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600화 (599/774)

600화. 와신상담의 끝 (6)

"소 장군."

"……."

"이제 정말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소이다."

소공휘는 묵묵부답이었다.

이효는 가슴을 쾅쾅 쳤다.

"소 장군! 휘하 병사들이 쫄쫄 굶고 있소이다! 벌써 천 명이 넘게 쓰러졌소!"

"알고 있소."

"알고 있다면 어서 결단을 내려 주시오! 이대로 가다가는 황군 전체가 아사하게 생겼단 말이오!"

"……."

"소 장군!"

"황명이오."

소공휘의 표정 역시 썩 좋지 못했다.

"우리는 황제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외다. 황궁 전체를 사수하라는 명이 떨어진 지금, 군량이 바닥났다고 황실을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보시오, 소 장군. 내가 지금 배신을 하자는 게 아니잖소?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황군 모두가 싸워 보지도 못하고 굶어 죽게 생겼소이다."

이효는 좋은 말로 소공휘를 달랬다.

"생각해 보시오. 우리 황군이 어떤 군이오? 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황궁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지만, 오로지 충심(忠心) 하나로 지금껏 이 자리를 지켜 온 강단 넘치는 군대외다."

"……."

"소 장군도 아시지 않소? 우리 정예 황군이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를! 그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 내고 새외의 마적단과 맞서 가며 커 온 우리는 황궁의 마지막 보루요!"

"……."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무너져선 안 된단 말이오."

"폐하를 위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이 자리를 사수해야만 하오."

"이 자리를 제대로 사수하려거든 일단 목숨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할 것 아니오!"

소공휘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병력을 차출하여 백성의 곡식을 수탈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백성 역시 황제 폐하의 소유물인바, 허락도 없이 그런 짓을 벌일 수 없소."

"그 허락을 받아야 할 분께서 황궁 비지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계시잖소!"

순간 소공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 장군. 심정은 이해하지만 언사는 바로 하시오."

"……!"

"한 번만 더 폐하께 불충 어린 언사를 내뱉는다면, 그때는 좌시하지 않겠소."

이효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소?"

"……."

"그리고, 내 이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소만."

"그만하시오."

"저분은 황제 폐하가 아니외다. 황태자 전하일 뿐이오."

"닥치시오!"

소공휘가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 안 계신 지금 황궁의 주인은 황태자 전하시오! 나아가, 황태자 전하께서는 적법한 황통이시오! 황제라 자칭하셨다고는 하나, 그것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우리도 그분을 폐하라 여겨야 마땅할 것이오!"

"……."

"더는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저 상부의 명령에 충실하면 그뿐이오."

"소 장군."

"그것이 바로 군인이오! 죽으라면 죽고, 이기라면 이기고, 충성하라면 충성하면 되는 거요!"

이효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리 생각하지 않소."

"뭐라?"

"우리에게는 권한 이전에 의무가 있소. 황군을 온전히 보전해야 할 의무가."

"……."

"이 의무는 신성한 것이오. 황태자 전하, 아니 폐하께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소. 총수? 그는 믿을 수 없는 자요."

"그를 믿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오."

"군주의 안위를 위해 간신배를 쳐 내는 것 역시 충신의 의무요."

"당신이 의무를 말한다면, 나는 끝까지 권한을 말하겠소. 때로는 의무보다 권한이 우선시되어야 할 때도 있소."

"정말 답답하구려. 하면, 정녕 소 장군은 우리의 전우이자 아끼는 수하들이 굶어 죽는 꼴을 그저 지켜만 보겠단 것이오!"

"우리는!"

소공휘의 눈에 핏발이 섰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배신이란 걸 했소."

"……."

"상황(上皇)께서 살아 계신지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황태자 전하를 폐하로 모셨소. 그것 자체가 배신이요, 역모나 다를 바 없는 짓거리란 말이오."

"……."

"나는 배신을 두 번이나 저지르고 싶진 않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소."

"소 장군은 그렇겠지. 하지만 우리 병사들도 소 장군과 생각이 같진 않을 거요."

"이 장군!"

소공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르릉.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군검을 뽑아 든 그의 눈빛은 엄청나게 살벌했다.

"군법은 엄격한 것이오. 이 장군처럼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달리 하는 것은 군인으로서의 소양이 부족한 것이오."

"……."

"군에 소속된 순간 상관의 명에 절대복종해야 하는 것이 군대요. 나는 우리 병사들이 고통스러울지언정 나의 판단을 이해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소."

"그럼 내 휘하 병사들만 끌고 나가겠소."

"이 장군!"

이효가 차갑게 말했다.

"더는 고집불통인 당신과 함께 황군을 운영할 수 없소."

"당신, 정녕 죽고 싶은 것인가!"

"당신은 나를 군법을 무시하는 소인배라 욕하겠지만, 나와 무수히 많은 장병들은 당신을 제 새끼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무능력한 졸장이라 비웃을 것이오."

순간 소공휘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쾅!

강력한 일검에 철제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굉장한 용력이었다. 내공을 싣지 않았는데도 일검에 철제 탁자를 쪼개는 힘, 과연 일국의 장군이라 불릴 만한 무용이었다.

이효의 눈이 흔들렸다.

촤르르르륵.

그의 갑옷 겉면을 덮고 있던 철 비늘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소공휘의 검력에 휩쓸려 갑옷이 박살 난 것이다.

‘무섭구나.’

담사영 패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 황궁제일검사로 불리던 자가 바로 소공휘였다.

