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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642화 (641/774)

642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17)

“흐음.”

위홍련은 진지한 눈으로 능적반을, 아니 한때 능적반이었던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뭐지? 튀김인가? 아니면 찜? 이건 뭐, 완전히 다 익어서 나왔네.”

위홍련이 검갑으로 능적반을 쿡쿡 찔러 보았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능적반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로 입만 뻐끔대고 있었다.

“이러고도 죽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대단하긴 해. 그 몸뚱이로 내 십검(十劍)을 온전히 받아 낸 것도 기가 막혔는데, 거의 작살이 나고도 숨이 붙어 있단 말이지.”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힘 조절은 제법 잘한다네.”

위홍련이 씨익 웃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실력 안 죽으셨네요?”

송금백이 나직이 투덜거렸다.

“자네는 날 전하라고 부르지 않는군.”

“성격상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해.”

“뭐, 그 전에 저희 마인들은 교주님만 모셔서요.”

“크흠, 민초들도 황제 폐하를 모시지만 내게 전하라고 부르던데.”

“불러 드릴까요?”

“됐네, 됐어.”

위홍련이 피식 웃었다.

“한데 중원에는 어인 일로 나오셨습니까?”

“왜? 내가 자네들 교주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되나?”

“그럴 실력은 되시고요?”

“끄응.”

“캬하핫, 진짜로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게다가…….”

그녀가 눈을 끔뻑였다.

“소궁주님이랑 여 지부장님에다 오공녀님까지? 얼레? 하오문주도 계시네?”

주서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간 잘 지내셨어요?”

“헷, 저야 뭐 언제나 그렇죠.”

“뒤늦게나마 축하드려요. 극마에 오르셨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오공녀님이 저보다 먼저 오를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늦기도 늦었어요.”

“아니에요. 저야 운이 좋았죠.”

“어디 가서 그런 말씀 마세요. 그 경지는 운으로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주서윤이 민망한 듯 볼을 긁적였다.

위홍련이 여강휘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는 그쪽도 어마무시하네요? 경지는 비슷하지만 막상 목숨 내놓고 싸우면 오십 합도 못 버티겠는데요?”

여강휘가 피식 웃었다.

“이 경지에 오른 지 오 년이 넘었습니다. 차이가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랬어요? 헐, 그걸 이제 알았네.”

“그나저나, 요새도 바쁘십니까?”

“겁나게 바쁘죠. 전쟁 끝나기 전보다 몇 배는 더 바쁩니다.”

“아! 그리고 저, 이제 소궁주가 아니라…….”

“여어, 지부장님.”

위홍련이 여상린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괜스레 민망해진 여강휘가 헛기침을 했다.

여상린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잘 지냈지요. 근데 지부는 어쩌고 여기 계십니까?”

위홍련이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것도 이 많은 사람이랑.”

“신교에 놀러 가요.”

“본교에요?”

“네.”

“옴마? 난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그럴 수밖에요. 저희도 태장왕 전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놀러 갈 생각 같은 건 전혀 못 하고 있었거든요.”

위홍련이 송금백을 바라보았다.

송금백이 미소를 지었다.

“볼일이 있어 가는 김에, 다 같이 가는 게 어떤가 싶어서 말일세.”

“헤에, 그렇습니까?”

“뭔가? 그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눈빛은?”

“제 눈깔 생겨 먹은 게 원래 이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제 옛날 별명이 천마신교 최고의 미친년이었거든요.”

“커험!”

“어쨌든 이 통구이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꾸라지처럼 도망치는 거 따라잡느라고 혈압이 정수리까지 치솟은 참이었는데, 덕분에 시간 아꼈네요.”

“허허.”

위홍련이 능적반을 들어 올렸다.

이미 송금백에게 단전까지 파괴된 상황이었다. 그러고도 죽지 않았다니, 정말이지 대단한 생명력이었다.

“얘들아, 목표물 잡았다. 받아라.”

“예!”

위홍련에게서 능적반의 신병을 인도받은 마왕수들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곧장 의원한테 데려가서 치료부터 시켜.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면 본교로 이송하라 하고.”

“예!”

“그래, 그치 의원한테 맡기고 나면 너희도 좀 쉬어라. 복귀는 통구이랑 같이 하고.”

“명을 받듭니다!”

그렇게 마왕수들이 사라졌다.

주서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위 령주님께서는 따로 임무가 있으신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이놈의 마왕령주 자리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원.”

“아쉽네요. 함께 가고 싶었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함께 갈 거예요.”

“네? 임무가 있으시다면서요.”

“그래서 같이 가는 겁니다.”

“……?”

“위험 인자 감시 겸 본교 귀빈 호위 임무거든요.”

주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그렇죠?”

그때, 송금백이 끼어들었다.

“위험 인자는 누구고, 귀빈은 누구인가?”

“다른 사람은 귀빈인데, 송 성주님은 둘 다입니다.”

“쯧, 날 너무 의심하는 거 아닌가?”

“장난입니다.”

“……장난을 그렇게 진지하게 쳐?”

“말씀드렸듯, 제 눈깔이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커험!”

“그럼 이만 가실까요? 어차피 가시던 길이었죠? 밤이라도 못 움직일 건 없잖아요?”

“그, 그렇지.”

“가시죠. 최단 거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다네.”

“무기 창고?”

“떽! 이 사람아, 장난 좀 적당히 치게.”

“낄낄낄.”

송금백이 공야치에게 물었다.

“혜심이 호남에 있다는 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호남 중부 지방에서 돈이 없는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의술을 베풀고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호남 북부로 올라올 거라 예상됩니다.”

