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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전생기 외전-1화 (651/774)

외전 1화. 운명의 교차 (1)

화르르륵!

세상이 불타올랐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연기가 흘러가는 구름이 되어 십만의 봉우리를 내려다본다. 끊임없이 일렁이는 검은 구름은 저승으로 향하는 산길처럼 아득한가 하면, 출렁이는 삼도천처럼 무연했다.

피와 죽음만이 가득했다.

살을 태우는 냄새는 역했고, 피를 태우는 냄새는 독했다.

“표정이 왜 그래?”

주르륵.

흐르는 선혈은 시간이 갈수록 묽어졌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일까, 아니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물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누군가의 눈물 때문일까.

“얼굴 펴.”

“…….”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칼질이었어. 저승길 선물로는 과분할 정도야.”

“…….”

“이로써, 이 싸움도 끝이 났구나.”

울컥!

담담하게 말하는 그 순간에도, 유이상(劉理像)의 입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나 생각했지.”

“…….”

“나야말로 최고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했어.”

“…….”

“그리고 그런 나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너라고…… 쿨럭!”

울컥 터져 나온 핏물이 남자의 얼굴과 가슴에 튀었다.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칼로 사람을 찌른 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심한 그 얼굴은, 언뜻 투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이상은 알고 있었다.

이 남자가 울고 있다는 걸.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 오히려 남자의 얼굴에 가면을 덧씌워 버렸다는 것을.

“기쁘지 않은 거냐.”

“…….”

“그래, 이 많은 짐을 홀로 이고 가야 하는데 마냥 기쁠 수만은 없겠지.”

“…….”

“슬퍼하지 마. 힘들겠지만…… 가끔은 웃으면서…….”

스르륵.

말을 잇지 못한 유이상이 그대로 쓰러졌다.

투두두둑! 투둑!

하늘도 슬픔에 잠긴 것일까, 아니면 겁에 질린 것일까.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던 비가 기다렸다는 듯 폭우로 변했다.

쏴아아아아!

죽은 사내의 몸에서 빠진 칼에 묻은 핏자국이 순식간에 씻겨 나갔다.

그제야 남자는 깨달았다. 자신은 죽지 않았음을.

지금껏 딱딱한 인형처럼 살아왔지만, 이들과의 만남 덕에 어느덧 새 생명을 얻었음을.

환히 웃은 적도, 따스한 위로 한마디 건넨 적도, 사무치는 슬픔에 울음을 터트린 적도 없었지만.

마지막 전우의 죽음 앞에, 자신 역시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주르륵.

남자의 뺨을 타고 맑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만날 수 있나.”

남자의 목소리는 탁했다.

“내가 죽으면, 너희와 만날 수 있는 거냐.”

차갑고 딱딱한 목소리였지만 말끝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쏟아지는 빗방울 소리가 만들어 낸 환청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러한 존재였다.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무엇 하나 분명하게 정의할 수 없는 반인반수와도 같았다.

쏴아아아아!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신 쏟아지는 빗물이 얼굴을 뒤덮고 시야를 가렸지만, 탁한 눈동자는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사무치는구나.”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고,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이제야 자각한다. 사람이었다는 걸.

동시에 깨달았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걸.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

사람임을 자각한 순간이, 사람임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과 겹쳐 버렸다는 것이.

결국 나는 영원토록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구나.

남자의 얼굴이 조금씩, 조금씩 허망함으로 일그러졌다.

위잉.

그의 어깨 위로 한 줄기 푸른 전광이 일었다가 사라졌다.

“알려 줬어야지.”

일그러지는 남자의 눈이 점점 충혈되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물이, 빗물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도 너희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려 줬어야지.”

위이잉.

두 줄기 전광이 그의 허벅지와 옆구리 사이에서 밝은 빛을 뿜었다.

위이잉! 위이잉!

명멸을 반복하던 시퍼런 전광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남자의 얼굴이 더 강하게, 더 깊게 일그러졌다.

일그러지고 또 일그러져, 이제는 절망과 슬픔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 얼굴은 너무나도 비통해 보였다. 동시에 누구보다 ‘사람다웠다’.

“너희를 다 죽이면!”

