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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38화 (637/774)

638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13)

동규(冬奎)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아, 젠장. 이거 또 망가졌네.”

그가 작은 망치 하나를 들고 수풀로 들어갔다.

수풀 안, 흙을 살살 걷어 내니 회흑색 정(釘)의 대가리가 보였다.

그가 망치로 정을 내리쳤다.

따앙! 따앙! 따앙!

울림소리가 몹시 청아했다.

“내가 기진자(機陣者) 어르신을 모시자고 그렇게 얘기해도 안 듣더니만. 어휴, 이럴 줄 알았어. 귀곡자(鬼谷者) 그 망할 늙은이 작품이 다 이렇지, 뭐. 머리만 좋으면 뭐 해? 매번 마무리가 허술한데. 에라이!”

따아아앙!

몇 번 내리치니, 신기하게도 정의 대가리가 투명해졌다.

동시에 지부(支部) 영역 전체에서 쇠와 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드드드득! 쿠르릉.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땅에 미약한 진동마저 생길 정도, 지부 영역 전체에 걸쳐 펼쳐진 기관진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됐나?”

동규가 입맛을 다셨다.

“안 되겠어. 지부장님께 말씀드려서 귀곡자에게 쓴소리 한번 하시라고 해야지. 이놈의 늙은이는 돈은 돈대로 다 받아 처먹어 놓고 일 처리를 이따위로 해 놨어. 으휴, 내 진짜 지부장님 다 좋아해도 그 허술한 안목은 믿을 수가…….”

그때였다.

“지부장 안목이 그렇게 허술한가?”

“아, 그렇다니까.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도 똑똑한 데다가 사람도 그리 좋으면서, 어째 안목은 영 아니야.”

“흐음, 빙궁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 아닌가?”

“내 말이. 오죽했으면 궁주님께서 중원지부의 수장으로 앉히셨겠냐고. 혈육이라서? 아니야. 다 그만한 능력이 되니까 그런 게지. 그냥 하나, 딱 하나가 아쉬운 거야. 알지? 완벽에 가까운 그림일수록 하나의 흠이 유독 크게 보이는 거.”

“알지, 알지.”

“그래, 그거야. 휴, 그래도 우리 지부장님만 한 분이 또 안 계셔. 과연 어떤 분이 우리 지부장님을 모시고 가려나.”

“멋진 신랑이 나타나겠지.”

“흥! 천하제일의 기재가 아니고서야 못 보내 드리지. 아니, 천하제일 기재라도 아쉽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 지부장님이 보통 분이야? 지부 세운 지 고작 삼 년 만에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문파들 다 씹어먹을 만큼 세를 불리신 분이야.”

“엄청난 성과였지.”

“그러니까. 사실 마음 같아서는 좋은 사람 만나서 알콩달콩 사시는 것도 보고 싶긴 해. 그간 고생을 이만저만 하신 게 아니거든.”

“그렇게 고생이 많았나?”

“당연하지! 그래서 더 답답해! 지부장님 안목에, 그럴 리야 없겠지만 어디 괴상한 놈을 골라서 백년가약 맺을까 봐 조마조마…… 으응?”

동규가 눈을 끔뻑였다.

투덜거리면서 오만 얘기를 늘어놓다 보니, 이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다.

그가 조심스럽게 등을 돌렸다.

“한데 누구…… 헉!!”

동규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웬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청년처럼 보이지만, 또 청년이라 하기에는 애매했다.

머리카락은 물론 피부까지 새하얀 청년의 얼굴은 가히 미모(美貌)라는 표현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두 눈은 깊은 연륜으로 가득하여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범하기 그지없는 모습. 천하 어디에도 이와 같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동규는 청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알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깔리는 위엄과 신비로운 기도가 공존하는 자. 새하얀 머리카락에, 입고 있는 백색 장포가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궁주님?”

여강휘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전달이 안 된 모양이군. 이제는 궁주일세.”

“허억!”

“빙궁에서 중원지부까지 거리가 얼마이던가. 그럴 만도 하네. 하긴 내가 너무 빨리 달려오기도 했지.”

