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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37화 (636/774)

637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12)

오 년 후.

“허허허.”

주청의 얼굴에 뿌듯함이 일었다.

“좌승상에게 들었네. 이번에 급제한 이가 그렇게 대단한 인재라면서?”

“그렇습니다. 이번 과거는 제국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힐 만큼 어려웠는데, 그 모든 시험을 당당하게 거쳤습니다. 그의 답안을 본 문관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인가?”

“좌승상이 답안지를 보고, 제국 역사상 단연 최고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문장이라고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거 정말 기대되는군. 그런 인재가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났는지 원.”

“조만간 직접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허허, 그래야지.”

의자에 등을 묻은 주청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새겨졌다.

“근래 들어 호사(好事)가 많구나. 마침내 내 뒤를 이을 황태자가 나왔고, 백성들의 삶은 크게 윤택해졌으며, 군사도 나날이 강성해져 가니 내 근래에는 걱정이 없도다.”

“폐하의 덕이 하늘에 이르렀음을 뜻하는 바가 아니겠습니까.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이리 좋은 기분을 어찌 그냥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내 오늘만은 국정(國政)을 미뤄 두고, 크게 취해 보아야겠다.”

주청이 웃으며 외쳤다.

“태장왕(太將王)을 황속정으로 부르라.”

잠시 후.

“폐하.”

“오, 송제(松弟) 오셨는가.”

“황궁이옵니다. 사사로운 호칭은 삼가심이 어떨는지요.”

“크하하! 내가 바로 제국의 황제이거늘, 아우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가.”

송금백이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좋지. 아주 좋아.”

주청의 웃음소리는 듣기에 참 좋았다.

오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주청은 전혀 늙지 않았다. 오히려 원체 의욕적으로 살아서 그런지 더 젊어진 것 같았다.

반면 송금백은 오 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살펴보자면, 사파대종주로서의 위엄은 사라지고 고귀하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묻어 나온다는 것이 다르달까.

태장왕 송금백.

수라제라는 별호로 중원 무림의 공포로 군림했던 송금백이, 이제는 황궁 최강의 비밀 정예군의 수장이자 황제에게 직접 칭왕(稱王)을 허락받은 제국 최고위 귀족이 되었다.

“우리,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것도 꽤 오랜만 아닌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폐하.”

“허허, 그것밖에 안 되었나?”

“근래 폐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신 줄 알았는데, 이럴 때 보면 그렇지도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뭐라? 하하하!”

천하 모든 사람이 떠받드는 존재지만, 송금백만큼은 주청을 편히 대했다.

그리고 송금백의 그런 모습이 주청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주청 역시 황제치고는 무척이나 소탈한 편임을 알 수 있었다.

“자, 산서에서 공수해 온 분주(汾酒)일세. 이번 분주는 역대 최고라던데 함께 맛이나 보세.”

“좋지요.”

두 사람이 느긋하게 술을 들이켰다.

“호오, 아주 좋군.”

“그렇습니까?”

“음? 송제 입에는 안 맞는 모양일세.”

송금백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맛 좋은 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수십 년을 강호에서 굴러먹다 보니, 이제는 고급과 저급을 나누는 안목도 많이 무뎌진 모양입니다.”

“허허! 사파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아우께서 그런 말씀을 다 하시나.”

“그때도 고급주보다는 싸구려 술을 더 좋아했지요.”

“자네도 참 별나단 말이지.”

그렇게 몇 순배의 잔이 돌았다.

“이번에 장원 급제한 녀석에 대해 들어 봤는가?”

“벌써부터 궁내에 소문이 파다하더군요. 제국 역사상 최고의 문장가라느니 희대의 천재라느니,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습니다.”

“허어, 그랬나?”

“모르셨습니까?”

“나는 오늘 아침 좌승상에게 처음 들었네.”

“폐하께서 근래 바쁘긴 바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게나 말일세. 한데…….”

주청이 턱을 쓰다듬었다.

“어째 냄새가 난단 말이지.”

“냄새라니요?”

“내 이곳 황속정에 오기 전, 장원 급제한 녀석의 출신지를 살펴보았다네.”

“어디랍니까?”

“광동성 운부(雲浮) 출신이더구먼.”

“광동성이라…….”

송금백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냄새,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셨겠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만도 않았네.”

주청이 혀를 찼다.

“장난기가 많은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야. 미리 언질이라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능력을 증명시키고자 함이었겠지요.”

“킁, 과거 시험 답안지를 내가 본다던가?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것을.”

“허허, 그쪽에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뛰어난 인재를 보내 주려고 부러 신경을 쓴 것 같으니 마음 푸시지요.”

“쩝.”

주청이 턱을 괴었다. 황제의 품위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그이는 참 복도 많구먼. 제국의 석학들이 입을 모아 희대의 천재라고 칭찬하는 인재를 선뜻 보내다니, 필경 신교에는 그만한 천재들이 열 명은 있을 걸세.”

“열 명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그에 필적할 만한 인재들을 모아 두고는 있을 겁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예.”

몇 잔을 마시니 주향이 제법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송금백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천마(天魔)는 절대 방심치 않는 사람입니다. 음, 이제는 사람이라 하기에도 뭣하군요.”

“허허.”

“관계란 언제라도 틀어질 수 있는 법, 만에 하나를 대비키 위함일 테니 폐하께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천마신교의 병력도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주청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송금백이 뱉은 ‘우리’라는 말이 참으로 듣기 좋았다. 천마신교의 대단함을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송금백 스스로도 황궁의 사람이 되었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이었다.