툭.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남자의 눈에서 붉은 액체가 주르륵 흘렀다.

“다 죽이고 혼자 남으면, 이렇게 힘들다는 걸 알려 줬어야지!”

파지지지지직!

엄청나게 굵어진 회색빛 전광이 그의 몸 전체를 휘어 감으며 사나운 기파를 만들어 냈다.

파지지직! 퍼억! 퍼어어어엉!

빗물을 타고 흐른 전광이 쓰러지기 직전의 건물들을 마구 박살 냈다.

“아아아!!”

피눈물을 쏟아 내며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그의 모습은 좌절감이 극에 이른 인간 그 자체였다.

그러나.

파지지지지지지직!

점점 선명하게, 점점 어둡게 변하기 시작한 뇌전은 잠시 그에게 주어졌던 사람으로서의 길을 하나씩, 하나씩 지우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 쥐며 토해 내는 감정은 삼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남자는 원망스러웠다. 먼저 떠나 버린 그들이.

남자는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을 보내 버린 자신에게.

남자는 절망했다.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남자는 슬퍼했다. 그의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

어느새 고개를 내린 남자의 얼굴은 메말라 있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은 많은 것을 씻어 내렸다.

슬픔, 미련, 절망. 나아가 죽음마저도 흐르는 빗물 속에 녹아들어 산 아래로 향했다.

스르륵.

천천히 일어나는 남자의 몸은, 어쩐지 예전보다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후욱!

숨소리에서 느껴지는 강한 열기.

거센 폭우도 더 이상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제석(帝釋)의 힘을 훔친 욕계마왕의 힘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작 반쪽짜리에 불과한 힘이건만, 터져 나가는 감정이 알아서 마왕의 형상을 갖추게 한다.

문(門)을 열지 못한 자, 욕계(欲界)에 닿을 수 없다.

그러나 남자는 문을 열기도 전에 욕계에 닿았다. 폭발하는 감정이 마(魔)의 한계를 넓히고, 씻겨 나간 감정 속에 심긴 인간성을 상실한 신(神)의 씨앗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였다.

하지만 그 사나운 폭우도, 신을 잉태한 벼락 줄기도 하나의 감정만큼은 씻어 내지 못했다.

화아아아아악!

엄청난 열기가 만들어 낸 거대한 수증기가 궁전 앞을 장악했다.

번쩍!

안개보다 짙고 구름보다도 어두운 수증기 속, 한 쌍의 형형한 청안(靑眼)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끓는 노화(怒火), 타오르는 겁화가 담긴 두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기가 어렸다.

남자가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콰앙!

흘러내리던 빗물이 몽땅 하늘로 올라갔다.

구시대, 폭압의 상징이었던 지상의 신마(神魔)를 향해, 새 시대의 문을 열 천상의 마왕(魔王)이 고요한 명령을 내렸다.

“마신궁의 문을 열어라.”

지이잉! 퍼버벅!

흘러넘치는 마기(魔氣)가 어느덧 흑회색 벼락이 되어 사방을 초토화시켰다.

쿠구구궁!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궁전의 대문이 열렸다.

“우와아아!!”

열린 궁전 안.

수백의 병력이 도검을 든 채 함성을 질렀다. 하나같이 화려한 갑주를 찬 그들의 모습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의 군대처럼 보였다.

남자의 눈이 무심해졌다.

천마군(天魔軍).

만마(萬魔)의 추앙을 받는 신(神)을 지키기 위해 고르고 고른 지상 최강, 최흉의 군대.

신교의 마지막 보루이자 교주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다. 아우성치는 마군들의 눈을 보면, 정말 신화 속 악마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생각했다.

천박하구나.

마(魔)는 욕망이고, 욕망은 추잡한 것이며 추잡하니 어두운 진흙탕을 구른다.

천마군의 저 고루하고 천박한 눈빛은 그들이 섬기는 주인과 판박이였다.

그래선 안 된다.

칼을 쥔 남자의 손에 힘이 실렸다.

쩌어어어엉!

시커먼 칼날이 청아한 울림을 발했다.

칠야(漆夜)의 칼끝을 타고, 남자의 마성(魔性) 가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늘 이후, 자격 없는 자가 신좌(神座)에 앉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던 남자의 보행이 조금씩 빨라졌다.

