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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07화 (606/774)

607화. 또 하나의 신(神) (1)

쿠구구궁!

황궁의 규모는 어지간한 마을 몇 개를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컸다.

제국의 주인이 거하는 곳이니 당연히 넓을 수밖에 없었지만, 본래 황궁은 이 정도로 거대하지 않았다. 황제가 쓰러지고 황태자가 권력을 쥔 이후, 북쪽 벽을 허물고 영역을 넓혔기에 안 그래도 넓은 황궁이 더 크고 넓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넓은 황궁이 흔들리고 있었다.

황궁의 성벽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이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렸다.

쾅! 콰르르릉!

"피해라!"

"막지 마! 무조건 피해!"

건물 몇 개는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기까지 했다. 하나같이 황궁의 중심부에 자리한 건물들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교룡대장의 수척한 얼굴에 짙은 불안감이 어렸다.

"하늘이 노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실제 몇 번의 지진을 겪어 본 그였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지진과 지금의 지진은 전혀 달랐다.

‘땅이 아니야.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진동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 뻗어진 보이지 않는 손이 이곳 전체를 쥐고 흔드는 듯하다.’

설명하기 애매한 차이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지진이 결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체?!’

그때였다.

"교룡대장."

"헉!"

깜짝 놀란 그가 성의 망루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그곳에는 단리후, 아니 무명이 서 있었다.

"올라와."

교룡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명을 받듭니다, 신장님."

그는 이미 저자가 단리후가 아닌 천룡궁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천룡궁주로 대할 수는 없었다. 수하들에게 혼란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파악!

단숨에 성루로 올라온 교룡대장에게 무명이 말했다.

"앉아."

"예."

쿠궁!

한 줄기 커다란 진동 이후, 마침내 지진이 멈추었다.

무명이 술병을 내밀었다.

"한 모금 하겠어?"

"……영광입니다."

교룡대장이 한 모금의 술로 목을 축였다.

‘크흠.’

식도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오만 육천의 황군이 빠져나간 후, 비축해 놓은 식량에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언제까지 황궁에 거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 식사량을 줄이고 횟수도 하루 한 번으로 제한했다.

빈속이나 다름없는 와중에 독주를 들이켰으니, 제아무리 내공의 고수라도 위장이 저릿할 수밖에 없었다. 교룡대장은 서둘러 내공을 운용해 주기(酒氣)가 퍼지는 것을 막았다.

"그간 고생이 많았지?"

"아닙니다."

"아니기는. 담사영 저 사람 모시느라고 혼이 빠졌을 텐데."

당당하게 담사영이라 말한다. 교룡대장은 그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에게서 술병을 빼앗은 무명이 입에다 술을 콸콸 쏟아부었다.

"크으으, 술이라는 게 이런 거였군. 이렇게 쓰고 향도 이상한 걸 왜 그리들 찾아 마시는지 모르겠어."

무명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독한 술을 쏟아붓듯 마셨으니 취기가 돌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기를 뽑아내지 않았다.

"머리가 무거워지는군. 불쾌하지만, 또 묘하게 편해. 이래서 술을 마시는 거구나."

"……신장님."

"궁주."

"예?"

"어울리지도 않는 호칭은 그만둬. 나는 천룡궁주지, 죽은 단리후가 아니다."

교룡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예, 궁주님."

"그래."

"주군께서는 현재 어떤……?"

"어떤 상태냐고? 글쎄."

무명이 고소를 지었다.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겠지."

"……?"

그녀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는 무형의 요기가 벼락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아마 천하에서 저 요기를 느낄 수 있는 자는 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가까이서 보는 게 아니고서야 누구라도 알아채기 어려우리라.

마교주, 그 인간 같지 않은 괴물을 제외하면.

"대법은 성공했다."

"……!"

"설마하니, 내 손으로 저런 재앙신(災殃神)을 창조해 낼 줄은 몰랐어. 물론 나름의 자신은 있었지만."

무명이 희게 웃었다.

"이제 곧, 천하가 담사영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오싹!

교룡대장은 그녀의 단정적인 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건 진심이었다. 그녀는 담사영이 천하를 손에 쥐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비록 무공과는 결이 다른 공부지만, 천룡궁주는 술법으로 새외 최강을 논하는 고수임에 틀림없다.

그런 고수가 당당히 말하고 있다. 주군께서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이라고.

인간으로 태어나 신(神)의 반열에 오른 마교주, 당대 천마(天魔) 염라마신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게다가 재앙신이라는 말도 걸렸다.

‘재앙신? 무슨 뜻이지? 설마 주군께서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인간이 아니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군."

"헉!"

교룡대장은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후웁."

삼십 대 장년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무척이나 깊은 호흡이었다. 마치 세상에 드리워진 모든 공기를 한 번에 빨아들일 듯한 기세였다.

"후우!"

사아아아악!

우연일까? 아니면 교룡대장의 착각일까.

장년인이 숨을 내뱉자, 그 방향 그대로 먹구름이 갈라졌다.

파지지지직!

두 주먹을 움켜쥐자, 그곳에서 붉은 뇌기(雷氣)가 마구 방전했다.

‘뇌전?!’

교룡대장은 재빨리 일어나 장년인에게서 멀어졌다.

꿀꺽.

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누구지?!’

익숙하면서도 지나치게 낯선 존재다.

