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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90화 (589/774)

590화. 유희는 없다 (8)

푸스스스스.

연기를 뚫고 물러난 당양충의 외양은 꽤 험해진 상태였다.

허연 수염은 절반이 넘게 그을렸고, 곱게 넘긴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었으며, 의복은 곳곳이 불에 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과연."

당양충이 낭패 가득한 눈빛으로 마차를 보았다.

마차 안에서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굉장한 신법이야. 이 정도면 가볍게 제압하고도 남을 거라 생각했거늘."

강자의 칭찬에는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법이다.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러했다.

"이놈……!"

당양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나를 농락해?!"

사아아아악!

당양충의 몸 주변으로 시커먼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독기였다. 마침내 그가 수십 년 동안 가다듬은 절기, 역무시란(逆無始亂)을 펼친 것이다.

히히히히힝!

말들이 거친 울음을 토해 냈다.

독(毒)은 자연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다. 게다가 역무시란의 신공으로 퍼트리는 반양신독은 무형지독조차 능가하는 천하제일독(天下第一毒)이었다.

제아무리 마기로 진정시킨 말들이라도 날뛸 만했다. 바꿔 말하자면, 당대 최강의 마(魔)가 발산하는 마기로도 당양충이 뿌리는 위화감을 막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당양충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네놈이 마교주렷다?"

"그렇다."

"당장 튀어나오거라! 내 오늘 네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 주마!"

"독이나 만지작거리는 음침한 집구석의 골방 노친네 주제에 하늘은 무슨."

"이, 이놈이?!"

"하늘을 넘보기 전에 태산부터 무너트리고 오너라."

퍼어어어엉!

엄청난 폭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당양충이 뒤를 돌아보았다.

‘헉!’

화르르르륵!

한 줄기 화염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적을 죽이고 피를 마신다. 피를 마신 마검이 마기를 불사르고, 불살라진 마기가 마공의 출력을 한순간 최고점까지 끌어올렸다.

적의 섬멸과 함께 화염 그 자체로 변모한 마동필이었다. 마계(魔界)의 화룡을 전신에 두르고 쏘아져 오는 그의 모습은 말세(末世)에 도래한 재앙 그 자체였다.

쿠우웅!

두 발에 힘을 준 당양충이 역무독장(逆無毒掌)을 펼쳤다.

파아아앙!

시커먼 장력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독장이란 무릇, 파괴력과 속도보다는 독의 농도로 그 위력이 결정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당양충의 장법은 그렇지 않았다. 엄청나게 빨랐고, 그 속도만큼이나 심상치 않은 파괴력이 느껴졌다.

독기를 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천하일절의 장법이라 할 만했다.

소용돌이치며 날아오는 장력을 마주한 마동필의 두 눈이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콰아앙!

일검양단(一劍兩斷)이었다.

구중마검세의 패력강공이 담긴 참격(斬擊)에 역무독장의 장력이 속수무책으로 갈려 나갔다.

단 한 수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맥을 끊고 식(式)을 와해하는 무리(武理)가 담겨 있었다.

찰나의 순간,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걸 깨달은 당양충의 두 손이 재차 빠르게 움직였다.

쿠르르릉.

마치 천둥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공기 중에 깔아 놓은 진기를 장풍(掌風)과 지풍(指風), 권풍(拳風) 등으로 쏘아 낸다. 내공을 끌어 올릴 필요가 없으니 공격 속도가 한 박자 더 빨랐다.

사방으로 뻗어 나간 독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그였다. 화기를 조종하는 서량의 경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암기와 독기를 조종하는 그의 실력은 능히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마동필의 검이 춤을 추었다.

퍼엉! 퍼퍼펑! 퍼어엉!

검력으로 공격을 분쇄하고, 터지며 흩어지는 독기는 구유마화로 불살라 버린다.

독과 암기라고 파괴력이 낮은 건 아니며, 마공이라고 신묘한 무리가 없는 게 아니다. 당양충이 당가 무공의 극의를 보여 주고 있다면, 마동필 역시 마도 무학의 극치를 구사하고 있었다.

