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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81화 (580/774)

581화. 서글픈 축배 (6)

"오, 오라버니?"

채여민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서량 역시 마주 웃었다.

"오랜만이다."

"언제 돌아오셨어요?"

"좀 됐지, 아마?"

"그러시구나."

표정은 밝은데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예전만큼 반갑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서량을 향한 친근감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성격이 조금 달라진 탓이었다.

눈에 띄게 차분해진 성격.

반가움이 묻어 나오는 눈빛 역시 전보다 훨씬 담백해 보였다. 몸이 성장한 만큼 성격도 크게 변한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한창 클 나이이니 체형이 변하고 성격이 차분해진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지금 채여민의 상태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제법 독하게 수련한 모양이구나."

"네."

서량이 손을 뻗었다.

우우우우웅.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마기가 채여민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앗?!"

채여민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지칠 대로 지친 몸에서 활력이 솟고 있었다.

찢어진 근육이 감쪽같이 아물었고, 한껏 달아올랐던 심폐도 금세 안정되었다.

나아가 극도의 내공 소모로 텅 비어 버린 단전에 왕성한 마기가 차올랐으며, 너덜너덜해졌던 혈도와 혈맥 또한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서량이 손을 거뒀다.

"어떠냐?"

"대, 대단해요! 완전히 정상이 됐어요!"

정상이 된 수준이 아니었다.

서량의 마기는 천하에서 가장 농밀하다. 그 순도와 깊이 면에서 고금을 논해도 될 정도란 뜻이다.

기(氣)란 언제나 깊은 곳으로 향하기 마련. 서량의 마기는 마인의 몸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한동안 육신에 잔류하며 당사자의 마기가 더 깊고 강하게 연마되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까지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서량은 이번엔 특히 더 신경 써서 마력을 집중시켰다.

채여민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단기간에 큰 성취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그나저나, 예전에 익혔던 마공과 다르구나. 내 보기에 십대마공 중 포천금마공(捕天禁魔功)인 듯한데?"

"맞아요."

"기존에 익혔던 마공의 모든 마력을 포천의 마력으로 전환시켰구나."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서량은, 문득 드는 생각에 눈을 크게 떴다.

"잠깐. 네가 익힌 십대마공이 몇 개지?"

"포천금마공까지 네 개요."

"네 개?!"

근래 들어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다. 심지어 담사영이 패배 선언을 했을 때보다도 더 놀라웠다.

천마신교의 십대마공은 어중이떠중이가 익힐 만한 게 아니었다.

십대마공의 난이도는 구파일방의 비전에 필적하며, 하나를 대성하기 위해 평생을 쏟아부어도 모자람이 없는 절공(絶功)이었다.

한데 채여민은 벌써 십대마공 중 네 개를 익히고 있단다.

물론 네 마공을 전부 대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주목할 만한 건, 네 개의 마공을 거치는 과정에서 마기의 손실 없이 완벽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마공을 육체에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선, 자신의 몸은 물론 마공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채여민은, 고작 몇 년 만에 천하에서 손에 꼽히는 마공들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제 것으로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재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서량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설마, 다른 십대마공도 전부 익힐 생각이더냐?"

"아, 그건 아니고요."

채여민이 볼을 긁적였다.

아직 젖살이 남아 있지만, 예전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이는 외양이 묘하게 어색했다.

"하나하나 익히다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공을 억지로 내 몸에 맞출 것이 아니라, 진정 나와 맞는 마공은 찾아야 하는 거 아닐까."

"……!"

"그래서 이것저것 찾다 보니 포천금마공이 딱 맞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그것도 확신은 없지만, 지금까지 익혔던 마공들보다 훨씬 안정적인지라."

서량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몸에 맞는 무공을 찾는다?

오랜 세월 무공을 익히고 분석한 이들도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자신 역시 살수지왕 시절의 경험과 수십 년의 고뇌가 없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영역에 도달하고 나서도 문제인 것이, 제 몸에 맞는 무공을 찾는 과정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 한눈에 무공을 분석할 수 있는 안목, 무공과 육신을 합일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진기의 손실과 각종 시행착오를 메울 수 있을 만한 역량.

그 모든 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자신의 몸에 맞는 마공을 올바르게 연성할 수 있다.

"대단하구나."

서량이 웃으며 채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간 일이 많아 제대로 신경도 못 써 주고 있었는데, 네 나름대로 강해지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구나."

채여민이 얼굴을 붉혔다.

신교 정점에 있는 무적의 마인이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그간의 수련은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한데 갑자기 수련 방식을 바꾼 이유가 있더냐?"

"네? 아……."

"환희원주가 많이 걱정하더구나. 주 총관이 와도 바쁘다고 만나 주지 않았다고?"

"그건……."