“오 년 동안 그러고 있었단 말이지?”

“예. 천하에 도움이 되고자 뒤늦게 의술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 실력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은퇴한 팔대호원의 수장들도 혜심 대사와 함께 의술을 펼치고 있다고 하더군요.”

“대단하군. 전쟁도 끝났으니 소림으로 돌아가면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을.”

“천성이 그런 분인가 봅니다. 아마 평생을 그러고 사실 것 같습니다.”

“쯧, 일단 가 보세. 신교로 안 간다고 하면, 돈이라도 좀 쥐여 줘야겠네. 환자들 돌보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할 터이니.”

“하면 제가 길을 잡겠습니다.”

“그러시게나.”

위홍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혜심이라면 전(前) 소림 방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본교에 땡중을 데리고 간다고요?”

“뭐 어떤가? 천마하고도 연이 깊은 사람인데.”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송금백이 주서윤을 가리켰다.

“심지어 검장은 한때 소림 최고 배분의 생불(生佛)에게 가르침도 받았다네. 어떤 의미로, 검장과 혜심은 동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주서윤이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 마침 호남에 계시다고 하니 그쪽으로 길을 잡도록 하죠.”

“좋지요.”

“아, 근데 남궁은 어떻게 하죠?”

공야치가 나섰다.

“안휘를 들렀다 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제가 따로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 * *

“후우.”

남궁단이 눈을 비볐다.

“이제야 좀 살겠군.”

사흘 동안 밤을 새우며 업무에 매진했다. 그 덕에 쌓인 일을 몽땅 처리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이럴 때만큼은 술 한 잔이 절실했다. 안휘의 안정을 위해서 지난 오 년 동안 술 한 모금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이라…….”

남궁단이 쓰게 웃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거늘 술은 무슨.”

가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믿을 수 없게도,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했던 성품에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뜻이리라.

남궁단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휘영청 뜬 달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하게 보였다.

“해시(亥時)라…….”

물끄러미 달을 보던 그가 벽에 걸린 장검을 들고 일어났다.

“지금 자기에는 너무 아쉽군. 그간 못 했던 수련이나 해야겠어.”

내가고수에게 사흘을 밤새운 정도는 그리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화경을 코앞에 둔 남궁단에게 그 정도는, 심리적인 피로를 유발할지언정 육체적인 피로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휴식이 아닌 수련을 택하기란 어지간한 열정 없이는 힘든 일이었다. 정말이지 매 순간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그였다.

후우우우웅.

창궁무애신공을 끌어 올린 남궁단이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날이 검집을 긁고 나오는 쇳소리가 한 줄기 노래처럼 아름다웠다.

남궁단이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후웅. 후우웅. 후우웅.

푸른 진기를 담은 장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묵직한 바람 소리가 났다.

특유의 날카로움과 빠른 검속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검속에 묵직한 검압(劍壓)이 대기를 희롱하고 있었다.

웅장하면서도 세밀한 검법, 마치 실력 좋은 춤꾼의 칼춤을 보는 듯한 움직임.

남궁세가 최강의 검도(劍道), 제왕검형(帝王劍形)이었다.

쿠르르르릉.

남궁단의 귀에 환청이 들렸다.

태산처럼 거대한 검이 산봉우리를 날려 버리는 듯한 장엄한 굉음이었다.

번쩍!

일순 그의 검에서 시퍼런 검기가 치솟더니 단숨에 천공으로 날아올랐다. 무척이나 선명하고도 묵직한 그 검기는 달도 반으로 쪼개 버릴 듯 위압적이고도 신비로웠다.

서서히 사라지는 검기를 올려다보던 남궁단.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떠냐? 이 애비의 검이.”

“대단한데요.”

어느새 그의 곁으로 남궁화가 다가왔다.

어느덧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든 그녀였다. 그럼에도 오 년 전과 외모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일이 끝나셨으면 이만 쉬시지 수련이라니요? 그러다 몸 상하세요.”

“내 몸이 편하면 민초들이 고생한다. 내가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단 한 명의 민초라도 그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

“헤에.”

“물론 수련과는 다른 얘기지만 말이다. 안 그래도 내일 하루는 푹 쉴 생각이다. 그간 너무 무리한 것 같아서 말이야.”

“하루라…… 하루 말고, 두어 달 쉬시는 건 어떠세요?”

“음?”

남궁화가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하오문주에게서 온 서신이에요.”

“호오, 공야 문주가 내게?”

남궁단이 서신을 펼쳤다.

잠시 후, 그가 미소를 지었다.

“신교행이라…… 그것참,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로다.”

“어때요? 이참에 안휘 민생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아버지께서는 잠시 신교로 놀러 가시는 게?”

“되었다, 이놈아. 안심하고 너희에게 맡겨 두려면 아직 멀었다.”

“쳇, 그렇게 못 미더우세요?”

“못 미더운 건 아니다만, 신경은 좀 쓰이지.”

“사실, 꼭 저희가 아니라도 안휘는 잘 돌아갈걸요?”

“그건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만, 동쪽에서 섬나라 도적들이 창궐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네들의 기세가 몹시 사납다고 하니, 만에 하나를 위해 우리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건 그래요.”

남궁단이 납검했다.

“신교엔 이번 일이 끝나면 따로 가 보든지 해야겠다.”

“아쉽네요.”

“아쉽지. 사실, 이 애비도 많이 놀고 싶다.”

“헤헤.”

남궁화가 손뼉을 쳤다.

“그럼 오랜만에 딸내미랑 술이나 한잔하시는 게 어때요?”

“술?”

“네.”

남궁단이 다시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래, 오늘은 한잔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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