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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24화 (623/774)

624화. 천하를 발아래 두다 (4)

주르르륵.

코와 입에서 쏟아지는 핏물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다.

과다 출혈이다. 쏟는 핏물만으로도 죽을 판이었다.

하지만 주서윤과 남궁단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술법으로 중원과 새외를 통틀어 제일이라 불리는 천룡궁의 주인이었다. 설령 온몸의 피가 다 빠져 쓰러진다 한들 방심할 수 없는 상대인 것이다.

무명이 흐릿한 눈으로 주서윤을 보았다.

"……마교의 계집이구나."

주서윤은 말없이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순간 무명은 흠칫했다.

‘선기(仙氣)?!’

새하얀 장검에서 올올이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분명 마기였다. 하지만 그 마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농도의 선기가 덧씌워져 있었다.

선(仙)과 마(魔)의 공존이었다. 심지어 한쪽의 힘이 압도적으로 약한데도 불구하고 잡아먹히지도, 섞이지도 않은 채 공존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기(氣)에 대한 지식만큼은 천하의 누구보다도 해박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지식으로도 해석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가주님."

"걱정 말게나."

우우우웅.

남궁단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힘이 무명의 어깨를 짓눌렀다.

‘흡!’

쩌적!

그녀의 두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중력이 몇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몸 곳곳에 자리한 상처들이 퍽!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이건?!’

남궁단이 차갑게 말했다.

"천하제일중검(天下第一重劍), 제왕검(帝王劍)의 무형검력이다."

제왕검형.

남궁세가 최강의 무공이자 검왕의 명성을 사해에 떨치게 해 준 희대의 검법이었다. 형과 식에서도 무결점을 자랑하지만, 특히나 진기와 동조하여 중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검왕의 특기였다.

이제 그 상식을 벗어난 검기(劍氣)를 남궁단이 구사하고 있었다. 아직은 조금 어설펐지만, 치명상을 입은 무명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압박이었다.

"당신은 도망칠 수 없어."

우우우우웅.

주서윤의 검이 희미하게 떨렸다.

검에 담긴 검력이 너무 강해서 검 스스로 떨리는 것이다.

‘그렇군.’

무명은 뼈마디가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평범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당산이었어.’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스르르륵.

무당산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무형의 선기가 주서윤의 몸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 정도 농도의 선기라면, 주서윤이 품고 있는 마기 정도는 단숨에 불사를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무당선산의 선기는 주서윤의 혈도를 부드럽게 감싸며 그녀가 든 검에만 맺히고 있었다.

‘중원 최고 영지의 기운이,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

무명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내라."

"뭐?"

"당장 토해 내라!"

무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당산의 영기는 네깟 계집이 쓰고 버릴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야! 당장 선기와의 영통을 끊어라!"

주서윤은 무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명의 기분만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불안, 질투, 초조, 절망.’

우우우우우웅!

강렬한 울음과 함께, 주서윤의 검이 희뿌연 안개에 싸여 모습을 감추었다.

"그간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무슨 악행으로 세상을 병들게 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아요."

주서윤의 눈이 번뜩였다.

"다만 본교의 주인께서 당신을 죽여 마땅한 적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자리에서 죽일 뿐입니다."

"건방진 년!"

쾅!

남궁단이 검력을 더했다.

콰드드득!

무명의 정강이까지 땅에 박혀 들었다.

오직 제왕검력을 위해서만 내공을 쏟아붓는 그였다. 천하제일검가의 가주가 발산하는 총력, 무명은 혈관의 핏물이 펄펄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명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이까짓 반쪽짜리 힘으로 나를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촤아아아아악!

주서윤과 남궁단은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거대한 뱀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뱀은 진짜 뱀이 아니었다.

물의 뱀, 투명한 수기(水氣)로 이루어진 술법의 뱀이었다.

화아아아악!

화살이 쏘아지듯 날아간 뱀의 몸통 일부가 남궁단의 머리를 가두었다.

‘……!!’

남궁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목 윗부분이 전부 물에 잠겼다. 마치 물에 빠진 것만 같았다.

우우우우우웅.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검력이 느슨해졌다.

그리고 무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번쩍!

혼신의 힘을 다해 화공일보를 펼친 무명이 남궁단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퍼어어억!

무명의 손끝이 남궁단의 목에 닿은 채 멈춰 섰다.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무명의 손이 남궁단의 목젖을 뚫어 버렸을 것이다.

뚝. 뚝.

무명의 가슴에 한 자루 장검이 박혔다.

검신을 타고 흐르는 핏물이 땅을 적셨다.

"……빠르군."

촤아아악!

"컥! 허억! 허억!"

남궁단이 거친 숨을 토해 냈다. 어느새 그의 머리를 가두었던 물의 벽이 사라진 것이다.

무명이 흐릿한 눈으로 주서윤을 내려다보았다.

주서윤의 눈빛은 냉정하기만 했다. 단호함으로 점철된 그녀의 눈빛은 실로 검사의 표본이었다.

"그만 가세요."

"그럴 줄 알았어."

"……?"

"네년이 움직일 줄 알았다."

무명의 손끝에서 막강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펑!

"큭!"

남궁단이 속절없이 뒤로 밀려 나갔다. 검력을 거두어 방어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거센 위력이었다.

파악!

무명이 주서윤의 손과 검병을 동시에 그러쥐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우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아니 단리후의 몸에서 기괴한 진기가 빠져나왔다.

"머리통이 날아가도, 심장이 터져도, 온몸의 피를 전부 쏟아 내도 죽지 않는다! 몇 번이고 되살아나 천하를 천룡의 품에 안겨 줄 것이다!"

무명이 씨익 웃었다.

