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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35화 (634/774)

635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10)

푸스스스.

초토화가 된 대지에서 희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크윽.”

장구문은 어떻게든 몸을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상도 심각했지만, 외상은 그보다 더 심했다. 다리 하나가 부러지고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으며, 좌측 갈비뼈 전체에 금이 갔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상황이었다.

치이이이익!

그의 몸에서 시퍼런 사기(邪氣)가 흘러나왔다.

사공(邪功)을 개방하여 내상을 잡고 뼈를 맞추려 했다. 그러나 내공 소모가 극심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럴 수가.’

장구문은 두려움을 느꼈다.

‘혼천대사공이 말을 듣지 않아.’

혼천대사공은 회복력이 뛰어난 사공이었다. 굳이 운공을 하지 않아도 부러진 뼈 정도야 하루면 붙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진기의 양이 줄어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사공답지 않게 여일(如一)한 힘을 내는 것, 그게 바로 혼천대사공이 대단한 이유였다.

척.

장구문이 고개를 들었다.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지옥에서 올라온 칠흑의 검사가 있었다.

“양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것만으로도 너흰 충분히 죽을죄를 지었다.”

화르르륵.

시커먼 검날에 핏빛 화염이 일었다.

장구문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이곳, 흑문지회(黑門之會)의 본진이 초토화가 된 이유가 바로 저 화염 때문이었다.

삼매진화(三昧眞火)보다도 훨씬 더 뜨겁고 폭발적인 화력. 저 마왕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수십 명의 무사가 불에 타 죽었고, 튼튼하게 세웠던 건물들이 다 썩은 고목처럼 우수수 부서지며 내려앉았다.

그야말로 인세에 강림한 마신이 따로 없었다.

‘……믿을 수가 없다.’

넋이 나간 장구문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극마의 고수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검사의 무공은 지나치게 대단한 감이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이면 홀로 한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데 그도 모자라 본교에 세작을 심어 반역을 유도하려 들다니.”

검사, 마동필이 흑혈마검을 높이 쳐들었다.

“너희는 선을 넘었다. 죽어라.”

“자, 잠깐!”

“유언이 있나?”

장구문이 침을 삼켰다.

“대체…… 이곳을 어떻게 알았지?”

“유언, 잘 들었다.”

“자, 잠깐!”

서걱!

장구문의 목이 날아갔다.

화르르륵!

잘려 나간 목은 물론 몸뚱이까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스르릉.

마동필이 납검했다.

‘후우. 힘들군.’

흑혈마검은 마검 중의 마검이다. 적의 피를 빨아 마시며 마기를 불리는 검인지라,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는 결국 미쳐 버리고야 만다.

다행히 흑혈마검은 마동필을 주인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그간의 싸움으로 흑혈마검 역시 예전보다 살기가 증폭되었다.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마검의 광기. 주인으로 인정받은 마동필조차도 검력(劍力)을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굉장한 힘을 주지만, 자칫 긴장을 놓으면 내가 잡아먹힌다.’

마동필이 쓴웃음을 지었다.

‘성질 난폭한 녀석이로군.’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살기와 광기를 더욱 불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선, 자신 역시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할 것이다.

“마 호위님.”

“음.”

형법당 부당주가 고개를 숙였다.

“잔당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네들이야말로 고생이 많았지. 수고했네.”

“아닙니다. 하면 이만 돌아가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따로 더 공습을 가할 곳은 없나?”

“없습니다. 남은 곳이 하나 있긴 한데, 그곳에 고수는 없습니다. 문서만 털어 가면 흑문지회는 말끔하게 사라질 겁니다.”

“알겠네. 하면 난 먼저 감세.”

“예.”

수십 명의 당원이 일제히 외쳤다.

“고생하셨습니다!”

마동필이 눈을 끔뻑였다.

형법당은 군사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거의 교주 직속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 만큼 그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에 반해 마동필의 지위는 다소 모호했다. 교주의 밀착 호위이니만큼 그 위치가 지극히 높기는 했지만, 명확한 서열이 없었다.

