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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95화 (594/774)

595화. 와신상담의 끝 (1)

"담사영."

"……."

"이제 준비가 끝났어."

담사영이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차츰 세상이 들어왔다.

‘천하(天下).’

그가 앉은 태사의는 평범한 태사의가 아니었다. 바로 일국의 황제만이 앉을 수 있는 황룡좌(黃龍座)였다.

다섯 개의 발톱을 지닌 황룡이 새겨진 황좌. 고귀한 핏줄 중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천하를 다스릴 자격을 얻은 자만이 앉을 수 있다는 만인지상의 자리.

황제만이 앉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지금 그가 앉아 있었다.

‘황제라.’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천하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기어이,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이로군.’

마침내 황태자마저 끌어내리고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황좌에 앉았다 하여 천하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세상은 황궁의 것도, 정파 무림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도 무림의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세상은 주인의 자리가 그저 공백으로 비워진, 끝없는 혼란만이 가득한 아수라장이었다.

담사영은 문득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 술법으로 새로이 태어난다 한들, 진정 천하를 손에 거머쥘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다스릴 수는 있을까. 만세(萬世)의 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와 버렸는지, 과연 이 길이 옳기는 한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허망하도다.’

설마하니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늘.

담사영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나 자신이 특별한 줄 알고 살아왔건만, 정작 이러한 순간이 오니 회한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인가.’

결국 나 또한, 과거 숱하게 비웃고 천대했던 무수히 많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일까.

"왜 그러지?"

담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황궁의 건물들을, 천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 와서 겁이 나는 거야?"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의미를 알기 힘든 웃음이었다.

"이건 당신이 원한 거야."

"그랬지."

"원하는 게 있다면, 설령 지옥이라도 기어 내려가 기어이 쟁취하고야 마는 독종이 당신 아니었나?"

"그랬나?"

"잊지 마. 당신은 나와 거래를 했어. 내가 영겁을 살 수 있는 영력(靈力)까지 소모해 가면서 판을 준비한 건, 전부 당신 때문이야."

"너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 네 말마따나 이건 엄연히 거래였으니까."

"……."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군."

"황태자의 의지가 굉장했어. 자아(自我)를 무너트리는 데에 이 정도로 애를 먹을 줄은 몰랐어."

"본디 무능력한 놈들이 자신감 하나는 하늘을 찌르는 법이지. 하물며 황제의 핏줄이니 오죽할까."

"어쨌든, 이제 준비는 끝났어."

우우웅.

담사영의 동공이 파랗게 변했다.

‘더 성장했다.’

천라무허신공으로 연마한 진기의 밀도가 더 높아졌다.

놀라운 변화였다. 신공을 따로 연마하거나 무도(武道)에 집중한 적이 없었거늘, 품고 있는 힘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하고 있었다.

"……혈원기 덕분인가?"

"맞아."

"혈원기는 천하 만물에 흩어진 기(氣)의 원형이니,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진기의 밀도가 올라간다는 건가."

"……."

"왜 대답이 없지?"

"솔직하게 말하면, 혈원기에 그런 능력까지는 없어."

"그럼 왜 이러는 거지?"

"모르겠어. 천룡술법의 총화, 천룡기(天龍氣)는 곧 혈원기를 보다 익히기 쉽게끔 개량하여 만든 기운이지. 말이 개량이지, 굳이 수준을 논한다면 한 등급 아래라고 할 수 있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나는 천룡기의 끝을 보았지만, 혈원기를 완전의 영역에 이르도록 연마하지는 못했어. 그럴 수밖에 없지. 혈원기의 끝을 본다는 건 곧 신화(神化)의 영역이니까."

"……?!"

"지금 당신은 혈원기를 품고 있어. 그것도 극치의 기운을. 나는 그 혈원기가 당신에게 이로우리라는 건 확신하지만, 어떤 변화를 안겨 줄지에 대해선 확실한 답을 줄 수 없어."

담사영의 눈이 매서워졌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 몸에 혈원기를 박아 넣었단 말인가."

"기억해. 그것을 원한 건 당신이었어."

"……."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는 필요 없을 줄 알았는데?"

담사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맞는 말이다. 무명과 거래를 했지만, 말이 거래지 거의 수하처럼 부리지 않았던가.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그 결과 역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준비가 끝났다고 했나."

"그래."

"생각보다 오래 걸린 만큼, 대법의 완성 역시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이 있지. 게다가 대법이 성공한 이후, 기운의 안정화를 위해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해."

"이해했다."

담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스스로를 되찾은 그의 얼굴은 기존의 욕망 넘치는 의천무제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미 지옥에 발을 디뎠거늘, 무엇이 무서워서 주저하겠는가. 세상을 어떻게 통치할지는 천하를 손에 넣은 후에 고민하겠다."

* * *

"저는 여기에 남겠습니다."

서량이 의아한 눈으로 관평을 보았다.

"왜? 이젠 더 할 일도 없을 텐데, 함께 가지?"

"교주님의 명이라면 제가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다만 그게 아니라면, 저는 이곳에서 강북 무림 자금의 흐름을 관조하겠습니다."

"음."

"하오문주와 강서상회가 손을 잡고 강북을 뒤흔든다면, 감히 짐작해 보건대 별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맞는 말이야."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면 목표를 이루고 나면 따라붙도록 해. 그때까지 부탁하지."

