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9화. 또 하나의 신(神) (3)
"총군사."
호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담이 눈을 빛냈다.
"말씀하신 대로 교내 배치를 마쳤소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무담은 내심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껏 자신이 봐 왔던 호요성의 모습 중 가장 긴장이 역력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물어도 되겠소?"
"무엇을 여쭤보시려는 건지 짐작이 갑니다."
"……."
"죄송합니다만, 이번 건에 관해서는 저 역시 상세히 설명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 부분은 고려해 주시길."
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 인사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인들은 모두 교외로 내보냈소이다. 본교에는 말 그대로 최소 병력만 남은 셈이오."
"예."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요?"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만, 이번 일은 제가 아니라 교주님께서 주도하시는 겁니다."
"……?!"
"제가 설명을 상세히 드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대략 유추하는 정도지, 확신하진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담의 눈이 빛났다.
"교주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에 내 어찌 의문을 품겠소이까. 다만 본교 역사상 임무도 아닌 일에 교내 병력을 이 정도로 빼낸 것은 처음이오. 신교의 대호법으로서, 최소한 돌아가는 상황 정도는 알아야겠소."
호요성이 아니라 교주님이라도 물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무담의 발언은 이치에 맞았다.
호요성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지금은 먹구름이 가득했다.
"담사영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담사영이 대체 무슨 짓을 하기에 본교의……."
"머지않아 담사영이 본교로 찾아올 것입니다."
순간 무담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다, 담사영이 본교로 찾아올 거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
"그리고 그것을 허가해 주실 분이 바로 교주님입니다."
무담은 침을 삼켰다.
몇 마디 안 되는 말이었지만, 수천 마디라 한들 이보다 충격적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찌 그런 대적을 교에 들이신단 말이오? 당장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천하의 난적이거늘."
"바로 그 부분에 있어서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호요성이 눈을 감았다.
"아마, 이 계책을 제게 말씀해 주실 당시의 교주님께서도 자세히 모르셨을 겁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재차 눈을 뜬 호요성의 눈빛은 어느새 맑게 가라앉았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
"교주님의 경지 말입니다."
"……."
"교주님께서는 그 경지에 오르신 후, 그야말로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듯한 능력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무공만이 아니지요. 그분의 안목이, 직감이, 온몸으로 천하의 흐름을 느끼는 그분의 예지(豫知)가 저를 전율케 합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 교주님께서는 본디 그만한 경지에 오르시기 전에도 유독 뛰어난 육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두뇌 또한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특히 위기의 순간 발휘되는 응변의 기지는 마도 무림 역사상 최고라 할 만합니다."
"……."
"그런 교주님께서, 이제는 인간과 신의 경계에 서 계십니다. 그분께서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 어떠한 ‘상황’을 유도하려 하시는지 저로선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듭니다."
무담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호요성의 목소리에 괜스레 긴장이 되는 것을 느끼는 그였다.
"대호법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제가 담사영이라는 마지막 적을 휘어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모르겠소."
"예, 그러시겠지요. 저는 수개월 전부터 담사영에 관한 것은 어느 정도 손을 놓고 있었으니까요."
호요성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미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 중입니다. 그래서 홀로 철혈성에도 다녀온 것입니다. 마도 무림 각지에 사람을 보내 관부를 대신할 문파와 지역을 답습게 하고, 장강 이남과 이북의 경제를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그렇습니다. 이제 교주님께서 담사영을 끝장내 버리면, 곧장 마도천하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무담은 순간 전율을 느꼈다.
마도천하라는 네 글자가, 교주님을 향한 총군사의 저 상상을 초월하는 신뢰가 그를 떨게 했다.
"교주님께서는……."
운을 떼고 나니 대호법이 할 말은 아니었던지라, 무담은 뒤늦게나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호요성은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교주님 홀로 가능하시냐고요?"
"……."
"물론입니다. 저는 그리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호요성이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먹구름 가득하던 하늘 너머, 어느새 흐릿한 햇살이 비쳐 들고 있었다.
"이제 교주님께서는 논리로 설명하기 힘든 미래를 예지하시는 것도 모자라, 무수히 많은 가능성으로 점철된 미래를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끌고 오는 경지에 이르셨으니까요."
* * *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담사영이 툭 던지듯 물었다.
"천하와 하나가 된다…… 그 뜻을 알겠다?"
"그래."
서량이 피식 웃었다.
"……."
"너는 내 사부님을 동경했다."
"……!"
느닷없이 들어온 공격.
그렇다. 그것은 공격이었다. 적어도 담사영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인 일격이나 다름없었다.
굳을 대로 굳어 버린 담사영의 얼굴을 보며, 서량은 말을 이었다.
"사부님과 만나기 전, 너의 욕망은 오로지 권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평생을 그리 살았고, 오직 그것만이 인생의 가치가 된 너에게 다른 선택지 따위는 없었지."
"……."
"하지만 왜일까? 사부님을 뵙고 난 이후의 너는 어딘가가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넘겼던 사실이, 지금의 경지를 구축하고 나서는 확연히 이상하게 느껴졌지."
"……."