무공의 한계를 초월하여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괴물들의 정면 승부.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신기(神技)의 공격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콰아앙!

마침내 마동필이 땅에 내려섰다.

화아아악!

시커먼 독기가 수십 갈래의 돌풍을 일으키며 마동필을 노렸다. 마치 서량이 불기둥을 조종하던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당양충은, 방금 본인이 당한 술수를 그대로 따라 한 것이었다. 다만 그보다 내공 소모가 적고, 운용하기도 한층 수월했다.

퍼어어어엉!

반양신독의 운무가 그대로 집어삼켰다.

당양충이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망할 놈! 주제도 모르고 날뛰니 그리 허무하게 당하는 게다."

그가 좌측으로 난 절벽을 향해 외쳤다.

"보고하라!"

파아앙! 파아아앙!

마동필에게 당하지 않은 사십여 명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놀라운 신법을 구사하는 최정예 고수들, 당양충과 함께 폐관에 들어갔던 당가의 전대 노고수들이었다.

"서른이 넘게 당했소이다."

"폭우이화침 스물다섯 정이 고물이 되었소."

"폭정뢰(爆霆雷) 세 기가 망가졌소. 고치기 힘들 듯하오."

당양충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폭우이화침은 당가 비전의 폭약 암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폭정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폭정뢰는 오 년 전에야 완성된 사상 최악의 화기(火器)로, 제국의 화포에 비해 크기는 십 분의 일 정도이나

그 위력은 열 배 가까이 증폭된, 당가 기술력의 총화라 불릴 만한 물건이었다.

"빌어먹을 놈! 애송이 주제에 감히 본가의 보물을 망가트려?!"

당양충이 반양신독으로 만들어진 먹구름을 쏘아보았다.

뭉클뭉클.

안에서 마동필이 꿈틀거리는 모양이었다. 시커먼 먹구름이 제멋대로 출렁이고 있었다.

당양충이 코웃음을 쳤다.

"흥! 마교주 놈과 같은 무공을 구사하는 걸 보니 후계자라도 되는 모양이군."

그가 마차로 고개를 돌렸다.

"네놈의 오만으로 후계자를 잃었구나. 하지만 너무 슬퍼할 것 없다. 네놈도 곧 뒤를 따르게 해 주마."

당양충이 외쳤다.

"발포 준비!"

쿵! 쿵! 쿵!

십여 명의 노고수가 전방에 나란히 앉아 넉 자 길이의 소형 화포를 어깨에 걸쳤다.

폭정뢰였다. 절정고수의 내공으로도 반동을 이기기 힘든,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무적의 화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폭정뢰를 든 노고수들의 뒤로, 폭우이화침과 각종 암기를 꺼내 든 노고수들이 반원형으로 늘어섰다.

천하 어떤 자가 있어 당가 최고수들의 합공을 받아 내겠는가. 하물며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수백 년 당가 역사가 만들어 낸 최강, 최악의 화기들이었다.

당양충의 미소가 짙어졌다.

마차 안에서는 더 이상 어떠한 목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거리도 충분해.’

일부러 삼십 장 밖으로 거리를 벌렸다.

이 정도면 제아무리 마교주라도 직전의 불기둥들을 운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거리를 무시하고 그만한 신기(神技)를 구사할 수 있다면, 그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리라.

‘저놈도 슬슬 죽어 가는군.’

먹구름 속에 갇힌 마동필의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저 정도면 이제 가망이 없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였다.

당양충이 손을 들었다.

철컥!

폭정뢰 열 기가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모두 발포 준비를 마친 것이다.

‘기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폭정뢰의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믿기 힘든 속도.

그걸 생각하면 마교주는 무조건 마차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놈이 튀어나오는 순간, 만천화우의 최종 비기가 반양신독과 함께 쏟아질 것이다.

당양충의 입이 열렸다.

"발……."

푹.

‘어?’

뭐지, 이 따끔한 감각은?

당양충이 얼떨떨한 눈으로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다.