“크허억!”

동규가 후다닥 일어나더니, 곧장 절을 올렸다.

“부, 부지부장 동규가 소궁주님을 뵙습니다!”

“궁주라니까?”

“으아아악! 궁주님을 뵙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크게 웃은 여강휘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자네,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구만? 동생이 심심할 일은 없었겠어.”

“커헉! 가, 감사합니다!”

“근데, 내 동생 안목이 그렇게 별론가?”

“끄르르륵.”

동규는 거품을 물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부장님의 안목은 능히 신의 경지에 이르러……!”

“아까 했던 말이랑 다른데?”

“으허헝!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죽여 주십시오!”

여강휘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미안하네. 내 장난이 좀 심했어. 자네를 추궁할 생각은 없으니 이만 일어나게.”

“…….”

“일어나라니…… 얼레?”

여강휘가 눈을 끔뻑였다.

엎드려 있던 동규의 몸이 옆으로 스르르 기울었다. 바닥에 쓰러진 동규의 눈은 어느새 완전히 돌아가 버렸다.

여강휘가 입을 쩍 벌렸다.

“기절한 거야? 진짜?”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장난치는 건가 싶어 쿡쿡 찔러 보니, 이건 진짜로 기절한 거다. 여강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초절정고수가 이렇게 쉽게 기절할 수 있는 거야? 미쳤어? 간땡이가 왜 이렇게 작아? 콩알만 한 간땡이로 용케 뒷담화할 용기는 냈네.”

세상 살다 보니 별의별 놈을 다 본다.

동생이 동규더러 재미있는 미친놈이라고 하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초절정고수라면 소림 방장과도 동급이다. 그런 고수가 농담 몇 마디에 까무러치다니, 직접 보지 않았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산다.”

“푸하하하!”

여상린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랬어요?”

“그렇다니까. 도대체 그 인간 내공 구조는 어떻게 생겨 먹은 거냐? 빙궁 무공 익힌 거 맞지?”

“당연하죠. 부지부장이 좀 독특한 사람이기는 해요.”

“허허허.”

“그래도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마세요. 정이 깊은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실력도 저와 박빙이에요.”

“실력이야 보면 알지. 그저 황당할 뿐이다.”

“호호호.”

여강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나저나, 잘 지냈느냐?”

“물론이죠. 좀 바쁘긴 했지만.”

“그런 것 같더라. 그래도 이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지나가지 않았느냐?”

“어제부터 좀 널널해졌어요. 십 년 한량처럼 놀려고 삼 년을 바쁘게 지냈네요.”

“그거 보통 일 아니다. 누가 삼 년 만에 일개 지부를 대문파 못지않게 성장시킬 수 있겠느냐. 정말 고생 많았다.”

여상린이 빙긋 웃었다.

동생의 미소를 보며 여강휘는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이 예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음을.

무공도 무공이지만, 사람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성숙한 분위기가 절로 묻어 나오는데, 아닌 게 아니라 혼인을 치를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네 나이가 몇이지?”

“헐, 그런 것도 기억 못 하고 있었어요?”

“면목이 없다. 내가 좀 바빴다.”

“먹을 만큼 먹었어요. 완전히 노처녀가 다 됐다고요.”

“크흠, 세상 누가 너를 노처녀로 보겠냐. 방년에도 이르지 못한 소녀인 줄 알 거다.”

“좀 섬뜩한 칭찬이네요.”

“이게 왜 섬뜩해?”

“나잇살 먹고 마냥 어리게 보이는 것도 별로 안 좋아요.”

“허허.”

여상린이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언니는 잘 있죠? 한번 시간 내서 가 보려고 했는데, 그간 너무 바쁘다 보니 여태 못 가 봤네요.”

“물론 잘 있다. 몸도 다 회복했어.”

“다행이에요.”

여상린이 씨익 웃었다.

“애는 잘 크고 있어요?”

여강휘가 헛기침을 했다.

“잘 크고 있지. 이제는 말도 한다.”

“벌써요? 헐, 뭐야? 천재야?”

