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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03화 (602/774)

603화. 깨어나다 (3)

"정리하겠습니다."

초해의 어조는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사천삼강(四川三强)을 멸문시킨 후, 섬서에서 혜심대사를 필두로 한 소림의 전력과 접선하셨습니다. 이후 황궁으로 이동, 오만 육천의 황군을 데리고 남하하시는 중입니다."

"음."

"놀랍게도 황궁에서는 별다른 부딪침이 없었다고 합니다. 교주님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황궁을 뒤집어엎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상당히 의외입니다."

공야치가 고개를 저었다.

"진짜 황궁을 공격할 생각이셨다면 병력을 더 끌고 오셨을 것이네. 물론 아군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수진 위주로 데려오셨겠지."

"물론 그러셨겠지요. 다만, 교주님께서 한 번씩 의외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십니까? 문만 열면 담사영을 만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황군만 데려오시다니,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만일……."

공야치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몇 달이나 깎지 않은 수염은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라나 턱을 뒤덮고 있었다. 조만간 깔끔하게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말을 이었다.

"만일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직접 들어가시긴 했을 걸세."

"예?"

"상대는 담사영일세. 그리고 담사영은 교주님의 힘을 알고 있어. 아닌 말로 당대 무림인 중 누가 있어 교주님의 일초지적이라도 될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그 누구도 교주님의 경지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으음."

"그중 그나마 가장 근접한 자가 바로 담사영일세. 물론 상대적으로 봤을 때 가장 근접했다는 것이지, 실제 격차는 그야말로 까마득하겠지."

"그럴 것입니다."

"즉, 담사영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네. 아군 병력이 얼마나 되든, 교주님께서 직접 움직이시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사실을. 아무리 꼭꼭 숨어 있다 한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

초해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면 황궁이 아닌 새외로 가야 정상인데, 굳이 중원 땅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 대역전의 한 수가 있다는 것이야."

"대체 그 한 수가 무엇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절대 평범한 한 수는 아닐 것일세. 병력이나 자금력으로는 절대 천마신교를 넘을 수 없어. 설령 천룡궁의 병력까지 합친다 해도 그렇지."

"그렇지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곧 비범하다는 것. 비범한 한 수라면 어지간히 똑똑한 사람이라도 예측기 어려울 테니, 교주님께서도 그것을 염려하여 쉬이 진입하지 않으셨을 확률이 높네. 뭐, 실제로 진입 자체가 어렵기도 했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초해가 툭 던지듯 물었다.

"술법일까요?"

공야치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병력, 자금, 세력 그 무엇으로도 이기기 힘든 상대. 하다못해 민심이라도 얻었다면 모르겠지만, 당대 천마신교는 역사상 가장 큰 민심을 얻고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옥새도 있지."

"그렇습니다. 이미 신교에 황제 폐하가 계시고, 그 폐하께서 옥새를 쥐고 계신다는 정보가 암암리에 중원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초해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엄밀히 말해서, 담사영이 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은 전무(全無)합니다."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어지간해선 십 할의 확률을 논하지 않는다.

하오문에서도 능력 좋기로는 손에 꼽히는 이가 바로 초해였다. 그런 그가 담사영이 이길 확률이 아예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이미 승패가 났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담사영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술법이라면…… 모르겠습니다."

"자네 말마따나 술법일지, 아니면 술법 이상의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다네. 하나 굳이 새외로 향하지 않고 황궁에 틀어박혀 시간을 끌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상황을 역전시킬 만한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 다만 나는, 그 한 수가 이 무대에 오르지 않은 이들까지 잡아먹는 수는 아니길 바랄 뿐이라네."

공야치가 의자에 등을 묻었다.

길고 길었던 전쟁의 종막. 이제야 그의 얼굴에도 나름의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주님 역시 담사영이 준비하는 한 수에 대해 단단히 긴장하고 계신다는 것이지."

초해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교주님은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천하무적의 무공과 천하제일의 세력을 쥐고 계시는데도 결코 방심하지 않으시잖습니까?"

"교주님보다 재능이 뛰어난 후계자는 많았네. 하지만 교주님께서는 다른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신교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어. 무공 이전에, 치밀한 두뇌와 방심하지 않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게야."

"그렇습니다."

초해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축하드립니다. 그간 문주님께서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내가 한 고생은 본문의 문도들이 겪은 고생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세. 문도들이 발 빠르게 뛰어 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걸세."

공야치가 다시 탁자 위의 문서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현재 교주님께서는 어디를 지나고 계신다던가?"

"하남 중부를 지나고 계십니다."

"생각보다 늦군."

"아무래도 오만 육천의 황군과 함께니까요."

"하긴."

"게다가 거래하던 상단들이 지원을 끊은 이후, 오만 육천 황군 모두가 쫄쫄 굶고 있었다고 합니다. 애당초 육만에 달하던 황군 중 삼천에 가까운 황병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끔찍하군."

"예. 해서 충분한 영양 보충과 휴식 이후 움직이셨다 합니다. 예상보다 더 늦어진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대로 강을 건너겠다고 하시던가?"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로 연락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공야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휘에 황군 전체가 머물러도 넉넉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 놓도록 하게."

