. 그 공부가 담고 있는 진의(眞意)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오공녀는 절대 지금처럼 깊어지지 못했겠죠?”

주서윤은 그저 웃어만 보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것은 긍정이었다.

위홍련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알겠네.”

전대 교주님께서 제자로 둔 일곱 명의 천재들.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다들 재능은 넘치지만, 이모저모 따져 봐도 천재라 불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주서윤과 채여민, 두 사람은 인정할 만하지만, 그 외에 다른 제자들은 특별한 게 없는 듯하다고.

틀렸다.

비록 죽었지만 고만고만한 재능이라 생각했던 대공자는 잠시나마 극마에 올랐고, 이공자 역시 패배했으나 십대천마의 비호 아래 크게 성장하였다.

사공자는 폐인이 되어 버렸지만 그 술수만큼은 인상적이었고, 오공녀 주서윤은 보다시피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육공자는 아직 모르겠지만, 칠공녀 채여민은 그 재능이 주서윤 이상이라고까지 평가받는 재인이었다.

아마 신교 역사를 전부 뒤져도 채여민만 한 재능의 소유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그리고 삼공자 서량.

성정이 흉포하고 재능은 고만고만하다던 그는, 어느새 신교의 새로운 천마가 된 것도 모자라 당대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천하제일인으로 우뚝 섰다.

비로소 위홍련은 깨달았다.

‘재능이 전부가 아니야.’

재능, 욕망, 성품, 자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혼(魂).

‘하나같이 괴물이 될 만한 자질을 품고 있었던 거야.’

위홍련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인간들더러 재능이 없다느니, 어떻게 제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느니 헛소리를 했으니.’

전대 교주의 일곱 제자들의 얼굴이 순서대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순간 위홍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네?”

“근데 이공자, 아니 관평 그 인간은 지금 어디에 있대요?”

주서윤이 떨떠름한 얼굴로 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교주님, 아니 사형이 따로 말을 해 주시질 않아서.”

“흐음.”

위홍련이 턱을 쓰다듬었다.

“뭐지? 대체 뭔 요리를 하려고 재료를 아직까지 숙성만 하고 계신 걸까?”

주서윤의 표정이 대번에 어색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두고 재료라니, 참으로 거침없는 말투가 아닌가.

“아, 그나저나 들었어요. 전쟁이 끝났다고요?”

위홍련이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하네요. 근데 영 찝찝하지 뭡니까.”

“왜요?”

“왜긴요? 오공녀도 알다시피 담사영, 그 거머리 같은 놈이 보통 짐승이랍니까? 포기는커녕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찾아올 놈인데 느닷없이 패배 선언이라니요?”

“그건 그렇군요.”

“패배를 선언하고 황군까지 황궁으로 철수시켰으니, 분명 백기를 든 것이긴 한데…… 이거야 원, 너무 찝찝하잖아요.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해요.”

주서윤이 빙긋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형과 총군사님께서 워낙에 잘하시니까요.”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위홍련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는 잠시 할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다시 찾아올게요!”

“아, 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무슨. 정 짠하면 나중에 칼부림이나 한번 해 주시든가.”

* * *

“원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곱게 인사하는 주화를 보며 소연심이 맑게 웃었다.

“그새 얼마나 지났다고 또 달라졌구나.”

“네?”

“무공도 늘었고,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어. 이제 정말 원주직을 네게 물려줘도 될 것 같구나.”

주화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는 이런 얘기가 나오면 당황을 금치 못했다. 원주라는 자리의 무게감 때문이기도 했고, 원주님께서 어디론가 휙 떠나 버리실 것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이 맡아야 할 일을, 자신의 미래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남은 부족함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리라.

소연심은 그런 주화의 변화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참 잘 컸어.’

그때, 주화가 말했다.

“원주님께서도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음? 내가?”

“네.”

주화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 딴에는 나름 밝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짓는 미소이리라.

“굉장히 자유로워 보이세요.”

“호호, 그래?”

“네. 그간 쌓인 답답함을 전부 풀고 오신 것 같아요.”

소연심이 빙긋 웃었다.

“글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인으로서 잊고 있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기분이랄까.”

비록 오랜 싸움은 아니었지만, 적을 섬멸하고 작전지까지 급박하게 움직였던 일련의 시간은 참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나날이었다.

마치 입교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갈 판이었지만, 그 색다른 상황이 스스로도 몰랐던 피로와 옹이를 몽땅 날려 버렸다.

“그것도 네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네가 후계자로서 나의 가르침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면, 언감생심 어찌 출교할 생각을 했겠느냐.”

“과찬이십니다.”

“절대 과찬이 아니야.”

소연심이 주화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내게 있어 너란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를 것이다.”

주화는 왠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소연심은 자기 사람에게 애정과 격려,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소연심은 예전과 또 달랐다.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는, 자신보다 더 크게 장성한 딸을 보는 어미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한참이나 주화의 어깨를 쓰다듬던 소연심은 문득 드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나저나 칠공녀는? 근래 자주 들르더냐?”

“네? 아, 아니요. 원주님께서 출교하신 이후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어요.”

“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걱정되어서 거처에 들렀지만, 수련 중이라 접견치 못한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래?”

소연심이 턱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왜?’

하기야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나올 나이 아닌가. 심경의 변화가 한창 극심할 때이니,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들어선 안 될 것이다.

“아, 그리고 원주님.”

“응?”

주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쟁은 정말 끝난 건가요?”

“……글쎄다.”

소연심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교주님이나 총군사가 전쟁이 끝났다고 판단했다면, 진즉에 신교 병력의 대다수를 중원으로 보냈을 것이야. 소란스럽기도 오죽 소란스러웠겠지.”

“그 말씀은?”

“그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 같구나.”

“하면 적의 수장인 담사영은 대체 왜……?”

“뭔가 우리가 모르는 술수를 부릴 생각이겠지.”

소연심이 창밖을 보았다.

저 멀리, 오 층 전각에 가려진 마신궁이 보였다.

“교주님께서는 알고 계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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