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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598화 (597/774)

598화. 와신상담의 끝 (4)

"이것이 그 제단인가?"

"그래."

사방이 꽉 막힌 공간.

엄청나게 높은 천장의 한가운데만 동그랗게 뻥 뚫려 있는데, 그곳에서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아직 정오가 아닌지라 구멍에 태양이 선명하게 들어차지는 않았다.

‘황태자.’

담사영은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제단을 보았다. 그중 오른쪽 제단에는 황태자 주천양이 누워 있었다.

주천양은 죽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숨을 무척이나 느슨하게 쉬는데, 피부가 죽은 사람의 그것처럼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담사영의 눈이 일렁였다.

‘미안하군.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지금껏 주천양의 비위를 맞춰 준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기실, 그는 진심으로 황제라는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황제는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리다. 신(神)으로 받들어지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세상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담사영이 바라던 일이었다. 적어도 이천상을 보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천하를 굽어보는 신이 되고자 했거늘, 당장은 그러기 힘들다는 뜻인가.’

주천양은 훌륭한 사냥개였다. 먹이만 제때 챙겨 주면 절대 주인을 물지 않는 사냥개.

그를 황제로 세우고, 황좌 뒤에서 천하를 군림하는 것. 무림이라는 세상의 신(神)이 되어 서서히 제국과 통합, 이후 황제조차도 무릎 꿇릴 수 있는 진정한 절대자가 되는 것.

담사영이 꿈꾸는 신은 그러한 존재였다.

‘내가 황제가 되면, 싫든 좋든 천하를 다스릴 수밖에 없어. 내가 오롯이 군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또다시 바빠질 것이다.’

그가 천장의 구멍을 올려다보았다.

구멍으로 새어 들어온 빛이 담사영의 두 눈을 아프게 찔렀다.

‘이천상.’

구대천마 이천상.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심지어 저 하늘조차 두려워한 전무후무한 절대마신.

담사영은 이천상을 만난 이후 한동안 지독한 공포에 시달렸다. 의천맹이라는 큰 기반도 잃었고, 수일간은 다시 천하를 도모할 욕망조차 품지 못했을 정도였다.

며칠간의 공포, 며칠간의 고뇌.

그 며칠이 담사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진정한 천하제일이란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

그렇다. 담사영은 이천상이 되고 싶었다.

이천상만큼 압도적인 힘을 휘두를 수는 없지만, 이천상처럼 천하를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세상은 만만치가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만, 또한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네 영혼은 불살라져 구천을 헤맬 터이지만, 네 몸에 흐르는 피와 몸뚱이는 천하를 거머쥘 것이다. 물론…… 아주 잠시뿐이지만.’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황태자를 내려다보는 그의 미소는 뜻밖에도 무척이나 씁쓸했다.

‘너를 자식처럼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사냥개였을 따름이야. 하나 막상 네 몸뚱이를 이용한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구나.’

가만히 황태자를 내려다보던 담사영이 입을 열었다.

"언제 시작할 거지?"

"일각 후. 태양이 저 구멍에 정확히 들어맞을 때."

"슬슬 준비해야겠군."

담사영이 몸에 걸친 장포를 벗었다.

실오라기 하나 남지 않은 그의 몸은 나이답지 않게 무척이나 탄탄했다.

단리후, 아니 무명이 하나 남은 팔로 좌측 제단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담사영이 제단 위에 누웠다.

‘차갑다.’

피부에 닿는 제단의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무명이 말했다.

"구결은 외우고 있지?"

"물론."

"혈원기가 제대로 발동하기 시작하면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덮칠 거야."

"짐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무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그림자 속에 일흔두 명의 술사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술사들의 술력이 당신의 영력을 안정적으로 인도할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전자의 의지이니, 제아무리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도 어떻게든 참고 구결을 외워야 해."

"그리 강조하지 않아도 돼."

"아니,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아."

"그 정도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섬세한 작업이야. 하지만 그 작업 자체는 우리가 담당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짜 걱정스러운 건 당신의 의지력이지."

무명의 눈이 깊어졌다.

"장담컨대, 정말 상상도 못 할 만큼 고통스러울 거야. 당신이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수준의 고통일 테지."

"빨리도 말해 주는군."

"이런 건 빨리 알게 돼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 또한 그렇지."

무명이 담사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마치 죽은 사람의 손처럼 차가웠다. 제단보다도 더.

‘하긴.’

단리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단리후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천룡궁 역사상 최고, 최악의 궁주라 불리는 무명이니까.

담사영이 눈을 감았다.

‘재미있군.’

참으로 화려한 인생이 아닌가.

사람을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무기 따위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있었고, 진심으로 위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든 사람이 죽거나 도망쳐 버렸다. 마치 풍화되어 차츰 깎여 나간 바위처럼, 그의 인생을 만들어 준 존재들이 하나둘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그의 곁에는 망령만이 남았다.

천룡의 의지를 품고 있는, 멀쩡한 육신도 없는 최악의 망령만이.

그때, 건물 밖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총수님!"

심상치 않은 목소리였다.

담사영이 재차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저희와 계약한 상단과 전장들이 일제히 거래를 끊겠다고 나섰습니다!"

"뭐?"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 그것이…… 현재 강북의 자금 흐름이 마구 요동치고 있답니다! 자금 손실을 우려한 그들이 이쪽과의 거래를 끊고, 계약 파기 금액을 석 달 뒤에 보내겠다고 합니다!"

