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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08화 (607/774)

608화. 또 하나의 신(神) (2)

"앗? 사형은요?"

마동필이 담담하게 말했다.

"운기(運氣) 중이십니다."

"아?"

채여민이 힐끔 옆을 보았다.

수풀 한가운데 앉아 있는 서량이 보였다. 딱히 가부좌를 틀지는 않았고, 그저 편하게 앉아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달싹이고 있었다.

채여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가 특이하네……?"

"평소에는 저리 안 하십니다. 아니, 애초에 따로 운기가 필요치도 않으시지요."

"그건 알아요. 사형 정도의 경지에선 굳이 신경 써서 운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들었어요."

"예."

그때, 그녀와 함께 온 종리영이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전신의 기(氣)가 융통무애(融通無碍)하여 따로 운공에 들어가지 않아도 신체와 진기의 활성도가 항상 최고조에 이른 상태……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채여민이 부러움이 묻어나는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마동필과 종리영의 얼굴에 푸근한 미소가 어렸다.

천하 무림인 중 누가 있어 서량이 이룩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불세출의 천재라도 저처럼 ‘무언가’를 넘어서 버린 경지에 도달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의 문제가 아닌 살아온 삶의 문제.

그래서 서량이 대단한 것이고, 그래서 이천상이 위대한 것이다.

"저, 마 호위님."

종리영이 헛기침을 했다.

"저희가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마동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싸움이 벌어질 거란 말을 들으셨군요."

"그렇습니다."

종리영의 얼굴에 긴장이 드리워졌다.

"담사영과의 싸움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고 하시던데, 사형은 괜찮으십니까?"

"보시다시피 괜찮으십니다."

마동필이 웃으며 서량을 보았다.

평온한 얼굴로 자연스레 숨을 내쉬는 서량의 모습은 마치 명상에 들어간 구도자를 연상케 했다.

"교주님의 싸움은, 굳이 담사영이 아니더라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천하를 안정시키고 제국을 건설해야 하며, 신교의 그림자를 중원 전역에 드리워야만 하지요."

"아, 예."

"담사영은 분명 희대의 난적이나, 또한 교주님께는 통과해야 할 하나의 지점에 불과하기도 합니다."

"……."

"저는 지금껏 교주님께서 등정(登頂)에 실패하시는 걸 수 차례 보았지만, 몇 번이고 도전해 기어이 넘어서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종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등정…… 정말 난적은 난적인 모양입니다. 넘어서야 할 산이라니."

"말이 그렇다는 것뿐입니다. 그간 담사영이 어떤 힘을 쌓아 왔든, 교주님께서 놈을 이기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두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남궁단과 주서윤이었다.

"흠."

서량을 보는 남궁단의 눈이 반짝였다.

"전에 없이 안정적이군."

주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나도 사형답지만, 동시에 평소의 사형과는 전혀 달라요."

"그렇게 느껴지시는가?"

"네. 아마 저 역시 선도지검(仙道之劍)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겠지요."

"확실히 그렇군."

이제는 마음에 드리워진 짐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인지, 남궁단의 눈빛 역시 과거의 정명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전개가 극에 달하면 필시 반전하기 마련이라……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마(魔)의 끝을 본 서 교주는 선도의 깨달음마저도 넘보고 있구먼."

"동시에 만류귀종이지요. 아마 사부님조차도 사형과는 다르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음? 천하의 그 마신이?"

"네. 그분은 끝까지 마(魔)로서 남으셨지만, 사형은 마(魔)를 포함한 패도(覇道)를 걷고 있으니까요."

"패도라……."

"언젠가 한 번 적송 할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어요. 사형은 지금까지의 천마와도, 그 어느 교주와도 다를 거라고. 법도를 갖춘 패왕으로서 세상을 손에 넣을 거라고."

서량을 보는 주서윤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본래 저희는 죽을 운명이었어요. 당연하죠, 후계 싸움에서 패배했으니까. 하지만 사형은 저희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포용했어요."

"……."

"천성이든 꾸며진 모습이든, 저는 사형이 천하를 손에 넣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후계 다툼에서 패배한 상대를 멀쩡히 살려 둔 것도 모자라 무공을 가르쳐 주고 함께 크자며 온갖 지원을 해 주는 사람.

말이 쉽지, 실제로 그리하는 사람은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인즉, 언젠가 반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 교주가 마냥 선한 인물이냐면, 그것도 아닌데.’

그래서 더더욱 놀랍다.

천하를 손에 넣겠다는 야심, 내 사람은 확실히 챙기는 책임감, 적에게 자비가 없는 단호한 성정, 그러면서도 천하 만민을 생각할 줄 아는 애민(愛民).

‘그야말로 타고난 것이지.’

웃으며 서량을 보던 남궁단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말일세."

"네."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네만."

"네?"

"서 교주는 담사영을 끌어내기 위해 강북 경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네. 뿐인가? 북경으로 가서 황군을 데려오고, 그 전에는 칠파와 삼가를 정리하기까지 했어."

"그렇죠."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굳이 이런 식으로 자네들까지 데리고 올 중원행은 아니었단 생각이 들었네. 황제 폐하야 당연히 함께하는 것이 옳지만, 정작 사형제인 자네들은 와서 한 것이 없잖은가?"

주서윤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다만, 사형에게 달리 생각이 있으리란 것만 유추할 수 있을 뿐."

"흐음."

남궁단이 턱을 쓰다듬었다.

"세상을 경험시켜 주겠다…… 물론 그 자체로도 이유가 될 수 있지. 서 교주에게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상황이겠지만, 동시에 지금처럼 무림이 조용했던 적도 없으니."

