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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34화 (633/774)

634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9)

“크하하하!”

서량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쳐흘렀다.

“그놈이 그런 놈이라니까? 참나, 내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벽창호는 처음 봤어. 그러니까 그 실력으로 아직도 내 호위 노릇이나 하고 있겠지만.”

“그러셨군요.”

벽력마존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는 마 호위가 부럽습니다.”

“뭐가 부러워? 그 성격이?”

“물론 성격도 부럽습니다. 전에 마 호위와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참으로 올곧은 사람이더군요. 저는 오히려 그의 그러한 기질이 차기 대호법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어울리지 않네. 물론 그 자리에 앉혀 놓는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할 놈이지만, 천성이 대호법 자리와는 안 맞아.”

“천성이야 어떻게든 고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말이야, 굳이 뜯어고치지 않아도 될 것을 건드려서 뭣 하겠나? 천성을 고친다는 거, 그거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더라고.”

“허어, 어쩐지 교주님께서 겪어 보신 듯합니다.”

“헐, 보고도 모르나? 자네가 보기에, 내가 교주 노릇을 할 만한 천성이라고 생각하는가?”

벽력마존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씀드립니까?”

“됐네. 이미 표정으로 다 읽었어.”

“송구하옵니다.”

“신교에 따로 법령을 내려야겠어. 그놈의 송구하다는 말, 정말이지 지겹기 짝이 없네.”

“확실히 교주님께서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그렇지? 푸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서량은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벽력마존도 마주 웃으며 서량을 보았다.

이렇게 교주와 독대하며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바빠서 그럴 일이 없기도 했고 의식적으로 피하기도 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어쩐지 알 것 같습니다.’

문득 전대 교주님이 생각났다.

‘주군께서 하셨던 말씀, 벽력이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그는 이천상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서운한 모양이군.

- ……아닙니다.

- 감히 거짓을 입에 담는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앞에서.

- …….

- 하지만 자네의 마음을 이해하네. 그 안타까움을 아는 입장에서, 이번 한 번은 그 거짓을 용서하겠네.

- 망극하옵니다.

- 굳이 자네에게 위안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네. 하지만 먼 훗날의 한 광경이 보이기에, 자네를 이리 불렀네.

- 하교하시옵소서.

- 자네는 아마 녀석을 위해 목숨을 걸게 될 것일세.

- ……!

-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의 의지로.

- 그것은…….

- 당연하다 말하지 말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마존 중 자네만큼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도 달리 없음을 모르지 않아.

- 죄송합니다.

- 그저 알려 주고 싶었네. 그 사실을.

- …….

- 다만 그러한 스스로가 못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녀석을 죽이러 가게나. 소교(小敎)를 죽여도 반역죄를 물지는 않을 테니.

아마 전대 교주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을 것이다. 자신이 절대 소교 시절의 서량을 죽이지 않을 것임을.

나아가, 자신을 불러 대화하는 것까지가 당신께서 보신 미래를 향한 그림의 일부일 것이다. 자신은 그 거대한 그림의 한 조각을 담당했을 뿐일 터다.

하지만 왜일까?

‘기분이 나쁘지 않구나.’

수개월을 번민에 휩싸였다. 소교가 중원행을 하며 엄청난 업적을 세운 것도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일부러 귀를 막았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와서야.

그제야 벽력마존은 깨달았다.

‘나는 애초에 증오할 필요가 없는 대상을 향해 증오를 퍼붓고 있었다.’

그렇다.

자신은 애초에 서량을 증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증오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먼저 가 버린 집안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그래서 연기를 했다. 스스로를 속였다.

‘하면 나는, 어찌 이 사람을 증오하지 않았을까?’

벽력마존이 미소를 지었다.

자문하는 동시에 깨달았다.

‘저 미소다.’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서량.

저 웃음 속에 드리워진 온갖 감정이 그의 마음을 두들겼다.

‘저 미소, 저 웃음을 보고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과거의 한때를 떠올렸다.

- 참으로 대단하군. 납치에 납치로 대응했다? 그것도 야수궁주의 모든 제자를! 정말이지 배포 하나는 타고났소이다!

- 그냥 성격이 지랄맞을 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해요. 만일 그쪽에서 저와 똑같은 수법을 썼으면 이쪽 인질도 위험해졌을 겁니다.

- 내 이리 삼공자를 보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소. 필시 묘수가 있었겠지?

- 그런 것 없었습니다. 다만 협박의 강도를 더 높였겠지요. 어차피 싸움은 기세라 하지 않습니까.

- 허? 하하! 삼공자 말이 맞소!

그때는 다름 아닌, 서량이 소교가 되기 전 삼공자일 때였다.

정말이지 우연이었다. 벽력마존은 우연히 삼공자의 거처 인근을 지나고 있었고, 그때 그곳에서 익숙한 기도를 읽었다.

바로 고루마존이었다.

고루마존이 처음으로 삼공자 거처에 들어가 대작을 나누던 때였을 것이다. 벽력마존은 기척을 죽이고 숨어들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얼큰하게 취한 두 사람은 벽력마존의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두 사람의 웃는 얼굴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랬었지.’