“……이제 오백 일밖에 안 된 애가 조리 있게 말을 하겠냐? 그냥 빠빠빠 그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중에 낳아 봐라. 알게 될 거다.”

“킁.”

콧방귀를 뀐 여상린이 그대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하, 우리 조카 보고 싶다. 조카는 알까? 고모가 머나먼 중원 땅에서 오만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그리 말하니 참,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매정한 오라비는 삼 년 만에 얼굴 비추고.”

“…….”

“아버지는 딸내미 걱정도 안 되시나.”

“끄으응.”

여강휘가 입맛을 다셨다.

“면목이 없구나. 변명으로밖에 안 들리겠지만, 본궁의 일이 워낙에 바빴다.”

“알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컹.”

“뭐에요, 그 괴상한 콧소리는? 언니한테 배웠어요?”

“이놈아!”

“깔깔깔.”

한참을 웃던 여상린이 몸을 바로 했다.

“그나저나 축하드려요.”

“엉? 뭘?”

“이제 정식으로 궁주가 되셨다면서요?”

여강휘가 눈을 끔뻑였다.

“벌써 연락 받았냐?”

“하오문 통해서요.”

“컥! 야, 도대체 그이들 정체가 뭐냐? 우리 쪽에서 보낸 연락보다 더 빨리 전했다고? 빙궁 감시라도 하나?”

“저도 하오문의 정보력만큼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비결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웃고 말더라고요. 영업상의 비밀인가 봐요.”

“세상에…….”

여강휘는 혀를 내둘렀다.

“나중에 따로 공야 문주를 찾아가야겠다. 가서 직접 물어봐야겠어.”

“말 안 해 줄걸요.”

“당연히 안 해 주겠지. 그냥 배움이나 얻어 볼까 해서 한 말이다.”

여상린은 가만히 웃어만 보였다.

그런 여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강휘가 입을 열었다.

“린아.”

“네?”

“…….”

“왜요?”

“그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세요? 뭐, 심각한 얘기에요?”

“아니 뭐…… 심각한 건 아니고…… 아, 아닌가? 심각하다면 심각하지만, 또 아주 그렇다고 보기에는…….”

“답답해 죽어 버리겠네, 진짜.”

“커험!”

“뭔데요?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어서 말해 보세요.”

여강휘가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다 이내 조심스레 말했다.

“그…… 서 교…….”

그때였다.

스르륵.

여강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상린의 표정 역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오라버니.”

“그래. 엄청난 고수다.”

“오라버니도 안 될 정도인가요?”

“……오십 합.”

“……?”

“오십 합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

여상린의 얼굴에 긴장이 차올랐다.

오 년 전 천위에 오른 여강휘는, 그 뒤로도 꾸준한 수련으로 이제 완숙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아버지인 북해제 여극도의 뒤를 잇는 차기 새외제일인이며, 이미 그 강함은 아버지를 제외하면 능히 새외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여강휘가 오십 합밖에 버틸 수 없는 상대란다. 말하는 투를 보니, 거의 일방적으로 밀릴 거라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대체 누구기에?’

그때, 밖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부장 안에 계신가?”

“……?!”

“어째 지부장을 만나러 왔더니만, 묘하게 익숙한 기도가 읽히는군. 그새 많이 발전한 모양이야.”

여강휘의 눈이 커졌다.

“이 목소리는?”

여상린이 입을 쩍 벌렸다.

“철혈, 아니 태장왕?”

두 사람이 후다닥 밖으로 나왔다.

“헉!”

여강휘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태장왕 전하?!”

송금백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자네였구만. 이렇게 직접 보니 더 대단하구먼그래. 십 년만 정진하면 나도 긴장 좀 해야겠어.”

남매가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태장왕 전하를 뵙습니다.”

송금백이 손사래를 쳤다.

“됐네. 그만하시게. 태장왕 전하는 무슨. 그냥 어르신이라고 부르게나.”

“…….”

“음, 자네도 와 있을 줄은 정녕 몰랐거늘…… 차라리 잘 됐구먼.”

“예?”

송금백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멀리 마실 좀 나가려고 그러는데, 함께하겠는가? 두 사람 모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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