채여민의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말하기 힘든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서량은 억지로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되었다. 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련을 이유로 몸을 지나치게 혹사하진 말았으면 한다."

"아, 네."

"너는 아직 성장기야.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야 생존할 수 있는 전장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신교다.

널 지켜 주는 울타리가 충분히 튼튼하니 조금 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채여민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물끄러미 그녀를 보던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일간 자리를 한번 만드마. 간만에 사형제들끼리 모여 밥이나 먹자."

"……워요."

"음?"

채여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슬픔과 안타까움, 초조함, 미안함 등 수많은 감정이 엿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냐?"

"오라버니와 신교 사람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중원으로 나가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음?"

"그 많은 사람이 제각기 맡은 역할이 있는데, 저는 아니에요. 하다못해 잡일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칠공녀니까 하지 말래요."

서량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인제 보니 채여민이 급작스럽게 변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리 독하게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냐?"

"……네."

채여민의 눈이 일렁였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동안 제가 배운 거라고는 사람을 다스리는 법과 무공뿐이에요."

"……."

"오라버니가 교주가 되었으니, 이제 제가 할 줄 아는 건 무공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조차도 어설퍼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이놈아."

"저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서량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랬었군.’

채여민은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다.

그것은 그녀만이 아니라, 신교에 속한 어린아이들 모두가 그러했다.

하지만 채여민은 그중에서도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전대 교주의 제자였고, 궁극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였으며, 나아가 당대 교주의 총애를 받는 동생이기도 했다.

한데 그 높은 위치가, 정작 그녀에게는 독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또래 친구도 없는 와중에, 만나는 어른들마저 하나같이 신교의 중추들뿐이다. 바쁠 때면 제대로 돌봐 줄 이도 없는 것이다.

채여민으로선 혼란스러울 만도 했다.

서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를 챙길 순 없다는 건가.’

교주가 된 이후,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신교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량 역시 사람이었다. 가끔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다.

‘예전에도 그랬지. 잘 챙겨 주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이런 실수를 했군.’

변명거리는 많다.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니다. 주변 사람 챙기다가 전쟁에서 지면, 결국 모두가 죽는 것이다.

서량은 바로 그 위험천만한 전쟁에 뛰어들어 일선에서 적을 섬멸했다. 타인을 세심히 살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거리는 될지언정 잘했다는 소리를 듣기에는 힘든 선택이기도 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 그렇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서량이 채여민에게로 고개를 내렸다.

타인에게 처음으로 속내를 밝힌 그녀였다.

그간 꾹꾹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내니, 어느새 채여민의 표정도 울상이 되어 있었다. 억지로 울음을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혼자 있었다면 분명 펑펑 울었으리라.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거처를 옮기겠느냐?"

"……네?"

"근래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당분간은 나도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고."

"……?!"

"하지만 내 생각에, 조만간 다시 중원에 나갈 일이 생길 것 같다."

"주, 중원에요?"

"그래."

거짓말이 아니었다.

서량은 진심으로 중원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거친 여행이 될 확률이 높았다.

"중원에 나가기 전까지 네 무공 좀 점검해 줘야겠다."

"아……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 정도야 당연히 해야지. 아끼는 막내가 강호인의 눈먼 칼에 당하는 꼴을 볼 수는 없잖느냐."

채여민의 눈이 커졌다.

한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당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어렸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랑은 아니다만, 당대 무림에서 이 오라비와 견줄 만한 무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이번 전쟁에서 이긴 마도대종사를, 언감생심 누가 건드리려 하겠느냐."

"아!"

"하지만 강호는 거칠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서량이 몸을 돌렸다.

"내일부터 마신궁에 거하거라. 그리고……."

그가 소당에게 시선을 돌렸다.

깜짝 놀란 소당이 고개를 숙였다.

"소당이라고 했었지?"

"네, 네!"

하늘 같은 교주님께서 이름을 기억해 주고 계신다. 소당은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여민이 챙겨서 마신궁에 들게. 환희원에는 내가 따로 얘기하도록 하지."

"헉! 교, 교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소당."

"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여민이 챙긴다고 고생이 많네. 다만, 친분이 깊다고 하나하나 관여하면 제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불만을 품게 마련이야."

"……!!"

"여민이를 위해 주는 건 고맙지만, 저 녀석도 한창 클 나이 아닌가. 엄마 노릇 그 정도 해 줬으면,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 줄 때도 되었네."

소당이 고개를 푹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교주님."

"그래. 어련히 잘할 거라고 믿네."

서량이 대문을 열었다.

"내일 보자꾸나."

채여민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네!"

채여민의 거처에서 나온 서량은 한참을 걷다가 이내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이 맑았다.

"그래, 다시 달릴 때가 되었지."

서량의 두 눈에 서늘한 빛이 어렸다.

"다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에 나갈 때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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