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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13화 (612/774)

613화. 숙적(宿敵) (1)

"흐음."

담사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바로 십만대산이로군."

그는 나직이 감탄을 터트렸다.

십만대산의 절경은 장강 이북의 무수히 많은 명산과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봉우리들의 연속.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길게 뻗은 용의 비늘처럼 보일 것이다.

게다가 날씨도 북부와는 사뭇 달랐다.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기온이 무척이나 훈훈하다. 아마 내공을 익히지 않은 북쪽 사람이라면 땀을 흘릴 수도 있을 정도의 기온이었다.

‘이렇게도 달랐군. 마치 정파와 사파, 마도가 제각기 다른 신념을 갖고 살아온 것처럼.’

그리고 저 멀리, 우뚝 솟은 거성(巨城)이 보였다.

"마교."

담사영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의 발길도 허용하지 않는 죽음의 땅. 그 땅에 나 홀로, 직접 찾아왔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거, 의천맹주 시절에는 지금의 상황을 상상도 못 했다. 광동성의 십만대산을 보게 될 날은, 천하를 일통하고 마교와의 마지막 일전을 남겨 둔 때일 줄로만 알았다.

설마하니 가진 모든 기반을 잃고 홀로 이 땅에 오게 될 거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놈을 보냈지.’

담사영이 눈을 감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내려고 했었지.’

살왕 천하진.

무림 최강의 살수이자, 암살자로서 오르기 힘든 경지에 올라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으로 당당히 자리 잡은 희대의 살법가.

놈은 도주하기 전까지, 맡은 바 임무를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당당히 정문으로 쳐들어가 목표물의 목을 베고 나오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숨어서 들어가든 정면으로 쳐들어가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그런 놈이 없었어.’

눈을 감은 담사영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때는 참으로 좋았지.’

비록 천하일통의 야심이 한풀 꺾인 데다가 손에 넣은 권력에 취해 온갖 향락에 젖었지만, 그 자체로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정파 무림 정점에 오른 강북 무림 최고의 권위자.

불타오르는 욕망이 식을 만도 하지 않은가. 반드시 천하 정점에 오르겠다고 다짐하며 달려온 세월이 아까울 법도 했지만, 의천맹주라는 자리에 앉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렇다. 아마 마교가 발호하지 않았다면, 아니 천하진이 끝까지 자신의 곁에 있었다면 자신의 야심은 타다 만 장작처럼 불씨만 피우다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을 것이다. 의천맹주로서, 역사에 고만고만한 이름을 남기고는 서서히 잊혔을 것이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담사영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내 손에서 벗어나 마교의 소교가 되어 세상에 나온 네 녀석 덕분에 나 역시 꺼져 가는 욕망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고마워해야 마땅할 일이야.’

욕망 없이, 가진 것을 누리며 살다 가는 것도 충분히 행복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담사영의 천성은 그런 삶과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도 잠깐의 행복을 누리다 죽을 때가 되었을 즈음엔 지독하게 후회했을 것이다.

왜 야심을 접었을까, 내 의지는 그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일까, 하면서.

‘어쩌면 천룡궁주 역시 죽였을 수도 있겠어.’

그는 과다한 욕심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한 사람이었다. 계속 의천맹주로 살았다면 천룡궁주는 자신에게 천하를 안겨 주지 않을 거냐며 불만을 토했을 것이고, 담사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없애 버렸을 것이다.

"그래."

담사영이 눈을 떴다.

"내 비록 너를 개로 키웠지만,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너를 격이 떨어지는 짐승으로 생각했지만."

짙어진 미소가 어느새 사라졌다. 담사영의 얼굴은 완벽하게 무표정해졌다.

"너야말로 내 운명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자였구나."

천하진, 아니 서량이 없었다면 자신은 후회 속에 죽어 갔을 것이다.

서량이 날뛰었기에 자신은 긴장했고, 서량이 날뛰었기에 그 무적의 마신 이천상도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서량이 있었기에 천하가 무법지대로 변했고, 서량이 있었기에 정사마(正邪魔)가 각기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서량 덕분에.

당대 천마신교의 십대천마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 역시 지금 이곳에 서서 저 십만의 대산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푸스스스.

담사영의 발밑에서 기이한 돌풍이 생성되었다.

모래와 함께 기지개를 켜는 돌풍이 그의 몸을 두둥실 띄워 올렸다.

파라라라락!

황금빛 곤룡포가 바람에 따라 미친 듯이 흔들렸다.

참으로 멋스러운 외관이었다. 혈원기로 칠요집전의 힘을 완성한 것도 모자라 천룡궁이 그간 모아 둔 모든 기운을 한 몸에 담은 담사영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었다.

담사영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콰콰콰쾅!

거대한 돌풍을 밟고 선 담사영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뒷짐을 진 채, 발밑으로는 돌풍을 일으키며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한다.

이제는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는 경지였다. 무공과 술법의 경계를 허물어트린 담사영, 무수히 많은 진기를 혈원기로 종속시켜 진천룡기(眞天龍氣)를 완성한 그의 능력은 실로 신선의 그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콰콰쾅! 퍼어어엉!

돌풍이 지나가는 길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깨져 나갔다.

폭이 좁은 강물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수많은 나무가 분쇄되며 돌풍을 따라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담사영은 천마신교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마치 그 무엇도 자신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허극신(虛極身)과 풍천술(風天術)을 합쳐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나아가는 담사영 앞에는 오직 파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콰르르르릉!

담사영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무서운 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담사영의 눈가가 살짝 떨려 왔다.

‘술법이 아니다.’

당연하다. 놈은 술법을 익히지 않았으니까.

