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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20화 (619/774)

620화. 숙적(宿敵) (8)

"으아아악!"

담사영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억! 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문득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그의 얼굴에는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멀쩡하지?’

잘려 나간 팔과 다리도, 구멍이 뚫린 복부도, 피범벅이던 몸뚱이도 멀쩡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해선 안 되는데?"

완전히 얼이 빠진 담사영의 표정은 불가해(不可解)로 가득했다.

"이혼대법(移魂大法)이 성공했다면, 이 몸뚱이는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되거늘……."

그렇다.

그는 서량의 마지막 일격에 목숨이 날아가기 전, 이혼대법을 구사했다.

진천룡기로 구사하는 이혼대법. 무명이 그를 주천양의 몸뚱이로 옮길 때처럼 수많은 준비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무명이 담사영더러 진정 신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영혼이 소멸하지 않는 한, 그는 이혼대법으로 영겁의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얻은 천하는, 언령의 주(呪)에 얽힌 무명과의 약조를 따라 평생 천룡궁의 천하를 보장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두 사람의 계약이었다. 담사영의 영혼이 스러지는 그 순간까지 천룡궁의 맥이 이어지는 것, 그리고 그 천룡궁이 수천 년 동안 천하에 군림하도록 하는 것.

"설마, 실패했다고?"

담사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혼대법이 실패했어? 그럴 리가!"

신화경에 올랐다 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깨달음을 얻은 게 아닌 이상 이혼대법은 실패하지 않는다.

즉, 등선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모든 자에게 통하는 것이 바로 이혼대법이다. 그리고 서량은 당연히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어떻게? 대체 왜 실패한 거지?

"……?!"

순간 담사영은 멀쩡한 자신의 몸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혼대법이 실패했다면 그걸로 끝이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자신의 몸뚱이 역시 서량에게 당한 그 상태 그대로여야 한단 뜻이다.

하지만 몸이 멀쩡해도 너무 멀쩡했다.

팔다리도 잘 붙어 있었고, 구멍이 뻥 뚫렸던 복부도 매끈했으며, 의복이나 머리카락도 멀쩡하기만 했다.

"……설마 꿈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꿈이라면 꿈일 수도 있지."

"헉!"

깜짝 놀란 담사영이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그곳에는 서량이 있었다.

위엄 가득한 마왕보의를 걸친 서량의 모습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외양은 달라진 게 없지만, 싸움에 임했을 때의 그가 마신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천하를 발아래에 둔 패왕과 같았다.

담사영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서량의 모습이, 그가 자아내는 멋들어진 품격이 그의 신경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이놈!’

저 미소, 저 눈빛, 저 오만함은 놈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저것은 바로 자신이 돼야 했을 모습이었다.

"보아하니 아직까지는 건재한 모양이로군."

"이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글쎄다. 설명해 주기 귀찮군."

서량이 손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다만, 주위를 좀 둘러보면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돈 알아챌 순 있을 거야."

"뭐?"

담사영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헉!"

왜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을까? 두 사람이 선 세상은 온통 하얗기만 했다.

그야말로 완전한 백색의 세상이었다. 땅도, 하늘도, 풍경도 눈 닿는 모든 곳이 그저 새하얬다.

심지어 그림자도 없었다. 빛이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분명 바닥을 딛고 있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하얀 세상을 보는 눈도 아프지 않았다.

"어때? 놀랍지?"

"……대체 여기는 어디냐?"

담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무슨 사술이냐!"

"하하하하!"

서량이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사술? 그거 재미있는 말이로군. 신(神)에 가까운 술력을 지닌 사람에게 사술을 걸어? 제정신인가?"

담사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화가 났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하에 존재하는 어떤 사술도 자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술의 수준 문제가 아니었다. 진천룡기는 모든 술법의 증폭기인 동시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술법을 무효화할 수 있다.

게다가 서량 정도의 무인이 사술을 쓸 리도 없었다.

"그럼…… 그럼 대체 이곳은 뭐냐?!"

"사술은 아니다. 술법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온전한 술법이라고 하긴 어렵지."

"뭐?"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여기는 판마정(判魔亭)이다."

"……?!"

"신교 내 가장 비밀스럽고도 중요한 곳 중 하나지. 아마 들어는 봤을 것이다."

들어 봤다니? 어디서?

순간 담사영은 무명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었다.

- 모르겠어. 마교에는 이 나의 눈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초고차원적인 진법이 펼쳐져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마교주와 만났어. 하지만…… 글쎄?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이던걸?

담사영이 신음을 흘렸다.

"진법……."

"그래, 진법이지. 하지만 뭐, 또 진법이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지."

"……."

"술법과 진법, 진기와 이치, 사고와 직감의 교차. 이곳 판마정은 교주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신(神)의 대지다."

"……!"

"그리고 넌, 제 발로 여기에 걸어 들어온 것이야."

담사영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대체 언제?!"

서량이 피식 웃었다.

"언제겠냐? 네놈이 그 잘난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아온 그 순간부터지."

"……설마 판마정이라는 곳이 마교 전체에 둘러쳐진 진법이란 말이냐?"

"물론 그렇진 않지."

우우우우우웅.

서량의 가슴께에 기묘한 도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그란 원 안에 복잡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도형은, 바로 서량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유진도형(幽陣圖形)이었다.

우우웅. 우우우웅.

