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589화 (588/774)

589화. 유희는 없다 (7)

당양충(唐楊衝).

사천당가의 전대 가주이자, 당가인 중에서도 유독 잔혹한 손속과 악랄함으로 유명해 서천사신(西天死神)이라 불리던 일대 고수다.

서천사신. 중원의 서쪽 땅의 사신이란 말이다.

물론 서쪽 땅이란 당가가 자리한 사천성(四川省)을 뜻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서쪽인 청해에도 당양충보다 살벌한 명성을 드리운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어떠한 암살자보다도, 마두(魔頭)보다도 악랄한 손속.

오죽하면 그가 무림공적(武林公敵)으로 선포되지 않은 이유는 오직 사천당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 그가 다소 이른 시기에 아들인 당전에게 가주직을 이양한 이유는, 당가 무공의 극의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당가의 무공은 하나같이 독하고 악랄했다. 하지만 주류가 독과 암기인 이상, 중원의 다른 무맥(武脈)보다 재능을 덜 타는 면이 있었다.

무재(武才)보다는 두뇌, 자비보다는 독기, 보은(報恩)보다는 복수(復?)를 좇았기에 당가는 지금의 명성을 구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양충은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도 독했고, 당가의 핏줄답게 은혜를 갚는 것보다 원한을 푸는 걸 더 중시했지만, 당가 무공의 극의를 이룰 자는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타고난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당가 무공을 익히는 데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타고난 사람. 그는 실로 오랜 세월 가문의 중지(重地)에 틀어박혀 무공에 매진했다.

그리고 지금.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던 당양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하군.’

마동필은 신선처럼 허연 수염을 드리운 당양충을 보며 흑혈마검을 고쳐 쥐었다.

‘강해. 극마에 올랐다.’

놀랍게도 당양충은 화경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다.

비록 그 깊이는 마동필보다 얕았지만, 애초에 독과 암기를 주류로 하는 무공으로 화경의 벽을 뚫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도 초입이 아니야.’

어느 정도 완숙한 경지에 들어섰다. 화경의 벽을 뚫은 뒤로도 한참이나 더 내공을 연마했다는 뜻이었다.

‘굉장하군. 지금껏 당가에서 화경에 오른 자는 셋을 넘지 않은 걸로 아는데.’

당가의 내공심법은 기본적으로 독공(毒功)을 바탕으로 한다.

독공 역시 내공의 한 지류라고 봤을 때, 독공을 연마한다고 해서 화경에 오르지 못한단 법은 없다.

하지만 독기(毒氣)란 근본적으로 순수함과는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농축될수록 신체가 받는 부담도 커져서 무(武)의 한계를 돌파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그 말인즉.’

마동필의 마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구유마공을 개방한 것이다.

‘저자의 재능이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뜻이다.’

역시 세상은 넓다.

십대고수라는 명단이 바로바로 채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심산유곡(深山幽谷)에는 천하십대고수보다도 강한 자들이 우글거릴지도 모르겠다.

우우우우웅.

흑혈마검이 지독한 마기를 발산했다.

"이놈."

당양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떤 사이한 마공을 연성하였기에 그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올랐을꼬."

마동필이 제아무리 크게 놀랐다 한들 당양충에 비할 순 없었다.

당양충은 마동필이 발산하는 마기를 느끼는 순간 말 그대로 숨이 멎을 뻔했다.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마공이나 마검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저놈의 나이가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불혹(不惑)에 이르지 못한 연배인 듯했다.

기껏해야 삼십 대 중반 정도일까. 어찌나 놀랐는지 순간적으로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고수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발산하는 내공의 순도는 자신의 필적, 아니 그 이상이었다.

깨달음을 제외, 진기의 농도가 자신을 앞서 있다. 자신의 절반도 못 살았을 어린놈의 무공이 어찌 이리 대단할 수 있단 말인가.

츠츠츠츠.

당양충의 양손에서 시커먼 독기가 피어올랐다.

마동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독하다.’

독기를 발산하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독공의 고수가 무서운 이유였다. 독기로 공기를 오염시키면, 독에 면역이 없는 자는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는다. 그것은 극마에 오른 고수라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시작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붙는다.

마동필은 당양충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가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그런 걸 떠나, 이기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저지르는 것은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화르르륵.

상대가 독기로 공기를 장악했다면, 이쪽에서는 화기(火氣)로 독기를 태울 수밖에 없다.

구유마화(九幽魔火)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공기를 오염시킨 독기를 서서히 태워 없앴다.

‘이럴 수가.’

당양충의 눈이 흔들렸다.

‘반양신독(反陽神毒)을 태울 정도의 화력이란 말인가?’

반양신독은 당양충의 팔십 년 무공 역사의 총화와도 같았다.

여느 독과 달리 불에도 강하고, 시전자의 능력이 되는 한 태풍이 불어닥쳐도 흩어지지 않는다. 독이라는 특성의 한계를 깬 지고의 독(毒)이 바로 반양신독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설설 기게 해 줄 생각이었거늘, 설마하니 이 정도로 초고온의 화력을 다루다니?

"역시나."

번쩍!

당양충의 두 눈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어렸다.

"네놈들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놈들이야."

촤르르르륵.

펑퍼짐한 장포 속에서 수백 개의 암기가 쏟아져 나왔다. 쏟아져 나온 암기들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당양충의 주위를 맴돌았다.

대체 몸 어디에 저 많은 암기를 숨겨 두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동필의 얼굴에 긴장이 드리워졌다.

치리리링! 치리리리링!

암기와 암기가 부딪치며 기묘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퍼어엉!

화탄이 터지듯 폭발한 핏빛 화염이 마동필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전신에 구유마화를 둘러쳐 외부에서 들어오는 충격파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당양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나만 묻겠다."

"……."