"그렇죠."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자네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주서윤의 미소가 짙어졌다.

"참 신기하죠? 천 년이 넘도록 대립해 온 정(正)과 마(魔)의 고수들이 이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는 게."

"각자가 믿는 정의가 곧 그 사람의 인성이 되는 것은 아닐세. 비록 역사가 만든 골이 지나치게 깊지만, 거추장스러운 겉옷만 벗어 던지면 누구와도 친분을 나눌 수 있는 게지."

"정파에 가주님 같은 분이 계셔서 다행이에요."

"나 따위보다 훨씬 생각 깊고 선한 사람들이 많네. 그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상황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야."

대화를 이어 가는 목소리에 어떠한 경계심도, 선입견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천하다.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며 친분을 나눌 수 있는 것.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궁극이자, 평화로 향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릉.

"음?"

남궁단이 의아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날씨가 왜?"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딱히 어둡지도 않았던 하늘.

그 하늘에 느닷없이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술법이네요."

"술법?"

"네. 확실하진 않지만요."

하늘을 올려다보는 주서윤의 눈이 순식간에 긴장으로 물들었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에요. 술력(術力)이 아니고서야 저런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긴 힘들겠지요."

"아니, 대체 어떤 술법이기에? 그리고 누가 저런 짓을……?"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 전체에 시뻘건 벼락이 휘몰아쳤다.

마동필의 눈이 번뜩였다.

차아아아앙!

그가 잽싸게 흑혈마검을 뽑아 들고는 크게 휘둘렀다.

후우우우웅.

검첨에서 뽑혀 나온 구유마기가 채여민과 종리영, 남궁단과 주서윤을 한 번에 에워쌌다.

주서윤이 당황한 눈으로 마동필을 보았다.

"마 호위님?!"

"제 앞으로 모이십시오."

마동필의 얼굴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무시무시한 힘입니다. 저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벗어날 수는 없는 건가요?"

"없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 기묘한 술법에 휘말린 모양입니다."

파사삭.

네 사람이 마동필 앞으로 모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흑혈마검이 미친 듯이 떨려 왔다. 마동필의 왕성한 마기를 머금었음에도 벅참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그대로 땅에 박아 넣었다.

푹! 화르르르륵!

사방에서 피어오른 핏빛 불꽃이 원형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구유마공의 지종열화벽(地從熱火壁)을 응용한 수법이었다.

동시에.

콰르르릉! 번쩍! 퍼어어엉!

쏟아져 내린 벼락 줄기들이 땅과 나무를 후려쳤다.

푸스스스.

벼락에 맞은 땅이 움푹 꺼지고, 나무는 그대로 쪼개져 불타올랐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채여민과 종리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심하십시오."

마동필의 두 눈이 완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것은 술법이며 환상입니다. 저 벼락이나 먹구름조차 전부 환술에 불과합니다."

"하, 하지만……."

"물론 저 벼락에 맞으면 실제 벼락에 맞은 것과 다르지 않은 충격을 받겠지요."

"……!"

"곧 사라질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형이!"

"예. 교주님께서 없애실 겁니다."

뚝. 뚝.

마동필의 턱에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얘기가 다 끝난다면 말이지요."

‘음.’ 감고 있던 눈을 뜬 서량의 얼굴은 운공에 집중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유롭고 허허로웠다. 사방에 벼락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전혀 놀라지 않은 듯했다.

"인사가 제법 거창하구만."

서량이 웃으며 전방을 주시했다.

"안 그런가, 담사영?"

푸스스스스.

어느새 서량이 보는 곳에서 한 줄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담사영이 나타났다.

서량의 눈이 반짝였다.

"제법이군. 얻은 지 얼마 안 된 힘을 이렇게까지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다니, 과연 썩어도 준치라는 건가."

무표정한 얼굴로 서량을 보던 담사영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간 잘 지냈느냐?"

마치 윗사람과 같은 말투였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 정리 좀 하느라고 바빴지."

"그렇다고 들었다."

"새 힘을 얻어서 그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여유롭구만. 네놈의 기반이 다 사라졌는데 말이야."

담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정말이지 감탄했다. 내 생에,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늘."

"내가 원래 좀 독해.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네놈이 욕심만 덜 부렸어도 이런 꼴이 나진 않았을 거다."

"대신 네놈이 날 죽이러 왔겠지. 직접."

"그도 그렇지."

"결국 내 운명은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색다르군. 운명이라니, 네놈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냐? 하긴, 뭐 어떠냐."

여유롭던 담사영의 얼굴이 한순간 싸늘해졌다.

"결국 너 역시 천하의 일부라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이 나의 손에 들어올진대."

"……."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너도 걸물은 걸물이다. 솔직히 말해서 감탄했다. 이빨 좀 날카로운 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거늘, 알고 보니 태산만 한 호랑이였단 말이지. 난 그것도 모르고 썩은 고기 몇 점이나 던져 주고 있었어."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됐다."

"그래야지. 개한테 당한 놈이 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 키우던 호랑이 잡고 천하를 손에 넣어 보시려고?"

담사영이 피식 웃었다.

"너는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내가 얻은 힘의 끝이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솔직히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네 말대로 구체적인 건 몰랐어."

서량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뭐?"

"네놈의 그 자존심 강한 성격상, 선전 포고 하겠답시고 나타나서 주절댈 걸 짐작하고 있었단 말이다."

"……?!"

"그리고 이렇게, 네놈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까지 다 알려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담사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량이 턱을 쓰다듬었다.

"천하와 하나가 되시겠다…… 그래, 그게 그런 뜻이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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