악마의 군대가 괴성을 지르며 남자를 향해 돌격했다.

두두두두!

지진이라도 난 듯 신교의 내성이 뒤흔들렸다. 진군의 굉음, 그리고 굉음이 묻힐 만큼의 악다구니는 살기와 공포로 젖어 있었다.

남자의 발이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천마군의 선두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광기 어린 칼질이 시작되었다.

온 천하에 공포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마도무림(魔道武林) 총본산 천마신교(天魔神敎).

전대 교주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인해 천마신교는 유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후계자를 내정하지 않고 죽은 탓이었다.

신이 자리를 비웠으니 또 다른 신의 씨앗이 탄생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진정한 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 자리를 맡을 대리신(代理神)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인들은 호전적이었고 추대 방식은 온건하지 못했다. 신교라는 크고도 작은 세상은 어느새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마귀들의 각축장이 되었다.

수없이 많은 자가 죽었고, 수없이 많은 자가 쫓겨났다.

그 지옥 같은 전란 속에서 비로소 한 명의 위대한 마인이 권좌를 차지하였다.

자전신마(紫電神魔) 조백천(趙帛天).

장로원의 십대마왕(十大魔王) 중 서열 이 위로, 막강한 무공은 물론 뛰어난 수완으로 신교의 경제를 크게 부흥시킨 이.

그러나 통치자로서 조백천은 빈말로도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향한 평가는 박해졌고, 조백천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다.

결국 한 차례 안정되었던 신교는 자격지심이 극에 이른 조백천의 폭정으로 인하여 또 한 번 지옥 같은 시기를 맞이했다.

어둡고도 암울한 시대.

훗날 빛으로 추앙받을 단 한 명의 절대자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 그에게 부여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 * *

십오 년 전.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광마대주(光魔隊主)는 그답지 않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부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럴 게 아니라 대장들과 함께 환희원에 찾아가 보는 건 어떻습니까?”

광마대주가 고개를 저었다.

“부대장들끼리 합심하여 따지러 간다는 것 자체가 상부에서는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 있네. 자칫 부대 전체가 와해될 수도 있어.”

“하지만 대주님.”

“그리고…….”

광마대주가 눈을 감았다.

“대주 중에 환희원 쪽 간부들과 선을 댄 이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어.”

“…….”

“안타깝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 한 번 더 참을 수밖에.”

부관은 답답했다.

광마대는 신교에서도 유명한 전투 부대였다. 당연히 그러한 부대는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부대원들에게 지급될 봉급은 물론 무기, 의복, 훈련, 식사 등등 달에만 수백 냥이 깨진다.

그뿐인가. 작전에서 부대원이 죽거나 다치면 대체 인원을 뽑기 위해 또 돈이 들어간다. 책정된 공금을 받아도 빠듯한 생활이란 말이다.

한데 이제는 제때 공금도 주지 않는다.

‘대체 어쩌자고!’

신교에서도 정예로 소문이 자자한 광마대에게도 이럴진대, 외성 부대들에게는 얼마나 소홀할 것인가.

답답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부관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광마대주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내게 모아 둔 재산이 있어서 다행이지. 당분간은 그걸로 버텨 보자고. 뭔가 방법이 나오겠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럴 때는 돈 얘기보다 일 얘기나 하는 게 최고다.

광마대주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명한을 죽인 놈을 잡아 왔다고?”

“그렇습니다.”

“뇌옥에 있겠군.”

“부대 창고에 가둬 두었습니다.”

“뭐? 왜 형법당에 데려가지 않고?”

부관이 한숨을 쉬었다.

“어제부로 형법당의 부당주가 당주로 승급했습니다.”

“…….”

“우리 쪽에 불만도 많고, 아시다시피 사람이 원체 옹졸해서…….”

“…….”

“죄송합니다. 대주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선처리를 하였습니다. 이 죄는 달게…….”

“아닐세.”

광마대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남들 다 저지르는 위법, 우리라고 못 할 건 뭔가?”

부관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이지 이 모든 상황에 환멸이 났다.

광마대주가 옷자락을 가볍게 떨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일도 없는데 그놈 얼굴이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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