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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11화 (610/774)

611화. 또 하나의 신(神) (5)

후욱. 후욱.

사슴의 호흡이 몹시 거칠었다.

죽어 가는 사슴을 보며, 분홍빛 눈의 주인은 애석함을 느꼈다.

‘이 친구도 살 만큼 살았군.’

인간으로 치자면 천수를 누리고 죽은 셈이었다. 이 거친 자연에서 노화로 죽는 짐승은 결코 많지 않았다. 대부분 포식자에게 사냥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기 때문이다.

‘축복받은 생이야.’

사슴 역시 그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제 죽음이 다가왔음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사슴의 눈은 몹시 맑고 깊었다.

‘왜 여기까지 찾아왔지? 네가 살던 곳에서, 그 땅에 묻히면 그만일 것을.’

사슴이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분홍 눈의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사슴은 천성적으로 강한 기(氣)를 타고났다. 그 기는 지금 이 순간, 죽어 가는 와중에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먹혀 그 기를 전해 주려 하고 있었다.

천하 영수(靈獸)의 왕. 말하자면 분홍 눈의 주인은 천하 모든 짐승의 왕이다.

사슴은, 별 탈 없이 살아온 지난 생을 기뻐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왕에게 바치려 하고 있었다.

‘너의 호의, 감사하게 받겠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무나도 맑고 깊어서, 마치 지혜 가득한 현자(賢者)의 눈처럼 보이는 눈.

그 눈이 서서히 감겼다. 드디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슴의 죽음을 확인한 분홍 눈의 주인은 거침없이 사슴의 목을 깨물었다.

우두둑.

목부터 시작해 몸통, 다리까지 순식간에 해치운다.

분홍 눈의 주인은 사슴의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 강인한 턱으로 사슴의 모든 것을 깨부숴 먹어 치웠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온 사슴이 죽음을 맞이했다.

우우우우웅.

분홍 눈의 주인, 그 황금빛 몸체에 은은한 영기(靈氣)가 치솟았다.

얼마 만인가?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슴을 보는 것은. 또 그러한 사슴이 제 발로 찾아와 자신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분홍 눈의 주인은 한층 더 성장했다.

정확히는,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무수한 힘 중 하나를 되돌려 받았다.

"호오."

분홍 눈의 주인, 금호가 고개를 들었다.

"꽤 신기한 광경이군. 사슴이 저 스스로 찾아와 자신을 먹이로 주다니……. 보아하니 홀린 것도 아닌 듯한데."

금호의 얼굴에 반가움이 일었다.

짐승의 근육은 사람과 달라서 표정이란 것을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금호는 분명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 반짝거리는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서량이 금호의 콧잔등을 매만졌다.

"잘 지냈냐."

크르릉.

금호가 서량의 가슴에 머리를 비볐다.

동시에 금호는 깨달았다.

‘더 강해졌어.’

육체는 예전과 다를 게 없다. 그 껍데기 안에 든 힘의 총량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금호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가 더 강해졌다는 것을.

세상에 나가 무엇을 보았는지, 이 남자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기쁘다.’

금호는 진실로 기뻤다.

자신과 영통(靈通)하는 남자의 성장이, 자신보다 한참이나 낮은 격(格)을 갖고도 주인이 된 자의 발전이, 이제는 지닌바 영기(靈氣)만으로도 능히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비범한 자의 귀환이 금호를 기쁘게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괜찮아.’

헤아리기 어려운 생을 살아오며, 금호는 무수히 많은 인간을 보았다.

금호가 보았을 때, 인간은 미물에 불과했다. 그들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속도는 실로 놀라웠지만, 개개인의 발전 속도는 짐승만도 못했다.

스스로를 완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오만한 존재들. 금호가 본 인간들은 바로 그런 생물들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이 남자는 세상과 싸웠고, 한 번의 패배를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몇 번의 각성을 거쳐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새사람이 된 이 남자는 깨달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걸.

그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데에 무려 일 갑자가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니, 과연 인간은 미물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러나.

어느새 훌쩍 성장하여 자신의 앞에 나타난 주인을 보는 지금.

금호는 인간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그를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능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금호는 한 명의 마신(魔神)을 떠올렸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神)의 반열에 오른, 이 땅의 유구한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상의 품격을 갖추게 된 불세출의 천재를. 그러고도 미물의 삶을 선택하여 하늘에 오르지 못한, 그래서 더더욱 위대해진 반쪽짜리 신선을.

그런 자가 다시는 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한데 제 주인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그 마신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었다.

"금호."

금호가 서량을 보았다.

"전에 내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시랑(豺狼)은 영물 중의 영물이나, 시랑이 세상에 나타나면 전쟁이 벌어진다고. 존재 자체가 세상의 운명을 뒤흔들 만큼의 기(氣)를 조종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이 너를 역병이나 귀신으로 취급했다고 들었다."

그랬었지.

금호는 한때나마 자신이 그런 취급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세상에 자신이 시랑인 줄 아는 자는, 아니 시랑이라는 영물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금호는 일말의 유감조차 느끼지 못했다.

