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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94화 (593/774)

594화. 구대천마의 제자들 (4)

오랜만에 보는 남궁단은 상당히 야윈 모습이었다.

"서 교주."

"오랜만이오."

"그렇구려."

가만히 남궁단을 보던 서량이 이내 허리를 접었다.

"……!"

남궁단은 물론 함께 있던 마동필과 관평 역시 깜짝 놀랐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미안하오."

"……."

"노선배께서 그리 돌아가시게 된 건 나 때문이오. 내가 담사영 그놈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놈이 굳이 안휘를 목표로 고수를 보내진 않았을 것이오."

"……."

"대응 역시 늦었소이다. 돌아가셨다면 진즉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마도천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내 집에 숨어 나서지도 못했소."

"……."

"이런 사과가 가주께 얼마나 큰 위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잘못 역시 분명히 있소. 꼭 사과드리고 싶었소."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남궁단이 한숨을 쉬었다.

천마신교의 주인, 당대 천하제일인이자 고금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희대의 고수가 고개를 숙였다.

굳이 대단한 위로가 아니더라도, 그 행동 하나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남궁단이 말했다.

"이만 고개를 드시오."

"……."

"당신이나 우리나 똑같이 칼밥 먹고 살아가는 인생들이오. 의와 협을 위해 검을 뽑았으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생 아니겠소."

"죽지 않아도 될 일에 죽었소."

"그렇지 않소. 나도, 그리고 아버지도 이 망가져 버린 세상을 위해 검을 뽑지 못했소. 당신이 나서기 전까지는."

"……."

"오히려 우리야말로 충분히 대비했어야 했소."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내 부친을 죽이고 본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원흉은 담사영이지 서 교주가 아니오. 그대가 내게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소이다."

남궁단이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우리야말로 서 교주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지도 모르겠소.

세상을 바로잡아야 할 정파의 명문이 내내 숨죽이고 있다가, 서 교주의 용기 있는 중원행 이후에야 검을 뽑지 않았소이까.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오."

"그리 말씀하지 마시오."

"알겠소. 하니 서 교주도 그리 마음 쓰지 마시오.

이 일은 중원을 살아가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극일 터, 서 교주는 서 교주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지 않았소이까."

남궁단이 미소를 지었다. 애써 짓는 미소였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싶었다.

"고생이 많았소, 서 교주."

서량은 나직이 탄식했다.

"철혈성에서 박대는 안 하더이까?"

"그 또한 서 교주 덕분이오. 서 교주가 철혈성에 신경 써 달라 말해 줬다고 들었소."

"내가 서 교주를 찾아온 것은, 왜 우리를 지켜 주지 않았느냐고 따지기 위함이 아니오. 그저……."

남궁단은 잠시 주저했다.

"그저 나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한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

"알겠소."

그가 마동필과 관평에게 말했다.

"남궁가주와 따로 할 얘기가 있다. 잠시 나갔다 올 터이니, 두 사람은 애들 잘 챙기고."

"알겠습니다."

"분석한 정보를 토대로 하북, 나아가 강북을 뒤흔들 것이다. 동필이는 아까 내가 말했던 내용을 서신으로 작성해 공야치에게 전달해라."

"명을 받듭니다."

"그럼."

서량이 남궁단의 어깨를 짚었다.

"가십시다."

"음?"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공기가 확 달아오르며 세상천지가 붉게 변했다.

번쩍!

일순 섬광이 터지는 듯하더니 두 사람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관평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엄청난 신법이군."

이 정도면 이미 신법이라고 부를 만한 경지를 훌쩍 넘어섰다. 전설상의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이 이러할까 싶었다.

어느새 하늘 높이 날아올라 저 멀리 야산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보며, 마동필이 말했다.

"교주님께서 명하신 걸 다 끝내고, 우리도 뒤뜰로 갑시다."

"음?"

"비무를 해 달라 하지 않았소."

"아!"

관평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그, 그럽시다. 어서 갑시다!"

* * *

후우우웅! 사박.

야산 정상 부근, 한 절벽 위에 다다른 두 사람.

서량은 무덤덤한 기색이었지만, 남궁단은 아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한 얼떨떨한 표정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증명했다.

"괜찮소?"

"괘, 괜찮소. 놀랍구려. 이게 대체 무슨 신법이오?"

"형(形)은 능공만리행이라는 본교의 비전이오. 다만 그 신법을 익힌다고 비행이 가능한 건 아니고, 그냥 허공섭물을 한껏 섞어 본 것일 뿐이외다."

남궁단이 고개를 저었다.

"정녕 괴물이 다 되셨구려."

내공을 어떤 식으로 운용했는지 상상도 되질 않는다.

이런 수법이 가능하려면 얼마나 깊은 내공이 있어야 하는지, 얼마나 섬세한 내공 운용으로 땅을 박차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남궁단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아버님의 말씀이 맞았소."

"무슨 말씀이오?"

"아버님께서는 이리 말씀하셨소. 서 교주는 스스로 괴물이 되려 하지만, 그의 성격상 진짜 괴물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그 쉬이 독해지지 않을 성정 덕분에 인간으로서 신(神)에 이른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서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 말씀하셨소?"

"그랬소. 그런 걸 보면, 아버님의 안목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소."

"……그러셨지."

서량이 뒷짐을 졌다.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오?"

"그렇소."

"가문에 관련된 얘기나 천하 정세를 논하려고 오신 건 아닌 듯하오."

"그렇소."

물끄러미 남궁단을 보던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당신이 왜 날 찾아왔는지."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안다고?"

"그렇소."

"……."

"혼란스러워하고 계시잖소. 그리고 그 혼란은, 가주 자신은 물론 주위의 누구도 걷어 내 줄 수 없는 먹구름과도 같소."

