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623화 (622/774)

623화. 천하를 발아래 두다 (3)

후우우우우웅!

어느새 서량이 신교 외성으로 돌아왔다.

"교주님."

"음."

물끄러미 서량을 보던 호요성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축하드립니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무담이 떨리는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끝났네."

"경하드립니다!"

무담이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서량이 서둘러 무담을 일으켰다.

"경하는 무슨. 잡졸 하나 해치운 것 갖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게나."

"그간 담사영이라는 희대의 악적 때문에 천하가 신음하였습니다. 비록 놈의 힘이 교주님의 발치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하나, 천하 전체로 보았을 때 이는 능히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무담이 이리 흥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담사영 하나로 인해 정파 무림이 썩어 버렸다.

거기까지면 상관없지만, 이후 절대마신 이천상의 출격 후 담사영은 천하를 손에 쥐겠다는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이며, 불살라진 문파가 몇인가. 표면적으로는 무림의 피해만 드러났지만,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양민도 죽어 나갔다.

야심을 품은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무시해도 될 분란이 있고, 간과해선 안 될 전장이 따로 있는 법이었다.

담사영은 분명 선을 넘었다.

"결과가 이렇게 났을 뿐이야. 놈이 죽어서 세상이 한층 평화로워질 건 알았지만, 그것 때문에 죽인 건 아니지."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저 그렇게 얽힌 운명이었던 게지."

물끄러미 서량의 얼굴을 살피던 호요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진 않으십니다."

"음?"

"속 시원해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서량이 피식 웃었다.

"글쎄? 말이야 바른말이지, 놈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내게 패배하고 있었어. 오늘의 싸움은 그 당연한 결과를 확인한 것에 불과할 뿐이야."

"물론 그렇지요."

"다만 놈을 내 앞에 앉혀 놓기까지가 어려웠을 뿐이지. 어쨌든, 새삼 속이 시원할 것도, 환희에 젖을 일도 없는 셈일세."

해탈이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호요성이 웃으며 말했다.

"애써 외성의 마인들을 출교시켰는데,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줄 알았다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겠군요."

"혹시 모르니까. 만일 놈이 도주했다면 본교 마인들 모두가 표적이 되었을 것이다. 놈은 사전 준비 없이 이혼대법을 구사할 수 있는 괴물이었으니,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지."

"여하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고맙네."

그때, 무담이 말했다.

"혹, 담사영을 판마정에 가둬 두셨습니까?"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느껴지는가?"

"예, 그렇습니다."

"걱정할 것 없네. 이미 미쳐 버렸을 테니까."

"……예?"

서량이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판마정의 시공을 조종할 수 있다네. 우리가 잠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미 십 년은 지나 있도록 설정해 두었지."

"……!"

"놈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지옥을 겪었을 테니, 지금쯤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무담과 호요성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서량이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총군사."

"예, 교주님."

"출교한 마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게. 이제 본교는 안전하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 잠시 다녀오도록 하겠네."

"어디로 가십니까?"

번쩍!

서량의 몸은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는 두 사람의 귓가에 생생히 파고들었다.

"싸움이 끝나지 않은 곳으로."

* * *

파아아아앙!

무명의 이동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빨랐다.

그 속도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지구력이었다.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술력을 품고 있는지, 무려 이천 리를 주파했는데도 속도가 떨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쫓는 여극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괴물은 괴물이군.’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무명을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러나 지구전으로 간다면 승산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명이 지닌 술력은 마치 수백 년 공력을 모은 요괴처럼 막강하여, 그 끝이 어딘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진짜 요괴라도 되는 것인가.’

푸스스스스.

어깨 어림에서 희뿌연 기운이 연기처럼 휘날렸다.

‘슬슬 한계로군.’

바다처럼 깊은 내공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극도가 지닌 초월적인 내공 양을 생각하면, 무명의 지구력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라 봐야 했다.

쩌저저저저적!

그의 왼손에 얇고 커다란, 얼음처럼 새하얀 원판 하나가 생성되었다.

‘무리해서 쫓아갔다간 힘을 잃은 상황에서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리되면 아무리 나라도 당할 수밖에 없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여기서 잡지 못하면 그대로 후퇴해야 한다.’

여극도의 두 발에서 일순 시릴 듯한 백광이 폭발했다.

쾅!

혼신의 힘을 다한 폭발적인 질주였다. 일순간 여극도와 무명 사이의 거리가 반으로 쑥 줄어들었다.

무명은 내심 깜짝 놀랐다. 여극도가 이토록 무리하게 쫓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이 무엇인지, 무명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승부수?!’

여극도가 새하얀 원판, 참월빙륜(斬月氷輪)을 내쳤다.

사아아아아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엄청나게 섬뜩했다.

속도, 절삭력, 내공 경파 등 모든 면에서 무림 정상급이라 불릴 만한 무공이었다. 여극도의 손을 떠난 참월빙륜이 찰나지간 무명의 등판 세 치 앞에 도달했다.

‘막는다!’

무명이 서둘러 발을 옮겼다.

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참월빙륜이 연기를 관통하고 수십 그루의 나무를 베어 내며 지나갔다. 잘린 나무의 표면은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후우.’

하늘 높이 치솟은 무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진정 위험했…… 헉!’

어느새 그녀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몸을 통째로 에워싸고 있었다. 마치 그렇게 움직일 줄 알았다는 듯, 여극도 역시 창공으로 몸을 날린 것이다.

‘최후의 일격이 아니었어.’

