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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92화 (591/774)

592화. 구대천마의 제자들 (2)

"군림성교, 천마불사. 관평이 교주님을 뵙습니다."

서량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예."

"그간 잘 지냈나?"

"교주님의 성은 덕에 무탈한 날을 보냈습니다."

"무탈한 것은 좋지만, 너를 중원에 보낸 이유는 주변 동태를 확인함과 동시에 자금과 무력을 확보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잊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전쟁이 끝났다고 일을 대충 하고 있진 않았겠지?"

관평이 재차 읍했다.

"바로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물끄러미 관평을 보던 서량이 피식 웃었다.

"괜찮다. 목소리만 들어 봐도 알겠어. 제대로 하고 있었군."

"송구하옵니다."

"그리고……."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았다."

관평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대 교주, 고금제일마 이천상의 뒤를 이어 신교의 주인이 된 또 다른 신의 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세와 기도는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서량은 그런 관평의 모습에서, 그의 믿기지 않는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강해졌군.’

강해졌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마음가짐 자체가 달라졌다.

홀로 수양이라도 쌓은 것일까? 신교에서 내보낼 때만 해도 불안정해 보였던 눈빛이 어느새 단단한 바위처럼 굴강해졌다.

날 선 칼처럼 선명한 기도는 그의 마음이 부동심을 이루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아가, 그간 지우지 못했던 패배감마저 이제는 모두 불살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일어나라."

"예."

공손한 자세로 일어난 관평을 보며, 서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신(心身)이 바로잡히고 무공 역시 성장했거늘, 어째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업무가 과중했나?"

"아닙니다."

"아니면, 꼴도 보기 싫은 교주와 독대하려니 벌써부터 힘이 빠지는 겐가?"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였다. 관평이 이 정도 변화를 보여 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던지지 않았을 농담이기도 했다.

과연 관평의 반응은 놀라웠다.

"오시기 전 전대 교주님의 꿈을 꾸었습니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사부님의?"

"그렇습니다."

"싱숭생숭했겠군."

"교주님과의 독대는, 전대 교주님과의 독대에 비하면 무릉도원에서 술잔을 나누는 것만큼이나 편안합니다."

"하하하."

크게 웃던 서량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발만 더 나아가라."

"예?"

"몸도, 무공도 이미 극에 이르렀어. 그 이상의 경지를 넘보기 위해서는 마음만 갈고 닦으면 돼."

"……!"

"패배감을 벗어던지고 부동심을 얻었으니, 이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군. 그러나 이것 하나는 잊지 마. 너는 마인이다."

"마인……."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수양을 쌓는 것은 정과 마를 가리지 않는 당연한 과정이야. 너는 충분히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마인답게 너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내는 일뿐이다."

관평은 솔직하게 물었다.

"마인답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욕망이지."

"……!"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 그러나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것. 욕망을 다스리는 것은 곧 마(魔)를 다스리는 것이니, 이야말로 마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마의 극치.

관평의 눈이 흔들렸다.

"극마……."

"극마지경이란 편법만으론 오르기 힘든 경지야. 굳이 안 좋은 기억을 꺼내고 싶진 않지만, 진관용 그놈이 극마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편법 때문만은 아니지."

"……."

"놈은 자신의 욕망을 거의 완벽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극마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야."

서량이 피식 웃었다.

"물론, 편법의 도움을 얻었으니 완벽하진 못했어. 그러니 막판에 그리 무너져 버린 것이지."

가만히 서량을 보던 관평이 물었다.

"알려 주셔도 되는 것입니까?"

"무엇을?"

"제게 극마에 오르는 방법을 알려 주셔도 되는 것입니까? 혹 제가 극마에 올라 교주님께 반기를 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지. 하지만 지금 내 눈에 비친 너에게선 반기를 들 시간에 스스로의 완성을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구도자의 품성마저 엿보이는데."

"……."

"그리고 설령 반기를 든다 한들, 너 정도의 무공으로는 날 어쩔 수 없어."

관평은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염라마신(閻邏魔神)이라 불리신다고 들었습니다."

"낯부끄러운 별호지."

"하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별호이기도 합니다. 철혈성을 공격하던 담사영의 병력을 단신으로 쓸어 버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꽤 무리하긴 했지."

농담처럼 말하는 서량의 얼굴에는 굉장한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자만심이나 오만함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절대자의 모습 그 자체일 뿐이었다.

‘그래서 강해지셨는가.’

관평은 눈이 부시는 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이 정도로 발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서량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패왕의 위엄도, 마신의 흉포함도, 사신의 불길함도 없었다. 너무나도 막강한 존재감만 빼면, 그저 흔하디흔한 마인과 다를 게 없었다.

바로 그것이 서량의 경지였다.

진정한 의미의 반박귀진이었다.

너무도 강대한 힘을 품고 있기에 오히려 평범해 보이는,

그러나 그만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쏟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경험이 은연중에 비범함을 드러내는, 참으로 신비로운 기도를 소유하고 있었다.

관평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무적이로군.’

당대 무림의 누구도 서량을 이길 수 없다.

한 개인을 넘어, 수많은 조직이 떼로 덤벼도 서량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하여 진정한 신(神)의 길을 걷는 또 한 명의 이천상이 거기에 있었다.