"……."

"물론 가주께서는 능히 그 혼란을 걷어 낼 수 있는 강인한 영혼의 소유자외다. 그러나 세상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할 필요는 없소이다."

서량이 눈을 감았다.

"내가 가주께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소."

가만히 서량을 보던 남궁단이 입술을 깨물었다.

"서 교주."

"……."

"나는…… 나는 말이오. 한 가문의 가주로서 너무나도 무책임한……."

그때였다.

푹.

남궁단의 눈이 커졌다.

‘어?’

어느새 한 자루 커다란 칼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그것은 평소 서량이 들고 다니는 천마도(天魔刀)와 몹시 흡사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천마도와는 달리 칼날에 자흑색 광택이 없었고, 그저 안개 같은 기운이 검붉게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남궁단이 서량을 보았다.

서량은 뜻밖에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칼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든 칼을 쥔 그의 미소는, 악랄한 마(魔)보다는 자비로운 신(神)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이, 이것은……?!’

서량이 입을 열었다.

"심검(心劍)의 묘리요."

"……!"

"내 몇 마디 말로 가주의 기분을 풀어 주는 것보다 이 편이 더 빠를 거라고 생각하오. 그리고 이 수법은……."

서량의 얼굴에 슬픔이 일었다.

"노선배께서 못난 이놈을 깨우쳐 주고자 쓰셨던 방법이기도 하오."

우우우우우웅.

천마심도(天魔心刀)가 긴 울음을 토해 냈다.

당시 남궁언이 서량의 가슴에 박은 심검보다 훨씬 더 뚜렷한 형태를 띤 마음의 칼이었다.

군림마황기의 비기, 천상천하멸가종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남궁언 이상의 경지에 들어선 서량에게 이 정도는 결코 무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츠츠츠츠츠.

천마심도의 기운, 서량이 보여 주는 새로운 세상이 남궁단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럴 수가.’

남궁단의 눈이 몽롱해졌다.

‘이것이 서 교주가 꿈꾸는 세상…….’

그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어느새 서량의 존재는 사라지고,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새로운 세상이 드리워졌다.

눈으로 보이지만, 단순히 눈으로만 보이는 세상은 아니었다. 인간에게는 오감이 분명 나뉘어 있으나, 귀로도 보이고 코로도 보이는 듯한 참으로 신묘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오감으로 세상을 느낀 남궁단은, 이내 그 환상과도 같은 광경이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어떻소? 내가 꿈꾸는 세상은."

"……평범하군."

"그렇소. 평범하오."

"평범하지만, 참으로 기운찬 세상이오."

"무사는 무사답게, 장사치는 장사치답게, 황제는 황제답게. 그러나 그들 모두 그 이상의 꿈을 좇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세상."

"……."

"중원은 너무나도 넓기에, 어쩌면 진정한 평화란 요원할는지도 모르오.

그래서 나는 완벽한 평화 따위는 바라지 않소. 분란도 있고 갈등도 있는, 그러나 지금처럼 썩어 빠지진 않은 세상을 꿈꾸고 있소."

"……그렇구려."

"변화 없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과도 같은 것. 나는 알고 있소. 내가 마도천하를 이룬다 한들 그것은 그저 한 세대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

"그래서 난 이번 세대의 마신이 아닌, 패왕이 되어 보려고 하오.

법도를 갖춘 패왕, 그저 이번 세대만큼이라도 최대한 평화롭게 통치해 보고자 하는,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 겸손한 통치자가."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가슴에 박혀 있던 천마심도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서량이 맑게 웃었다.

"부끄럽구려.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내가 그리는 세상을 보여 준 적은 없었는데."

"……."

"남궁가주의 혼란이 무엇인지 알았소. 남궁의 검사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적과 맞서 싸워야 마땅하거늘,

후일을 위한다는 이유로 노선배와 어르신들을 버려 두고 왔다는 죄책감이 크기 때문 아니오?"

"……."

"남궁 노선배는 나를 믿고 있었소. 내가 그린 세상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한발 앞서 있는 세상이리란 것을.

세상 모두를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광기로 가득한 지옥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임을 믿어 주셨소."

서량이 검지로 남궁단을 가리켰다.

"그 세상에는 가주도 있소."

"……."

"비록 가문이 유린당했다고는 하나, 우리가 다시 쌓아 올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빛나고 활기찰 것이오.

그리고 그 세상에서, 가주께서는 안휘를 잘 다스려야 할 것이외다."

남궁단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렸다.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이유란 말이오?"

"가주로서는 그렇소. 그러나 노선배께선, 가주가 아닌 당신의 아들과 자손들을 위해 적군의 발목을 붙잡으셨소."

"……."

"아시잖소?"

남궁단이 눈을 감았다. 투명한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가주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소. 그러나 남궁가의 주인이라는 무거운 짐은 잠시 내려놓고, 돌아가신 부친을 위해 아들로서 슬퍼해 주시오."

"……."

"인간이 인간의 도리도 다하지 못하면서 멋진 군주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

"충분히 슬퍼하시오. 많이 울고, 많이 울부짖으시오. 그리고 그 비통함을 잊지 마시오.

가주의 미래는, 가주의 죄책감을 솔직히 인정한 이후에야 펼쳐질 거라 내 감히 짐작해 보오."

남궁단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소리 없이 오열하는 그를 내려다보던 서량이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썩 좋지 않은 날씨였다. 그러나 흐릿한 구름 너머에 드리워진 햇살은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었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이놈의 답답한 한숨을 쉬지 않는 날이 언제쯤 올까 싶었다.

"……이틀 후, 세상을 정리하러 갈 것이오. 가주께서도 함께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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