무명의 눈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허초를……?!’

심리를 파고드는 노련함.

여극도의 주먹이 냉정하게 질러졌다.

우우우우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헤아릴 수 없는 얼음 조각이 생성되고, 동시에 바스러졌다.

가히 폭발적인 일격을 내치는 여극도, 빙궁제일의 위력을 자랑하는 빙백신권(氷魄神拳)의 북두일광포(北斗一光砲)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르르륵.

무명의 몸 전체에 시뻘건 화염이 치솟았다.

‘얼마나 막강한 일격을 쳐 내든…….’

천하의 여극도가 내치는 일격이다. 천룡궁주인 무명이라도 목숨을 걸지 않고서야 막아 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성의 우위로 막은 후 도주하면, 그때부터는 내 승리……!’

사악하게 웃음 짓던 무명의 얼굴에 순간 경악이 드리워졌다.

‘……?!’

찰나에 찰나를 쪼갠 그 시간.

무명은 느낄 수 있었다. 담사영이 다시 세상에 나왔음을.

그리고 세상에 나온 담사영의 몸뚱이를 꽉 채운 진천룡기가 엄청난 속도로 소멸하기 시작한 것 또한.

‘……어떻게? 왜?!’

구결에 따라 빛살처럼 운용되던 술력이 중간에서 턱 하고 멈추었다.

무섭게 확장되던 겁화의 화술이 주춤거렸다. 초고온의 화염과 술력 방패까지는 생성했지만, 결정적으로 그 화술을 내치지 못한 것이다.

‘왜 진천룡기가 소멸한 것이냐!!’

북두일광포가 겁화의 불길을 뚫고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무명의 몸이 새하얀 연기를 피워 올리며 땅으로 떨어졌다.

"음?"

여극도도 상당히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뭐야, 이 녀석.’

어떻게든 죽일 작정으로 내친 일격이긴 했지만, 이렇게 힘없이 격추당할 줄은 몰랐다.

파아아악!

단숨에 땅으로 내려선 여극도가 무명을 내려다보았다.

푸스스스스스.

겁화의 불길은 완전히 사그라든 후였다. 제아무리 화술 최강의 술법이라 한들 혼신의 힘을 다한 빙궁 최강의 기공술을 막아 내긴 힘들다.

그 화술을 완전히 전개했다면 또 모르겠지만.

쩌저저저적!

쓰러진 무명의 몸 주변 땅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여극도가 고개를 저었다.

"대단하군."

북두일광포에 제대로 적중당했다면, 이 정도 빙기(氷氣)가 새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빙력이 체내로 침투해 격추당한 대상을 산산조각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무명은 본능적으로 침투한 빙기를 체외로 방출하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반사 신경이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여극도가 주먹을 들었다.

후우우우우웅.

그의 주먹에 새하얀 바람이 모여들었다. 막강한 일격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목숨줄은 충분히 끊어 놓고도 남을 만한 힘이었다.

"잘 가게나."

그때, 무명의 눈이 번뜩였다.

콰아앙!

살법을 거둔 여극도가 곧장 남쪽으로 내달렸다. 어느새 쓰러져 있던 무명이 순간적으로 도주했기 때문이다.

여극도가 이를 갈았다.

"그 일격을 맞고도 용케……!"

겁화의 불길이 빙백의 충격파를 조금이나마 막아 낸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아쉽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안 돼.’

자신이나 무명이나, 너무 많은 힘을 소진했다.

하지만 무명에게선 다소 불안정하긴 하나 아직도 강력한 술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못 잡으면 후환을 남기게 된다!’

결국 여극도는 또 한 번의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콰아아앙!

막강한 진각으로 마지막 남은 힘 한 올까지 끌어 올린 그가 양손을 포개 앞으로 내밀었다.

‘북두쌍광섬(北斗雙光閃).’

퍼어어어엉!

새하얀 파도가 무명을 뒤덮었다.

콰르르르릉! 쩌저저저저적!

부서지고 박살 난 땅 전체가 얼어붙었다.

여극도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땅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위력, 북두일광포를 중첩하여 퍼트리는 여극도만의 고유 무공이었다.

"……쿨럭!"

여극도가 피를 토했다.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빌어먹을."

전면을 노려보는 여극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놓쳤나."

한 발짝 옮기기도 힘들었다. 어느새 무명은 저 멀리 점이 되어 나아가고 있었다.

꽤 비틀거리고는 있지만, 아직도 술력이 넘쳐나는 듯했다. 그야말로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었다.

"어쩔 수 없지."

머지않아 무수히 많은 술사가 몰려올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여극도가 저 멀리 우뚝 솟은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뒤는 무당의 후진에게 맡길 수밖에."

"허억! 허억!"

이제는 화공일보를 펼치는 건지 그냥 뜀박질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명의 호흡소리는 천둥처럼 커다랬다. 육체도, 정신도, 술력도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어떻게?’

무명의 두 눈은 혼이 나간 것처럼 멍했다.

‘어떻게 진천룡기가 불살라질 수 있는 거지? 그럴 수가 없는데?’

진천룡기가 불타고, 담사영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포착했다.

설령 천룡기가 증발할 수는 있어도, 담사영의 원정까지 줄어드는 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일격에 죽었다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마교주……! 대체 그를 어떻게 한 거냐?!’

그때였다.

"정신이 없군."

"헉!"

무명이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무당산의 산자락, 그곳에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차아아아앙!

주서윤이 검을 뽑았다.

"천룡궁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