관평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대업을 이루시기를."

서량이 관평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나만 넘으면 돼."

"……?"

"그 하나가 무엇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겠지. 그리고 그 하나를 제어하는 순간, 너는 비로소 마(魔)를 다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관평의 눈이 빛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량이 몸을 돌렸다.

관평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그의 뒤에 도열한 지부의 마인 모두가 무릎을 꿇으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대업을 이루소서!"

열렬한 배웅을 받은 일행은 마차를 몰고 사천으로 향했다.

사천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마차가 워낙에 크고 넓어서 각자 쉬기도 편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을 무렵.

"사천이다."

드디어 일행이 사천으로 진입했다.

남궁단의 눈이 깊어졌다.

"공기가 다르군."

그간 마음을 잘 다스렸는지 눈빛이 무척이나 맑고 깊었다. 검왕(劍王)의 뒤를 잇기에 부족함이 없는 검사의 안광이었다.

주서윤이 말했다.

"사천 도맥의 정점이라는 청성산의 솔바람은 사천성 전체를 아우를 정도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군요. 공기가 무척이나 탁해요."

서량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어디 청성뿐이겠느냐. 불가의 성지라는 아미산에서도 악기(惡氣)가 요동치고 있잖느냐."

그간 유독 잠잠했던 주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들은 그런 게 다 느껴지나?"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기(氣)에 민감하니까."

남궁단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느끼는 것과 서 교주가 느끼는 것엔 꽤 차이가 있을 것이오. 우리는 그저 느낌만 알 뿐, 서 교주는 그보다 훨씬 더 넓고 깊게 볼 테니까."

"그렇소. 이건 마치 전쟁터 같군. 사천성 전체가 전화에 휩쓸린 것처럼 공기와 분위기가 혼탁해."

그때, 채여민이 말했다.

"마치 불이 난 것 같아요, 오라버니."

일행이 뜨악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채여민이 눈을 끔뻑였다.

"왜요?"

서량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느껴지더냐?"

"네. 어라? 다들 느끼는 거 아니었어요?"

채여민이 종리영을 보며 물었다.

"종리 사형도 느껴지잖아요. 그렇죠?"

종리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충동을 혼신의 힘을 다해 억눌렀다. 그의 감각으로는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에엑?"

서량이 채여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민이가 원체 기(氣)에 예민해서 그런 거다. 영이가 못난 게 아니야."

"어…… 그, 그런가요?"

남궁단이 말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다 뒤집어엎으려고 온 건 우리 쪽이외다. 일을 터트려도 우리가 먼저 터트릴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시오."

"음."

남궁단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황제 주청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최고급 무공을 익힌 걸물들이다. 이 중 제일 약한 채여민만 해도 어지간한 일류 고수를 거뜬히 상대할 무공의 소유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고수를 상대하는 것과 집단을 상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물며 사천성의 첫 목표는 독과 암기로 유명한 당가였다.

"괜찮겠소?"

"괜찮소."

서량이 한쪽 눈을 찡끗거렸다.

"나 혼자 쓸어 버릴 거니까."

"……!"

사천성으로 진입한 후, 마차는 더더욱 속도를 냈다.

그토록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도 진동과 소음이 거의 없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덕분에 마차에 탄 일행은 체력이나 심력 소모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다시 이틀 뒤.

마침내 일행이 사천성 성도(成都) 인근에 도달했다.

"동필아."

마부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교주님."

"마차 세워라."

히히히힝!

여덟 마리의 신마(神馬)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서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오겠다."

덜컹!

마차의 문이 열렸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밖으로 나간 서량이 어딘가를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우우우웅.

아직도 죽지 않은 당양충이 축 늘어져 허공에 떠올랐다.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물론 의원에게도 보이고 서량이 원정을 다스리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 영양의 공급이 없었는데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그만큼 당양충의 경지가 지고(至高)하다는 뜻이었다.

마부석에서 내린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쥐었다.

"저는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뜻밖의 말이었다. 밀착 호위로서 어떤 일이 생겨도 서량과 함께하려 하던 마동필답지 않은 말이기도 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내가 싫어진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마동필이 웃으며 마차를 보았다.

"교주님께서 지키고자 하시는 것까지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하하하!"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던 서량은 이내 말 한마디 없이 땅을 박찼다.

후우웅!

공기가 요동친다 싶더니, 어느새 그와 당양충이 허공을 날았다.

당가는 성도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차가 정차한 곳에서 직선으로 족히 이십 리는 떨어진 거리였다.

하지만 그 정도 거리는 서량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도의 하늘을 가로지르던 서량의 두 눈에 일순 살기 넘치는 전광(電光)이 이글거렸다.

마침내 저기, 사천당가가 보였다.

일개 무가(武家)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영역을 잡아먹고 있는 독과 암기의 종가가.

서량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번쩍! 콰아앙!

만압금마장(卍壓禁魔掌) 일격에 커다란 대문은 물론 현판과 돌벽까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으아아악!"

"뭐, 뭐야?!"

"적이다!"

스르르륵.

대문이 무너진 자리에 내려선 서량이 담담하게 선전 포고를 했다.

"천마신교의 삼십육 대 교주 서량이다."

"……!!"

"당가를 세상에서 지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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