이렇게 우렁찬 인사를 받을 만한 위치가 아니란 것이다. 마동필이 당황하는 이유였다.

“먼저 가네.”

“예.”

파아아아앙!

마동필이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부당주는 멀어지는 마동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정말이지 괴물이 따로 없군. 어째 구대마존 어르신들보다 더 강한 것 같아.”

그들이 마동필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한 이유는 명확했다.

강하기 때문이다.

마동필의 강함은 교주를 제외, 신교에서 일이 위를 다툴 정도였다. 그런 초고수가 자신들을 도와주었으니, 실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무적의 힘을 손에 넣었음에도 저리 순진하다니, 교주님께서 마 호위를 총애하시는 이유를 알겠군.”

한참 동안 마동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부당주가 당원들을 보며 외쳤다.

“흑문지회 건은 오늘 내로 정리를 끝낼 것이다! 빨리 움직이자!”

“예!”

* * *

부아아아아앙! 사라락.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마동필이 어느새 신교에 도착했다.

“아, 오셨습니까.”

“그래.”

“안 그래도 교주님께서 마 호위님을 찾으십니다.”

“교주님께서?”

“예.”

“알겠네. 전해 줘서 고맙네.”

외성을 지나 단숨에 내성으로 진입한 마동필이 마신궁에 들었다.

“오, 동필이 왔냐?”

마동필이 무릎을 꿇었다.

“군림성교, 천마불사. 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그래.”

서량이 웃으며 마동필을 일으켰다.

“어떠냐? 형법당 애들, 같이 일하기 깐깐하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배려해 줘서 일 처리가 쉬웠습니다.”

“그래? 하긴, 신교에서 제일을 다투는 고수와 협업을 했으니 영광스러웠겠지.”

마동필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감당키 힘든 말씀입니다, 교주님.”

“제일을 다툰다고 했지, 제일이라고는 안 했다. 제일은 나잖아?”

“무, 물론 그렇습니다만.”

“구유삼식(九幽三式)의 경지도 무르익은 것 같군.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정말 원로원주와 박빙의 승부를 연출할 수도 있겠어.”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다 교주님의 은덕입니다.”

“낯간지러운 소리는 그쯤 하고, 나랑 같이 갈 곳이 있다.”

“예?”

“따라와 봐.”

두 사람이 마신궁을 나와 숲길을 걸었다.

서량이 물었다.

“그나저나, 힘들지 않냐?”

“예?”

“흑혈 말이야. 전에 봤을 때보다 살기가 한층 짙어졌는데.”

흑혈마검의 상태를 단숨에 꿰뚫어 본다.

깜짝 놀랄 일이었지만, 서량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천하 만물, 서량이 보지 못하는 게 없을 것이고 듣지 못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번에 조금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래?”

“예.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힘의 증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혈마검은 침묵의 검이야. 하지만 그 침묵에서 깨어나면, 천하를 노도처럼 휩쓸어 버린다고 하였지. 그래서 다른 마병보다도 더 무섭다. 주인으로 인정받아도, 주인이 게으르면 종국에는 검의 노예가 되어 버릴 테니까.”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검이 너를 주인으로 인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네가 강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마동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글쎄다.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군.”

빙긋 웃는 서량의 얼굴을 보며, 마동필은 생각했다.

‘알고 계시지만, 굳이 지금 내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이제는 서량의 표정과 눈빛만 봐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해. 흑혈마검 역시 다시 봉인되고 싶지는 않을 거야.”

“……?”

“주인을 신중히 골랐을 거란 말이다. 오랜 시간 주인을 만나지 못했으니, 그 외로움이야 오죽했겠냐. 하루라도 빨리 주인을 만나고 싶지만, 검 입장에서도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뜻이야.”

검 입장이라…….