"네년의 몸뚱이, 참으로 먹음직스럽구나."

주서윤의 눈이 커졌다.

화아아아아악!

단리후의 몸에서 빠져나온 천룡기가 이내 상단전의 영력을 건드렸다.

후욱!

단리후의 몸이 그대로 힘을 잃었다.

쿵!

쓰러진 무명을 보는 주서윤의 얼굴에 얼떨떨한 기색이 어렸다.

‘죽은 건가?’

분명 죽었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생기는 사라졌지만.’

그녀가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잔뜩 일그러진 붉은 기운이 연기처럼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어.’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악!

붉게 뭉친 연기에서 소름 끼치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주서윤과 남궁단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그 비명 같은 괴성엔, 사람이라면 몸이 경직될 수밖에 없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인간의 신경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소리라 마공이나 신공으로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짧은 틈을, 무명은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아악!

붉은 연기가 무서운 속도로 주서윤을 향해 쏘아졌다.

주서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안 돼!’

후우우우우웅.

붉은 연기가 확 하고 퍼졌다.

단숨에 주서윤의 상단전으로 파고들었어야 할 천룡기가 무형의 방벽을 만나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것이다.

‘뭐야?’

무명은 당황했다.

천룡포(天龍咆)로 몸을 경직시키고 즉각 침투하는 방식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저 위대한 천룡궁주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야 만 수법이었다. 제아무리 무당산의 선기를 받는 계집이라도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왜……?’

그때였다.

무명은, 무명이라는 영혼으로 묶여 있는 천룡기는 하나의 존재를 포착했다.

‘헉!’

무당산 천주봉 꼭대기.

이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그곳에, 한 명의 마신(魔神)이 있었다.

‘……언제?!’

번쩍! 번쩍!

흑백이 뒤바뀐 마신의 눈동자가 수백 장을 격하고 정확하게 무명을 포착했다.

‘대체 언제 여기까지 온 거냐!!’

담사영의 목숨이 스러진 걸 느낀 게 이각 전이었다.

즉, 마교주는 절대 이곳에 올 수가 없다. 마교주 말고는 담사영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설마…… 고작 이각 만에 광동성에서 호북성까지 날아왔다고?

"그때는 몰랐지."

웃음기 어린 서량의 목소리가 무명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대호법의 몸을 빌려 판마정으로 들어왔을 때는 몰랐다. 네년이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지."

"……!"

"과연, 상리를 벗어난 술법들을 그리도 많이 구사할 수 있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군. 수백 년 동안 그 많은 궁주들의 지식을 습득하며 수련했으니, 범재라도 괴물이 될 수밖에."

서량의 미소가 일순 차가워졌다.

"지극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요, 신기가 들려 귀신의 도(道)에 몸을 실은 악령이 이승에 나돌면 안 되지."

후우우욱!

무명의 천룡기가 무형의 장막에 둘러싸였다.

‘헉?!’

무형의 장막, 그것은 천마도에서 뽑아 올린 이천상의 마기였다.

현재 서량이 품고 있는 마기와 순도 면에서 한 끗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량의 마기조차도 감당 못 할 무명에게 있어, 이천상의 선천마기는 죽음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왠지 불안하더라니, 오길 잘했군. 아니, 차라리 여 궁주님의 손에서 벗어난 게 다행이야. 궁주님의 손에 죽었다면 또 그 같잖은 생을 이어 가고 있을 테니까."

쿵! 쿵!

천룡기가 마기의 장막을 마구 후려쳤다.

당장이라도 빠져나가고 싶은 욕구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주서윤과 남궁단은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안 돼!’

무명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직 죽을 수……!!’

그때, 서량의 목소리가 무명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네년은 죽을 때가 한참 지난 역사의 망령일 뿐이다. 네년 하나가 안 죽어서, 정작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

번쩍!

무명은 천주봉 하늘에 환상처럼 드리워진 거대한 눈을 바라보았다.

흑백이 역전한 마신안, 그 새하얀 동공 속에 분홍빛 광채가 이글거리는 듯했다.

"다시는 이승에 발 붙이지 마라."

퍼어어어어엉!

한 줄기 폭음과 함께 천룡기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뭐, 뭐야?"

남궁단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사형이에요."

"응?"

주서윤이 천주봉을 바라보았다.

후욱!

갑자기 거센 강풍이 몰아친다 싶더니, 어느새 오솔길 저편에서 서량이 걸어왔다.

남궁단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서 교주!"

서량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소."

"아니…… 딱히 고생이랄 건 없었지만……. 그, 그나저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소?"

"싸움을 정리하기 위함이오."

"싸움을 정리하다니? 서 교주는 담사영, 그 악종을 상대해야 하지 않소?"

그때, 주서윤이 말했다.

"끝났군요."

"그래."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모든 힘을 불사르고 판마정에 처넣어 버렸다. 앞으로도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미치광이가 되어 영원을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축하드려요, 사형."

"축하는 무슨."

"아뇨, 담사영 말고요."

"음?"

주서윤이 맑게 웃었다.

"사부님을 제외, 고금제일의 경지에 오르신 걸 축하드린다고요."

서량이 피식 웃었다.

"넌 이상하게 감이 좋더라."

"누구 사매인데요."

"뭐가 되었든 고금제일은 아니다. 고금제일을 바란 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그저 천하를 다스릴 정도의 힘, 딱 그 정도 힘만 있으면 충분하다."

서량이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음, 백 리라……."

"네?"

"황궁에서 도망친 술사들이 백 리 밖에 있다. 곧 들이닥치겠군."

우두둑. 우두둑.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목을 푼 서량이 천마도를 들었다.

"시간 길게 끌 것 없이, 싹 쓸어 버리고 돌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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