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도전생기-631화 (630/774)

631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6)

다른 의미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경악한 얼굴로 서량을 보던 남궁단이 이내 한숨을 쉬었다.

"교주."

"일단 술 한잔하면서 얘기합시다."

"……알겠소."

남궁단이 서량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궁 남매는 남궁단의 뒤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신들이 나서선 안 될 자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서량은 두 사람에게 편히 앉으라느니, 와서 같이 한잔하라느니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자리는 적당한 무게감이 필요한 자리였다.

남궁단의 잔을 채워 주며, 서량이 말했다.

"느닷없는 발언에 많이 놀라셨을 거요."

"많이 놀랐소."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나는 남궁이 안휘의 왕부가 되어 줬으면 좋겠소."

남궁단의 눈이 깊어졌다.

"대체 어찌 이토록 큰 짐을 주시는 게요?"

"짐이라……."

쓴웃음을 짓던 서량이 잔을 들었다.

"한잔하십시다."

찌잉!

건배를 한 두 사람이 그대로 잔을 비워 냈다.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소. 분명 짐은 짐이지. 안휘성은 넓소. 안휘의 왕부가 되라는 말은 안휘성이라는 나라를 다스리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 분명 짐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거요."

나라를 다스려라.

그것은 분에 넘치는 영광임과 동시에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알아주시오. 내, 가주와의 친분 때문에 안휘성을 맡기는 게 아니외다."

"물론 그건 알고 있소. 서 교주께서는 공사가 확실하신 분이오. 사적 친분만으로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힐 분이 아님을 아오."

"아신다니 다행이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소. 스스로 한 가문을 이끌 만한 역량은 된다고 보지만, 안휘 전체를 다스릴 역량은 부족한 사람이오."

"그 말에는 어폐가 있소이다."

"무슨 말씀이오?"

서량이 빙긋 웃었다.

"그간 해 왔던 일 아니오? 안휘를 다스린 것."

남궁단이 얼굴을 굳혔다.

"농담이 과하시오. 남궁은 한 번도 안휘를 다스린 적이 없소."

"다스린다는 말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오. 내가 말한 다스림은, 안휘를 지켰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

"……?"

"의천맹이 담사영 손에 떨어진 후, 중원의 여러 지역이 신음하였소. 총군사가 조사해 본 결과, 무림 문파들의 세(勢)는 강해진 반면 민초들의 삶은 세 배는 더 피폐해졌더군."

"……."

"하지만 안휘는 그러지 않았소. 차라리 다른 지역보다 양민들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면 덜 놀랐을 거요. 담사영이 의천맹을 손에 넣은 이후로도, 안휘에 사는 양민들의 삶은 그 이전과 아무런 변함이 없었소."

남궁단의 눈이 깊어졌다.

서량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아시겠소?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안휘에 남궁세가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오. 남궁세가는 썩어 가는 의천맹의 힘을 막진 못했지만, 적어도 안휘에 살아가는 민초의 삶만큼은 확실하게 지켜 냈소."

"그것은……."

"그것만으로, 남궁에게는 자격이 있소. 아시겠지만 본교에도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많소이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을 제쳐 두고 안휘를 귀가에 맡기려는 이유는, 그간 남궁이 이룬 결과를 봤기 때문이오."

"허어."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시대가 바뀌었소. 천하가 빠르게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지만 여전히 혼란스럽기 그지없지. 아시겠지만, 설령 후대의 사람들이 우리 세대를 태평성대라 평가한다 해도 국지적인 혼란은 언제든 터질 것이오."

"……."

"남궁을 위해서만이 아니오. 안휘를 위해서 힘을 써 주시오."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진심을 담아 말하고 있음을 그라고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중차대한 사항을, 오늘 저녁에 술이나 한잔 마시자는 듯 말하면 누가 있어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서량이 말을 이었다.

"기실, 남궁에게 안휘를 맡기고자 하는 이유에는 다른 의미도 있소."

"……어떤 의미를 말함이오?"

"아시겠지만, 장강 이남의 민초들에게 본교는 희망의 불꽃이오. 본교는 강서상회를 통해 장강 이남 전체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풀었고, 그건 현재 진행 중이오. 모든 민초들의 삶을 개선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예전에 비하면 삶의 질을 몇 배는 더 끌어올렸다고 자부할 수 있소."

"그건 나 역시 알고 있소."

"장강 이북도 마찬가지요. 그곳에 사는 민초들 역시, 과거와는 달리 본교를 제법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소.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강남 민초들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소문도 들었을 테고, 황궁도 본교를 인정했으며, 하오문에서도 여론을 잘 만져 주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하지만 중원에 민초들만 사는 건 아니잖소?"

"……?"

"무림인."

"……!"

"무림인은 민초보다 훨씬 보수적이오. 이유를 아시오? 그들은 언제나 편을 갈라 싸우며 생존해 왔기 때문이오. 애초에 민초들과는 삶의 방식부터가 다르지."

"교주의 말씀은?"

"그렇소."

서량이 잔을 들었다.

"본교의 인재들을 각지에 배치하여 천하를 조종한다? 의미 없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너졌지만, 여전히 허울뿐인 정의에 매몰되어 기득권을 손에 넣으려는 무법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칼을 갈 것이외다."

"……!"

"생각해 보시오. 그깟 놈들의 반란에 당할 거라곤 생각지 않지만, 불만을 품은 그들로 인해 정작 피해를 보게 될 쪽이 누구겠소?"