담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자기 거래를 끊겠다니? 이것들이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것인가?

무명이 말했다.

"진정해. 곧 대법이 시작돼. 최대한 평정을 유지해야……."

"평정을 유지할 상황이 아니야! 놈들이 물자를 보내 주지 않으면……!"

"굶겠지. 한데 그게 뭐?"

"미친! 대법의 완성과 안정화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할 수도 있다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황궁의 비품으로는 지금의 병력이 버틸 수 없어! 난리가 날 거란 말이다!"

"도망치거나 난장을 부리겠지. 하지만 이곳은 절대 건드릴 수 없어. 화경의 고수도 뚫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요새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그래서 포기하겠다고?"

"……!!"

"당신 휘하의 병력이 다 사라진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뭐? 어차피 대법만 성공하면 병력이야 다시 모을 수 있어."

"빌어먹을! 저만한 병력을 모으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

"오래 걸리기야 하겠지. 하지만 이 대법은 지금 이 시기, 이 정도 준비가 아니고선 천 년이 지난다 한들 불가능해."

"……!"

"상상해 봐. 대법만 성공하면, 당신은 이렇게까지 준비할 필요 없이 홀로 대법을 구사할 수 있어. 살아 있는 신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제기랄."

"게다가 복수도 해야지? 설마 당신, 대법 없이도 마교주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자, 이제 정말 정오가 다 되어 가. 누워서 마음을 다스려."

부러질 듯 세게 이를 악물던 담사영이 다시 제단에 누웠다.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든 버티라고 하라! 어떻게든!"

"아, 알겠습니다!"

잠시 후.

후우우웅.

마침내 태양이 천장의 구멍에 꼭 맞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태양 빛은, 각 제단에 누워 있는 담사영과 황태자의 몸을 완전하게 뒤덮었다.

무명의 두 눈에서 시퍼런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시작한다."

술사들이 음산한 목소리로 기묘한 주문을 읊조렸다. 중원의 언어가 아닌 범어(梵語)였다.

츠츠츠츠츠.

술사들의 몸에서 시커먼 안개가 뿜어져 나와 제단 주변을 감쌌다.

우우우우웅.

무명의 손이 담사영의 이마를 짚었다.

"구결을 외워."

담사영이 눈을 감은 채 입을 달싹였다. 그가 외는 구결 역시 범어로 된 기괴한 주문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번쩍!

무명의 안광이 붉게 물들었다.

동시에 담사영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 * *

"뭐?"

서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용신일원공(龍神一原功)이?"

"그렇다네."

주청이 가슴에 손을 올렸다.

우우웅.

단전에서 올라온 끈적끈적한 기운이 그의 중단전을 감쌌다.

"전에 말한 바 있을 것이네. 용신일원공은 역대 황제들이 익히는 양생술(養生術)의 극치라고. 생명력이 놀라우리만치 증폭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게으른 황제라도 일원공의 수련만큼은 빼먹지 않지."

"알아. 들었어. 그리고 용신일원공을 익힌 자는 다른 내공을 연성할 수 없다는 것도."

"그렇다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한데 방금 그 말은 뭐야? 용신일원공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그렇다네."

주청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일원공은 양생의 극치이면서 동시에 상생의 극치이기도 하네. 익힌 자들끼리 가까이 있으면, 지닌 바 생명력이 극대화하기도 하지."

"……?"

"천양 그놈도 일원공을 익혔어. 하지만 방금, 과거 녀석에게서 받았던 일원공의 기(氣)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네."

"뭐?"

"내 몸에, 이 단전 안에 깃들어 있던 녀석의 일원기가 사라졌단 말이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서량의 눈이 번쩍였다.

"죽었다고?"

"……."

"그럴 리가……. 아니, 한데 떨어진 거리가 얼마고 기를 받아들인 시기가 언제인데 그게……."

"그건 놈이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야."

"용신일원공을 익히면 무공을 익힐 수 없다며?"

"그래. 하지만 내가 녀석의 일원기를 빼앗아 버렸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말일세."

"……?"

"그 이후, 녀석은 내공을 익혔네. 바보 같은 짓이었지. 일원공의 그릇에 내공이 담겨 있으니, 내게로 넘어온 일원기가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게야."

주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 또한 가정에 불과하네. 그저 일원공을 오래 익힌 나의 짐작에 불과하지."

"……."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내 몸에 남아 있던 녀석의 일원기가 사라졌다는 것은 녀석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말과 같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주청이 말했다.

"내, 어지간해서는 직접 보거나 듣지 않으면 속단하지 않는 사람일세. 하지만 그냥 별일 아닐 거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찝찝하네."

"결국 감이로군."

"그렇다네. 무시할 수 없는 감이지."

"그렇군."

"물론 믿기지 않겠지. 기(氣)에 영성이라도 실리지 않는 이상 그런 것이……."

그때, 서량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아니, 믿는다."

"……?"

"나도 방금 읽었거든."

"읽다니? 무엇을?"

서량이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놈의 욕망이 느껴지지 않아."

"뭐?"

"담사영, 그놈의 욕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고. 마치 죽어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주청은 깜짝 놀랐다.

"설마 담사영과 천양, 두 놈이 다 죽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지.

한참이나 동쪽을 노려보던 서량이 마동필을 불렀다.

"지금 당장 총군사에게 연락해라. 연락해서, 전에 내가 전달했던 삼 계(三計) 중 일 계(一計) 사 장(四章)일 확률이 높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서량이 차갑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막 나가겠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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