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치세(治世) 속의 이야기 (20)
휘이이이잉.
황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헉!”
괴인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둠 속, 눕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삼 년이 넘도록 갇혀 있었거늘 느닷없이 주변 풍경이 바뀐 것이다.
괴인의 눈이 흔들렸다.
‘아, 안 돼!’
완전히 미쳐 버렸던 그는, 이 영역의 신(神)에 의해서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신을 원망했다. 차라리 미친 채로 놔두었으면 육신의 고통도, 극한의 외로움도 모르고 살았을 텐데, 다시 자아를 되찾아 주다니? 이 무슨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또 삼 년이 흘렀다.
결국 그는 이 지옥 같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의식을 닫고 폐관에 들었다.
불가나 선도에서는 개인 수양을 위해 폐관에 들어 깨달음을 좇기도 한다. 말하자면 면벽 수련에 가까운 행위인데,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도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괴인은 그걸 무려 삼 년이나 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의 수련은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이제 조금만 더, 정말 반 계단만 더 오르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기가 막힌 순간에 어둠이 깨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괴인이 괴성을 질렀다.
주르르륵.
얼굴 가죽을 움켜쥔 손톱으로 인해 안면 전체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아아아악!
괴인의 백회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안 돼!’
그것은 그가 삼 년에 걸쳐 모은 양신(養神)이었다.
궁극의 깨달음, 양신을 단련하여 그 밀도와 크기가 한계를 초월하면 비로소 신화(神化)의 세계가 열린다.
그리고 신화의 세계가 열리면,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한데 그간 애써 모은 양신이 모조리 흩어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츠츠츠츠츠.
양신이 흩어지니, 그간의 깨달음도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괴인은 지난 삼 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어떻게 하면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지조차 떠올릴 수 없었다.
괴인이 또다시 괴성을 질렀다.
“이 잔인한 놈! 이, 이……!”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어서 그런 걸까.
괴인은 욕설조차도 잊어버렸다. 하기야 그 긴 시간 동안 갇혀 있었음에도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으흐흐흐흑!”
괴인이 땅에 엎드려 눈물을 쏟아 냈다.
참으로 애잔한 광경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의 업보와도 같았다. 그가 이승에 있을 적 벌였던 온갖 악업은 천하에 막대한 음기(陰氣)를 안겨 주었고, 세상은 그러한 악인의 존재를 빤히 보고도 없앨 수가 없었다.
다만 세상만사 억겁의 순환이니, 그간 그가 받았던 고통을 생각하면 이제 그만 편안해질 때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괴인의 몸이 움찔했다.
“어째 그 주둥이로 쏟아 낸 원망의 소리를 들으니, 해방시켜 주기가 영 싫으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도 지금의 괴인에겐 두렵게 들릴 뿐이었다.
괴인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태양을 등지고 선 사내의 두 눈에서 뿜어지는 광채는 햇살보다도 강력하여, 감히 마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제법이야. 삼 년간 양신을 연마할 생각을 하다니, 과연 보통 정신력은 아니야.”
“이…… 이 잔인한 놈!”
“나도 알아, 인마.”
사내, 서량이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았다.
“꼴이 말이 아니구만. 예전보다 훨씬 추레해진 것 같은데?”
괴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물끄러미 괴인을 바라보던 서량은 이내 철퍼덕 주저앉았다.
“조만간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더군. 그냥 기다리기는 좀 그래서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마침 네놈 생각이 났어. 그래서 들어온 거야.”
괴인의 눈에 핏발이 섰다.
서량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가 절묘한 순간에 들어왔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
“판마정은 네놈의 상황을 끊임없이 알려 주지. 네놈이 이상 행동을 하거나, 네놈을 담기에 벅찬 순간이 오면 곧장 내게 신호를 보낸단 말이야.”
“……!”
“양신을 모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삼 년 만에 이 정도로 모아 놨을 줄은 몰랐어. 사백 년에 가까웠던 정신적 고문이, 너의 영혼을 강하게 단련시켰던 모양이야.”
괴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연히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 말인즉, 자신은 절대 서량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과도 같았다.
주르륵.
괴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어떤 수를 써도, 어떻게 몸부림을 쳐도 상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절망케 했다. 이제는 완전히 무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단 하나의 희망마저 짓밟히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왜? 서러운가?”
“…….”
“타인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던 주제에, 자신의 고통은 영 못 버티겠는 모양이지?”
“……죽여라.”
“싫다.”
“…….”
“바깥 시간은 오 년밖에 지나지 않았어. 그리고 난 아주 오랫동안 잘 먹고 잘살 생각이다. 내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 네놈을 풀어 주지 않겠다고, 전에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
“오 년에 사백 년이라…… 앞으로 오십 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사천 년을 더 보내야겠군.”
부르르.
괴인의 손끝이 떨렸다.
여태 겪은 고통의 열 배에 해당하는 시간을 더 견뎌야 한단다. 심지어 그조차도 정확한 기간이 아니었다. 상대가 이룬 경지를 생각하면, 일만 년 동안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할 수도 있다.
“……대체.”
괴인이 허망한 얼굴로 물었다.
“대체, 내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다른 건 다 잊어도 내가 이러는 이유는 잊으면 안 되지.”