마치 흑혈마검에 자아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고 계신다. 마동필이 고개를 숙였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뭐, 무공이 더 발전하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진 마라. 더 강한 진기, 더 강한 출력의 마공을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강해질 방법은 많아.”

“예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군.”

“헉! 아, 아닙니다!”

서량이 크게 웃었다.

“확실히 너랑 얘기하면 재미있어. 이래저래 말동무 삼을 사람은 많지만, 역시 동필이 너랑 있을 때가 제일 편하구나.”

마동필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불편합니다.”

“얼씨구?”

“마도 무림의 신이자 천하의 주인을 모시는 위치입니다. 감히 교주님을 편히 생각하면 안 되지요.”

“거봐, 말솜씨 늘었다니까.”

껄껄껄 웃음을 터트리던 서량이 자신의 귀를 가리켰다.

“들리냐?”

“예?”

“들리냐고. 너라면 이제 들릴 법도 한데?”

마동필이 감각을 예리하게 세웠다.

챙……. 챙…….

그의 눈이 번쩍였다.

“검이로군요. 검사 둘이 싸우고 있습니다.”

“역시 동필이. 제대로 읽었어.”

“보법이 무척이나 경쾌하고 유연합니다. 아마도 두 사람 모두 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오? 거기까지 읽었단 말이야? 대단한데?”

마동필이 쑥스러운 듯 괜히 얼굴을 매만졌다.

“그냥…… 짐작했을 뿐입니다.”

서량이 히죽 웃었다.

“검의 충돌음을 듣고 보법의 형태를 추측했군. 이건 경지의 문제가 아니야. 어지간한 아수라장을 겪어 보지 않으면, 너보다 강한 사람이라도 몰랐을 거다.”

“과찬이십니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어. 네가 딱 적임이야.”

“예?”

서량은 대답 없이 걸었다. 마동필은 의구심을 접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쩌어어어어엉!

강력한 일격끼리 충돌한 모양이었다. 팔방으로 굽이치는 경풍이 주변 나무들에 살벌한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마동필의 눈이 커졌다.

“어제까지 십일전(十一戰)이었으니까, 오늘까지 보면 십이전(十二戰)이로군. 오늘은 누가 이기려나.”

쩌엉! 쩌어어어엉! 쾅!

“크윽!”

백색 무복을 입은 여인이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런 여인의 목에, 흑색 무복의 여인이 새하얀 검을 겨누었다.

“허억! 허억! 이번에도 내가 이겼네요?”

“후욱! 그러게요.”

“아따, 더럽게 힘드네.”

위홍련이 그 자리에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서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위 령주가 이겼군.”

마동필의 얼굴에 놀라움이 어렸다.

살벌한 검격을 주고받던 이들은 바로 마왕령주 위홍련과 주서윤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수련하고 있었습니까?”

“그래.”

서량이 마동필을 바라보았다.

“처음 사흘을 제외하고, 서윤이가 계속 지고 있다.”

“…….”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승부가 끝나면 위 령주는 철검마존한테 가서 가르침을 받거든. 검도(劍道)의 상승 경지를 밟았으니, 배우는 속도도 가일층 빨라졌겠지.”

“그렇군요.”

“하지만 서윤이는 아니야. 저 녀석, 지금까지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보지 못했어.”

“그것은 아쉬운…….”

순간 마동필의 눈이 흔들렸다.

서량이 미소를 지었다.

“나, 서윤이한테 호북을 맡겨 보려 한다.”

“……!!”

“서윤이는 천재야. 하지만 저 정도 무공으로는 아직 한참 부족해. 뭐,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통치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그렇잖아?”

“그, 그렇지요.”

“동필아.”

“예에.”

“붙어라.”

“…….”

“반년 안에 검후(劍后) 소리 들을 정도로는 만들어 놔. 알겠어?”

“며, 명을 받듭니다.”

“제대로 안 가르치면 교도들 다 보는 앞에서 볼기짝 맞는다.”

“…….”

“대답은?”

“……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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