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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32화 (631/774)

632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7)

남궁단과 대화를 마친 서량이 마신궁을 나섰다.

“…….”

괜히 시끄럽게 만들기 싫어 존재감을 줄이니, 마인들은 서량의 바로 앞을 지나치면서도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재미있군.’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듯 푸르렀다.

‘자유라.’

자신은 고금제일을 논할 만한 무공을 손에 넣었다. 이제는 정말 스스로 원한다면, 아무도 모르게 세상 밖으로 녹아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기억도 지울 수 있어.’

무한의 마력과 판마정의 진력, 나아가 금호의 힘까지 빌리면 신교 내 모든 마인의 기억을 지우고 훌쩍 떠나 버릴 수도 있다.

그야말로 신(神)과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잠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그 자신이 그렇게나 원하던 힘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하지만.’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과거에 그토록 절실했던 꿈이, 지금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으니.’

어쩌면 사부님은 여기까지 짐작하셨는지도 모른다. 이 천방지축인 제자 놈이 교주가 되는 순간, 절대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셨는지도.

‘그러고 보니.’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꼭 찾아가야 할 곳을 찾지 않았군.’

바쁘기도 바빴지만, 사실 신경을 못 쓰기도 했다.

“나도 진짜 멍청한 놈이야.”

파라라락!

서량이 하늘을 날았다.

무서운 속도로 이동한 서량이 착지한 곳은 바로 그가 삼공자의 몸에 들어오기 전, 폭군이라 불리던 전(前) 서량으로 인해 피해를 본 유가족들의 묘였다.

가만히 묘를 바라보던 서량은 이내 그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이게 맞았던가? 맞겠지, 뭐.”

서량이 합장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가 자세를 바꾸어 편하게 앉았다.

“교주가 되어 신교를 바로잡은 후, 자신이 있을 때 다시 찾아오겠다 했었지.”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눈에 불을 켜고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 세대에 당신들과 같은 피해자는 없을 거란 확신은 생겼어. 그래서 당당한 거니까, 너무 못마땅하게 생각하진 말라고.”

이천상은 신교를 반석 위에 올렸지만, 신화경의 끝을 보며 인간성을 상실했다.

그래서 교내 사건 사고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진관용에게 군림마황기를 전수하는 일도, 관평이 그리 삐뚤어졌을 일도, 사공자가 그리 엇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이런 피해자들 역시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이천상의 잘못이었다. 인간성을 상실했느니 뭐니 해도, 결과적으로는 그의 부덕으로 인해 생긴 피해자들이었다.

“사부님을 비호하는 건 아니야. 다만, 나는 그분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않으려고 한다. 내 대뿐만이 아니라 이후의 대에도 당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리란 자신이 생기기 전까지는.”

물론 그것은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서량이 아무리 자신한다고 해도 미래란 모르는 법이다. 근본적으로 체제란 것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며, 체제가 완벽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이리라.

즉, 서량이 진짜 신이 되지 않는 이상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않도록 만들 순 없다.

그래서 자신이란 말을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라면 나름대로 인생을 걸고 노력한 것일 테니까.

적어도 서량은, 자신이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용케 여기까지 오긴 왔다. 그렇지?”

편하게 땅을 짚고 앉은 서량은 마치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때 댁들 앞에서 합장하고 다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시간 참 빨라. 아! 그러고 보니 그때가 소교 대관 날이었구나?”

서량이 히죽 웃었다.

“그때도 참 어렸지. 불과 몇 년 전인데.”

그렇다. 그때의 자신은 어렸다.

사람은 나이가 많다고 성숙한 게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미성숙한 게 아니다.

나이가 많아도 진정 자신의 뜻을 세우지 못하면 어린 것이요, 나이가 어려도 자신의 뜻을 명확히 세우고 정진할 줄 안다면 어른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확실히 소교 시절의 서량은 어렸다. 물론 지금보다 어렸다는 것일 뿐, 그때의 그도 자신이 가야 할 길 정도는 정할 줄 알았다.

“그런 멍청한 놈이, 어느새 천하를 손에 넣어 마신으로 숭상받는 사람이 되다니.”

서량이 눈을 감았다.

“내가 뭐라고 참.”

마신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했지만, 또 한 번씩 이렇게 의문이 들었다.

이런 위대한 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진정 자신이 이 많은 사람의 숭배를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인지.

‘나란 놈은 결국 할 줄 아는 게 주먹질밖에 없는데.’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는 나처럼 못난 놈이 마신으로 숭배받는 일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은, 그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군주상이 아니었다. 그리되고자 노력은 하고 있지만, 사람 천성이라는 게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다.

물론 군림자든 권력자든, 타고난 천성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서량은, 자신의 천성이 누군가에게 떠받들어지는 데에 그리 어울리는 천성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왕 이 자리까지 올랐으니, 시원하게 살다가 가 보는 수밖에.”

서량이 눈을 떴다.

‘보이는군.’

우우우우웅.

욕계문을 연 군림마황기, 그것도 선천에 이른 마기를 상단전으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보였다. 묘지에 도사리고 있는 영혼들이.

지금까지도 승천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귀신들이 보였다.

“그렇게나 한이 깊었구나.”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내 진정 면목이 없어.”