"……민초들이겠지."

"신교는 천하 정점이오. 그러나 신교, 아니 나는 천하에 군림할 뿐 지배하고 다스리진 않소."

서량이 잔을 비웠다.

"능력이 출중하다면, 그 누구라도 천하를 위해 한 몸 바칠 의무가 있소. 마도 무림에 속했다고 같잖은 인사를 배치하는 것보다, 정파 무림의 능력 좋은 이를 왕좌에 앉히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오."

"그와 동시에, 불만을 품은 무림인들의 명분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이오?"

"진짜 눈이 돌아간 놈들에게 명분은 변명에 불과할 뿐이오. 하지만 그런 놈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지. 그 다수의 바보들을 일 할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마도와 정파가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큰 의미가 있소."

서량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으리라 믿소."

"……이해는 했소."

"이해하셨다면, 안휘를 부탁하오."

남궁단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천하를 위해 손을 빌려 달라고 하니, 아닌 말로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당장에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힘들었다. 한 지역을 다스린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닌 까닭이다.

단순히 힘만 드는 일이었다면, 그 역시 당황은 했을지언정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남궁단이 서량의 제안에 혼란을 느끼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교주."

"말씀하시오."

"솔직하게 말해 주시오."

"물론이오."

남궁단이 눈을 빛냈다.

"무림을 지워 버릴 생각이시오?"

뒤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경청하던 남궁 남매는 깜짝 놀랐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괜한 말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렇소."

"……!!"

"정확히는, 그렇게 흘러가도록 만들 생각이오."

남궁단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참으로 대단하시오. 안휘를 부탁한다는 말에 거기까지 유추하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지. 보시오, 가주의 안목은 능히 천하에 닿아 있지 않소?"

남궁단이 한숨을 쉬었다.

"무림을 없앤다…… 허어."

"제국이 부활할 것이오. 새로이 나아갈 제국에 무림의 존재는 지나치게 위험하오. 가주께서도 아시겠지만, 제국의 법도가 천하를 뒤덮기 시작하면 무림인은 진짜 무법자가 되오."

"……!"

"하지만 지나치게 극단적인 변화는 피 보라를 일으키기 마련이오.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무림을 지우기 위해선, 그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오."

"대체…… 어쩌려고 그러시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서서히 알게 될 것이오. 다만, 이것 하나만 알아주시오."

"……?"

"나는 더 이상의 분란이 싫소. 싸움이 인간의 본성이라도, 그 본성 때문에 무고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기는 게 싫소."

"……."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나는 되도록 약자의 편에 서고 싶소."

"약자라고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오."

"강자라고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지. 그 정도 구분은 할 줄 아오."

남궁단이 재차 한숨을 쉬었다.

"서 교주."

"말씀하시오."

"우리 외에 다른 문파에게 맡기는 것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 두지 않을 생각이오."

"……."

"또한, 가주께서는 다소 섭섭할 수 있으나…… 만일 다른 조직이 안휘를 맡게 된다면 남궁이 안휘를 떠나야 하오."

"……!"

남궁 남매의 얼굴이 굳어졌다.

남궁룡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려다 순간 멈칫했다. 남궁화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기 때문이다.

‘누님!’

‘우리가 나설 자리가 아니야. 가만히 있어.’

‘하지만……!’

‘기다려. 답은 정해졌으니까.’

‘예?’

남궁화가 심유한 눈으로 서량을 보았다.

서량은 여전히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대를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남궁화의 눈이 깊어졌다.

‘고금제일을 다툰다는 마신에게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로구나.’

잠시 후, 남궁단이 입을 열었다.

"역시……."

"음?"

"너무하셨소이다, 서 교주."

"무슨 말씀이시오?"

남궁단이 힘없이 웃었다.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지 않아도 되오. 어차피 그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리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오."

"나는, 그리고 남궁은 안휘를 떠날 수 없소."

"알고 있소."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로군."

"미안하지만, 그렇소."

"그리고……."

남궁단이 눈을 감았다.

"설령, 그리 말하지 않아도 내 언젠가는 분명 교주의 말에 따랐을 것이오."

남궁룡이 놀란 눈으로 남궁단을 보았다.

"아버지?!"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러셔야 하오."

"민망하구려."

"나는 그것을 왜 민망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소. 겸손도 필요할 때 발휘되어야 미덕이라 불리는 법이오. 과한 겸손은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지."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맞는 말이오."

서량이 병을 들어 자신의 잔을 채우려 했다.

그때, 남궁단이 그의 손에서 병을 빼앗았다.

"내가 한잔 드리겠소."

"고맙소."

서량의 잔이 서서히 채워졌다.

차오르는 잔을 보며, 남궁단이 말했다.

"또 누가 있소?"

"음?"

"남궁 말고, 또 누구에게 부탁할 생각이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도와주시겠소?"

"사실, 교주께서 본가의 신물을 만들어 준 시점에서 이미 우리 관계는 완성(完成)되어 버렸소. 나는 그걸 방금 깨달았소."

"하하하."

"천하를 위한다…… 좋소. 내 진정 사심 없이, 천하 이전에 안휘부터 안정시켜 보겠소이다."

"고맙소. 큰 결단을 내려 주셨소."

"그 전에, 또 누가 필요하오?"

"소림 방장."

서량의 눈이 빛났다.

"그리고 무당의 산인(山人)들이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