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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04화 (603/774)

604화. 깨어나다 (4)

실로 오랜만에 가부좌를 튼 서량의 모습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평온한 외양과는 달리, 그의 몸 주변에는 위협적인 뇌화가 넘실거렸다.

화르르륵. 번쩍! 번쩍!

한옆에서 서량의 운공을 보는 마동필의 눈이 깊어졌다.

‘놀랍구나.’

뿜어져 나오는 화기(火氣)는, 그 외형이 무색하게 그리 뜨겁지 않았다.

분명 불꽃의 형상을 띠고 있으며, 천하에서 가장 막강한 화기인 구유마화인데도 온도는 끓는 물 정도도 되지 않았다.

‘자유자재시로군.’

작정하고 구유마화를 발하신다면 이곳 전체가 불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교주님께서는 그것을 감안하시어 마화의 온도를 대폭 낮추신 것이다. 그러고도 천하 누구보다 빠르고 안정적인 운공으로 내공을 다스리시고 있었다.

‘충분히 높게 올라왔다고 생각했거늘.’

마동필은 경이로움을 느꼈다.

‘내 과연 살아서 저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이이이잉. 퍽!

몸 전체를 누비는 전광(電光)은, 이제 회흑색이라 하기엔 어색할 정도로 어둡게 변해 있었다.

그제보다도, 어제보다도 더 색이 진해졌다. 전대 교주님인 이천상의 뇌전에 비할 수는 없지만, 교주님의 뇌전 역시 흑색이라 표현하기에 별 부족함이 없었다.

‘군림마황기도, 구유마공도 더는 오를 곳이 없는 경지에 오르신 것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경지가 또 있을까?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이제야 열세마왕공포식에 입문한 마동필로서는 저 경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다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교주님.’

마동필의 눈이 일렁였다.

‘곧 마도 천하가 코앞입니다. 교주님께서도 전대 교주님이 도달하신 그곳으로 가시기를 신하로서 바라 마지않지만, 세상은 넓고 시간은 많습니다.’

그는 서량의 압도적인 성장세에 늘 감탄해 오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했다.

저만한 경지에 오르고도 하루하루 무(武)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그 어떤 정체기도 현명하게 뚫어 내는 저 재능이, 노력이 불안했다.

전대 교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저 높은 곳으로 훌쩍 날아가 버리실까 봐.

인간의 의지로는 막을 수 없는 신화의 세계로 진입하여,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이승에서 사라지실까 봐 진심으로 두려웠다.

마동필은 교주님이 모든 것을 누리고 가시기를 바랐다.

인간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경험을 전부 안고 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후우우."

서량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팍!

위협적인 전광과 화려한 불꽃이 단숨에 사라졌다.

마동필이 상념에서 벗어났다.

"깨셨습니까."

"그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내셨습니다."

"날 뜨거운 눈으로 쳐다보는 누구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돼서 말이지."

마동필의 얼굴이 대번에 어색해졌다.

"죄송합니다."

"농담이다."

"알고 있습니다."

"근데 뭘 자꾸 죄송하대?"

"그렇다고 농담으로 받아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서량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냐?"

"그렇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군은 쉬고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몸은 다 회복되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여정이 꽤 길었으니까요."

"그래도 언제까지 쉬고 있을 수는 없지."

서량이 주청을 찾았다.

"황제."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네만, 언제까지 황제라고 부를 생각인가?"

"황제를 황제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자네도 폐하라고 하게."

"싫다."

"거 사람 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청은 서량의 그 호칭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특히 황궁에서 황군을 데리고 온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지금껏 주청을 아는 모든 사람이 상황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서량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그를 황제라고 부른다. 그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호칭이, 주청에게는 나름의 힘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 더 쉬지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는가?"

"나는 잠 안 자도 되는 몸이야. 쉬기는."

"험."

"이제 슬슬 시작해 보려고. 어차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최대한 속성으로 때려 박아야지."

주청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 괜찮겠는가?"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그렇긴 하네만."

"내가 본교의 비전 절학을 가르칠 거라는 생각은 말아 줬으면 좋겠군. 제아무리 교주라도 그럴 수는 없지. 다만, 내 나름대로 개량한 뒤 마기를 뺀 무공들이니까 지금보다는 더 쓸 만해질 거야."

"고맙네."

"고맙기는."

서량의 얼굴에 언뜻 씁쓸함이 어렸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전장으로 보내는 판국이야. 그럴듯한 무기라도 쥐여 줘야지."

주청이 피식 웃었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전장이면 왜 보내는 건가?"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으니까."

"그런가?"

"그래."

"자네 설마, 우릴 다 죽일 생각으로 보내려는 건 아니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뭐,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솔직히 잠깐 의심하긴 했네. 이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적의 병력이 밀집한 황궁으로 보내 공멸을 유도하는구나, 제 놈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모양이구나 하고 말이야."

"깜찍하군. 황제가 뭐라고."

"그렇지. 바로 자네의 그런 태도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금세 깨달았네. 내 살다 살다 자네처럼 황제 자리를 하찮게 여기는 작자는 본 적이 없네."

"마인들은 날 신으로 떠받들고 있어. 이미 신인데 황제 따위야."

"껄껄껄."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아닌 척하면서도 내심 울컥하곤 했다. 서량이 황궁과 제국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아 진심으로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주청도 이제는 알았다. 이게 그냥 서량의 성격이라는 걸.

황제든 황궁이든, 존경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대할 땐 나름대로 존중해 준다.

사람을 지위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보기 때문이다.

"그럼 장군을 부르겠네."

"그래."

