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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21화 (620/774)

621화. 천하를 발아래 두다 (1)

퍼어어어억!

교룡대장이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이……!’

비록 담사영이라는 희대의 거인 밑에서 명성조차 제대로 쌓지 못한 채 굴렀지만, 그의 무공은 능히 종사급이라 할 만했다. 화경의 고수가 아니고서야 당할 만한 무위가 아닌 것이다.

그런 그가 황실 장군의 검 아래 쓰러졌다.

이제는 대장군이 되었고 과거에는 황궁제일고수라 불리기도 했지만, 기실 그의 무공은 초절정고수에게 통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교룡대장은 소공휘의 검에 맥을 못 추었다.

‘빌어먹을!’

울컥 쏟아져 나온 핏물이 묘하게 투명했다.

그 핏물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새하얀 눈꽃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반역자 놈."

카카캉!

묵직한 장군검이 땅을 긁다가 교룡대장의 이마 앞에 겨누어졌다.

"마음 같아선 형옥에 집어넣어 온갖 형(刑)으로 다스린 후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다만, 일검에 목을 벨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고풍스러운 말투에 무시무시한 살기가 실려 있다.

그 말에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진심만이 담겼기에 더더욱 무섭다. 살기란 무공의 차이보다 의지의 차이에서 더 강하게 우러나오는 법, 소공휘의 불꽃 같은 살기에 교룡대장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교룡대장이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내, 생명을 깎아 너희를 막지 않았다면 너 따위 졸장에게 당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소공휘가 코웃음을 쳤다.

"패자는 유구무언인 법. 패자의 변명만큼이나 꼴사나운 짓도 달리 없는바, 혹여나 다음 생이 있다면 지금의 너처럼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우자(愚者)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 새끼가!"

퍼어어억!

교룡대장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깔끔하게 베어 낸 것이 아니라 뜯어내듯 거칠게 베어 죽였다. 아주 약간이나마 더 고통스럽게 죽었으리라.

소공휘가 외쳤다.

"뭣들 하느냐! 무림의 협객들이 큰 산을 넘게 해 주었으니, 이제 너희가 활약할 차례가 아니더냐! 당장 역도들을 주살하여 황궁의 위엄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 주어라!"

"우와아아아!"

황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철혈성의 고수들이 온갖 환상을 일으키는 기괴한 세상을 파괴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고수가 죽어 나갔지만,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진격하여 기어이 진법을 날려 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들 차례다.

퍼버버벅! 쩌저저정! 퍼억!

황군의 진격은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와도 같았다.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교룡조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설령 열 명이 모인다 한들 교룡조원 하나를 당해 낼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집단전을 벌일 때 진가가 드러나는 황병이었다.

콰아아앙!

끓어오르는 사기로 온몸을 내던지며 교룡조를 향해 무자비한 살수를 휘두른다.

교룡조 백여 명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진법이 깨지면서 사기가 대폭 꺾이기도 했지만, 후방에서부터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황군의 인해 전술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에서는 이런 광경을 볼 수가 없다. 그 장엄함이 자아내는 힘은 무림의 고수들이 막연히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것이다.

콰콰콰콰!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교룡조.

담사영의 가장 충성스러운 무력 조직인 교룡조는 그렇게 몰락을 맞이하고 있었다.

퍼어어엉!

"피해라!"

"수라제다! 맞서지 말고 피해!"

파아악!

술사들은 모험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들 개개인이 천룡의 정예였고, 철저한 준비에 어느 정도 운이 따라 주면 단독으로도 중소 문파 하나를 멸문시킬 수 있는 엄청난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고수는 어떠한 준비도, 운도 필요 없이 지닌 실력만으로 대문파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괴수였다.

퍼퍼퍼퍼펑!

가볍게 내지른 장력에 술사 십여 명의 몸이 박살 나고, 그 너머에서 버티고 섰던 거목 두 그루와 황궁 내벽까지도 무너져 내렸다.

황급히 도주하던 술사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괴물!"

이건 기술의 차이나 수준으로 대항할 만한 무력이 아니었다.