"너는 더 이상 천하제일의 권력에 흥미가 없어. 너는 내 사부님처럼 이 세상의 신(神)으로서 군림하고 싶어 한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내 말이 틀렸는가?"
"……."
"정확히 본 모양이군."
"확실히……."
어느새 담사영의 얼굴에도 서량과 비슷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증오가 깊어지면 상대를 닮는다고 했던가? 바로 두 사람이 그러했다.
아니, 정확히는 담사영이 서량을 닮아 가고 있었다. 서량은 이미 담사영을 향한 한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네놈의 안목은 비상한 데가 있다."
"칭찬 고맙군."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담사영이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네놈 말마따나 내가 이 정도 힘을 얻으리라는 것 역시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짐작 정도가 아니라 확신했지."
"한데 왜 날 치지 않았지? 네놈이 작정했다면 내가 황궁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쯤은 진즉에 알았을 텐데, 기껏 와서는 황군만 쏙 빼 갔다? 그것도 내 휘하 병력은 모두 놔둔 채?"
"그랬지."
"왜 그랬지? 설마하니 황궁을 에워싼 혈신기의 방벽 때문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그 설마가 맞아. 그 진기의 방벽은 실로 대단하더군."
"거짓말하지 마라. 지금의 나는 너의 힘이 그 방벽을 깨부수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깨부수는 것까지는 문제가 안 되지. 진짜 문제는 그 방벽을 깨부순 직후의 내 몸 상태다. 만에 하나라도 네놈이 도망쳐 버리면, 나는 또다시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을 손가락이나 빨면서 지켜봐야 할 테니까."
"정녕 그게 전부인가?"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지."
"뭐지?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꾸미는 거지?"
파지직.
서량의 좌측 마안에서 시커먼 뇌기가 번뜩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뭐?"
"그래야 널 잡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저 그게 전부다."
"……."
"안타깝게도 나는 신화(神化)의 영역에 이르지 못했다. 앞으로도 가능할는지 모르겠군. 그래서 이 절대적인 직감을 해석하기가 힘들어."
"절대적인 직감이라."
담사영이 차갑게 웃었다.
"하면, 정녕 내가 네놈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렷다?"
"패자의 좌절감을 즐기는 변태는 아니라서 말이지. 널 무릎 꿇릴 일은 없을 거다. 그냥 죽이겠지."
"……재미있구나."
파지지직.
담사영의 우측 사안에서 피처럼 붉은 뇌광이 피어올랐다.
"정말 재미있어. 나는 분명 알고 있다고 말했다. 네놈이 혈신기의 방벽을 무리 없이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을."
"그랬지."
"그리고 하나 더 아는 게 있다. 네가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괴물이지만, 내 힘은 그런 너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다는 것이지."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래?"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라고 생각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한 번 더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지금의 너는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말이야. 왜 그런 저열한 생각을 품고 있지?"
"뭐?"
"왜 너보다 약한 상대의 몸으로 기어들어 올 생각을 하고 있느냔 말이다."
순간 담사영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 높은 경지에 올랐음에도 감정의 동요를 막을 수 없다. 그만큼 서량의 안목이 날카로웠던 것이다.
"천하와 하나가 된다…… 그 뜻을 곱씹어 보았다. 천하, 천하, 천하……. 이상하지? 네놈은 한없이 강해질 수 있지만, 그 뿌리 깊은 욕망 때문에 신화에는 이를 수 없어. 신화에 이르지 못한 자는 결코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없는 법. 그런데도 넌 천하와 하나가 되려 한다. 대체 무슨 수로?"
"……."
"답은 하나지. 너는 나를 쓰러트리고 내가 되려는 것이다. 이유? 이유는 단순하다."
화르르륵.
서량의 우측 마안에서 불꽃 같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내가 이미 천하니까."
"……."
"장강 이남의 무림을 손에 넣은 것도 모자라 강북까지도 마수를 펼치고 있는 본교의 영향력은 능히 천하제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닌 말로, 천하 전체를 손에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야."
"……."
"네놈이 패배를 선언하고 마지막 한 수를 준비한 것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본교가 그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천하를 휘어잡는 과정을 보고만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어."
서량이 담사영을 가리켰다.
"내가 손에 넣은 것은 모두 네놈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 마지막 순간 날 쓰러트리고 내 몸을 차지하면, 너는 본교를 시작으로 천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
"그런 생각이었지?"
담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입을 열면 자신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될까 봐.
이미 상대는 자신의 계책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이 극도로 당황한 것 역시 꿰뚫어 봤을 것이다.
모든 걸 아는 상대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어쩌면 죽어서도 버리지 못할 자존심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서량은, 담사영의 그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오직 나뿐이다."
"……?"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수하들에게도, 송금백에게도, 황제에게도."
"……!"
"자, 어떻게 할래?"
번쩍! 번쩍!
좌청우홍의 절대마안을 번뜩이며, 서량이 말했다.
"성대하게 맞아 줄 테니 직접 본교로 찾아오겠나? 아, 애들 시켜서 널 잡으려 들진 않을 테니 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번쩍! 번쩍!
좌홍우청의 절대사안을 번뜩이며, 담사영이 답했다.
"……직접 찾아가겠다. 그 자리, 그 권좌에서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