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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14화 (613/774)

614화. 숙적(宿敵) (2)

저벅저벅.

대전을 나와 내성 중앙 광장을 걸어가며, 서량은 생각했다.

‘참으로 얄궂지 않은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숙명이라고 해야 할지.

담사영은 자신을 개로 키웠다. 아니, 개로 키웠다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배신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혈고까지 심어 두었으니 방심할 만도 하다.

‘하지만 과거의 놈은 방심이라는 걸 몰랐어.’

담사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갓난애도 눈 하나 깜빡 않고 찢어 죽일 수 있는 냉혹한 살인마였다.

그 커다란 야심만큼이나 뛰어난 두뇌에 무공의 재능도 출중했으며, 사람을 부리는 능력 역시 누구 못지않았다.

그 악랄한 성품만 제외하면, 담사영은 실로 걸물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천재였다. 심지어 남들처럼 방심하는 일조차 없었다.

적어도 서량이, 천하진이 살수지왕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런 놈이 방심하기 시작했다. 권력에 취해서.’

담사영이 방심한 시점.

그 시점이 곧 놈의 욕망이 사그라들었던 시점과 일치한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놈은 분명 현실에 만족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말로는 천하일통을 꿈꾼다고 하면서도 그 이상의 계략을 꾸미려 들지 않았다.

속 빈 강정. 욕망이라는 장작을 다 써 버리고 간간이 연기만 피워 올리며 살아가는 늙은 권력자.

‘나를 신교로 보내려고 한 것 역시 보여 주기식이었을 뿐이야.’

당시에는 몰랐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알겠다.

담사영은 천하일통을 위해 자신을 마교로 보내려던 게 아니었다. 그것은 진정 타성에 젖어서 나온 행동에 불과했다.

나는 아직 노력하고 있다. 내 야망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남들 눈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놈은 언제나 수하들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야망을 위해 늙어 죽을 때까지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 했다.

고작 그 증명 때문에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한 것이다.

담사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신교의 삼공자로 부활해, 중원에서 일장 난투를 벌이게 될 줄은 너 역시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담사영이 다시 변화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그때였다.

놈은 사부님, 이천상과 마주했을 때까지도 방심했다. 하지만 적어도 놈의 마음속에는, 다 타고 재만 남은 줄 알았던 욕망의 불길이 재차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리고 담사영은 이천상을 보았다.

이천상을 보고,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아직도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갑자기 천룡궁에 의지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던 거야.’

담사영은 더 이상 천하일통에 흥미가 없었다.

이천상을 만난 후, 그는 자신의 목표를 달리했다.

바로 신(神)이 되는 것으로.

‘대단해.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지고도 기어이 이만한 힘을 손에 넣은 너의 저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야말로 희대의 천재라고. 마도 역사상 이런 군주는 없었으니, 능히 마도천하를 이루어 신교의 이름을 만세에 빛낼 파순의 대리자라고.

물론 그것은 끝까지 살아 보지 않는 한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서량은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담사영 역시 자신보다 못하지 않은 놈이라는 걸.

쾅!

내성과 외성을 잇는 성문이 저절로 열렸다.

저벅저벅.

그 거대한 문을 열고 외성으로 향하는 서량의 얼굴에는 아무런 긴장도, 희로애락도 엿보이지 않았다.

"너나 나나, 결국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이 악물고 달리다 운 좋게 천하 정점에 오른 모자란 ‘인간’들일 뿐이야."

서량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지 않나?"

후우우우우웅.

바람이 불어왔다.

외성에는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텅텅 비어 버린 외성을 가로질러 오며, 담사영이 말했다.

"정정해야지. 우리는 한때나마 인간이었을 뿐, 이젠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서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아니라면 악귀겠군."

"신(神)이지."

담사영이 턱을 치켜들었다.

오만함이 느껴지는 동작. 그러나 과거와 달리, 그 오만한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너 역시 그것을 인정할 때가 되었어."

"진짜 신을 봤으면서도 그따위 소리가 나오나?"

"진짜 신이라……."

담사영이 탄식했다.

"이천상. 그래, 그야말로 진짜 신이었지. 그는 대자연 그 자체였으며, 언제라도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자였어."

"그렇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그러셨지."

"이천상은 신화의 끝에 서 있었음에도 그 불같은 욕망을 버리지 못해 끝내 인간으로서 죽은 자야. 결국, 그 역시 완전한 신(神)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신이란 인간의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에 신이라 불리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사부님을 제대로 이해해 본 적이 없었어. 그것은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해는 못 해도 결과는 보았지. 인간으로서 죽었다면, 결국 이천상 역시 그 정도에 불과한 자라는 뜻이야."

서량이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재미있군."

"무엇이 말인가?"

"결과가 그렇다면 과정이야 상관없다……. 재미있어. 그 말, 사부님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거든."

담사영이 미소를 지었다.

"궁극에 이르면 결국 만 개의 길도 하나로 모이는 법. 나는 이천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 그가 밟았던 길 위에 서 있다."

서량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너와는 달라.’

사부님, 구대천마 이천상은 언제나 결과를 바랐다.

과정? 물론 과정도 중시했지만, 결과가 뒤따라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결과만을 보고 과정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가늠조차 못 할 신안(神眼)의 소유자였다.

즉, 이천상이 결과를 중시하는 것은 섭리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결과든 과정이든, 결국에는 하나의 흐름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러나 담사영이 말하는 결과는 달랐다.