"한때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어. 내가 세상에 나갔을 때, 생각보다 분란이 너무 많았거든. 그게 실은 너의 존재 때문은 아닐는지, 너와 내가 영통하고 있기에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알고 있다.

금호는 서량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영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섭섭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만큼 서량을 믿고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만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모든 분란은 내가 만든 것이다. 네가 품고 있는 기(氣)는 분명 천하의 운명을 조종할 정도로 깊고 대단하지만, 너는 단 한 번도 그 힘을 이용해 세상을 바꾸려 한 적이 없었어. 그저 그대로 존재했을 뿐이야."

그리고 금호의 그 믿음은, 지금 이 순간 보상받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이 이만큼이나 성장했기 때문에.

천하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어 보는 눈, 그것을 ‘해석’하지는 못해도 섭리의 근본을 체감할 정도로 성장했기에 그는 자신을 이해하고 있었다.

크르릉.

서량의 어깨에 턱을 올린 금호가 눈을 감았다.

금호의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흘러나왔다.

‘고생이 많았어.’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이러한 눈을 갖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뒤따랐던가.

옆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봐 온 금호는, 제 주인의 부족함을 알아도 그것을 채워 줄 수 없었던 금호는 이제야 서량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지 마라."

서량이 금호의 콧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완전해질 생각이 없다. 그저 이승에서의 내 삶이 끝날 때까지, 조금은 바쁠지라도 같이 놀다 가자. 그거면 돼."

몇 번이나 금호의 콧잔등을 토닥여 준 서량이 곧장 금호의 등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재미난 삶을 살기 위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았구나."

크르르릉.

"자, 집으로 돌아가서 손님 받을 준비나 하자."

금호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캬아아아아앗!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포효가 산천초목을 떨어 울렸다.

콰앙!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달려 나가는 금호.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움직였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서량조차도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서량은 금호에게 속도를 낮춰 달라 하지 않았다.

금호의 환희를 느꼈기 때문이다.

천하 영수의 왕이 느끼는 기쁨이, 보람이 그를 미소 짓게 했다.

"헉! 교주님?!"

거대한 황금빛 여우를 타고 나타난 서량이 고구를 보았다.

고구가 곧장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형법당주 고구가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 뒤에 있던 형법당원 열 명도 잇따라 부복하며 외쳤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서량이 웃으며 한 손을 들었다.

"여어, 오랜만이구만."

그간 대내외의 일로 유독 바빴던 고구였다. 신교의 힘이 강해지고 교주인 서량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중원 곳곳에서 온갖 갈등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분란을 감당치 못한 마도 무림 측에서 신교에 연락을 취했고, 그 모든 분란을 바로잡기 위해서 고구과 형법당원들이 투입되었다.

"교로 돌아온 건가?"

"그렇습니다."

"하던 일은 잘 끝냈고?"

"어느 정도 안정은 시켜 놓았습니다만, 아직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허허, 여전히 일 처리가 칼 같구먼."

서량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인 대다수를 교외로 내보낸 터라 외성 전체가 휑했다. 다만 외성 관리를 위한 몇몇 마인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뭐 하나? 왔으면 내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반란 분자를 찾아서 이송 중입니다."

"반란 분자?"

"그렇습니다."

서량의 눈이 무릎을 꿇은 형법당원 뒤, 수갑을 찬 마인에게 향했다.

"헉!"

마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하니 형법당에 걸릴 줄도 몰랐지만, 하필 걸려서 끌려가는 중에 천마를 보게 될 줄도 몰랐던 것이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었나?"

"……!!"

마인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대의 영물 등에 타서 자신을 굽어다 보는 십대천마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태산과도 같았다. 그 절대적인 존재감에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었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반란을 일으킬 실력은 안 되는 것 같은데?"

고구가 담담하게 말했다.

"음지에서 강서상회를 공격하려 한 자입니다. 본교 외단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강남의 지하 경제를 손에 쥐고 흔드는 흑문지회(黑門之會)의 수장입니다."

"오호. 반란이라는 게 그런 뜻이었구만."

고개를 주억거리던 서량이 손을 휘저었다.

"컥!"

수갑을 찬 마인이 일순 부르르 떨었다.

서량의 마안이 붉게 달아올랐다.

"흑문지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답이 순순히 나온다.

고구는 물론 형법당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흑문지회의 수장이 무지막지한 독종이라는 걸 조사하면서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량이 말을 이었다.

"혹, 가족이 있느냐?"

"……없습니다."

"네 휘하에서 움직이는 수하들은 네 가족이 아니란 말이더냐? 이놈 이거 안 되겠구만?"

서량이 고구에게 말했다.

"알아서 자백할 것이네. 다만 효력이 길지는 않아. 이틀 안에 뽑아낼 정보는 전부 뽑아내야 할 것이네."

고구가 못 말린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교주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서로 돕고 사는 처지에 성은까지야."

쿵. 쿵.

금호가 형법당을 넘어 걸어갔다.

"그 일은 애들한테 맡기고, 이만 내단으로 들어오게. 간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예?!"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손님이 오실 거거든. 혹시 모르니 그 전에 술이라도 한 잔씩 따라 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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