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601화 (600/774)

601화. 깨어나다 (1)

쿠르르릉.

"음."

무명의 눈이 번뜩였다.

‘잘 연결됐어.’

황궁 전체를 에워싼 혈신기의 안개를 관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빛.

그것이 바로 태양의 일신기(日神氣)였다. 태양이 가장 선명한 빛을 발하는 정오에 제탁술법(制濁術法)이 깔린 천장의 구멍을 통과하여 불순물이 여과된, 더없이 순수한 천양(天陽)의 기운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운이 고스란히 내리꽂히는 두 제단에는, 두 번의 보름에 걸쳐 모은 천음(天陰)의 기를 집약시켜 두어 시술자의 혼(魂)을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이후 끌어내린 혼에 귀기(鬼氣)를 쬐어 타락시키니, 멀쩡한 영혼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망령(亡靈)이 된다. 이를 음혼(陰魂)이라 한다.

그렇게 주천양은 음혼이 되었다.

그 음혼은 일신기를 버티지 못하고 흩어질 것이며, 이는 곧 밝음으로 어둠을 쫓는 대자연의 섭리를 이용한 자연스러운 출령(出靈)이다.

즉, 주천양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죽는 것이다. 신체에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은 채.

‘그리고.’

우우우우웅.

순수한 일신기가 이내 담사영이 품고 있는 혈원기와 동조했다.

일신기는 곧 생명의 근원이다. 극에 이른 일신기가 충분한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 들어가면 죽지 않은 채 승천(昇天)하는 것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그 또한 신화(神化)의 영역이다.

다만 말이 충분한 깨달음이지, 실제로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는 것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세계의 이치, 대자연의 섭리를 관통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한 그 경지는, 무도(武道)로 보면 화경의 극치를 이루고 입신(入神)의 영역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만 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입신의 영역을 들여다볼 수준이면 굳이 일신기가 필요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때가 되면 시간이 문제일 뿐, 혼자 힘으로도 충분히 신화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인세에 속한 자를 강제로 신화의 경지에 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술법은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이동하는군.’

무명의 눈이 칠채색을 발했다.

‘그래, 잘하고 있어.’

담사영은 알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혼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혼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욕망이 엉망진창이었다는 뜻과 같다. 그의 욕구는 누구보다 지독했지만, 정작 그 욕구에 순수하게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담사영 역시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을 느꼈다는 뜻이다. 자신 때문에 패망한 문파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완전히 잊진 못한 것이다.

다만, 그러한 죄책감보다 손에 쥔 권력과 힘에서 오는 기쁨이 만 배는 더 크기에 티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담사영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수히 탄생할 여느 악인과 똑같은 인간이다.

악업(惡業)이라는 걸 인지했음에도 죄를 저지르는, 나중에는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폭주하는 흔한 악인.

이제 그 악인의 영혼에 얼룩진 탁기를 불살라 순수한 영령으로 만들어, 또 다른 육신을 차지하게 만들면 된다.

‘담사영. 당신, 그거 알고 있어?’

칠채색으로 빛나는 무명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악해 보였다.

‘이로써 우리의 거래는 절대로 깰 수 없는 맹약으로 얽히게 되는 거야.’

그녀는 희대의 술사로서, 언령(言令)으로 얽힌 거래를 멋대로 파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담사영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부도덕한 사람이며, 필요하다면 제아무리 지독한 거짓말이라도 줄줄 뱉을 만한 이였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으리라. 이유인즉, 이 술법으로 새로운 몸을 얻는 순간 단순히 천룡기(天龍氣)를 익힌 무인을 넘어 지고의 술법가가 될 테니까.

‘당신의 천하는, 곧 나의 천하라는 거지.’

천하가 담사영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때는 중원 땅 전체를 천룡의 세상으로 만들리라.

그때였다.

"신장님!"

무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현재 황군 전군(全軍)이 황궁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무명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황군이?!"

황군의 숫자는 수만이나 된다. 그 많은 황군이 왜 갑자기 황궁을 나선단 말인가?

"화, 황궁 앞에 상황 폐하께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황군은 상황 폐하를 알현키 위해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

무명의 눈이 흔들렸다.

상황이라 함은 전대 황제를 뜻하는 것이고, 전대 황제라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창황 주청!’

설마하니 주청이 모습을 드러냈을 줄이야.

비록 죽은 단리후의 몸을 차지했지만, 그녀는 단리후의 기억 상당 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원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주청이 왜 지금에야 모습을 드러낸 건지도 나름의 분석이 가능했다.

‘알아챈 거다.’

무명의 얼굴에 다급함이 일었다.

‘알아챈 거야.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실, 그건 아군과 거래하던 상단들의 갑작스러운 거래 중지 사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명은 다르게 생각했다. 애초에 대법 준비에 힘을 쏟던 그녀로서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상단들이 거래 중지를 선언한 까닭은 하북만이 아니라 장강 이북 전체가 어수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놈들은 이곳에 담사영의 모든 전력이 집결해 있음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집결된 병력 중 숫자로는 가장 큰 황군을 뽑아 먹기 위해 이 자리에 나타났으리라.

"……는?"

"예?"

무명이 침을 삼켰다.

"마교주는? 설마 마교주도 함께 온 것이냐?"

그녀는 제발 아니길 바랐다.

물론 정말 마교주가 왔다 한들 황궁 전체에 드리워진 혈신기의 진법을 깨트릴 수는 없다.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안했다.