“…….”
“뭐, 잊었다면 계속 모르는 채로 있어. 과거지사에 대해 논하는 거, 나도 아주 지긋지긋하거든.”
“내가 네놈을 억압한 것은 고작 삼십 년에 불과했다.”
“고작이라니, 아직 쓴맛을 덜 봤군.”
“네놈은 날 사백 년이 넘도록 가두었어!”
“오 년이지.”
“……!!”
“나 역시 네놈 휘하에서 지낼 땐 하루가 일 년과 같았지. 그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라.”
“…….”
“그래도 기뻐해 줬으면 좋겠군. 당한 건 최소 열 배로 갚는 주의지만, 그렇게 하려면 내가 삼백 년을 넘게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나라도 그건 무리거든.”
“……!”
“앞으로도 여기서 잘 지내도록 해라.”
괴인의 얼굴이 멍해졌다.
놀라서 멍해진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상실한 자,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린 자의 표정이었다.
그런 괴인의 얼굴을 보던 서량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저런 상태에 빠지면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 있냐면, 그럴 수도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판마정도 작동하지 않으니, 괴인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로 계속 이곳에 갇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다만…… 저런 상태로 수천 년의 세월을 겪는다 한들, 그것은 무의미한 고문이 되리라.
서량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황량했던 땅이 순식간에 기화요초 만발한 무릉도원으로 변했다.
괴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기억나나?”
“…….”
“의천맹이 건재하던 시절, 네놈 거처의 후원이랑 비슷하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사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문을 받으며, 그는 많은 것을 잊었고, 잃었다.
서량 역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때는 참 이런 곳이 싫었어. 좋은 경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이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거든.”
“…….”
“이봐, ……영.”
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목소리를 줄인 것 같진 않은데, 이름의 마지막 끝 글자만 들렸다.
하긴, 그는 자신의 이름이 뭔지도 잊은 상태였다.
서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름이 안 들리나?”
“…….”
“그래, 그렇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묘한 느낌이 묻어 나오는 말이었다. 오랜 시간 갇혀 있어서가 아니라, 이름을 들을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듯했다.
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네놈이 지금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내 진심을 말하지 않으려 했어. 하지만 삶의 의욕을 완전히 잃었으니, 나도 솔직하게 말하지.”
“…….”
“지난 오 년 동안, 너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과거에 대해서도.”
“…….”
“네놈이 내게 한 짓은 분명 괘씸하지만, 너에 대한 한과 분노는 전부 내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정한 원칙이 있기에, 진정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널 가둬 두려 했지.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
“…….”
“만약 네놈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천하를 일통하고 마도의 신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을까?”
“…….”
“물론 도둑 때문에 집안 단속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여 도둑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좀 달라. 너에 대한 분노와 한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라 그런지, 네게 고마움마저 느껴지더군.”
“…….”
“그래서 생각했다. 이러한 고문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널 보내 주겠다고.”
“……무의미해지는 순간?”
“그래, 무의미해지는 순간.”
서량의 눈이 깊어졌다.
“지금의 너처럼.”
“…….”
“이제는 진짜 이별을 해도 될 때가 되었단 말이지.”
죽음으로서 이 지옥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한 순간이 왔음에도 괴인은 기뻐하지 않았다. 조금 전 완전한 절망을 맛보며 대부분의 희로애락을 잊었기 때문이다.
다만, 궁금한 건 있었다.
“이만 날 죽이겠다는 뜻인가?”
“아니.”
“……?”
“넌 이미 죽었어.”
“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사람이 사백 년 넘도록 산다는 게.”
“……?!”
“물론 그건 정신적인 부분이지. 실제로 흐른 시간은 오 년이야. 말하자면 네놈의 몸뚱이는, 지난 오 년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이곳에 묻혀 있었다는 소리다.”
순간 괴인의 눈이 커졌다.
서량이 고개를 저었다.
“넌 이미 죽었어. 다만 이 판마정이, 내 의지가 네놈의 영혼을 지금까지 붙잡아 두고 있었을 뿐이다.”
“……!!”
“알겠나? 영혼만 남은 네놈은 애초에 신화경에 이를 수 없어. 네놈이 그간 쌓은 양신도, 깨달음도 전부 허상에 불과하지.”
“……허, 허허.”
괴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량이 피식 웃었다.
“이승에 묶여 있느라 고생 많았네, ……영.”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네 손을 봐.”
괴인이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푸스스스.
어느새 손의 대부분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판마정이 열리며, 이승에 존재해선 안 될 그의 영혼이 비로소 완전한 안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괴인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죽는 건가?”
“그래.”
“그렇군…….”
“…….”
“…….”
“…….”
“내 이름이 들리지 않는 건, 내가 이미 죽어서인가?”
“그렇다.”
괴인이 눈을 감았다.
“……허무하구나.”
푸스스스스.
이내 괴인의 몸이 완전하게 분해되어 사라졌다.
허무할 정도로 손쉬운 죽음. 만일 그가 자신의 육신이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판마정이라도 그의 혼이 스러지는 걸 이토록 오래 막고 있진 못했을 것이다.
서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승천하는 가루가 별빛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잘 가라, 담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