스르륵.

승천하지 못한 영혼들이 일제히 제게 고개를 돌리는 게 느껴졌다.

서량의 신안이, 영안(靈眼)이 영혼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영혼들이 묘지 위에 앉았다. 서량이 자신들을 인식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느라 고생들 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그럴듯한 신교를 만들 테니, 이제는 그만 훌훌 털어 내고 가야 할 곳으로 가.”

서량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미안하다는 사과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을 알았기에 당신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 집단으로 만들겠다 다짐한 것이고, 지금 역시 과거의 다짐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후우우우웅.

무수히 많은 영혼의 몸체에서 희뿌연 빛이 일었다.

그것은 서량의 눈에만 보이는 빛일 따름이었다. 애초에 혼(魂)이나 귀(鬼)에 색깔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리 보이는 것은, 이승의 사람이 사자(死者)를 인식하기 위한 거름망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나 죽고 나면, 그때 다시 보자고.”

번쩍!

묘지에 머물던 모든 영혼이 한순간 사라졌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는 서량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갔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

그거면 됐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약속이란, 이래서 무서운 거야.’

이 약속을 잊고 평생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들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시간을 저 자리에서 맴돌다가 망령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가만히 묘지를 바라보던 서량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또…… 뭐가 남았더라.”

곰곰이 생각에 잠겨 들던 서량이 피식 웃었다.

“웃기는군. 이러고 있으니 마치 죽기 전에 할 일 다 끝내 놓고 가려는 사람 같잖아.”

그때,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량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오게.”

“……송구하옵니다.”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꽤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강단 넘치는 체격이 인상적이지만, 전체적으로 평범하다는 느낌을 주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내가고수라면 알 것이다. 노인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기세를.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을 갈무리한, 살아 움직이는 벼락과도 같은 초고수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노인은 다름 아닌 구대마존의 일인, 벽력마존(霹靂魔尊)이었다.

놀랍게도 벽력마존은 서량을 앞에 두고도 신마경어를 뱉지 않았다.

그리고 서량 역시, 벽력마존의 그러한 오만함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가만히 서량을 보던 벽력마존이 입을 열었다.

“잠시,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벽력마존이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묘에 다가갔다.

그러곤 손에 쥔 거대한 전도(剪刀)로 묘지의 잡풀을 다듬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잘린 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묘하게 크게 들렸다.

가만히 그를 보던 서량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아직도 구대마존의 이름들을 모르고 있었군.”

“당연합니다. 저희는 마존이 되는 순간 이름을 버리니까요. 속세의 이름 따위, 마존이라는 직위 앞에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알고 싶군.”

“금방 잊으실 이름입니다.”

“하면, 자네 성씨라도 알려 줄 수 있겠나?”

벽력마존은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목가(木家)입니다.”

“목씨라…….”

서량은 눈을 감았다.

사각. 사각.

풀을 다듬는 전도의 움직임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무공을 깊게 익혔다고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이 묘를 관리해 본 사람이 아니면 이토록 효율적으로 움직이진 못하리라.

재차 눈을 뜬 서량이 입을 열었다.

“왜 나를 죽이려 들지 않았나?”

벽력마존이 대답했다. 물론 전도질은 멈추지 않았다.

“감당키 힘든 말씀입니다. 소신이 어찌 교주님을 해하려 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나 말고, 과거에 말일세.”

“마찬가지입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내 비록 기억에서 사라진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이 몸뚱이가 저지른 짓임이 분명해. 그리고 그때의 나는 일개 후계 후보에 불과했지.”

“그러셨지요.”

“제아무리 후계 후보라도, 구대마존이 작정하면 못 죽일 것도 없었어. 한데 왜 놔두었나?”

“전대 교주님의 제자분을, 마존이라 한들 어찌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게 전부인가?”

“…….”

벽력마존이 전도질을 멈추었다.

가만히 묘를 주시하던 벽력마존이 몸을 일으켜 서량을 돌아보았다.

“교주님.”

“말씀하시게.”

“저는 죄인입니다.”

“……왜지?”

“교주님께서 삼공자 시절, 저희 집안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이셨습니다.”

“…….”

“남은 집안사람들이 제게 복수를 요청하더군요.”

“그랬겠지.”

“저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마존이란 그런 자리니까요.”

“…….”

“그리고…….”

벽력마존이 눈을 감았다.

“만일 제가 복수를 감행했다면, 전대 교주님께서는 저를 제외한 목씨 성을 지닌 마인 모두를 없애 버리셨을 겁니다.”

“……왜 그리 생각하나?”

“전대 교주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신 후, 신교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을 방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절대 방관하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지요.”

서량이 탄식했다.

“집에 불이 나는 건 신경 쓰지 않는 분이지만, 산불이 나는 것만큼은 막는 분이셨지.”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또한…….”

“……?”

“전대 교주님께서는 거의 정확하게 미래를 꿰뚫어 보시기도 했지요.”

벽력마존이 미소를 지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깃든 미소였다.

“제가 움직일 줄 아셨다면, 애초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셨을 겁니다.”

“가정에 불과하잖나.”

“허허, 그렇지요. 그러니 지금 이 대화도 기실 의미가 없습니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천하에 군림하기 전.

할 일이, 정말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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