"……?!"

검이다.

한 자루 흑색 장검이 그의 복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어……?’

섬뜩하다.

위치가 너무나도 절묘했다. 척추와 신장(腎臟)을 비껴간 검이 당양충의 창자를 가르고 단전 중앙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공만 강하다고 다가 아니지."

깜짝 놀란 노고수들이 당양충과, 그 뒤에 선 사내를 바라보았다.

푸스스스스스.

당양충의 복부를 뚫은 흑혈마검에서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단숨에 당양충의 단전으로 파고들었다.

당양충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크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사위를 휩쓸었다.

폭정뢰를 들지 않은 노고수들이 황급히 마동필에게로 폭우이화침을 겨누었다.

우두둑!

순식간에 당양충의 목을 감고 그의 뒤로 숨은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한 치 위로 들어 올렸다.

푸화아악!

"커허억!"

당양충의 몸이 덜덜 떨렸다. 역무시란의 절대적인 공력으로도 육신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끔찍한 고통과 살벌한 공포 속에서도 그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지?’

당가의 내공도 하단전을 중심으로 연마한다.

하지만 그의 독기는 전신 가득 흐르고 있었다. 설령 단전이 다쳐도 손끝까지 들어찬 반양신독을 운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독기가, 육신이.

인생 처음으로 치명상을 입은 그의 정신이 올가미에 걸려 죽어 가는 짐승처럼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었다.

"노, 노가주!"

"이놈! 당장 그분을 놔 드리지 못하겠느냐!"

"이 개 같은 마교 놈이!"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화르르르륵!

"크아악! 아아아악!"

당양충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동필이 당양충을 끌어안은 채로 전신에 구유마화를 피워 올려 버린 것이다.

치이이이이익!

당양충의 피부 곳곳이 화상으로 녹아내렸다.

구유마화의 화력을 생각하면, 온몸이 단숨에 숯덩이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그가 이룬 경지가 지고하다는 뜻이리라.

스르르륵.

마동필이 화력을 줄이며 말했다.

"물러나라."

"이, 이놈!"

"마음만 먹으면 너희 가주를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

"손에 든 것들 내려놓고 물러나."

노고수들은 당황했다.

당양충과 함께 폐관하며 무공 역시 크게 성장한 그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폭정뢰도 만들 수 있었고, 새로운 무공도 몇 개나 창안해 냈다.

하지만 이십여 년이나 이어진 실전의 부재로 인해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변해 버린 그들은 이런 결과를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주르르륵.

마동필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적을 방심케 하기 위해 반양신독의 독무 속에서 생기(生氣)까지 죽인 채 버텼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지 않다.

그는 분명 서량에게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잠깐이나마 서량의 도움을 받은 것만으로도 죄송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때였다.

"물러나기 싫은가? 좋다."

화르르르륵!

"카아아악!"

핏빛 화염이 마동필과 당양충을 통째로 감싸며 치솟았다.

"기, 기다려라!"

"물러난다! 물러나겠다!"

"이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화들짝 놀란 노고수들이 일제히 손에 든 암기와 화기를 내려놓았다.

‘…….’

자신이 요구한 것이지만, 마동필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쉽게?’

목숨을 걸고 다 잡을 생각이었는데, 고작 이 장난 같은 협박 한 번에 굴한단 말인가?

그때, 그의 뇌리에 서량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맹수는 주기적으로 피 맛을 봐 줘야 하는 법. 그 늙은이들은 남이 가져다준 고기로 덩치만 불린 반쪽짜리 맹수에 불과하다.]

사냥꾼의 본능을 상실해 버린 맹수. 제아무리 이빨과 발톱이 날카로워 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다.

훅!

거세게 타오르던 구유마화가 단숨에 사그라들었다.

콰아앙!

동시에 마동필의 왼손에서 거대한 화룡이 뿜어져 나왔다.

목표는 바로 폭정뢰였다.

노고수들의 얼굴에 뚜렷한 공포가 어렸다.

"이 미친놈아!!"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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