한 번의 만남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본 마교주는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마귀 같은 인간이었다. 설령 이곳까지 침입하지는 못하더라도, 필경 이쪽이 예상치 못하는 계략으로 아군에 심각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함께 왔습니다."

"……!"

"혹시 모를 마교주의 공격을 대비키 위해 황궁 전체에 비상을 걸었습니다. 다만, 마교주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합니다."

"믿을 수 없다."

무명이 이를 악물었다.

"마교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 심지어 그의 무공은 당대 최고다. 아군의 모든 병력을 총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죽일 수는 없어."

상대할 수는 있다. 아니, 정말 힘 대 힘으로 붙는다면, 어쩌면 마교주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마교주가 너무도 영악하다는 데에 있다. 그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라도 도주를 감행할 것이다.

이곳에서 도주하는 마교주를 따라잡을 만한 고수는 한 명도 없다. 즉, 정면 승부를 벌인대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삼 놀랍구나.’

참으로 불합리한 강함이다.

제 스승인 이천상은 단신으로 의천맹을 불살라 버리더니, 그 제자인 서량은 화경의 극치에 올라 그 말도 안 되는 힘을 욕망대로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화경의 극치란 곧 기(氣)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능히 선보일 수 있는 경지.

당대 최고의 술법가인 무명조차도 일대일 승부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무적자가 서량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술법을 펼쳐 봐야 서량의 눈에는 그저 또 하나의 무공처럼 해석이 될 테니까.

‘다만.’

무명은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

‘혈신기의 진법은 그야말로 절대무적이라 할 만하다. 죽은 이천상 정도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방벽을 부술 수 없어. 설령 마교주가 이 방벽을 깨부순다 한들, 지쳐서 검 한번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서량이 내린 답과 비슷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그만큼 이 진법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무명이 담사영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은 담사영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호흡 역시 당장이라도 멎어 버릴 것처럼 느렸다.

‘상관없다. 이 대법만 성공하면, 남은 병력이야 어찌 되었든 다시 천하를 거머쥘 수 있어.’

담사영이 깨어나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길길이 날뛰겠지만 별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황궁의 병력보다 이 대법이 만 배는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명을 내리겠다. 만일 놈들이 수상한 짓을 벌이거나 황궁에 들어오려 한다면, 그때는 황궁의 전 병력을 투입해서라도 막아야만 한다."

"신장님의 명을 받듭니다!"

무명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어.’

시체와 피로 쓸 수 있는 술법도 많다. 물론 그 정도로 마교주를 죽일 순 없을 테지만, 최소한 잠시나마 발목을 붙들어 둘 수는 있을 것이다.

‘담사영. 어서 힘을 내.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하루 만에 끝날 수도, 보름이 걸릴 수도, 석 달 열흘이 걸릴 수도 있어.’

* * *

"폐, 폐하!"

황궁 대문을 열고 나온 이효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 뜨였다.

‘진짜 폐하시다!’

고약한 병에 걸려 쓰러지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 건강해지신 것 같았다.

속임수인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속임수 따위가 아니었다. 저 특유의 위엄과 강렬한 눈빛, 조금 전의 살 떨리도록 무서운 호통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이효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신(臣), 황궁이장(皇宮二將) 이효가 상황 폐하를 뵙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이만의 병사들이 동시에 오체투지를 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순간 주청의 두 눈이 강렬한 살기를 뿜었다.

"이놈들! 누가 상황이라는 것이냐!"

쩌어어엉!

다시 한번 공기가 요동쳤다.

그간 억눌러 두었던 분노와 한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주청의 호통은 이효를 넘어 이만의 황병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쩌렁쩌렁했다.

"짐은 누구에게도 황위를 이양한 적이 없다! 한데도 감히 날 상황이라 칭하는 것이냐!"

"폐, 폐하!"

이효는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나, 당대 폐하께서……."

"이놈!"

"죄, 죄송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라 만천하에 황제임을 주창하셨으니, 저희는 그저 전하께 고개를 조아릴……."

"닥치지 못하겠느냐!"

주청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세상 어떤 황태자가 옥새도 없이 황위에 오를 수 있단 말이더냐! 그 옥새가 아직도 내 손에 있거늘, 감히 황제를 자칭해?!"

"……!!"

"비록 문관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일국의 신하라는 네놈들은 나부터 찾으러 다녔어야 했다! 감히 역적을 황제라 부르며 고개를 조아린 죄,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을 것이다!"

"폐, 폐하?!"

"부끄러운 줄 알거라, 이놈! 마음 같아선 오체를 분시하고 싶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결할 기회를 주겠다."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던 주청의 두 눈은 어느새 얼음장 같은 냉기를 뿜고 있었다.

"자결하라. 너희 모두!"

이효가 이를 악물었다.

‘이런 미친……!’

명분이 생겨 이만 병사를 이끌고 나왔거늘 자결이라니? 살기 위해 황궁을 나섰거늘, 여기서 죽으라니?

"……폐하."

"뭣들 하고 있느냐! 당장 자결하지 못할까!"

"그럴 수는…… 없사옵니다."

"뭐라?!"

이효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황궁은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한 상황입니다. 저희 역시 백 번, 천 번이라도 자결하고 싶으나, 저희까지 사라지면 상황 폐하를 모실 충신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네깟놈이 감히 황제의 명령에 토를 단단 말이냐?"

"폐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이놈!"

그때, 황궁의 대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자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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