"예? 안휘에요?"

"그렇다네."

초해의 눈이 커졌다.

"설마 교주님께서 안휘로 향하실 거라 예상하고 계신 겁니까?"

"그렇다네."

"어, 어떻게?!"

"오만 육천의 황군을 이끌고 신교로 향할 수는 없네. 거리도 지나치게 멀고, 신교의 병력만으로도 포화 상태에 가까운지라 수용할 여유가 없어."

"그건 그렇습니다."

"가장 괜찮은 곳은 철혈성이라네. 신교와 철혈성이 손을 잡은 데다 이번 싸움에서 사상자가 많았으니, 다소 비좁기는 해도 황군을 받을 수는 있을 걸세."

"……!"

"하지만 철혈성으로 향하실 거였다면 애초에 산동으로 방향을 잡거나 뱃길을 알아보셨을 걸세. 한데 지금처럼 여유롭게 하남으로 진입하셨다는 것은, 하남 인근 지역에 자리를 잡으시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네."

순간 초해의 눈이 반짝였다.

"남궁입니까?"

"그렇다네."

공야치가 거대한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남궁세가는 이번 싸움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어. 완전히 멸문당한 건 아니지만, 기실 멸문이라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지. 다만 폐허가 된 남궁세가를 관리하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네."

"……!"

"하나 남궁만으로는 황군 전부를 수용하기 어렵지. 이왕이면 남궁세가 인근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장소를 전부 알아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초해가 고개를 숙이며 일어났다.

"알아본 이후 다시 오겠습니다."

"고생하시게."

그렇게 초해가 나가고 공야치 홀로 집무실에 남게 되었다.

여유가 보였던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지.’

초해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왜 서량이 황군을 안휘에 주둔시키려 하는 건지 짐작하고 있었다.

‘치고 올라가실 생각이다.’

안휘에서 산동을 거쳐 다시 하북으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철혈성과 인접한 안휘로 향하시는 것이다. 만일 무슨 일이 터지면 서로 도울 수 있을 테니까.

공야치가 생각해도 이 정도 거리는 아주 적당했다.

‘담사영이 황궁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황군은 그대로 황궁으로 돌아가 하북을 정리할 것이다.’

그 말은 곧, 조만간 담사영이 황궁에서 나올 것임을 서량이 확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안휘에 자리를 잡으실 이유가 없어. 다만…….’

공야치의 눈이 가늘어졌다.

‘위험할 텐데.’

황군을 안정적으로 주둔시키고 나면 서량은 자리를 벗어날 것이다. 어디로 가든 황군을 대동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다 만에 하나.

십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라도 담사영이 병력을 이끌고 남하한다면 황군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서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담사영이 단독으로 움직일 거라 예상하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병력을 이런 식으로 배치할 리가 없었다.

즉, 황군은 다시 북상한다 해도 황궁에 남아 있을 담사영 휘하 병력을 없앤 뒤에야 황궁을 장악할 수 있다.

‘내가 아는 교주님이라면 분명 그렇게 움직이실 거야. 아니, 교주님이라서 그렇게 움직이신다는 게 아니라, 이런 계획을 짜셨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움직이실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거다.’

공야치의 얼굴이 흐려졌다.

‘한데 대체 왜? 왜 굳이 이런 계획을 짜신 것이지? 하물며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안 해 주시고.’

설마 황제 역시 전쟁에 참여시킬 생각이신 걸까? 무혈입성으로 얻은 권위는 언젠가 땅에 떨어질 수 있으니, 피비린내 가득한 싸움을 끝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라는 생각이신 걸까?

‘그럴 리가…….’

교주님께서는 효율적인 걸 좋아하시는 분이다.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게 최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란 말이다.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황군을 안휘에 배치할 만한 분이 아니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 헉!’

공야치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때였다.

"문주님, 신교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가져오너라."

그는 받아 든 서신을 곧장 펼치려다가 잠시 주춤했다.

‘총군사께서도 이걸 알고 계실까? 아니, 어쩌면 내 짐작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만일 이게 정답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서량은 실로 무서운 일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그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공야치가 이내 고개를 휘휘 젓고는 서신을 펼쳤다.

"……!!"

흔들리는 눈으로 서신을 읽은 공야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수 없지."

그가 외쳤다.

"게 있는가."

"예, 문주님."

"강서상회 대리인이 곧 오실 것이다. 귀한 분이니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하거라."

"문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공야치가 다시 의자에 등을 묻었다.

"교주님, 교주님께서 또다시 수라의 길을 걸으시겠다면야 제가 어찌 감히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정말 그 길을 걸으실 생각이십니까? 평생 후회하실 텐데도?"

아니, 그건 또 모를 일이다.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분께서는, 어쩌면 전대 교주님처럼 어느 정도의 인간성을 상실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런 길을 택한다 하신들, 내 어찌 교주님을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반나절 뒤.

"문주님. 강서상회의 대리인이 오셨습니다."

"드시라 해라."

끼이익.

문이 열리고, 십 대 후반의 아리따운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야치가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인, 앵화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오문주님을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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