"내 아들과 암운각주, 독룡각주를 어떻게 했느냐?"

당전, 당표, 당경.

그들 모두가 당가의 중추였다. 그들이 없다고 당가가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그들 셋은 당양충의 직계 혈육이었다.

마동필이 입을 열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묻지?"

"세 아이가 마교 놈들에게 당했다고 들었다. 가내의 아해들은 그 셋이 죽었을 거라고 하더군."

"……."

"묻겠다. 정녕 그 세 놈은 죽은 것이냐?"

독하기로는 천하제일이라는 서천의 사신도 혈육지정에선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

마동필이 짧게 말했다.

"모른다."

당양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아 있어야 할 것이다. 놈들은 내 손에 죽어야 하니까."

실로 놀라운 발언이었다. 마동필조차 순간 주춤했을 정도였다.

"위대한 당가의 이름에 먹칠을 한 놈들이야. 능력이 출중하여 믿고 가문을 맡겼더니만, 천한 놈들에게 당해 가문의 명성을 땅에 떨어트렸어. 이는 죽어 마땅한 죄다."

살벌한 성정이었다. 제 혈육임에도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직접 죽이겠다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두 눈에 떠오른 살기와 분노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마동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들의 생존 여부를 걱정할 필요 없다. 네놈은 이곳에서 죽을 테니까."

"……감히!"

"교주님을 모독한 죄, 만 번 죽어 마땅하다."

스르륵.

흑혈마검의 검첨이 당양충에게로 향했다.

"……."

잠시의 침묵.

번쩍!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파아아아앙!

마동필의 신법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빠르고 경쾌했다.

하지만 당양충의 신법 역시 마동필 못지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기로는 마동필 이상이었다.

독과 암기를 다루는 자에게 거리 조절 능력은 필수다. 당가의 신법은 능히 천하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동필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잡는다.’

그가 흑혈마검을 크게 휘둘렀다.

화르르르륵!

거대한 화염 줄기가 반월형으로 퍼져 나갔다.

속도는 느리지만 파괴력만큼은 절륜했다. 게다가 그 검기에는 당가 최강의 독이라는 반양신독마저 불태운 구유마화가 깃들어 있었다.

정면 승부로는 막기 힘든 검격, 당양충의 눈이 녹색 안광을 터트렸다.

‘……?!’

순간 마동필의 눈에서 이채가 발해졌다.

‘빨라.’

검격을 피할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피함과 동시에 어느새 하늘 높이 날아올라 자신의 후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대단한 신법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하늘을 나는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당양충이 향하는 위치였다.

"이놈!"

신들린 신법으로 순식간에 마차 근처에 다다른 당양충이 살기 넘치는 외침을 토해 냈다.

"대(大) 사천당가의 주인이 왔음에도 낯짝을 보이지 않는다니, 그 오만함은 죽음으로 갚거라!"

화아아아악!

당양충의 양손에 시커먼 먹구름이 피어올랐다.

놀란 마동필이 곧장 그의 뒤를 치려 할 때였다.

[떨거지들부터 잡거라.]

파아악!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마동필은 곧장 우측 산길로 몸을 날렸다.

"이노옴!"

당양충이 쌍장을 휘둘렀다. 목표는 마차의 본체였다.

그때였다.

화르르르륵!

마차와 말을 가운데 두고 솟구친 아홉 개의 불기둥이 돌풍을 일으키며 당양충에게로 쏘아졌다.

‘헉!’

당양충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땅을 부수고 솟아난 불기둥들이 자신에게로 몰려오고 있었다. 한데 빠르다. 인간의 반응 속도를 한참이나 상회하는 속도였다.

심지어 저 젊은 검사가 피워 내는 불꽃보다 두 배는 더 뜨거웠다. 불기둥이 솟구치는 순간 온몸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가 전해졌다.

파아아앙!

당양충이 재빨리 후방으로 물러났다.

퍼퍼퍼퍼펑!

아홉 개의 불기둥이 서로 부딪치며 엄청난 굉음을 터트렸다.

허공에서 폭발하는 구유마화.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폭발하며 비산하는 불덩이 수십 개가 부드럽게 선회하더니, 일제히 당양충에게로 쏘아졌다.

"……!!"

당양충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이기어(以氣馭)!’

저 말도 안 되는 불꽃을 내공력만으로 끌어 올린 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신기(神技)이거늘, 흩어진 불덩이들을 조종하여 원하는 목표를 향해 쏘아 낸다.

극치에 이른 깨달음에 놀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내공량에 놀랐다. 이 정도 범위의 공격을 가하려면 얼마나 깊은 내공이 필요한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피할 수가 없다!’

당양충의 쌍수가 번개처럼 움직였다.

‘화우집전(化雨集轉)!’

치치치치치치칭!

수백 개의 암기가 무서운 속도로 뭉치며 거대한 방패의 형상을 이루었다. 당양충의 내공과 독기가 더해진 강철의 방어막이 생성된 것이다.

불덩이들이 방어막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콰콰쾅!

"크윽!"

방패 곳곳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녹은 쇳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럴 수가!’

당가 암기술의 비기, 만천화우(滿天花雨)의 극치를 이룬 자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최강의 방어초가 일격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패가 얇아지자 아까 느꼈던 엄청난 열기가 독기를 뚫고 침투하기 시작했다.

터어어어엉!

당양충이 이십여 장 밖으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리지 않고서는 이 열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퍼어어어어어엉!

가문의 정예가 숨어 있는 산길에서 요란한 폭발이 일었다.

당양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폭발이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깨달은 것이다.

"마교, 이 빌어먹을 개 종자 놈들이!"

그때였다.

"이봐, 늙은이."

마차 안에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바닥 안 뜨겁나?"

순간 당양충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퍼어어엉!

땅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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