궁극의 무(武)란 곧 궁극의 술법과도 일맥상통하는 법이다. 사파제일고수, 수라제 송금백의 장법은 술사들이 두른 방어술법을 다 부서져 가는 판자때기나 다름없게 만들어 버렸다.

"제기랄!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수극대진(水極大陣)을 펼쳐라!"

술사 하나가 당황하여 외쳤다.

"지금은 안 돼! 그걸 쓰면 그다음 수가……!"

"당장의 목숨이 위험한데 다음은 무슨 다음이야! 어서 써!"

"자칫하다간 우리도 휘말릴 수 있다고!"

"쓰지 않으면 다 죽는다!"

"제, 제길!"

잠시 망설이던 술사가 결국 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구슬, 그 구슬을 본 송금백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수기(水氣)?!’

오행의 수기다.

수기는 수기인데, 그 농도가 실로 엄청났다. 마치 저 작은 구슬 하나에 거대한 호수가 담겨 있기라도 한 듯, 풍겨 나오는 수기에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위험하다.’

저 구슬은 위험하다. 구슬에 깃든 수기가 폭발하면 자신이라도 막기 힘들 것이다.

‘이런!’

파아아아악!

암장귀투의 박투술 중 각법을 운용해 신법을 가일층 가속했다.

퍼어어엉!

공기를 찢고 나아가는 송금백, 그러나 이미 술사는 구슬에 지닌 바 술력을 모조리 쏟아 넣고 있었다.

"으아아압!"

파삭!

구슬이 깨지며 그 안에서 농축될 대로 농축된 수기가 범람하는 강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쏴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세상에 뿌옇게 변하더니, 이내 어디선가 거대한 물살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송금백이 외쳤다.

"모든 병력은 남북으로 찢어져라!"

쏴아아아아! 콰콰콰콰쾅!

사방에서 굽이쳐 들어오는 물살의 흐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부서진 황궁 내벽도, 반쯤 패인 나무도, 땅에 꽂힌 병장기들도 몽땅 휘어 감고 나아간다.

콰콰콰!

하늘 높이 날아올라 지상을 내려다보는 송금백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런 무식한 놈들이!"

자칫 잘못하다간 아군도 몰살당할 수 있는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실제로 남은 백오십 명의 술사 중 칠십여 명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수류(水流)의 속도와 수압을 생각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완전히 돌았군.’

마지막 발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마지막이라도 이런 수법까지 쓸 줄은 상상치 못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걸 떠올리게 만드는군.’

저 구슬이 깨지며 퍼부어진 이 물살은, 종류는 다르지만 철혈성에 둘러쳐졌던 화기(火氣)와 목기(木氣)의 진과 지극히 비슷했다.

결국에는 같은 류의 술법이라는 것이다. 곧장 그것을 간파한 송금백은 치솟는 살기를 억누를 수 없었다.

"죽여 달라고 용을 쓰는구나!"

파아아악!

거대한 궁의 지붕 위에 올라선 송금백이 진기를 끌어모았다. 어느새 저 멀리 도망치는 술사들을 완전히 쓸어 버릴 작정인 것이다.

그때였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저 멀리 동쪽에서부터 무자비한 한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기온이 순식간에 급강하했다. 한서불침의 경지에 오른 송금백조차도 일순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였다.

쩌저저적! 쩌저저저적!

그리고 놀랍게도, 동쪽을 향해 쏟아져 들어가던 물살이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빙궁!’

그렇다. 여극도인지 여강휘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하나가 나선 것이 분명했다.

‘역시 굉장하군.’

빙궁의 무공은 무엇이든 단숨에 얼려 버리는 빙계 최강의 무공이었다.

당연히 그런 무공으로도 이 물살을 몽땅 얼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겨울의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쏟아지는 폭포는 어지간해선 얼지 않는 법이니까.

하지만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빙기로 물살의 흐름, 그 중심의 결을 얼려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여 궁주였다면 수기가 방출되자마자 빙력을 쏟아부었을 터, 이건 필시 소궁주로구만.’