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도 놀라웠지만, 저 장년인이 내뿜는 기이한 존재감이 교룡대장의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고 있었다.

‘……황태자?’

그렇다. 장년인은 황태자 주천양이었다.

하지만 황태자가 아니기도 했다. 교룡대장이 아는 주천양은, 이런 인간 같지 않은 기도를 품은 자가 아니었다.

아니, 그가 아는 누구도 이런 기를 방출하지 못했다. 기운의 사나움이나 양을 떠나서, 기질 자체가 상리를 벗어나 버린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역천의 마기(魔氣)와는 달리 도도한 흐름은 순천(順天)의 신기(神氣)를 연상케 한다.

교룡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혈신기?!’

그때, 장년인이 교룡대장을 보았다.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가?"

"……서, 설마?"

"그래."

주천양, 아니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어딘지 모르게 흐릿하면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묘한 미소였다.

"내가 바로 너의 주군, 담사영이다."

교룡대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곧장 무릎을 꿇어야 함이 옳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담사영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우리 교룡대장이 많이 놀란 모양이로다. 하지만 이상할 것 하나 없느니라."

"……."

"내 대제자의 몸뚱이에 천룡궁의 수장이 들어앉아 있거늘, 나라고 다른 몸뚱이에 들어가지 말란 법이 있겠느냐."

"주, 주군."

"그래."

담사영이 턱을 치켜들었다.

오만함이 한가득 느껴지는 담사영 특유의 자세였다.

"내가 바로 담사영이다."

털썩!

교룡대장이 무릎을 꿇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가 황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

교룡대장의 내공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를 증폭시킨 것은 담사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의 혈신기였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진기만으로도 이 넓은 황궁 전체에 목소리를 전달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신의 경지였다.

"그래서."

무명이 어딘가 모르게 혼란스러운 눈으로 담사영을 보았다.

"기분이 어때?"

"좋군."

담사영이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파지지지지직!

한 번의 심호흡에 전신에서 시뻘건 전광이 터져 나왔다. 그 전광은 천마신교 최강의 절학, 군림마황기와 닮아 있었다.

하늘 아래 가장 파괴적인 힘.

천마의 소유물이었던 그 절대적인 힘을, 담사영도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주 좋아. 한달음이면 태산 정상에 오를 것 같고, 손짓 한 번이면 산봉우리도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겠지."

담사영이 무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명이 쓰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의 힘은 거기서 끝이 아니니까."

"그런가?"

"대법은 성공했어. 하지만 주천양의 몸뚱이가 당신의 혼을 완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거야."

담사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심신(心身)이 온전하게 하나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겐가?"

"당신은 이미 그 힘을 손에 넣었어. 다만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육신이라는 껍데기가 어색한 탓에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허허허."

"물론 그 껍데기를 당신 영혼에 맞게 바꾸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 노력에 달렸어. 하지만 이렇게 보니,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군."

"즉."

담사영이 무명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서 시뻘건 뇌전이 위협적으로 새어 나왔다.

"내 의지대로 또 다른 대법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말이로군."

"그래."

"이보게, 궁주.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해. 말이 다르잖은가?"

무명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분명히 말했어. 이 대법은 처음 해 보는 것이라고. 당신은 신(神)에 이른 힘을 손에 넣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당신의 의지와 능력에 달렸다고."

"흐음."

"어쨌든 성공은 했잖아? 그럼 됐지."

"그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발언이로군."

"내 장담컨대, 당대 천하에 당신과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담사영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천하진, 그 망할 놈도?"

"나는 사람이라고 했어. 마교주 역시 반선(半仙)의 강자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괴물이야."

"그렇다면 썩 대단한 것도 없잖은가. 대법을 받기 전에도 난 이미 천하제일을 논하던 사람이었거늘."

"그래, 사람이었지. 신(神)이 아니라."

"……."

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눌러앉아 있을 필요는 없어."

"음?"

"가. 가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걸 해."

담사영이 싸늘하게 웃었다.

"나만 가기에는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나는 지쳤어. 요양이 필요해."

"흐으음."

"부작용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당신이 그 힘에 취해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돼."

가만히 무명을 내려다보던 담사영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구먼."

그의 모습을 보던 교룡대장은, 순간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주군.’

상대는 자신의 주군이었다. 담사영이 분명했다.

하지만 담사영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과거의 그였다면 짓지 않았을 표정을 자꾸만 보여 주고 있었다.

"하면……."

화르르르륵!

담사영의 오른손에서 시커먼 불꽃이 피어올랐다.

실로 무시무시한 화기(火氣)였다. 주변에 그 끔찍한 온도를 전하고 있진 않지만, 필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릴 만큼 막강한 화력일 것이다.

"어디, 이 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이나 해 볼까?"

"마음대로 해."

그때였다.

콰르르르릉!

반으로 갈라졌던 먹구름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연 현상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술법으로 만들어 낸 환상과 비슷했다.

번쩍! 콰르릉! 파지지지직!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시커먼 벼락이 휘몰아쳤다.

무명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술법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군."

"……내가 아니다."

"뭐?"

"저건 내가 한 게 아니야."

담사영의 두 눈에 청홍의 빛이 번뜩였다.

좌홍우청의 사안(邪眼)이 지독한 살기로 물들었다.

"천하진!"

순간 그의 귀로 서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끝났나, 쭉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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