잠시 후, 거처 앞 공터로 소공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공휘는 곧장 무릎을 꿇었다.

"신(臣) 황궁일장 소공휘, 황제 폐하를 알현하나이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자질구레한 황실의 예법 따위는 생략하는 그였다. 물론 주청의 명이 없었으면 길고 복잡하며 듣는 사람은 답답해 죽을 것 같은 예법으로 족히 반 각은 잡아먹었을 것이다.

주청의 표정에 위엄이 어렸다.

"황군은?"

"오만 육천 황군 전원이 휴식 중에 있사옵니다."

"몸 상태는 어떻다던가."

"전원 완전히 회복하였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제아무리 잘 단련된 황군이라도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고 격차가 다르다.

아마 황군의 절반 가까이가 아직도 피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정신력으로 이겨 내고 있을 뿐이다.

주청이 서량을 보며 물었다.

"자리를 피해 주면 되겠는가?"

"그래."

"알겠네."

주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 시간부로 천마신교의 교주가 자네에게 고급의 무공을 전수할 것일세."

"……?!"

"서 교주는 당대 무림의 제일인이자 고금을 논해도 견줄 만한 자가 손에 꼽히는 희대의 무인인바, 그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잊지 않도록 성심을 다해 연성하라."

소공휘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마교주의 인간 같지 않은 신위는 그도 똑똑히 보았다.

대체 어떤 원리로 그런 무공을 쓰는 건지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그런 자의 무공을 배울 수 있다니, 무인으로서 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걸리는 것도 있었다.

주청이 자리를 뜨자 서량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소공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량은 내심 미소를 지었다.

‘좋군.’

소공휘의 체격은 무척이나 탄탄했다.

키도 제법 훤칠했고, 오랫동안 연마한 육체는 바위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러한 육체를 손에 넣기 위해 오랜 시간 단련했기 때문일까. 황궁의 대장군답지 않게 눈빛도 무척 맑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무공이 제법이더구만."

소공휘는 말이 없었다.

황제 폐하와 농담 따먹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마땅히 고개를 조아려야 하지만, 그는 황궁의 사람이 아니라 마교주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안 왔다. 그래서 소공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서량은 소공휘의 그런 태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 무공으로는 대장군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어렵겠지. 나아가, 황병들도 제법 하는 수준은 되지만 너무 어정쩡한 무공을 연성하고 있어."

"……."

"며칠 동안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 잘 연마하도록 해 봐."

소공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나는……."

"너는 뭐?"

"마공을 익힐 생각은 없소만."

서량이 피식 웃었다.

"누가 너한테 귀한 마공까지 가르쳐 준대? 웃기고 있네."

"……."

"한 마디 덧붙이자면 너한테는 선택권이라는 게 없어. 황제가 직접 내게 무공을 전수하라고 명령까지 내렸거늘, 뭔 무공의 종류까지 따지고 계십니까, 어르신?"

소공휘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의 비꼬는 어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서량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우웅.

공기가 요동쳤다.

후우우웅.

순식간에 거대한 기운이 몰려와 그의 손에 담겼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기가 막힐 정도로 부드러운 진기 운용이었다.

‘헉!’

소공휘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휘이이이이잉!

단순히 진기를 모으는 것만으로도 강풍이 몰아치고 대기의 질까지 바뀌는 듯했다.

게다가 이 위압감.

‘엄청나다!’

뼛속까지 저릿저릿하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저 내공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마주하는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과연, 천하제일인이라 이것인가?’

소공휘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지금 서량의 손에 담긴 내공이 그 자신이 품고 있는 힘의 백분지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어때?"

"……마공이 아니로군."

소공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공이 아닌 걸 넘어…… 그것은 정공(正功)이 아니오?"

"잘 맞췄어."

서량이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이 손에 담긴 것은 일부러 마기를 제외하고 운용법만 따와 발산한 무속성의 기운이다. 속성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시원하고 기분 좋은 기운이지?"

"……그렇소."

"바로 청성파의 천지일기공(天地一氣功)이다."

소공휘가 눈을 부릅떴다.

"청성파? 설마 사천 청성산에 있는 구파일방의?"

"그렇다."

"어, 어떻게?"

서량의 눈이 서늘해졌다.

"청성, 아미, 당가는 물론 화산과 종남까지 쓸어 버렸다."

"……!!"

"남은 문파들은 소림이 정리 중이다. 아마 지금쯤 제갈세가도 끝장이 났겠지."

서량이 주먹을 쥐었다.

훅.

그의 손에 담겼던 천지일기공의 기운이 촛불이 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구파의 절학은 본교의 십대마공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는 절기들이다. 나는 방파들을 무너트리며, 그들이 가진 비전 절학을 다섯 개씩 골라 외워 두었다."

그 외에 그가 원래 알던 구파의 절학도 몇 개 있었다. 과거, 암영기를 익힐 때 구파의 여러 절기를 접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과거의 성세를 이어 가기는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훌륭한 무공들을 쓸 만한 이들에게 건네주는 게 낫다 싶어서 말이지."

"……!"

"아미의 무공은 힘 있고 장중하지만, 무공 자체의 실전성이 떨어져. 차라리 빠르고 표홀한 청성의 무공이 더 적합할 것 같더군."

후욱.

"헉!"

소공휘는 저도 모르게 가부좌를 틀었다. 서량의 허공섭물에 완전히 장악당한 것이다.

서량이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때가 되기 전까지 모든 황병에게 가르치도록 해라. 뛰어난 절기가 사장되는 것보다, 그 칼로 나라라도 지키는 것이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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