그는 과정을 배제한 결과만을 원한다. 과정과 결과를 하나로 보지 않고, 그저 철저하게 결과만을 중시했다.

그것이 바로 이천상과 담사영을 가르는 차이였다.

‘그렇다면 나는?’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나는 과연 무엇을 더 중시하는가?’

그때, 담사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드잡이질을 하든 뭘 하든, 어쨌든 손님이랍시고 초대를 했으면 술이라도 한잔 내주는 것이 주인장의 도리 아니던가?"

서량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우우우우웅.

작은 탁자 하나와 거대한 술동이 하나, 그리고 잔 두 개가 허공을 날아와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담사영의 눈이 빛났다.

"굉장한 허공섭물이로군."

"이 정도 갖고 뭘. 너도 가능한 기예다."

"과거의 나는 불가능했지. 과연, 네놈의 재능은 실로 불세출의 영역에 거하고 있었구나."

"재능이 아니라 요령이 좋았지. 뭐 해? 앉아."

마침내.

두 사람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맨바닥에 앉았다.

쿵!

서량이 천마도를 바닥에 놓았다.

담사영이 천마도를 힐끔 바라보았다.

"전에도 봤지만, 정말 대단한 칼이로군."

"그렇지."

"도신 안에 무시무시한 마기가 봉인되어 있어. 네놈의 마기는 아니고, 이천상인가?"

"그래."

담사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하군."

"그런 분이셨지."

가만히 서량을 보던 담사영이 입맛을 다셨다.

"스승이라……. 예전에도 그랬지만, 네놈이 이천상을 사부라 부르는 것이 몹시 어색하구나."

"사부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은 쓸 수가 없어. 나는 그분을 만나 비로소 군주로서 자각했고, 천하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서량이 바가지로 술을 퍼 잔에 담았다.

"아마 그분이 아니었다면, 난 아직도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했겠지."

"미망?"

"너를 향한 분노, 쌓일 대로 쌓여 옹이진 한(恨)에 사로잡혀 지금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을 거란 말이다."

담사영이 차갑게 웃었다.

"대단한 스승이었군."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했지."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담사영이 잔을 들었다.

"너와는 처음으로 술을 마셔 보는 것 같구나."

"애초에 아랫사람 위할 줄을 몰랐잖나?"

"그러는 너는? 아랫사람과도 자주 술판을 벌이는 모양이지?"

"물론이다. 안 그래도 다들 대전 안에서 곯아떨어져 있어. 방금까지 들이켰거든."

담사영의 눈이 번뜩였다.

스르르륵.

무형의 진기가 솟구치며 내성 전체를 더듬었다.

"……정말이로군."

"이런 거짓말을 해서 뭐 하냐?"

담사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희대의 난적을 맞는 와중에 수하들을 술에 취하게 만들어? 참으로 모를 놈이로다."

"어차피 내가 이기면 문제가 없을 것이고, 내가 죽으면 다 끝나는 거 아닌가? 그럼 마음 편히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가 싸우기 시작하면 저들 역시 무사치 못할 텐데?"

일대가 초토화가 될 거란 말이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내가 걱정할 테니, 그만 주절대고 술이나 한잔하지."

담사영이 코웃음을 치며 잔을 비웠다.

곧이어 그의 눈이 커졌다.

"호오."

몇 번이나 입맛을 다시던 그가 기어이 감탄을 뱉어 냈다.

"정말 좋은 술이구먼. 내 살면서 이처럼 입에 붙는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는데."

"그렇지?"

"직접 담근 건가?"

"내가 담근 건 아니고, 사부님께서 담그셨지. 육천심주라고, 아직 썩어지게 많이 남았다."

"오늘 술자리, 정말 마음에 드는군. 한 잔 더 주게."

서량은 군말 없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담사영이 웃으며 말했다.

"어떠냐? 교주라는 자리."

서량이 넌더리를 냈다.

"힘들지.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산골로 도망쳐 버리고 싶을 때도 있어."

"이제야 수장이란 자리의 무거움을 알았나?"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향락에 취해 몇 년을 질펀하게 놀았으면서."

담사영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나도 사람인지라 지쳤었거든."

"그렇게 놀면 더 지칠 것 같은데."

"세상에 노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뭐가 있겠나. 절대 힘들지 않아."

"계속 그렇게 놀다가 뒈지지, 뭐 하러 지금까지 버티고 섰어?"

"웃기는 소리. 네놈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나 때문이라고?"

"너 때문이고, 네 덕분이지. 솔직히, 네놈이 중원으로 나와 난장을 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폭삭 늙었을 것이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늙어 뒈질 때까지 놔둘 걸 그랬군."

"그건 좀 섭섭한 말인데."

"됐고, 술이나 한 잔 더 해."

"좋지."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셨다.

뜻밖에도 두 사람은 죽이 꽤 잘 맞았다. 가끔 살벌한 대화로 공기가 얼어붙기도 했지만, 적어도 당장 싸울 마음은 없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증오로 얽힌 복잡한 관계, 증오와 한을 전부 불살라도 결국은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관계.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숙적.

그렇게 두 신(神)이, 마지막 싸움을 위한 축배를 들었다.

"더 마셔?"

"더 줘라."

"이거 완전히 주당이네."

"많이 있다며. 쩨쩨하게 굴지 마라."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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