복잡한 도형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판마정은 교주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교주의 상상을 토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그러나 그 영역은 절대적으로 판마정 내로 제한된다."

"……."

"적어도, 네놈이 오기 전까지는 그러했지."

"무슨 말이냐?"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더군."

"뭐?"

"네놈이 발밑에 돌풍을 일으키며 본교로 다가오지 않았더냐."

"……?!"

"그걸 보고 생각했지. ‘아, 지금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이야."

"그게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과 무슨 상관이……?!"

"그래서 강해졌다. 그 즉시."

"……?"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 그 지독한 욕망 한 줄기로, 굳이 더 필요치 않은 힘을 손에 넣었다. 바로 너 때문이며, 동시에 네 덕분이기도 하지."

담사영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욕망이라고?"

"그렇다."

서량이 손을 휘저었다.

후우우우우웅.

새하얗기만 하던 백색의 풍경이 순식간에 다채롭게 물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이 기화요초 만발한 선경으로 바뀌었다. 바람은 따뜻했고, 습도 역시 적당하여 기분이 절로 포근해지는 듯했다.

담사영의 얼굴에 경악이 드리워졌다.

‘이럴 수가!’

환술이라면 그 역시 누구보다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이 변화는 어떤 고차원적인 환술과도 격이 달랐다. 애초에 원리를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는 초고차원적인 무언가였다.

스르륵.

발에 걸리는 풀과 꽃의 감촉이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했다.

바람에 묻어 나오는 풀의 냄새와 피부에 느껴지는 습도, 태양이 전해 주는 열기까지. 그 모든 게 너무나도 실감이 났다. 심지어는 햇살에 담긴 양기(陽氣)로 태양신기(太陽神氣)까지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세상이었다. 술력의 신안(神眼)으로도 진짜 세상과 아무런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극마(極魔)란 마(魔)의 극치를 뜻하며, 조화(造化)란 그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결속을 뜻한다. 그래서 극마지경은 극단적이고, 조화지경은 조화롭다."

"……."

"결국 끝에 도달하면 하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바, 그러나 그 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어. 그래서 극마와 조화경도 다르다. 같은 선상에 놓인 경지이지만, 어떤 기(氣)를 품고 성장했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곳도 다른 법이지."

후우우우우웅.

불어오는 바람에 붉은색이 입혀졌다.

아름다운 홍색의 바람은 이내 돌돌 뭉치며 작은 구체를 만들어 냈다.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극마가 마의 극치를 뜻한다면, 결국 마(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한 자들만이 그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의 본질은 무엇인가?"

"……."

"욕망이다. 극마에 오른 자들은 자신의 무의식이 바라는 욕망의 끝까지만 강해질 수 있다. 반면 조화지경이란 한데 치우침이 없는 경지이니, 이미 그곳에 도달했다면 깨달음만큼은 극마보다도 위라고 봐야 옳겠지. 하여 조화경에 오른 자들은 오욕칠정(五慾七情)부터 완벽히 다스린 후, 더 높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매진해야 한다."

"……."

"그래, 바로 남궁 노선배나 저 정무쌍신 노선배들처럼."

서량이 씨익 웃었다.

"알겠나? 나는 네가 그 힘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극마의 끝을 본 자였다. 내 무의식이 바랐던 욕망의 한계까지 강해졌으니, 그 이상의 강함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상태였단 뜻이다. 적어도 그때는."

스르륵.

붉은 바람의 구체가 서서히 형태를 바꾸었다.

놀랍게도 그 바람은, 담사영의 얼굴로 변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정교한 형태였다.

"그래서 내 한계치를 늘려 버렸다. 나보다 강해진 널 이기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품은 것이지."

"……!!"

"욕망의 한계를 늘리는 것. 그 비할 데 없는 강한 의지만으로도 난 널 넘어설 수 있었다."

"……거짓말."

담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짓말이다! 힘이라는 것은 그리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간단히 얻은 게 아니다."

콰르르르릉!

또 한 번 세상이 변했다.

불타오르는 천하.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불길에 휩싸인 건물들이 서서히 붕괴하고 있었다.

"나는 지옥을 겪고 이 자리에 섰다."

"……!!"

"영약이니 격체전력이니 하는 것들로 남들이 손쉽게 힘을 얻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때, 나는 세상과 드잡이질하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뇌했다."

콰르르릉!

천둥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번개가 휘몰아쳤다.

"그간 쌓아 온 죽음, 그 속에서 단련된 나의 무(武)는 누구보다도 탄탄하기 그지없어. 내가 쌓아 올린 ‘과정’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정교하게 완성되어 있다."

"……!"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지금에야, 나는 누구보다도 손쉽게 힘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콰르르르릉!

불에 타 신음하는 세상 위로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니, 이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지옥의 왕.

세상이 염라마신(閻羅魔神)이라 부르며 경외하는 단 한 명의 주인이 협잡으로 얼룩진 가짜 신을 내려다보았다.

담사영이 침을 삼켰다.

그는 서량을 보며, 처음으로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극심한 두려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진정 강해지고 싶었다면, 그럴듯한 잡술 따위 휘두를 생각 말고 이 악물고 도전했어야지."

"……!"

"뭐, 이제 와서 지나간 날을 후회해 봤자 무엇 하겠나?"

서량이 싸늘하게 웃었다.

"이만한 설명이면 저승길 선물로 충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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