당시 벽력마존은 홀린 듯 서량을 봤었더랬다.

그의 웃음이, 그의 지친 미소가, 그러면서도 불타오르는 두 눈이 너무나도 화려했기 때문에.

그럼에도 아무런 흉악함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놀랐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증오를 모두 내려놨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알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의 손에 집안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도, 마땅히 화를 내야 함에도 그는 그를 증오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그래서 벽력마존은 자신을 혐오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아니었다.

“교주님.”

“음? 왜? 아, 잔 비었군. 한 잔 더 줄게.”

벽력마존이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웃음기 가득하던 서량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해졌다.

벽력마존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소신, 지금껏 교주님께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혔으나, 단 한 번도 교주님을 제 주군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알고 있네.”

“그것을 늙은이의 아집이라 생각하셔도 좋고, 역심을 품은 골방 늙은이의 탐욕이라 부르셔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도 저의 주군은 전대 교주님이셨습니다.”

“그래, 그 또한 아네.”

“하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충성의 대상을 바꿔 보려 합니다.”

서량의 눈이 흔들렸다.

“벽력.”

“하교하십시오, 교주님.”

“……미안하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드르륵.

서량이 술상을 치우고 벽력마존의 손을 잡았다.

벽력마존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서량의 두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듯 습기 가득한 눈에 벽력마존은 자신 또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내, 자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어떠한 말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네. 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알아줬으면 싶었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것 또한 자네의 권리일 뿐 내가 강요할 수 없는 문제야.”

“교주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네 앞에서 이런 못난 모습을 보여 주는 것뿐이었어.”

벽력마존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서량이 왜 이토록 취했는지를.

술을 몇 동이나 연거푸 들이켜도 취하지 않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 서량이었다. 말하자면 서량은 일부러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부러 취한 이유는?

“내 본능이, 자네의 살수(殺手)에 반응할까 무서웠네.”

벽력마존의 눈이 흔들렸다.

“교주님.”

“오늘 묘지에 가고서야 새삼 깨달았네. 난 그들과의 약속을 끝까지 지킬 테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이 없기에 진심으로 미안해할 수 없다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을 잃은 심정이 어떤지를, 나 역시 알고 있다네. 나는 고루를 잃었고, 사부님을 잃었어.”

“……!”

“그래도 천마신교의 교주인지라, 내 가슴에 칼을 박으라 말해도 농락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네. 그래서 난 취할 수밖에 없었네. 자네가 날 죽이려 든다면, 내 겸허히 죽을 작정이었어.”

벽력마존도 서량의 손을 꽉 쥐었다.

서량이 고개를 숙였다.

“나를 용서해 주어서 고맙네.”

벽력마존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교주님께서는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대신 하십니까.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은 바로 저입니다. 마음 깊이 충성을 맹세해야 할 대상에게 수년간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이 죄, 살아서 어찌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 말하지 말게.”

“그러나 교주님께서 이 부족한 노신을 용서해 주신다면,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도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겠나이다.”

서량이 고개를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한 그의 표정은 늙은 신하의 심금을 울렸다.

“내, 자네의 충성을 받아도 될 만큼 좋은 사람이 못 되네.”

“비록 이지가 밝지 않은 늙은이입니다만, 지금껏 쌓아 온 실력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 늙은이의 충성을 받으실 분이 교주님 말고 또 누가 계시단 말입니까.”

벽력마존이 다시 절을 올렸다.

“앞으로 교주님을 위하여 분골쇄신하겠나이다.”

“……고맙네.”

서량이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나를 용서해 주어서 고마워.”

충성을 맹세해서가 아니라 용서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천마신교의 교주답지 않게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교의 교주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으로 천하에 두려움을 안겨 주어야 마땅할 존재이거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벽력마존은 생각했다. 주군의 이러한 성격이 지금의 역사를 만든 것이라고.

초대천마 이후, 최초로 천하를 집어삼킨 유일한 천마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인간미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벽력마존이 정자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이제야 구원받았다.’

그가 병을 잡았다.

“소신이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래, 한 잔 받아 보세.”

* * *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진천이 손을 흔들었다.

“호천마황단 전원 임무 해제.”

선임 조장이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임무 해제라니요?”

“남은 임무는 나 혼자 보겠다. 전원 휴식을 취하도록.”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호천마황단의 기강은 신교에서도 선두를 다툰다. 단주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 자체가 중죄였다.

말하자면, 그만큼 선임 조장이 놀랐다는 뜻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 진천은 그를 벌하지 않았다.

“지금껏 우리 호천마황단이 수년간 쉬지 않고 교주님을 호위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벽력마존이었다. 그는 속을 모르는 자, 혹시라도 반역을 저지르면 큰 위협이 될 존재였다.”

“…….”

“하지만 이제, 본교에서 유일한 위험 인자가 교주님의 권속으로 들어갔다.”

진천이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간 고생들 했다.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선임 조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늘은 단주님만 믿고 푹 쉬겠습니다.”

“물론이다.”

스르르륵.

호천마황단 전원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진천이 서량을 내려다보았다.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는 서량의 미소가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축하드립니다, 교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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