“어쨌건 선물이랍시고 그런 인재를 보내 줬으니, 우리 쪽에서도 뭔가 답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일세.”

“아마 바라지는 않을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늘 아래 무엇이라도 쟁취할 수 있는 사람이니, 그이에게는 따로 선물을 하지 않을 생각일세. 다만 근래 총군사의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고 들었네. 약재라도 보낼까 생각 중이야.”

“예, 그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참, 생각해 보면 그이도 무심하기 그지없지. 그이한테 총군사만 한 충신이 없을 터인데, 몸이 그리 상할 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둘 중 하나겠지. 노느라 신경을 못 써 줬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꾸민 소문이거나.”

송금백의 눈이 반짝였다.

“꾸몄다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총군사의 건강이 나빠질 리가 없잖은가? 그이는 자기 사람이 그리 아플 때까지 내버려 두는 사람이 아니야.”

“음, 그렇긴 합니다만.”

“만일 이것이 꾸며 낸 소문이라면, 두 가지 의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

주청이 잔을 비우고 말했다.

“첫째. 제국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

“음.”

“내, 언감생심 어찌 천마를 건드리겠는가. 나는 지상 최고의 권력자요, 통치자이지만 천마는 이미 하늘 위에 올라 만상을 지배하고 있네. 하나, 그는 그저 군림할 뿐 다스리지는 않는다네. 말하자면 천마신교라는 단체를 이끄는 실질적인 권력자는 총군사 외 몇 명이라고 할 수 있지.”

“맞습니다.”

“내 전에 보니 총군사가 허허실실에도 능하더구만. 원하는 게 있다면 어떤 파격적인 술수도 쓸 만한 사람이야. 호요성, 그 사람이라면 거짓 소문을 내어 우리 쪽의 반응을 살펴보는 짓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네.”

“허허, 황궁에도 신교의 사람이 있거늘,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물론 가능성에 불과한 얘기라네. 왠지 총군사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하면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후계.”

잔을 들어 올리던 송금백의 손이 멈칫했다.

“후계라…….”

“사 년 전이었던가, 오 년 전이었던가. 천마와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네.”

“아, 기억합니다.”

“그때 천마가 그러더군. 제법 똘똘한 놈들을 뽑았다고 말이야. 이삼 년이면 총군사의 짐을 충분히 나눠 들 수 있을 만한 인재들이라 하였네. 자네도 알다시피, 그이 입에서 그 정도 평가가 나왔다면 이는 극찬 중의 극찬일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송금백이 턱을 쓰다듬었다.

“후계라…….”

“물론 진정 후계에게 자리를 물려준다 한들 당장은 아니겠지. 사실, 굳이 아프다는 거짓 소문을 낼 필요도 없다고 보네. 오히려 그러한 소문으로 인해 얕보이는 것은 신교가 될 테니까.”

“그도 그렇습니다.”

“다만, 방침을 바꾸었다면 얘기가 다르지.”

“방침이요?”

주청이 미소를 지었다.

“천마가 그러더군. 진정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겉으로 드러난 이가 아니라 그림자 속에 숨어서 천하를 관망하는 자라고.”

“…….”

“천마신교 역시 그러한 노선을 선택한 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보네.”

“허허허.”

송금백이 주청의 잔을 채워 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폐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어느 하나 확신할 만한 것이 없기에 긴가민가합니다.”

“나 역시 모호하네.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하는 얘기야.”

“하지만 진정 총군사가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도 그냥 넘기기 힘든 일이긴 합니다.”

송금백이 넌지시 말했다.

“하면 어디, 소신이 다녀오리까?”

“으응? 자네가?”

“예.”

주청이 당황하여 말했다.

“이 사람아, 예서 신교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그리 말씀하시는 겐가.”

“허허, 폐하께서 어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신, 천마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있다 자신합니다.”

“어허, 자네 실력이 천하제일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그거 하나 확인하자고 만 리 길을 가는 건 쓸데없이 힘만 드는 일 아니겠나.”

“황궁은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게다가 폐하께서 계시니, 소신이 어찌 중원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소신 역시 황야의 바람을 맞고 자란 야인인지라, 가끔 들풀 냄새가 그립기도 하더이다.”

주청이 입맛을 쩍 하고 다셨다.

“황궁이 답답했던 모양이군.”

“허허, 아닙니다. 남은 생의 뼈를 묻을 곳이거늘, 제집을 답답해해서야 쓰겠습니까.”

송금백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만…… 한 번씩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황궁이 제 두 번째 고향이라면, 천하는 제 고향 그 자체였으니까요.”

주청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욕심이 나시는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폐하께서 계시고, 천마가 있습니다. 애초에 철혈성의 수장 노릇을 할 때도 그 자리에 만족했을 뿐 천하에는 뜻이 없었지요.”

“그랬구먼.”

“그렇습니다. 다만…….”

송금백이 눈을 감았다.

“천하 그 자체가 제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지요.”

웃으며 송금백을 보던 주청이 잔을 들어 올렸다.

“석 달 안에 돌아오시게. 그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내 크게 섭섭할 것이네.”

잔을 말끔히 비운 주청이 눈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송금백은 사라지고 없었다.

“거 사람 참, 한 번씩 이렇게 섭섭하게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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