‘빈말이 아니야. 내가 극마에 오른다 한들, 단 일 초로 날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군림마황기를 연성했으니 애초에 반항조차 할 수 없겠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격차를 실감해서일까. 관평은 오히려 후련함을 느꼈다.

‘이제 이 사람을, 진정 내 주군으로 인정해도 되겠어.’

사제, 동생, 경쟁자.

그런 자를 진심으로 주군으로 모신다. 그것은 제아무리 수양을 높이 쌓은 사람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데 어인 일로 세상에 나오셨습니까. 그리고……."

관평이 서량의 뒤쪽을 힐끔거렸다.

그곳에는 어색한 얼굴로 서 있는 세 명의 남녀가 있었다.

주서윤, 종리영, 그리고 채여민이었다.

"저 녀석들은 왜?"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세상을 보여 주려고."

"……?"

관평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라니? 이 녀석들은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몰라. 훗날 내가 마도천하를 이루게 되면, 그때는 나름의 몫을 해야 할 거 아냐."

"정말 그 이유가 전부입니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관평의 눈이 반짝였다.

비록 지금껏 방황하며 살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부장 생활을 하며 강호의 생리와 세상의 흐름까지 배웠으니, 이제는 무림의 중견 고수에 준하는 경험을 손에 넣은 참이었다.

"굳이 이 시점에 제게 찾아오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 생각하나?"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실 생각이 아니라면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눈치가 빠르군."

관평의 얼굴이 굳어졌다.

"중원을 청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담사영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죽었을 리가 없지."

"놈이 먼저 전쟁을 다시 시작하겠군요."

"반드시."

"현재 놈이 숨어 있는 곳을 알고 계십니까?"

"하북 북경이라더군. 정확히는 황궁이겠지."

"그렇다면 곧장 병력을 재정비해 타격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놈은 그곳에 자신의 모든 힘을 숨겨 두었어. 신교의 모든 힘을 퍼붓는다면야 쓸어 내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문제는 아군의 피해지."

관평의 눈이 번뜩였다.

"모든 힘을 숨겨 두었다는 말씀은, 이번이 놈의 마지막 기회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군요."

"그렇지."

"철옹성 같은 방어 태세를 구축했을 겁니다. 쓸어 버릴 수야 있겠지만,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요."

서량의 미소가 짙어졌다. 진심 어린 미소였다.

‘좋군.’

신교의 병력은 곧 마인이다. 언제나 저 자신만 생각했던 관평이 마인들의 안위를 걱정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야 자격을 갖추었어.’

관평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을 이해한 것이다.

"일이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놈이 벌인 일을 보면, 놈은 웬만큼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무엇이든지."

"놈의 병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잘은 몰라. 교룡조의 숫자는 얼추 짐작이 가는데, 천룡궁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미지수야.

게다가 칠파와 삼가 병력 중 상당수가 천룡술법을 연마했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못해도 수천은 되겠지."

"거기에 황군(皇軍)까지 고려해야겠군요."

"그래."

"그렇다면……."

관평이 인상을 찡그렸다.

"확실히 피해가 클 겁니다. 게다가 그쪽 방어진에 대한 정보도 없으니."

"맞아."

"즉, 교주님께서 세상에 나오신 이유는 중원을 정리함과 동시에 담사영을 유인하기 위해서입니까?"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반만 맞았어. 네가 그랬잖아. 놈은 준비가 되면 나올 거라고."

"그랬지요. 다만, 그간의 상황을 지켜본 결과 놈은 유독 교주님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증오심이라면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 전에 기어 나올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예전의 놈이었다면 분명 그랬겠지. 하기야 사부님과 독대까지 하려고 했던 놈이니."

"이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마지막 기회니까."

관평의 눈이 반짝였다.

"설마 교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 외의 병력을 무너트릴 방법이 있지. 나아가 놈의 정신을 극도로 황폐화할 수도 있을 테고."

"……왜 여기까지 오셨는지 이해했습니다."

"조사, 확실하게 해 뒀겠지?"

"북부의 모든 흐름을 조사해 두었습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열흘 안으로 해결했으면 하는데."

"열흘…… 다소 빠듯하군요.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좋아."

의미를 알기 힘든 대화였다. 주서윤과 종리영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뜻 모를 말에 연신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물론 채여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단 들어가서 쉬시는 것이…… 음?"

관평의 눈에 놀라움이 어렸다.

"혹, 아군의 누군가가 당했습니까?"

"음?"

"아니, 마차 안에서 느껴지는 기도가…… 하나는 마 호위인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다 죽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서량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 상태로 내버려 두려고. 어지간하면 의원 손에 맡기겠는데, 목숨이 어찌나 질긴지 저 상태에서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더구만."

"누굽니까?"

"당양충이라고, 당가의 전대 가주야."

"서천사신?!"

"그래."

관평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으십니다."

서량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누군가? 당대 신교의 주인이 아닌가.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지."

관평 역시 웃음을 터트렸다.

"예, 교주님은 천마시지요."

"인정해 주는가?"

헛기침을 한 관평이 몸을 돌렸다.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습니다. 수하들에게 말해 둘 테니 푹 쉬십시오."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관평을 보며 서량이 능글맞게 웃었다.

"부끄러워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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