송금백은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로 위력적이라니. 어쩌면 묵혈괴룡공보다도 반 수 위일는지 모르겠군.’

천마신교의 군림마황기든 빙궁의 빙백무든,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무수히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온 희대의 절학들이다. 역사가 증명한 최강의 절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묵혈괴룡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의 무공을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린 송금백의 재능이 뛰어난 것이라 봐야 했다.

‘훗날 재미 좀 볼 수 있겠어.’

파아아악!

송금백이 술사들을 향해 장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퍼어어어엉!

"큭!"

튕겨 나간 무명의 얼굴에 낭패가 역력했다.

"흐음."

난데없이 하늘이 밝아졌다. 마치 저 멀리 북쪽, 밤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미지의 대륙을 통째로 끌어온 것처럼.

빙백의 신기(神氣)를 무한정으로 발산하는 여극도로 인해 어두웠던 하늘이 확 하고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당연히 하늘만 밝아진 것은 아니었다. 지닌 바 모든 힘을 발산하는 여극도는 능히 새외제일인이라 불릴 만한 기파를 드러내고 있었다.

쩌저저저적!

사방이 얼어붙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권장을 내친 것도 아니요, 병장기를 휘두른 것도 아닌데 그저 진기가 퍼져 나가는 것만으로도 모든 외물이 얼어붙고 있었다.

무명이 이를 악물었다.

퍼어어엉!

그녀의 손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더니, 이내 거대한 불기둥이 폭음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무서운 화력이었다. 돌풍을 일으키며 쏘아지는 불기둥만으로도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내려 흥건해지고 있었다.

술계 화술(火術) 최강의 기예라는 말세겁화술(末世劫火術)이었다.

단순 위력으로는 풍술의 회룡풍보다도 막강하다. 말세겁화술보다도 막강한 술법은 뇌술의 뇌신보화낙뢰술뿐이며, 겁화술을 무마시킬 수 있는 것은 수술(水術) 최강의 기예 공공수괴술(共工水怪術)뿐이었다.

말세겁화술이 여극도를 정통으로 맞추었다.

콰르르릉!

얼어붙은 대지가 부서졌다.

여극도가 서 있던 땅에 기다란 고랑이 파였다. 이내 고랑을 따라 엄청난 양의 연기가 치솟으며 시야를 희뿌옇게 가렸다.

‘죽지 않았어.’

무명이 재빨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정도로 죽을 만한 그릇이 아니야!’

그때, 밝아졌던 하늘이 재차 어두워졌다.

무명이 발작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 감이 꽤 좋으시구만?"

쩌어어어어엉!

한 자루 거대한 창이 땅을 쪼개 버렸다.

그냥 창이 아니라 얼음의 창이었다. 심지어 중원의 장창보다 열 배는 더 굵고, 세 배는 더 긴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빙백수(氷魄手)의 빙골귀창(氷骨鬼槍)이라는 수법이었다. 술법이 아닌 무공임에도 진기 운용이 자유자재인지라, 마치 술법의 일종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기랄.’

황급히 물러서는 무명의 얼굴에 초조함이 일었다.

‘집중할 수가 없다!’

그렇다.

여극도의 무공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기도 했지만, 저 멀리 남쪽으로 간 담사영의 존재감이 사라져 버린 게 자꾸만 그녀의 신경을 흐트러트렸다.

정말이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체 얼마나 오만했으면 그 진법으로 걸어 들어갔단 말이야!’

무명은 십만대산에서, 아니 천마신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오해라면 오해겠지만, 그녀 역시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퍼퍼퍼퍼펑!

여극도의 폭풍 같은 권법이 그녀의 술력 방패를 산산이 깨부쉈다.

‘이익!’

이대로는 안 된다.

정신이 흐트러지니 술법이 제 위력을 내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중원 최고의 영지(靈地)로 향해 미봉책이나마 철옹성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술사는 영지로 향해라!"

파아아악!

무명이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술계 경신술 최고의 경지라는 화공일보였다.

여극도의 눈이 차가워졌다.

"……송 성주가 말한 대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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