‘술법이 아닌데도 기상을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것이냐?’

틀렸다.

술법이 아니고서야 저런 짓이 가능할 리 없다. 설령 술법이라도, 기상 이변을 일으키려면 담사영 정도의 힘을 갖춘 게 아닌 이상 수일에 걸친 준비와 희생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저 먹구름은 무엇인가. 누가 있어 기상을 조종하는가.

바로 하늘 그 자체다.

번쩍!

시퍼런 벼락이 소리 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게 시작이었다.

콰르르릉! 번쩍! 콰아앙!

천둥과 함께 쏟아진 벼락이 대산 곳곳을 후려쳤다.

벼락이 내리꽂힌 땅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나무가 뿌리부터 뒤집히고, 비산하는 흙더미가 또 다른 벼락을 맞고 시커먼 재로 화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대산 전체에 벼락이 그물처럼 쏟아지는 광경을 홀린 듯 보던 담사영.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왜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는지, 왜 느닷없이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는지.

"……마기(魔氣)."

그렇다. 마기다.

마기에 의지가 실려서 기상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마기 자체가 하늘의 벼락과 똑같은 힘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기가 치솟아 하늘과 공명, 천기(天氣)와 맞물려 기상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제석천(帝釋天)의 힘이라.’

담사영이 피식 웃었다.

‘제육천마왕, 마라 파순을 모시는 놈들이 제석천의 힘을 끌어와 쓴다…… 그것도 웃기군.’

욕계의 왕인 마라 파순은 제석천보다도 서열이 위다.

자신보다 하위 신의 힘을 끌어다 쓰면서 젠체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우습다.

‘하기야, 천지간에 뇌기(雷氣)만큼 강한 기운은 또 없을 테지.’

파지지직.

담사영의 손에서 붉은 전광이 이글거렸다.

그 역시 진천룡기를 완성하며 뇌기까지 다루는 경지에 도달했다. 아니, 그는 대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기운을 다룰 수 있었다.

‘너의 힘과 나의 힘, 어느 쪽이 더 강한지 이제야 제대로 비교해 볼 수 있겠구나.’

콰콰쾅! 퍼어엉! 퍼퍼퍼퍼펑!

담사영은 끝없이 전진했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벼락의 세례. 한 방만 맞아도 인간의 육신이라면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갈 것이 분명한데도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번쩍! 파지지지직!

한 줄기 벼락이 그대로 담사영의 몸을 강타했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후우우우우웅. 파지직!

담사영은 멀쩡했다. 아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가슴께까지 쳐든 오른손에서 붉은 전광이 마구 방전하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벼락이 담사영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확히는 동조였다. 힘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벼락으로 힘을 순환시키는 것이다.

담사영의 깨달음이 누구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막는 것이 아니라 동조하여 공격을 통과시켜 버리는 깨달음이다. 당대 무림 최강의 힘을 품고도 자만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응한다.

강해진 것이다.

무공만이 아니라 정신력도, 마음가짐도.

그때였다.

‘……?’

여유롭게 웃으며 다가오던 담사영은 문득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뭐지?’

그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모래며 나무며 돌멩이를 마구 빨아들이는 돌풍 속에서 붉은빛의 무언가가 보였다.

‘……!’

담사영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용암?!’

물론 용암은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대지가 폭발하며 한 줄기 시뻘건 불기둥이 치솟았다.

피처럼 새빨간 불기둥이었다. 그 불기둥에 닿은 나무와 돌은 모조리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열기. 얼마나 뜨거웠는지, 불기둥이 치솟는다 싶은 순간 담사영은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흡.’

우우우우웅.

진천룡기가 깔리며 솟구치는 불기둥을 막았다.

벼락은 동조시켜 흘려보낼 수 있어도, 저 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담사영 역시 혈화신기를 다루며 천하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지만, 저 화염은 근본적으로 뭔가가 달랐다.

동조는커녕 잡아먹힐 수도 있다.

화르르르르륵!

‘헉!’

담사영은 깜짝 놀랐다.

솟구친 불기둥이 진천룡기에 맞아 퍼질 줄 알았더니만, 어느새 돌풍에 휘말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속도가 벼락처럼 빨랐다. 계속 허극풍천술(虛極風天術)을 유지하다간 뭔가 해 보지도 못하고 온몸이 불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담사영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퍼어어어엉!

하늘 끝까지 치솟은 화염의 돌풍이 벼락에 맞아 산산이 흩어졌다.

허공을 유영하며 천천히 하강하는 담사영의 눈에 벼락과 화염, 돌풍이 부서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야말로 인세를 벗어난 것 같은 장면이었다. 정작 저 힘의 한 축을 자신이 담당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담사영의 귀로 서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앞은 본교 마인들의 터전이다. 제힘에 취해 난장판을 만드는 거야 알 바 아니지만, 내 땅에서까지 개지랄 떠는 건 못 참지."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꽤 과격한 목소리였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둥둥 떠다니는 거, 재미있어 보이기는 한다만 이제 슬슬 내려오는 게 어때?"

순간 담사영의 용천혈에서 진천룡기가 폭발했다.

퍼어어어어엉!

폭음과 함께 쏘아진 담사영이 어느새 천마신교의 외성 대문 앞에 내려섰다.

후우우웅.

그토록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돌진했으면서도 땅을 딛는 움직임은 산뜻하기만 했다.

담사영이 고개를 들었다.

위풍당당한 천마신교의 성문이, 천년의 세월 동안 외적의 침입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철옹성의 위용이 그를 두근거리게 했다.

"……내 드디어 일생의 꿈에 도달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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