과연 그런 말을 들을 만한 무용이었다. 창이 있다면 모를까, 같은 검으로는 십 합도 제대로 받아 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

신경질적으로 납검한 소공휘가 몸을 돌렸다.

"꺼져라."

"……."

"네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백성을 수탈하고 싶다면,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야 할 것이다."

"……."

"네놈이 병사들을 이끌고 황궁을 나서는 순간, 본군은 너희를 뒤쫓아 공격할 것이다."

"소 장군!"

"마지막 기회다. 나가라. 나가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목을 벨 것이다."

이효의 눈에 짙은 살의가 일렁였다.

‘정녕 그따위로 나오겠다, 이건가.’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었다.

같은 장군이지만, 소공휘는 이효보다 한 계급이 높았다. 기실, 대장군이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소공휘였다.

그것만으로도 배알이 뒤틀렸거늘, 결국 이 관계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다 네놈 탓이다.’

슥.

이효가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를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았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내공으로 소음을 차단하는 기술, 상당한 진기 운용법이었다.

소공휘의 등이 보였다.

이효가 단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죽어!’

그때였다.

"자, 장군님!"

깜짝 놀란 이효가 황급히 단검을 숨겼다.

소공휘가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묻질 않느냐!"

"바, 밖에……."

병사가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황궁 성문 앞에…… 상황 폐하께서 와 계십니다."

소공휘와 이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 *

주청의 눈에 복잡한 빛이 깃들었다.

"참으로……."

황궁 주변을 에워싼 안개는 몹시 음산했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안개가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안개가 끼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무서웠다.

이 심상치 않은 안개가 품고 있는 악의로 얼룩진 황궁의 위엄이 안타까웠다.

"참으로 많이 변했구나."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맨 지 수 년이 지났다.

하지만 주청에겐 다시 황궁을 보는 것이, 그리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혈고에 중독되어 수년 동안 정신을 잃었으나,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기에 시간의 흐름조차 잊었다.

오랜만이지만, 또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제국의 상징인 황궁은 어느새 귀신 소굴로 변해 버렸다.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군."

"……자네라면 신교가 이런 꼬락서니가 된 것을 보고도 기분이 좋을 수 있겠는가?"

"하긴."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나 역시, 황궁이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다."

주청은 황궁에 드리워진 음습한 분위기만 읽었겠지만, 서량은 그가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엄청나군.’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혈신기가 잔뜩 모여 있다. 중원에 뿌린 혈신기를 전부 끌어모으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다.

황궁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는 당장이라도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갈 것처럼 폭발적인 힘을 숨기고 있었다.

그 힘이 어찌나 큰지, 지금의 서량조차도 일순 막막함을 느낄 정도였다.

‘내 무공으로도 깨부수기 힘들겠군.’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게 하나 있긴 했다.

‘멸가종무.’

군림마황기 최종 비기, 천상천하멸가종무라면.

그 무적의 절기라면, 황궁 전체를 뒤덮은 이 안개를 걷어 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도박이었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한들, 흩어져 버린 안개가 무슨 작용을 할지 감이 서질 않았다. 어쩌면 진짜 중원 전체로 퍼져 천하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만큼이나 농축된 힘을 깨부수기 위해선 서량 역시 멸가종무를 전력으로 퍼부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서량 역시 잠시나마 전력이 대폭 감소한다. 그저 칼질에 자신이 좀 있는 고수가 와도 막기 힘든 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름의 방비를 해 두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막강한 방벽을 세워 두었을 줄이야.’

우우우웅.

서량의 두 눈이 청홍의 마기를 뿌렸다.

‘역시, 그 수법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야.’

그때, 주청이 말했다.

"서 교주."

"엉."

"어떤가? 그 소림 방장의 말마따나, 이곳에 담사영이 있다면 이대로 공격해도 되지 않겠는가?"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담사영 휘하의 병력이 무서워서가 아니야. 바로 저 안개 같은 방벽 때문에 공격할 수가 없어."

"그 정도인가?"

"약한 소리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설령 저 안개를 뚫고 황궁을 박살 낸다 한들 담사영을 죽일 자신은 없어. 일대일 대결이라면 쉽겠지만 말이지."

"그렇구먼."

주청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미안하네. 자네가 안 된다고 한 거면 정말 안 되는 것인데, 괜히 고집 한번 부려 봤네."

"별걸 다 사과하는군."

"하면, 시작하겠네."

"그래."

서너 걸음 앞으로 나온 주청이 일순 엄청난 목소리로 외쳤다.

"게 듣고 있느냐!"

우우우웅.

굉장한 울림이 깃든 외침이었다.

그 한 번의 외침으로 공기가 요동칠 정도였다.

내공도 없는 노인의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또한 그 목소리에 실린 위엄은, 바로 뒤에 서 있는 서량조차 놀랄 정도로 대단했다.

‘과연, 일국의 황제란 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닌 모양이군.’

주청이 연이어 외쳤다.

"나는 대열제국 사십이대 황제 대락금천조종(大樂金天祖宗) 만국제(萬國帝)의 황자(皇子)이자 사십삼대 황제로 추존된 창황(蒼皇) 주청이다! 적법한 황통이라는 변명 아래 황제를 시해하려 한 황태자 주천양 외, 그를 따라 역모에 가담한 희대의 역적들은 당장 이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어라!"

길지 않은 말에 그간 꾹꾹 눌러 담고 있던 온갖 감정이 묻어 나왔다.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무림인들의 전쟁에 휘말려 이제야 제집으로 돌아온 황제의 울분.

주청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이놈! 주천양! 살아 있다면 당장 이 애비 앞으로 뛰쳐나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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